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유년의 기억이 빚어낸 승화된 예술, 제이영(J Young) 작가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5/14 [09:12]

▲ 사진 제공: 제이영 작가     ©이일영 칼럼니스트

 

'2021 아트부산' 아트페어에 참가한 모제이 갤러리와 갤러리미즈에 초대 전시된 작가 제이영(J Young)의 작품이 주목된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활동에 주력한 작가는 10년 만에 한국에서 최근작을 발표하였다.   

 

제이영 작가는 전통적인 선비 정신을 품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회화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실험적인 작품을 추구하는 신세대 작가그룹 황금사과를 창립하여 활동하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실험적이면서도 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작품들은 1991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수상과 1992년 중앙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에 이어 그 이듬해 199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에 주목을 받았다.

 

작가의 실험적 작품과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재료들은 일상의 자연에서 우연히 주워온 돌과 나무들이었다. 이는 생명의 시간성을 헤아린 의식으로 작가의 감성과 감각이 녹아내린 오브제 적이거나 설치작업에까지 확대되어 항상 등장하였다. 또한, 실험적 작품들은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한 전시장 이외에 각기 다른 장소에 전시하여 보여주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제이영 작가는 서울, 일본, 뮌헨 등에서 51회의 개인전을 통하여 늘 새로운 의식을 담아낸 작품을 발표했으며 쾰른 아트페어, 시카고 아트페어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한 아트페어에 두루 참가하였다. 작가는 수차례 유럽 여러 나라에서부터 미국, 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특성적인 환경과 문화를 섭렵하며 고유한 전통과 현대미술에 담긴 감성과 미학을 헤아렸다. 또한, 아시아 주요나라를 여행하며 인도, 북경, 상하이, 도쿄,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국내ㆍ외 300여 회의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작가는 2016년 싱가포르 아트스테이지에 2년 연속 개인전 대형 부스에 참가하여 특유의 기법과 감성이 어우러진 미니멀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2017년 아트 파리 아트페어를 통하여 유럽 무대에 제이영(J Young)이란 이름이 알려지면서 2018년 아트 파리의 오프닝 퍼포먼스 작가로 선정되었다. 

 

제이영 작가는 오프닝 퍼포먼스에서 사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음악을 배경으로 커다란 빗자루 붓으로 동양사상의 사유적 정신성을 그려갔다. 이어 동양과 서양의 구분 없이 인간의 죽음을 담는 관을 등장시켰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국의 많은 미술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숨죽이며 지켜본 오프닝 퍼포먼스는 모든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서양 종소리와 달리 한국 종의 특징인 소리가 널리 퍼지는 ‘맥놀이 현상’의 여운이 사유적인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환상적이라는 평가가 쏟아졌으며 프랑스 주요 언론에 소개되었다.   

 

유럽 활동 이후 10년 만에 아트부산 아트페어를 통하여 국내에 작품을 발표한 제이영 작가는 자연의 신성함과 한국적 정신을 흰색의 여백과 한지를 통해 표현한 모멘트(Moment)시리즈에서부터 유년의 기억으로 쌓아 올린 담벼락(담장) 작품까지 다수의 신작을 새롭게 선보였다.

 

▲ 사진 제공: 모제이 갤러리     © 이일영 칼럼니스트

 

