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머리 새우깡' '칼날참치'등 이물질 검출사건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그동안 '속아서' 식품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이 단단히 뿔났다. 소비재의 문제점을 파고들며 '21세기 소비자들을 위한 권리대장전!'을 외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kbs-1tv 교양프로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은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고 이를 기업 혹은 공공기관과 연계해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데 앞장서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제작진이 "대한민국의 소비에 관한 모든 상식과 정보를 고발하고 바로잡겠다"며 소비자에게 힘이 되는 유용한 정보를 담은 책 <소비자 고발 그리고 불편한 진실(위즈덤하우스 펴냄)>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중에서 소비자의 피해를 막고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줄 내용을 (작가와의 협의하에)간추려 소개한다.
9번 찌고 9번 말린 흑삼…
신비의 명약인가? 사기인가?
흑삼은 인삼을 아홉 번 찌고 말리는, 이른바 '구증구포' 과정을 거쳐 만든 까만 삼을 말한다. 흑삼 제조업체에서는 삼을 여러 번 찌는 과정에서 기존의 수삼이나 백삼, 홍삼에 비해 몸에 좋은 유효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면역력 증강, 암세포 성장과 전이를 막아주는 진세노사이드 rg3 성분 등이 증가한다고 한다. 흑삼 업계에서 흑삼을 수삼이나 홍삼보다 항암 효과가 훨씬 뛰어난 명약으로 소개하면서, 홍삼보다 두세 배 비싼 고가임에도 암 환자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인삼계의 블루오션 흑삼
흑삼은 아직까지 매장 판매보다 인터넷이나 방문판매 등이 주를 이룬다. 관광 회사와 연계해 흑삼 판매장 방문을 관광 일정에 끼워 넣는 비정상적 판매도 활개를 치고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는 물론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에게 효과가 좋고 암이나 치매, 중풍도 예방하는 제품', '홍삼의 12배, 인삼의 40배에 이르는 약효를 자랑하는 제품' 등 실제로 관광버스를 타고 가본 흑삼 판매장에선 황당한 흑삼 효능 선전이 난무했다. 최근 들어 흑삼은 서울·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전문 제조업체만 2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흑삼 시장은 급성장했다.
업체 측에선 항암효과를 흑삼의 가장 중요한 효능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각종 약리적 효과가 홍삼보다 탁월하다는 제조업체의 주장과 달리, 흑삼의 성분과 효능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흑삼의 검은 색은 단순히 탔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흑삼이 태어난 후 10여 년 동안 업계에서는 이런 의혹을 철저히 무시해왔다. 단순히 찔 뿐인데 왜 타느냐는 것이다. 정부 당국도 이런 의혹에 대해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았다.
흑삼의 유해성을 밝히다
유해성 검증에 앞서, 64만원에 구입한 고가의 흑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색은 검고, 향은 홍삼보다 덜했다. 혹시 타서 검댕이 묻어나지는 않는지 양손으로 비벼보았으나 묻어나지 않았다. 단단해서 잘 부러지지도 않았다. 흑삼의 단면은 겉과 속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검었다. 흑삼으로 바닥에 선을 그어보았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글자를 쓸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탄 것으로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흑삼은 과연 탄 것일까? ‘소비자 고발’ 취재진은 제조 과정을 공개하겠다는 한 흑삼 제조업체를 찾았다. 우선 수삼을 잘 씻은 다음 가마솥에 넣어 중탕으로 찌고, 고온 건조기에 말린다. 어느 정도 삼이 마르면 다시 가마솥에 쪄서 건조기에 말린다. 이런 과정을 아홉 번 반복한다.
