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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인은 그 동안 하루도 낙양을 잊은 적이 없었소!

<역사소설 대륙풍운(大陸風雲)-159>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된 장수들

이순복 소설가 | 기사입력 2018/10/17 [01:01]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유주의 대군과 여러 친왕과 제후들의 크고 작은 군대가 장안성을 향하여 구름처럼 몰려오자 하간왕과 성도왕은 불안에 떨며 발을 펴고 잠들지 못했다. 그런 지긋지긋한 힘겨운 밤이 지나가고 다시 날이 밝았다.
 동해왕은 성도왕과 하간왕에게는 쓸만한 장수들이 다 죽어 없어지고 질보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맹장 기홍을 선봉으로 하여 전군에게 장안을 함락하라 명했다. 기홍은 동해왕의 명을 받고 2만군을 이끌고 질풍노도처럼 달려서 장안성 아래 당도했다.
 밤사이 정신을 수습한 하간왕은 친히 성루에 올라가 기홍을 불렀다. 자기 면을 내세워 기홍에게 통사정을 하여 군사를 멈추게 해보자는 수작이다. 동해왕이 찾자 기홍은 성벽 가까이 말을 몰고 나서자 하간왕이 기홍에게 애원하기를
 “여러 친왕과 제후들이 장방의 부도를 지탄하기에 고가 스스로 장방의 목을 베어 보냈건만 계속 군사행동을 시도하니 고로 하여금 무슨 짓을 더 하란 말이오. 경은 그 충성이 천하에 혁혁한 사람이니 사리를 올바르게 분별할 줄 알 것이오. 일단 군사를 물려주면 천자께 아뢰어 낙양으로 환궁토록 하겠소. 오직 장군의 충성심만 믿는 바이니 돌아가서 동해왕에게 잘 말해 주오.”
 

기홍은 노쇠한 하간왕이 목매인 소리로 자기에게 하소연 하자 측은한 생각이 들어 부드럽게 대답하기를
 “신은 동해왕의 명을 받들어 어가를 낙양으로 모실 책임자일 뿐입니다. 천자를 뵙게 해주시면 즉시 군사를 물리겠습니다.”
 이에 하간왕의 곁에서 이 모양을 지켜보던 질보가 나서며 소리치기를
 “천자께서 어가를 이곳으로 옮기신 것은 낙양이 황폐했기 때문이오. 난이 평정되어 낙양이 질서를 회복하고 안정이 되었다면 그대들의 수고로움을 입지 않고도 황제 스스로 낙양으로 환궁할 터이니 장군은 공연한 걱정을 마오.”
 

이에 기홍이 대꾸하기를
 “지금 천하가 어지러운데 천자께서 호위군도 없이 어가를 낙양으로 모신단 말이오. 장군은 내 말을 잘 들어 보오. 장군의 주공이 천자를 낙양에서 장안으로 몽진을 하였소. 오늘 나는 동해왕과 더불어 천자를 다시 낙양으로 환궁케 할 것이요. 장군은 공연한 걱정을 하지 마오.”
 “우리는 지금까지 천자를 지성으로 모시며 신자의 절조를 배반한 적이 추호도 없었소. 어찌 동해왕 한분만이 천자를 낙양으로 환궁시킬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오. 정이 천자를 뵙고자 한다면 갑옷과 투구를 벗고 들어와서 천자를 배알토록하오. 천자께서는 장군에게 후한 봉작을 내리실거요.”
 질보가 그리 말하자 기홍이 발끈 성을 내며 말하기를
 “지난날 무황제께서 진조를 여신 곳은 장안이 아니고 낙양이었소. 그대들이 낙양에 편히 계시든 천자를 몽진케 하지 않았소. 그 저의를 분명히 밝히시오. 이제 와서 또 뭘 하자는 거요. 이제는 구차한 짓일랑 집어 치우시오. 그리 뻔뻔한 짓을 일삼는다면 장안성을 깨뜨려서 흑백을 가려 보겠소. 피바다를 면하려면 바르게 마음을 쓰시오.”
 이와 같이 두 장수가 실랑이를 하자 동해왕의 선봉인 미황 송주와 병주자사 유곤 등이 성 아래 까지 당도하였다. 이때 성도왕이 하간왕에게 속삭이기를
 “기홍 한 놈만 제거해 버리면 남은 놈들은 두려울 놈이 없소. 그가 질보와 말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은밀히 날랜 장수를 성 밖으로 보내어 기홍을 제거해 버리시오.”
 

