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옥 변호사 별세..."박정희 암살했던 김재규 끝까지 변호"

브레이크뉴스 2007년 4월29일자...강신옥 변호사 단독 인터뷰 중계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1/07/31 [16:56]

▲고 강신옥 변호사. ©브레이크뉴스

7월31일 오전 강신옥 변호사(전 의원)가 별세했다. 올해 85세. 강 변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변호했던 변호사 였다. 필자는 강신옥 변호사와 지난 2007년 4월26일 단독 인터뷰를 가졌었다. 강 변호사는 이때 “김재규는 의인”이라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의 별세를 계기로 필자와 가진 지난 2007년 인터뷰 전문을 중계 한다. 아래는 본지(브레이크뉴스 2007년 4월 29일자 기사의 전문이다.

 

"박정희 살해는 김재규 명예 혁명이었다"

<단독 인터뷰> 김재규를 끝까지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

-문일석 기자|브레이크뉴스 2007년 4월29일

 

1980년 5월24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던 김재규가 사형된 날이다. 김재규 사후 27년이 흘렀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아직도 살인자냐, 독재의 사슬을 끊은 혁명가냐는, 엇갈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김재규의 변호를 담당했던 강신옥 변호사(72세. 전 국회의원)는 김재규의 재평가에서 "의기(義氣)가 있는 이 나라의 의인(義人)"라고 평하길 주저치 않는다. 기자는 4월26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서울 서초동 법원 뒤뜰의 벤치에서 강변호사와 야외 인터뷰를 가졌다.

 

강변호사는 "당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면 투쟁해온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를 좋게 보는 발언을 했다."고 전제하고 "성직자로서 사람을 죽인 것을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의로운 일을 했음을 시사하는 말을 많이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독재와 유신의 사슬을 끊어준 김재규의 행동을 높이평가 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강신옥 변호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김재규의 변호를 어떤 경유로 맡게됐나?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나로서는 원하는 바 였다. 소원을 풀었다.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시저를 살해한 부르터스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박선호 가족들이 나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그 뒤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 쪽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김재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황인철, 홍성우, 이동명, 임광규 변호사 등이  김재규의 공동변호를 맡게 됐다. 그후  자원 변호사 20여명이 김재규 변호를 하겠다고 나섰다. 일부 변호사들은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해 자원변호사를 자청한 이들도 있었다. 김재규가 이 점을 눈치채고 변호거부를 선언했다. 김재규는 "나 혼자서도 혁명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박선호 변호인이었기 때문에 1심을 마칠 때까지 김재규의 재판에 참관할 수 있었다.

 

집권욕보다 애국심이 강해

 

-일반에게 잘 못 알려진 김재규의 면모는?

 

▲김재규의 1심 최후진술은 변호사가 작성한 것이 아닌, 김재규 스스로의 변론(웅변)이었다. 김재규가 30분간 말로 한 것을 내가 외부에 알렸다. 항소심에서 김재규는 나에게 변론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황인철, 이돈명 변호사 등과 함께 대법원까지 김재규를 변호했다.

 

당시 군부는 김재규를 집권욕을 가진 이로 치부했다. 대통령을 하고 싶어 쿠데타를 한 것으로 몰아갔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재규는 내가 볼 때 박정희를 죽이고 권력을 빼앗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는 아니었다. 집권욕 보다는 애국심이 강했다.  박정희가 살아 있는 동안 이승만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정희는 부마사태 때도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런 차제에 김재규는 유신철폐를 위해 박정희를 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유신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이 희생될 것을 예상했다. 김재규는 그렇게 내다보고 박정희를 제거했던 것이다.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와 전두환 집권은 유관 관계는?

 

▲전두환은 김재규가 쏜 총탄 속에서 집권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10.26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빨리 입수한 곳이 당시 보안사였다. 보안사가 김병수 국군통합병원장과의 통화로 코드 원(1=대통령)이 살해됐다는 정보를 입수, 선제공격을 취했다. 보안사는 김재규를 체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김재규의 행동이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주지시켰다. 차지철에 대한 질투의 결과물로 포장했다. 또는 내연의 여자가 있었다, 돈을 많이 먹었다는 등의 여론조작으로 김재규를 형편없는 놈으로 만들어 갔다. 추잡한 동기로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욱! 하는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도 부각시켰다.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이 내용을 발표했다, 결국 전두환은 김재규의 혁명을 깔아뭉개고 집권했다.