제이영 작가는 동양 사상과 철학에 담긴 명상의 깊이를 작품에 투영하여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대응과 순응이라는 사유성을 극도로 절제된 형태로 은유하여 표현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것에 늘 관심을 가졌던 그는 한국적인 재료와 이미지를 품은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의식과 철학을 담아낸다. 그의 주요한 작품 시리즈 중 하나인 순간 또는 시기를 뜻하는 (Moment)는 두꺼운 한지가 구부러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인 돌이 확장된 모습이다. 작가는 이를 통하여 수 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과 자연에 존재하는 돌의 불변함과 우직함을 대조하여 인간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제이영 작가가 새롭게 선보인 유년의 기억이 빚어낸 담벼락(담장) 작품은 13일 개막된 VIP 프리뷰에서 많은 관람객과 미술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늘 보고 경험했던 돌담을 쌓고, 흙을 쌓아 올려 집을 만드는 과정을 소중하게 기억하여온 감성에서 빚어진 작품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정교함 속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치 유년의 맨살 같은 순수한 기억의 빛깔처럼 작품은 은은한 색상을 품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돌담을 쌓고 흙을 쌓아 올려 집을 만드는 것과 같은 실제의 육체적인 노동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작품이다. 작업 자체가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은 시골 농부들의 신성한 노동을 스스로 재현하면서 삶을 보호하기 위한 담벼락(담장)과 생활의 터전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구현한 것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생활공간의 보호와 소유의 표식을 위하여 그 둘레를 막고 쌓아온 역사는 바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이다. 이를 우리는 울, 울타리, 담장(墻), 담벼락으로 불러왔다. 이와 같은 담벼락이 바탕이 되어 집단 공간의 인명과 재산을 재해와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쌓아온 것이 성(城)이다. 

 

성은 크게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성곽과 이를 보호하는 성벽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생활공간의 담벼락과 같은 성벽을 흙으로 축성한 토성과 돌로 쌓은 석성, 나무로 쌓은 목책성과 다양한 재료의 벽돌로 쌓은 성이 전성이다. 성(城)에 대한 고유한 우리말을 문헌에서 헤아리면 (잣)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제주도 방언에 돌담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성(城)과 담장(墻)을 이르는 순우리말 (잣)의 역사적 유래는 1447년 간행된 불경언해서 석보상절에서 최초로 등장하였다. 이후 중국 당나라 시성 두보의 시 전편을 우리말로 번역한 두시언해(杜詩諺解)와 여러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제이영 작가의 유년의 기억이 빚어낸 담벼락(담장) 작품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이는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하고 보아온 실체인 담장(墻)이 인간 사회의 경계를 의미한 것임을 인식한 이후 작가가 추구하는 의식이 유년에 느꼈던 경계가 아닌 아름다운 기억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이다. 이는 작가의 작품이 경험의 영역에서 경계가 아닌 조화와 균형이라는 의식으로 발전하여 따뜻한 질감과 은은한 기억의 빛깔로 작품을 완성 시킨 것이다. 

 

특히 작품의 시각적 형태에서 단순한 기억의 형상이 아닌 경계라는 단절의 문제를 조형성으로 승화시킨 의식이 분명하게 감지된다. 작가의 깊은 사유적 의식을 관통한 예술적 감성이 그 무엇으로도 계량할 수 없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작품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감성이 작품의 조형으로 들어박혀 중첩된 형태가 단절의 담장이 아닌 우리가 품어야 할 공간임을 의도하고 있다. 

 

▲ 사진 제공: 모제이 갤러리     © 이일영 칼럼니스트

 

작가의 유년의 기억이 쌓은 담벼락(담장) 작품은 작업 과정이 실로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 스스로 실제의 담을 쌓고 집을 짓는 노동 속에서 이루는 작품이 단절과 경계의 담벼락이 아닌 소중한 공간의 품을 구축하여 깊은 울림을 담아낸 작가 의식에 담긴 메시지를 헤아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작가의 작품은 골판지의 담을 쌓고 흙을 바르듯 그려내면서 세상의 경계를 해체하는 무한한 작업을 이어간다. 이는 실제의 작품에 쌓아지는 형태의 크기만큼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어머니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따뜻한 품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가장 신성한 의식에서 탄생하는 작업이다. 이렇듯 중첩되어 생성된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작품은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이란 개인의 유한한 생명에 의하여 시작과 끝을 규정하지만, 인류의 삶은 단절이 아닌 영원한 숨결임을 의미한 것이다. 

 

깊은 사유의 철학으로 치열하게 쌓고 흥건하게 바른 따뜻한 예술혼이 갈등과 반목으로 쌓아 올린 세상의 단절과 경계를 허무는 신성한 감동이 되기를 기대한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