하간왕은 성도왕의 말이 그럴 듯하여 곧 조묵과 장보를 불러 궤계를 말하고 영을 내렸다. 두 장수가 슬쩍 성문을 열고 나가 기홍을 불시에 덮쳤다. 그러나 맹장 기홍은 얼른 말머리를 돌려 물러서며 두 장수와 싸웠다. 금방 도착하여 이 모양을 본 미황과 송주는 급히 말을 몰아 기홍을 도왔다. 조묵과 장보는 미황과 송주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황급히 기홍을 처치하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기홍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둘의 창칼을 받아넘기다가 크게 한소리 외치더니 장보를 창으로 찔러 죽여 버렸다. 이에 겁을 먹은 조묵이 말머리를 성문 쪽으로 돌려 달아나려 하자 미황이 비호처럼 달려들어 조묵의 말의 뒷다리를 후려쳤다. 이에 말이 껑충 뛰며 쓰러지자 조묵도 낙마해 뒹굴었다. 조묵이 순간 일어나려고 무릎을 세우는데 기홍이 날래게 창을 가슴팍에 깊숙이 찌르니 조묵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이와 같은 싸움이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끝을 맺으니 그 결과는 조묵과 장보 두 장수의 죽음이 있었을 뿐이다. 성루에서 이를 바라다 본 하간왕은 눈앞이 아찔하여 곁에 있는 질보를 향하여 호통 치기를
 “질보는 무엇을 멀건이 보고만 있느냐. 빨리 나가서 아장을 구해오너라.”
 “아니 이 망령된 늙은 도적놈아, 오늘 나를 또다시 장방과 같은 꼴을 만들 작정이냐.”
 선 뜻 칼을 뽑아 하간왕을 찍으려 하자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오줌을 흘리며 ‘저 저 저 잠깐...’이라고 하는데 질보는 그만 들었던 칼로 자기 목을 후려쳐서 자진하고 말았다. 이 모양을 본 하간왕과 성도왕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성루에서 내려왔다. 이제 그들은 저마다 각기 삶을 구하고자 바쁘게 되었다. 특히 하간왕은 자기 부중으로도 가지 못하고 아들 사마휘와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동문으로 나가 태백산으로 도망쳤다.
 

한편 성도왕은 황급히 부중으로 돌아오자 가솔을 데리고 간도를 이용하여 장안성을 빠져 나왔다. 그를 따르는 장수는 오로지 조양 한 사람뿐이었다. 화음현에 이르러 뜻밖에 장사 노지를 만났다. 노지는 오늘이 있을 줄 미리 짐작하고 화음현에서 기다고 있었다.
 한편 기홍과 미황 송주 등이 장졸을 이끌고 거침없이 장안성으로 들어가서 마음껏 관아와 민가를 노략질했다. 그러나 조정의 백관들은 숨어 버렸고 이를 통제하는 공권력이 사라지자 장안성은 진압군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이윽고 동해왕이 입성하여 기홍이 거느린 유주군이 노략질이 심하다는 보고를 받고 유주총독 왕준에게 따졌다. 동해왕의 문책을 받은 왕준이 크게 노하여 기홍을 질책한 후 성안에서 노략질한 군사를 가려 목을 베자 노략질이 사라졌다. 동해왕은 범양왕 남양왕 동영공 왕준 유곤과 함께 혜제를 배알하였다. 동해왕은 일행을 대표하여 혜제에게 아뢰기를
 “신 등이 힘이 미급하여 폐하의 성체를 행궁에 모셨으니 실로 황공무지로소이다. 이제 보련을 받들고 낙양으로 환궁하시어 종묘사직을 안정코자 하옵니다.”
 

혜제는 목이 멘 옥음으로
 “고향을 그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소. 과인은 그 동안 하루도 낙양을 잊은 적이 없었소. 이제 과인이 경들과 함께 낙양으로 돌아간다면 경들의 공은 가히 개국의 공에 미칠 듯하오. 속히 길일을 택하여 발진(發進)토록 하오.”
 이에 동해왕은 숨어 지내는 문무백관을 찾아내어 낙양으로 환궁할 채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어가가 장안을 떠나기에 앞서서 동해왕은 심복대장 하윤을 한발 먼저 낙양으로 보내어 홀로 대궐을 지키든 상관기와 협력하여 궁궐을 수리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환궁준비를 마친 동해왕은 혜제에게 아뢰어 그 동안 공을 세운 여러 장수와 친왕에게 논공행상을 내리도록 주달했다. 환궁이 결정되자 왕준은 한군의 동향이 궁금하여 유주로 돌아가고 대장 기홍을 남기어 황제의 어가를 낙양으로 호송케 하였다.
 마침내 혜제가 낙양으로 환궁하는 날이다. 동해왕은 미황 송주 2장에게 2만군을 주어 앞길을 열게 하고 기홍에게 황제의 어가를 호위하게 하였다. 황제의 행렬은 20 리에 걸쳐 뻗었고 장안을 떠난 지 한 달여 만에 무사히 환궁하였다.
 