 

10.26 당시 민심을 보면 박정희가 죽을 때가 됐다는 분위기였다. 그 무렵 신문을 보라. 김재규는 역사적으로 재평가 될 것이다. 12.12, 5.17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전두환 신군부가 강권을 휘둘렀다. 국민은 말못하고, 지식인들도 고개를 숙였다. 지내놓고 보니 전두환이 대통령 감이냐, 돈을 해먹고, 의기(義氣)가 김재규와 비교가 되나? 오히려 전두환이 지저분한 사람이다.

 

김재규 혁명 동기 순수

 

-김재규의 혁명동기는 순수했는가?

 

▲김재규는 순수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처럼 국가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칠 의기(義氣) 있는 이였다. 김재규는 사육신을 존경했다. 특히 사육신에서 빠진 김문기를 정보부장 때 복권시켰다. 자신이 죽을 자리가 여기라고 인식한 것이다. 지저분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김재규는 "내가 박정희에게 신세졌다. 그러나 그를 죽이지 않으면 유신이 철폐되지 않는다. 소의(小義)를 버리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보안사에서는 김재규의 이러한 말들을 내가 만들어줬다고 보고 있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김재규를 접견하는 첫날부터 그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 조준희 변호사는 김재규의 이 같은 말들을 듣고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다. 김재규는 진실한 동기로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 제거했다. 5.16 쿠데타 같은 욕심이 있은 것도 아니었다. 김재규는 자신이 혁명의 주인공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 시체 위에 올라서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학생들의 피해, 미국과의 관계, 안보 등을 고려해 박정희를 제거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신군부 실세는 김재규를 향해 "왜 박대통령을 죽이고 자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말했다. 김재규는 뒤처리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설거지를 하고 자결"할 생각이라고 말했었다.

 

국회 5공청문회 때 장세동을 심문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됐다. 당시 나는 "전두환이 김재규를 자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서 "김재규와 전두환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가?"라고 물었다. 장세동은  한사람은 대통령을 죽이고 한 사람은 대통령을 지낸 분이라는 의도로 말했다. 그래서 "자결해야할 사람은 김재규가 아니라 전두환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정희 살해사건으로 규정

 

-김재규의 10.26을 재평가 해준다면?

 

▲사람 생명의 가치는 대통령이나 서민이나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을 죽였다고 해서 반드시 사형시켜야 하나? 전두환은 김재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간접적으로 죽였다고 생각한다, 김재규의 혁명은 박정희와 경호원 5명 등 6명을 죽였을 뿐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12.12, 광주사태 등에서 많을 국민을 희생 시켰다. 김재규의 10.26은 12.12, 5.16, 5.17 보다 훨씬 명예스러운 혁명이다.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는 가장 명예스러운 혁명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해 사건'이라고 하는데, 시해는 왕을 죽였을 때 쓰는 말이다. 나는 '박정희 시해사건'이 아니라 '박정희 살해사건'이라고 늘 말해왔다.

 

-김재규 평가에서 섭섭한 게 있다면?

 

▲10.26 직후 사회적 분위기는 지식인 언론인들 사이에서 김재규를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5.17 이후 폭압정치로 인해 그 분위기가 바뀌었다. 권력이 김재규를 좋게 보는 것을 막았다. 이 점이 지금도 섭섭하다. 김재규 가족들은 "김재규가 박정희도 살리고 나라도 살렸다"고 주장했다. 박정희가 죽고 난 뒤 영웅처럼 됐다는 것이다. 김재규의 총에 죽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국민이 애도도 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됐다는 것이다.

 

-대법원 사형확정 판결 당시의 비화가 있으면 소개해달라.

 

▲김재규의 혁명은 성공했다. 유신이 철폐됐기 때문이다. 김재규 재판 당시 유태흥 주심은 절반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패장은 원래 사형 아니냐, 김재규는 패장이잖느냐?"고 했다. 그는 김재규에게 사형을 선고한 덕분인지 그후 대법원장이 됐다가 자살했다.

