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위해 죽어갔는가?

위기를 위기로 보는 눈을 갖어야

박태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6/08/29 [16:19]
 

아직도 민주의 역사는 먼 곳에

누굴 위해 그렇게 죽어갔는가?


국제정치학자로서 외국의 여론동정과 국제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이라크에서, 이란에서, 가자에서 그리고 레바논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아프카니스탄에서, 북한에서 들리는 갈등과 증오의 소리들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 우연히 이 곳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온 이라크의 유학생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의 입을 빌어서 본 평화가 어떠한 모습인지, 앞으로 우리 인류는 이러한  평화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 할 수 있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었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있는 갈등지역들의 문화적.종교적 편견을 보는 마음이 더 답답하였다.


우리는 불과 60여년전의 세계 2차대전 중에 유태인이 수 백만명 독일의 나찌에 의해서 학살되는 참혹한 인간말종의 사건을 겪었고, 평화로운 중국의 대륙에서 중국의 모택동이 행한 문화혁명으로 5000만명 이상이 굶어죽는 처참한 사례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권력의 이름으로 합리화된 가엾은 희생들을 보았다.


아니 그 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인 북한의 인민들이 잘못된 정치체제하에서 기본적인 권리도 부정당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3백만명이나 굶어죽은 참혹의 현장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는 21세기에도 어림없어 보인다.


말로는 국민이 주인이라면서 자본을 갖은 악덕 자본가나, 권력을 갖은 권력자는 정당한 경쟁의 틀을 벗어나는 편법으로 자신의 부(富)를 확대재생산하는 방향으로만 일구고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고 확장하는 일에 더 전념하고 있는 대다수의 지구촌 국가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윤리에 충실하며 모범을 보이고 있는 많은 기업인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우리 인류의 양심이 도달해야 할 목표는 높게 있지만 그 곳을 향해서 가고 있는 우리의 발 검음이 무겁고 걸림돌 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 인내하고, 어디까지 존중해 주어야 하는 공적인 영역인지도 잘 분간을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우연히 본 영화중에서도 멜 깁슨이 주연한 ‘we were soldiers'라는 영화가 있다.


인간의 심리적 변동 상황을 전쟁에 참가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월남의 전장에서 베트공과 접전을 벌이는 전투의 현장을 통해서 너무나 잘 보여준 영화이다.


한 하늘 아래, 한 공기를 먹고 살아가는 지구촌에서 미국이 이기면 승리이고, 베트공이 이기면 패배라는 공식으로 합법적인 살인면허를 받고 폭탄과 지레의 지원을 받으며 난도질한 수 십만의 총 칼 앞에 산화해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희생은 무엇이 보상해 줄 것인가?


이것이 정치행위이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값진 희생을 치러야 하는 명분이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정의한 역사를 위해서 사람의 값진 인명들이 희생당하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누굴 위한 역사요, 누굴 위한 전쟁이었는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안보적 위기가 혜안을 갖은 현명한 지도자들의 판단과 지도력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이름도 없이 이런 저런 명분으로 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걱정이고 또 걱정인 것이다.


2006.8.29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 방문교수,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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