환궁한 혜제는 곧 태묘에 고한 후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고 이를 기념하여 영흥의 연호를 바꾸어 광희 원년으로 하였다. 그리고 양황후를 복위시키고 예장왕 치를 동궁으로 책봉했다. 또 중신들의 봉작을 돋우는 조칙을 내리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동해왕 월을 태부 녹상서사로 하고 범양왕 효를 사공으로 하여 업성을 진수케 하며 왕준을 유계대도독 보국공에 유곤을 평양장군 기도위에 기홍을 평난대장군 관내후에 미황을 호가장군에 임했다. 이 밖에 낭야왕 예를 관전곡사로 하여 조정의 모든 살림을 주관케 하였다.
 동해왕 월은 조정의 대권을 잡자 널리 인재를 초치(招致)했다. 영천의 유개와 태산의 호모보지 하남의 곽상 진류의 완수 양하의 사인이 조정에 출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완적 완함 왕융 등 죽림칠현과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라 술 시 청담 소요자적하며 지내기를 즐기어 정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모처럼 동해왕이 펼쳐보려던 경륜도 자연 해이해 지고 말았다.
 이때 낭야왕의 별가 왕도가 낭야왕에게 은근히 간하기를
 “신이 보건대 동해왕은 치세제목(治世宰木)이 못 됩니다. 미구에 조정이 어지러워질 것이니 전하는 일찍이 강동으로 돌아가 영지를 지키면서 조상의 봉제사를 하시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낭야왕은 왕도의 말을 들은 후부터 조정을 떠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한편 성도왕은 화흠현에서 며칠 묵으며 노독을 풀고 노지와 함께 무관을 거쳐서 신야에 당도했다. 성도왕은 옛 생각에 젖어 장수 공사번의 소식을 물었다. 마침 함께 있던 중랑장 유도는 쓸쓸해 하는 성도왕의 심정을 짐작하고 글월을 닦아 낙양의 동해왕에게 올렸다. 그 내용은 성도왕을 낙양으로 불러 황제를 보필하여 골육의 정을 나누게 하라는 사연이었다. 유도의 표문을 본 동해왕은 도리어 형주자사 유홍과 신야의 유도에게 조서를 내려 즉시 성도왕을 사로잡아 주륙하라고 했다. 뜻밖에 동해왕의 조서를 받은 유도는 몰래 사람을 시켜 성도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속히 몸을 피하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성도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낙심하여 노지에게 앞일을 묻자 노지가 결연히 말하기를
 “대왕은 과히 근심치 마옵소서. 신이 들으니 조가에는 전날 대왕의 휘하에 있든 장수들이 여러 사람 숨어 있답니다. 우선 조가로 가서 장수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 공사번을 찾아서 그와 함께 업성으로 가시옵소서. 지금 업성에는 범양왕이 진수라고 있는데 범양왕은 대왕을 괄시하지 않고 받아 주리라 믿습니다.”
 성도왕은 노지의 말을 좇아 곧 조가로 가서 옛 수하 장수들을 모으고 업성으로 사자를 보내어 범양왕의 뜻을 떠 보았다. 범양왕은 성도왕의 사정을 전해 듣고 즉시 그를 맞이할 뜻을 내보이었다.
 ‘아슬아슬 낭떠러지로 굴러가는데 보둠아 줄자가 있다면 아직도 천운이 있어.’
 

그러나 천운이란 것이 부도한 자에게 계속 함께하지는 않는 법이다. 성도왕이 기고만장하며 설래 발을 치면서 진조를 말아먹은 끝은 반드시 천운이 지나가고 천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도왕은 덕을 쌓지 못했다. 그의 충신 장사노지를 박대하고 제고집을 내세워 살아가다가 곤경에 빠졌다. 그것이 순리였다. 그런 쉬이 천벌이 면해 지겠는가. 범양왕은 좋은 마음으로 성도왕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미 성도왕은 오만불손 기고만장 오만방자를 일삼은 까닭에 천운이 떠나 버렸던 것이다. 하여서 바로 그 곁에 훼방꾼이 제 탐심을 채우고자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 눈을 씻고 찾아 볼 일이다.
 이때 돈구태수 풍숭은 범양왕이 성도왕을 돕겠다는 동태를 파악하고 마음속으로 간교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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