당시 신군부는 재판부에 사람을 보내 "빨리 사형을 선고하라"고 압박을 가했다고 전해들었다. 1980년 5월20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김재규는 사형이 확정되자 속전속결로 그후 4일 후인 5월24일 사형됐다.

 

변호하며 신변위협 느껴

 

-당시 신군부는 김재규를 몹쓸 사람으로 몰아갔다.

 

▲김재규는 1980년 5월에 사형됐다. 그가 죽인 이후, 지난 28년간 김재규와 관련된 이렇다할 부정적인(네거티브) 정보는 없었다. 깨끗했다. 내연여로 알려진 a여인이 있었다. 그는 아들이 둘 있었다. 김재규의 아들이라고 우겨,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 김재규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사형되기 전 김재규는 동생인 김항규의 아들을 양자로 지목했다. 만약 a여인의 아들이 김재규의 아들이었다면 왜 입적시키지 않았겠나? 동생인 김항규도 "형님 아들이었으면 왜 안 데려오겠나?"라고 말했다.

 

-김재규를 변호해온 것 때문에 신변은 위협도 있었을텐데

 

▲항상 위협을 느끼며 지냈다. 나는 김재규가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가 되는 날 보안사 지하실에 끌려갔다. 그래서 김재규가 사형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5월 24일 보안사 지하실 텔레비전에서 김재규가 사형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김재규의 변호사로서 5월15일 마지막 면회했다.

 

-김재규가 살아 있다는 설도 있었는데...

 

▲미국 cia개입설도 있었다. 그래서 김재규 사형 이후 미국에서 김재규를 보았다는 설도 나돌았다. 그러나 가족들이 김재규의 시신을 확인했다. 김재규가 살아 있다는 말, 그런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 . 강신옥 변호사는 "김수환 추기경은 김재규를 높이평가 했다"고 말했다.

 

-김재규의 재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민주화 유공자로 신청했었는데 어찌됐나?

 

▲조준희 변호사(민주화보상심의위 위원장)에게 "김재규도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으로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김재규는 의사이거나 민주화유공자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가족들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민주인사로 심의해달라고 신청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왜장 이등박문을 살해한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의사라는 관점에서이다, 통과되지 않자 가족들은 민주화 유공자 신청을 취하했다.

 

박정희 딸 근혜와의 악연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이후 3김에 대하여 말해달라.

 

▲1979년 10.26이 일어난 이후 1980년 봄의 일이다. 김대중이 복권됐다. 복권된 이후 인권 변호사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신당 창당, 정치재개, 신민당 입당 여부 등을 묻기 위해서 였다. 나는 김대중에게 "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국민운동을 할 때다. 신민당에 입당하라. 그리고 김재규 구명운동을 해달라"고 요망했다. 김대중은 구체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5.17 사태가 올지도 모르고, 집권야욕에 눈이 어두워 있었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은 한결같이 허점을 보였다.

 

▲ 강신옥 반호사와 본지 문일석 발행인(오른쪽)의 인터뷰 장면.     ©브레이크뉴스

-박근혜와 악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대선전 때 나는 정몽준의 대선 기획단장이었다.  당시 정몽준은 박근혜를 영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와 정몽준, 박근혜가 테니스를 친 적도 있다. 당시 a라는 유명 여자 연예인이 이혼을 했다. 한 여성지 여기자가 나를 찾아와 "a연예인이 이혼을 했는데 박정희와 연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김재규와 가진 면회노트를 꺼내 김재규가 말한 박정희와 관계한 여성 명단 가운데 a라는 여성이 끼어 있는지를 살펴봤다. 없었다. 이 여기자에게 김재규 면담 노트를 보여줬더니 돌아가서 "강신옥 변호사 입열다"는 제목 하에 박정희의 여자 리스트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본 정몽준은 나에게 "박근혜에게 사과를 하라"고 수차에 걸쳐 요구했다. 나는 "뭘, 사과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정몽준 캠프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 명예롭게 나온 것이다. 나와 박근혜 간의 악연이기도 했다.

