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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2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 개최 현황

신상구 국학박사 | 기사입력 2022/04/20 [18:44]

<특별기고> 4.19혁명 62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 개최 현황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향토사학자) 신상구

 

1. 4.19혁명 제62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과제

2022년 4월 19일은 4.19혁명 제62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역사적인 날이다.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1주일 간 대한한국 전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해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자유민주주의 시민혁명이다.

서울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이 경무대 앞까지 나와 시위하는 모습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3.15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자 대구, 대전, 마산, 광주, 청주, 충주, 수원, 서울 등 대도시의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곤봉과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중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게다가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의거에 참여한 김주열(金朱烈, 16세) 마산상고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라 국민들이 분노하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결국 4.19혁명이 터지고 말았다.

김주열(金朱烈, 16세) 마산상고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라 국민들이 분노하자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19혁명은 전국의 초·중·고·대학생, 일반 시민, 교수 등 남녀노소 10여 만 명이 참여해 대대적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여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6월 15일 제2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실제로 시위 진압에 동원된 무장 경찰들과 깡패들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거나 총을 발사하여 4.19혁명 과정에서 186명이 사망했고, 1500여 명이 부상을 당해 유가족들의 마음을 지금도 아프게 하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도중에 천일백화점 앞에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참혹한 장면

 

특히 4월 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벌인 후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청계천 4가를 지날 때에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지자 애국 시민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시위가 난무하는 바람에 사회질서가 혼란하고, 경찰서 등 관공서 건물이 파손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청년학생들이 주도한 4.19혁명은 한국의 역사에서 학생과 일반 대중이 봉기하여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아시아 최초의 사건으로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증해 주어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똑바로 심어주었다. 그리고 4.19혁명은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에 맞선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민주항쟁,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2017년 촛불 시민혁명 등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8.15 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19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었다고 언급한다. 한편 어느 역사학자는 4.19혁명을 절대왕정의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에 비유하였고, 어느 경제학자는 4.19혁명을 국가 독점 자본주의를 해체한 민주적 혁명으로 평가하였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 망명길에 오르는 장면

 

4.19혁명이 전 국민적 저항과 군 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로 성공을 거두자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하는 바람에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반공보수가 당내의 정책이었던 민주당은 시민들의 요구사항에 부응하지 못하고 4.19혁명을 4.19사태로 저평가했다. 무엇보다 장면 내각 때 경찰 내 발포 책임자에게 무죄 선고를 하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은 장면 총리가 주도하는 신파와 윤보선 대통령이 주도하는 구파의 대립으로 여전히 정치사회적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틈을 타서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5.16 혁명이라 치켜세우고 4.19혁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4.19의거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래도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 민주, 정의 등 4.19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묘지 전경

 

국가보훈처에서는 4.19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로 8길 17에 국립 4.19 민주묘지 · 기념탑 · 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의 경전철 역명을 4.19민주묘지역으로 정했다.

4·19묘지에는 445분의 4.19혁명 민주영령들이 안장되어 있고, 1995년 4·19혁명 35주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4·19묘지는 민주성지로 불리고 있다.
 

앞으로 4.19혁명 정신인 자유, 민주, 정의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4.19혁명 관련 민주시민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2.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4.19혁명 제62주년 기념식

국가보훈처는 2022년 4월 19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이라는 주제로 4·19혁명 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학생 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2주년 4·19혁명 기념식'을 헌화·분향, 국민의례, 여는 영상, 기념공연 1막, 기념사, 기념공연 2막, '4·19의 노래' 제창 등의 순서로 50분간 개최했다.

 

'여는 영상'은 1960년 당시의 생생한 현장 소리가 담긴 라디오 중계방송이 활용되었다.
 

헌화·분향에는 4·19혁명 관련 단체장과 참여학교(고려대, 서울대, 동국대, 대광고)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다. 또 배우 우상전 · 안영은이 4·19 혁명 첫 사망자인 고(故) 노희두 씨와 4월 26일 대통령 하야 당일 시위현장을 기록했던 민주유공자 이재영 씨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 일기 등을 각각 독백 형태 연극으로 소개했다.
 