 

김재규는 수감 중에 가졌던 나와의 면회에서 박정희의 여자관계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수백명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했다. 애국심 보다 집권욕이 강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비극으로 끝난 이유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은 김재규를 어떻게 평가했나?

 

▲당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면 투쟁해온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를 좋게 보는 발언을 했다. 물론 성직자로서 사람을 죽인 것을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의로운 일을 했음을 시사하는 말을 많이 했다. 가톨릭 계통에서 김재규의 구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김재규는 죽기 전에 부인 김영희에게 "내가 죽으면 승려가 되라"는 유언을 했는데 김재규의 부인은 가톨릭 영세를 받았다. 아마 가톨릭에서 구명운동을 해준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독재와 유신의 사슬을 끊어준 김재규의 행동을 높이평가 했다. 그리고 김재규가 사형될 때까지 끝까지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가족들이 추기경을 만나 구명을 요청할 때도 "할말이 없습니다"라는 짧은 말로 응대했다. moonilsuk@korea.com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Lawyer Shin-ok Kang passed away... "Defendant Kim Jae-gyu, who assassinated Park Chung-hee, until the end"

Break News on April 29, 2007...Replayed exclusive interview with Shin-ok Kang

-Moon Il-suk Publisher

 

On the morning of July 31, lawyer Kang Shin-ok passed away. She is 85 years old. Lawyer Kang was a lawyer who defended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who assassinated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I had an exclusive interview with lawyer Shin-ok Kang on April 26, 2007. At this time, lawyer Kang emphasized that “Kim Jae-gyu is a righteous man”, and she relays the full text of the 2007 interview with the writer following the passing of lawyer Kang. Below is the full text of this article (Break News, April 29, 2007).

"The murder of Park Chung-hee was an honorary revolution for Kim Jae-gyu"

<Exclusive Interview> Kang Shin-ok, a lawyer who defended Jae-gyu Kim until the end

-Reporter Il-seok Moon|Break News April 29, 2007

On May 24, 1980, Kim Jae-gyu, who murdered then President Park Chung-hee, was executed. 27 years have passed since Kim Jae-gyu's death. The re-evaluation of him is still a murderer or a revolutionary who broke the chains of dictatorship. Attorney Shin-ok Kang (72 years old, former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who was in charge of defending Kim Jae-gyu, does not hesitate to comment on Kim Jae-gyu's re-evaluation as "a righteous person in this country with a sense of justice." The reporter had an outdoor interview with Attorney Kang on the bench in the backyard of the court in Seocho-dong, Seoul from 7 to 9 in the morning on April 26th.

At that time, the Catholic Cardinal Kim Su-hwan, who had been paying attention to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Korea and fighting on one side, made remarks that looked good on Kim Jae-gyu, who murdered Park Chung-hee," said Kang. Cardinal Kim Su-hwan highly appreciated the actions of Kim Jae-gyu, who sacrificed his life to break the chains of dictatorship and restoration." The following is an interview with Shin-ok Kang, a lawyer.

 - How did you come to represent Jae-gyu Kim?

▲ Park Chung-hee died in the October 26, 1979 incident. It was what I wanted as a person who was involved in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wish came true Kim Jae-gyu, the then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who killed Park Chung-hee, thought he was the same person as Brutus who killed Caesar. Then, Park Seon-ho's family appointed me as a lawyer. After that, people from Cardinal Kim Su-hwan's side of the Catholic Church came to me and asked, "Please help Kim Jae-gyu." So, I, Hwang In-cheol, Hong Seong-woo, Lee Dong-myung, and Lim Kwang-gyu, lawyers, were appointed as joint defense attorneys for Kim Jae-gyu. After that, about 20 volunteer lawyers came forward to represent Kim Jae-gyu. Some lawyers volunteered to become volunteer lawyers to manage their popularity. Kim Jae-gyu noticed this and declared a refusal to defend. Kim Jae-gyu said, "I can speak of the legitimacy of the revolution by myself." However, since I was Park Seon-ho's attorney, I was able to observe Kim Jae-gyu's trial until the first trial was completed.

Patriotism is stronger than desire for power

- What aspects of Kim Jae-gyu are not well known to the general public?

▲ Kim Jae-gyu's final statement in the first trial was not written by a lawyer, but was Kim Jae-gyu's own defense (oratory). I informed the outside of what Jaegyu Kim had spoken for 30 minutes. At the appeals court, Jae-gyu Kim demanded that I defend myself. So I defended Kim Jae-gyu up to the Supreme Court with lawyers Hwang In-cheol and Lee Don-myung.

At that time, the military viewed Kim Jae-gyu as a person with a desire to rule. He was driven to do a coup because he wanted to be president. Of course you can see it that way. However, Kim Jae-gyu was not, in my view, the one who had the intention of killing Park Chung-hee and taking power. He was more patriotic than his desire for power. He knew that while Park Chung-hee was alive, he was different from Syngman Rhee. Park Chung-hee was holding on to the position that he would directly issue an order to fire even during the Buma incident. Kim Jae-gyu concluded that he had no choice but to kill Park Jeong-hee in order to abolish the Yushin. Otherwise, it was expected that many people would be sacrificed due to the Yushin. Kim Jae-gyu looked forward to it and removed Park Chung-hee.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Kim Jae-gyu's murder of President Park Chung-hee and Chun Doo-hwan's reign?

▲ Chun Doo-hwan came to power from a bullet fired by Kim Jae-gyu. At that time, the security agency was the first to obtain information about the 10.26 incident in which Jae-gyu Kim killed Park Jeong-hee. The security guard received information that Code One (1 = President) was murdered through a phone call with Kim Byung-soo, director of the Armed Forces General Hospital, and took a preemptive attack. The security officer arrested Kim Jae-gyu and controlled the media, reminding the public that Kim Jae-gyu's actions were not good. It was packaged as a result of jealousy towards Cha Ji-cheol. Or, he made Kim Jae-gyu a bad guy by manipulating public opinion, such as saying that there was a woman with a relationship or that he ate a lot of money. It was said that he had murdered the president for obscene motives.

Wow! It was also emphasized that it was an accidental event. At that time, the head of the Joint Investigation Headquarters Chun Doo-hwan announced this, and in the end, Chun Doo-hwan crushed Kim Jae-gyu's revolution and came to power.

Looking at the public sentiment at the time of 10.26, there was an atmosphere that it was time for Park Chung-hee to die. Look at the newspaper around that time. Kim Jae-gyu will be historically re-evaluated. As the 12.12 and 5.17 incidents occurred, the new military commander Chun Doo-hwan wielded power. The people were speechless, and the intellectuals bowed their heads. Looking back, does Chun Doo-hwan have a sense of president, eat money, and do his morals compare to Kim Jae-gyu? Rather, Chun Doo-hwan is a dirty person.

Kim Jae-gyu's Revolutionary Motivation Pure

- Was Kim Jae-gyu's revolutionary motive pure?

▲ Kim Jae-gyu was pure. Like the Japanese samurai, he was a man willing to give his life for the country. Kim Jae-gyu respected the breed. In particular, he reinstated Kim Moon-gi, who was missing from the breeding scene, when he was the information manager. He recognized that this was the place where he would die. Never been a dirty person. Kim Jae-gyu said, "I was indebted to Park Jeong-hee. But if I don't kill him, Yushin will not be abolished. He gave up his small will and shot Yushin's heart with the heart of a beast." The security agency believed that I made these words of Kim Jae-gyu, but that was not true.

From the first day I interviewed Jae-gyu Kim, I heard these words from him. Lawyer Jo Jun-hee had tears in her eyes after hearing Kim Jae-gyu's words. Kim Jae-gyu killed and eliminated the dictator Park Chung-hee with sincere motives. There was no greed like the 5.16 coup. Kim Jae-gyu himself was the protagonist of the revolution. Kim Jae-gyu stood on the corpse of Park Chung-hee and said that he would never become president. He said that he had removed Park Chung-hee in consideration of the students' harm,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and security.

▲The publisher of this magazine, Il-seok Moon, interviewing lawyer Shin-ok Kang - At that time, the head of the new military department questioned Kim Jae-gyu, "Why didn't you kill Park Jeong-hee and commit suicide?"