뮤지컬 배우 박혜나는 4·19연합합창단과 함께 '민들레 홀씨되어'를 노래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기념사에서 “우리의 헌법 가치에 고스란히 반영된 4·19정신은 국민의 생활과 정부 운영의 전반에 담겨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4·19혁명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우리의 번영을 이루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며 “무엇보다 국가의 주인은 오로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윤석열 당선인은 “새 정부도 4·19혁명 유공자를 예우함에 있어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설 것”이라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나아갈 길을 밝혀준 4·19정신을 온 국민과 함께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기념식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새겨진 4·19혁명의 위대한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멈추지 않고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4·19혁명 정신을 국민과 함께 계승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념식 외에 4·19혁명 호국영령 추모제를 비롯한 지역별 추모행사, 국민문화제, 다큐멘터리 제작·방영 등 4·19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문화·체험행사도 개최되었다. [글쓴이 신상구 국학박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Special Contributi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62nd anniversary of the 4.19 Revolution and the status of the commemorative ceremony

Director of Chungcheong Cultural History Research Center (Doctor of National Studies, Poet, Local Historian) Shin Sang-gu

1. Historical significance and tasks of the 62nd anniversary of the 4.19 Revolution
April 19, 2022 is a very meaningful and historic day that marks the 62nd anniversary of the 4.19 Revolution.
The 4.19 Revolution took place throughout Korea from April 19 to April 26, 1960, in protest of the dictatorship of the Syngman Rhee regime and the election fraud on March 15, and young students and citizens rose up and collapsed the First Republic of Korea. it's a revolution
When Syngman Rhee's dictatorship of the Liberal Party suppressed human rights and attempted to extend the regime through the March 15th election fraudulently, young students and citizens from large cities such as Daegu, Daejeon, Masan, Gwangju, Cheongju, Chungju, Suwon, and Seoul protested and held large-scale demonstrations. However, as the police armed with clubs and guns ruthlessly suppressed the student protests, students lost their lives and suffered serious injuries. In addition, on the morning of April 11, 27 days after the disappearance of Kim Joo-yeol (16 years old), a student from Masan Sanggo who participated in the March 15 Masan Uprising, which claimed the invalidity and re-election of the 3/15 fraudulent election, the left side of the Masan Central Pier The protests spread across the country, leading to the 4.19 Revolution, as the people were furious as the bodies floated up with tear gas fired by the police stuck in their eyes.
In the 4.19 Revolution, over 100,000 people of all ages, including elementary, middle, high school, and college students, ordinary citizens, and professors across the country participated in a massive and violent demonstration, which resulted in the dismissal of President Syngman Rhee on April 26, 1960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econd Republic on June 15. It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in the Republic of Korea, but at the cost of many sacrifices. In fact, armed police officers and thugs mobilized to suppress the protests fired tear gas, wielded batons, or fired guns. In the process of the 4.19 Revolution, 186 people were killed and 1,500 people were injured, still hurting the hearts of the bereaved families.
In particular, on April 18, Korea University students on their way home from a peaceful protest demanding the release of their detained classmates and freedom of academy in front of the National Assembly building were attacked and seriously injured by political thugs called anti-communist youth conspiring with the police as they passed Cheonggyecheon 4-ga. Patriotic citizens were outraged when they collapsed on the road. In addition, the demands of the citizens exploded at once, and the social order was chaotic as the protests were rampant, and government buildings such as the police station were damaged.
The April 19 Revolution, led by young students, was the first Asian event in Korean history where students and the general public rose up and overthrew the dictatorship. By demonstrating for the first time that it can come out, he directly instilled the spirit of democracy in the citizens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4.19 Revolution had a great impact on democratization movements such as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n 1980 against the power of the new military government of Chun Doo-hwan, the democratic uprising in June 1987 that won the direct presidential election, and the Candlelight Citizenship Revolution in 2017 that gave birth to the Moon Jae-in regime,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in Korea. It can be seen that a solid foundation has been laid on the So, some historians say that the liberation of August 15 was the 'first liberation' and the 4.19 revolution was the 'second liberation.' On the other hand, a historian compared the 4.19 Revolution to the French Revolution that destroyed the old system of absolute monarchy, and an economist evaluated the 4.19 Revolution as a democratic revolution that dismantled the state monopoly capitalism.