▲At that time, the new military commander said to Kim Jae-gyu, "Why didn't you kill President Park and commit suicide?" Kim Jae-gyu said that he was the only one who could take care of it. Kim Jae-gyu had said he was thinking of "he will wash the dishes and kill himself".

Jang Se-dong was once questioned during the 5th public hearing of the National Assembly. was broadcast live on TV. At the time, I asked, "Did Chun Doo-hwan not kill Kim Jae-gyu?" I asked, "Who is better, Kim Jae-gyu or Chun Doo-hwan?" Jang Se-dong said with the intention that one person killed the president and the other served as president. That's why I once said, "The person who should commit suicide is not Kim Jae-gyu, but Chun Doo-hwan."

Park Chung-hee murder case

-If you could re-evaluate Kim Jae-gyu's 10.26?

▲ The value of human life is no different from that of the president or common people. Should I be put to death just because I killed the president? I think Chun Doo-hwan indirectly killed far more people than Kim Jae-gyu. However, Chun Doo-hwan sacrificed many people in the 12.12 and Gwangju incidents. Kim Jae-gyu's 10.26 is a much more honorable revolution than 12.12, 5.16, and 5.17. Kim Jae-gyu's murder of Park Chung-hee is the most honorable revolution. And it's called the 'Park Jeong-hee assassination case', which is a word used when the king was killed. I have always said that it was not the 'Park Chung-hee assassination case' but the 'Park Chung-hee murder case'.

-Is there anything that you were disappointed about in Kim Jae-gyu's evaluation?

▲The social atmosphere right after 10.26 gave a good evaluation of Kim Jae-gyu among intellectual journalists. However, the atmosphere changed due to the tyranny after 5.17. The power prevented Kim Jae-gyu from looking good. This still saddens me. Kim Jae-gyu's family claimed, "Kim Jae-gyu saved Park Chung-hee and the country." He said that after Park Chung-hee died, he became like a hero. Because he was shot by Kim Jae-gyu, the people mourned for the death of Park Chung-hee and he was buried in the national cemetery.

-If there is a story behind the death sentence of the Supreme Court, please introduce it.

▲ Kim Jae-gyu's revolution was successful. Because Yushin was abolished. At the time of Kim Jae-gyu's trial, referee Yoo Tae-heung said it was half successful. However, he said, "Isn't the badge originally a death sentence, and is Kim Jae-gyu a badge of honor?" He committed suicide after serving as 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perhaps thanks to the death penalty sentenced to Kim Jae-gyu.

At that time, it was said that the new military government sent someone to the court and put pressure on them to "sentence the death penalty quickly." On May 20, 1980, the Supreme Court upheld the death penalty. When the death penalty was confirmed, Kim Jae-gyu was executed four days later, on May 24.

I feel threatened while defending

-At that time, the new military department drove Kim Jae-gyu to be a bad person.

▲ Kim Jae-gyu was executed in May 1980. Since his death, there has been no negative (negative) information regarding Kim Jae-gyu for the past 28 years. It was clean. There was a woman known as a mistress. He had two sons. He insisted that he was Kim Jae-gyu's son, and even did a genetic test. It turned out that he was not Kim Jae-gyu's son. Before his execution, Jae-gyu Kim adopted the son of his younger brother, Hang-gyu Kim. If woman a's son was Kim Jae-gyu's son, why didn't he join him? His younger brother, Kim Hang-gyu, also said, "If it were your brother's son, why wouldn't you bring him?"

-There must have been a threat to his life because he was defending Kim Jae-gyu.

▲I always felt threatened. I was taken to the basement of the sheriff's office the day Kim Jae-gyu was sentenced to death by the Supreme Court. So I didn't see Jae-gyu Kim being executed. On May 24th, I heard the news that Kim Jae-gyu was executed on TV in the basement of the security guard. As Kim Jae-gyu's lawyer, he had his last visit on May 15th.

-There was a theory that Kim Jae-gyu was still alive...

▲ There were also rumors of US CIA intervention. So, after Kim Jae-gyu's execution, there were also rumors that he had seen Kim Jae-gyu in the United States. However, the family confirmed Kim Jae-gyu's body. To say that Kim Jae-gyu is alive is nonsense.

▲ Cardinal Suhwan Kim. "Cardinal Kim Soo-hwan highly valued Kim Jae-gyu," said Kang Shin-ok, a lawyer.

-I think Kim Jae-gyu's reevaluation will continue over time. He applied for a meritocracy for democracy, but what happened?

▲I once asked lawyer Jo Jun-hee (chairman of the Democratization Compensation Committee), "I want Kim Jae-gyu to be one of the people who acted in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t is my opinion that Kim Jae-gyu is a doctor or a person of merit for democracy. The family applied to the Democratization Compensation Deliberation Committee to consider it as a democratic person. Kim Jae-gyu, the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is from the point of view that he is the same doctor as Ahn Jung-geun, who murdered Japanese commander Lee Deung-bak-moon.

Affair with Park Jung-hee's daughter Geun-hye

-Tell me about the third Kim after Kim Jae-gyu killed Park Jeong-hee.

▲ It is the spring of 1980 after the incident of October 26, 1979. Kim Dae-jung was reinstated. After he was reinstated, he invited human rights lawyers to his house. It was to inquire about the establishment of a new party, the resumption of politics, and whether to join the New Democratic Party. I asked Kim Dae-jung, "It's not the time for politics, it's the time for the people's movement. Join the New Democratic Party. And do the Kim Jae-gyu lifesaving campaign." Kim Dae-jung did not give a specific answer. They did not know that the 5.17 incident might come, and they were blinded by their ambition to take power. At that time, Kim Dae-jung, Kim Young-sam, and Kim Jong-pil all showed loopholes.

- It is known that he had a bad relationship with Park Geun-hye.

▲ During the 2002 presidential election, I was the head of Chung Mong-joon's presidential campaign planning team. At that time, Mong-Jun Chung tried to recruit Geun-Hye Park. So, Mong-Jun Jung and Geun-Hye Park played tennis once. At that time, a famous female entertainer named A was divorced. A female magazine reporter came up to me and asked, "A celebrity got a divorce, is she related to Park Jung-hee?" So, I took out a meeting note with Kim Jae-gyu and looked to see if there was a woman named a in the list of women related to Park Jeong-hee that Kim Jae-gyu said. there was no She showed this reporter Kim Jae-gyu's interview notes and she went back and she wrote an article about Park Chung-hee's list of women under the title "Lawyer Kang Shin-ok Opens Mouth". Mong-Jun Jung, who saw this article, asked me several times to "Apologize to Geun-Hye Park." I said, "What are you apologizing for?" In the end, I made the decision to leave the Jung Mong-joon camp on my own. Then it came out with honor. It was also a bad relationship between me and Park Geun-hye.

Kim Jae-gyu also disclosed in detail Park Jeong-hee's relationship with women during a visit with me while in prison. There were hundreds. Kim Jae-gyu pointed out Park Chung-hee's moral corruption. His desire for power was stronger than his patriotism. This is why Park Chung-hee ended in tragedy.

-How did Cardinal Kim Su-hwan, who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Korea, evaluate Kim Jae-gyu?

▲ At that time, Catholic Cardinal Kim Su-hwan, who had been paying attention to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Korea and fighting on one side, spoke positively about Kim Jae-gyu, who murdered Park Chung-hee. He, of course, didn't mind killing people as a priest, but he did a lot of things suggesting that he did something righteous. He actively helped save Jae-gyu Kim in Catholicism. Before his death, Jae-gyu Kim made a will to his wife, Young-hee Kim, saying, "When I die, become a monk." Kim Jae-gyu's wife was baptized Catholic. Perhaps it is because of the influence of the Catholic lifesaving movement. Cardinal Kim Soo-hwan highly praised Kim Jae-gyu's actions, who sacrificed his life to break the chains of dictatorship and restoration. And he gave a helping hand until the end until Kim Jae-gyu was executed. When his family met the cardinal and asked for life, he responded with the brief "I have nothing to say". moonilsuk@korea.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브레이크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