After the 4.19 Revolution succeeded through national resistance and the military command's refusal to mobilize force, President Syngman Rhee resigned on April 26 and fled to Hawaii, where the opposition Democratic Party took power. The Democratic Party, which had an anti-communist policy within the party, failed to meet the demands of the citizens and underestimated the 4.19 Revolution as the 4.19 Incident. Above all, the students and citizens were greatly disappointed when the police officer in charge of firing was acquitted during the scene cabinet. To make matters worse, the Democratic Party was still in constant political and social chaos due to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new faction led by Prime Minister Myung Sang and the old faction led by President Yoon Bo-seon. Taking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the military regime Park Chung-hee, who seized power in a coup on May 16, 1961, exalted the coup they launched as the 5.16 Revolution to emphasize their legitimacy, and denigrated the 4.19 revolution to undermine the 4.19 Revolution.
Still, in the preamble of the current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it is written that the spirit of 4.19, such as freedom, democracy, and justice, will be inherited.
To commemorate the spirit of the 4.19 Revolution,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established the National 4.19 Democracy Cemetery, Monument, and Memorial Hall at 17, 4.19-ro 8-gil, Suyu-dong, Gangbuk-gu, Seoul, and named the nearby light rail station 4.19 Democracy Cemetery.
In the April 19 Cemetery, the democratic heroes of the April 19/445 Revolution are buried, and in 1995, on the 35th anniversary of the April 19 Revolution, it was elevated to a national cemetery. That is why the April 19 Cemetery is called a sacred place for democracy.
In the future, in order to firmly establish a liberal democratic political system by creatively inheriting and developing the spirit of the 4.19 Revolution, freedom, democracy, and justice, it is necessary to significantly strengthen education for democratic citizenship related to the 4.19 Revolution in school education and social education.
2. The 62nd anniversary of the 4.19 Revolution hosted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was held at the National April 19 Democracy Cemetery in Gangbuk-gu, Seoul at 11 am on April 19, 2022 under the theme of 'Like a river going to the sea'. In the middle, the '62nd Anniversary of the April 19 Revolution Commemoration Ceremony' was held for 50 minutes in the order of flowers and incense, national rituals, opening video, commemorative performance act 1, commemorative speech, commemorative performance act 2, and 'April 19 Song' reciting. .
For the 'Opening Video', a radio relay broadcast containing live sound from the 1960s was used.
The heads of organizations related to the April 19 Revolution and students from participating schools (Korea University, Seoul National University, Dongguk University, and Dae-Sung University) participated in the wreaths and incense burns. In addition, actors Woo Sang-jeon and Ahn Young-eun, the late Noh Hee-doo, who were the first victims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Lee Jae-yeong, a man of merit for democracy who recorded the protests on the day of the president's resignation on April 26, wrote letters and diaries into monologue plays, respectively. introduced
Musical actress Park Hye-na sang "Becoming a Dandelion Spore" with the April 19 Union Choir.
In his commemorative speech, President-elect Yoon Seok-yeol said, “The spirit of April 19, which is fully reflected in the values of our constitution, is embedded in the lives of the people and the overall operation of the government. Democracy is to protect freedom,” he said. “The April 19 Revolution became a valuable foundation for our prosperity on the foundation of liberal democracy,” he said. In addition, President-elect Yoon Seok-yeol said, “The state will take responsibility so that the new government does not neglect even one bit of respect for those of merit in the April 19 Revolution. I will never forget it with the whole people,” he said.
Minister of Veterans Affairs Hwang Ki-cheol said, "I hope that the ceremony will serve as an opportunity to remind us of the great value of the April 19 Revolution engraved in the preamble of the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We will continue to work hard for it,” he said.
Meanwhile, in addition to the commemoration ceremony, various cultural and experiential events were held to continue the spirit of the 4/19 revolution, such as regional commemoration events, national cultural festivals, and documentary production and broadcasting, including the memorial service for the heroes of the 4/19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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