문제는 제조과정 중 삼이 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수삼을 중탕으로 찔 때 물이 졸아 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업체측은 줄곧 지켜보며 불 조절을 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또 일부 업체에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섭씨 100도에 가까운 고온에서 건조시키는 데 이갈변 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조업체 “삼을 여러번 찌는 과정에서 몸에 좋은 유효물질 생성” 주장
약리효과 홍삼보다 탁월하다는 주장과 달리 성분·효능 각종 의혹 제기
또 다른 업체에서는 타지 않은 증거라며 흑삼을 담가둔 알코올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흑삼은 검은색이 아니라 수삼처럼 흰색에 가까웠다. 업체측은 흑삼의 검은 색에 들어 있는 유효 성분이 알코올에 거의 녹아났기 때문에 흑삼이 원래 색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흑삼을 달여봤다. 최상급 흑삼을 일반적인 추출 시간을 감안해서 48시간 동안 달였다. 하지만 흑삼의 검은 색은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 혹시 속의 빛깔은 변했을까? 반을 갈라보니 속까지 시커맸다. 업체측 주장과 달리, 흑삼의 색은 인삼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과학적인 검증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찾았다. 탄소 함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만약 흑삼이 탔다면 백삼이나 홍삼보다 탄소 함량이 높을 것이다. 분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백삼과 홍삼의 탄소 함량은 각각 40.1wt/%, 흑삼은 43.4wt/%로 나타났다. 흑삼의 탄소 함량이 백삼이나 홍삼에 비해 3.3% 이상 높았다. 흑삼이 타서 새까맣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발암물질인 벤조에이피렌 검출
전문가는 탄소 함량이 1%만 늘어도, 물질이 탈 때 생기는 유해 성분의 양이 크게 증가한다고 경고한다. 탄 음식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 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 즉 방향족탄화수소도 증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주대학교 약물남용연구소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대상 시료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흑삼 농축액 5종과 홍삼 농축액 2종을 포함해 총 7종이었다.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홍삼 농축액 2종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방향족탄화수소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흑삼 농축액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든 제품에서 방향족탄화수소가 다량 검출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홍삼 농축액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발암물질 벤조에이피렌이 흑삼 농축액 5종 모두에서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벤조에이피렌은 방향족다환탄화수소(pahs)의 일종인 환경오염 물질로 음식을 태우거나 고온으로 조리할 때 발생하는 유해 물질이다. 단시간에 많은 벤조에이피렌에 노출되면, 적혈구가 파괴돼 빈혈을 일으키고 면역 기능이 저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시간 노출될 경우에는 생식 독성을 유발하는 한편,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임신부가 노출될 경우에는 기형아 출산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 그 벤조에이피렌이 흑삼 농축액 5종에서 모두 검출되었다. 그 중 3종에서는 식용 유지에 대한 권고 기준치 2ppb를 훨씬 초과하는 양 23.2ppb/7.0ppb/4.7ppb이 검출되었다.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양이 검출된 제품도 있다.
흑삼 제조업체에서는 그들의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벤조에이피렌이 2ppb 이상 검출된 한 흑삼 제조업체를 찾아갔다. 그 업체의 대표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자사 제품이야말로 제대로 만든 흑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폈다. 다른 흑삼 제조업체는 대부분 탄화 사실 확인과 함께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분석 결과에 대해 '있을 수 없는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식약청 검출 사실 확인
흑삼 취재 결과를 방송한 직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흑삼 농축액 4종을 수거해 검사를 실시했다. 2007년 5월7일 검사 결과 4종 모두에서 벤조에이피렌이 2ppb 이상 검출되었다. 문제 제품은 즉시 가압류 및 회수 조치되었다. 그 중 3종은 우리가 분석한 것과 동일한 회사의 제품이었다. '소비자고발' 팀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시중에서 무작위로 수거한 흑삼 농축액 6종 모두에서 발암물질인 벤조에이피렌이 검출된 것이다.
6월27일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흑삼 분말 제품과 흑삼 음료 등 10개 제품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이번에는 장석열흑삼구증구포홍삼분말((주)성신비에스티) 제품에서 벤조에이피렌이 31.4ppb 검출됐다. 이 제품 역시 우리가 검사한 제품 5종 중 하나로 압류 및 자진 회수 조치를 내렸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취재 당시 잔류 농약 검사도 함께 실시했다. 검사기관은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강북농수산물검사소. 방향족탄화수소 검사와 마찬가지로 흑삼 농축액 5종, 홍삼 농축액 2종을 대상으로 했다. 검사 결과 흑삼 농축액 1종에서 검사 기준치를 넘는 퀸토젠이 검출되었다.
퀸토젠은 국내에서 1987년부터 생산과 사용이 금지된 농약이다. 다량 섭취할 경우 간암과 눈, 피부, 콩팥 등에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식품 내 허용 기준치는 1.0ppm. 흑삼 제품에서 검출된 퀸토젠은 허용 기준치의 2배 수준이었다. 20년 전에 국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농약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이 흑삼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삼이 국내산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흑삼 업계가 해결할 숙제
차세대 건강식품의 선두주자로 각광받던 흑삼에는 앞서 제기한 의혹 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더 있다.
우선 일부 업체에서 저가의 중국 삼을 흑삼으로 제조해 판매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흑삼은 제조과정에서 검은 색으로 바뀌기 때문에 원산지 식별이 쉽지 않다. 이를 악용해 일부 업체에서 저가의 중국 삼을 사용한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흑삼 농축액 1종에서 국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농약 퀸토젠이 검출된 사실은 이런 가능성을 뒷바침한다.
둘째, 홍삼과 마찬가지로 연근을 속여 파는 행위가 곳곳에서 적발되고 있다. 4~5년근 삼을 쓰면서 6년근 삼을 쓴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셋째, 흑삼은 구증구포 과정을 거치면서 삼의 사포닌 조성이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안전성 및 독성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
발암물질 ‘벤조에이피렌’ 흑삼 농축액 5종에서 검출…분석결과 충격적!
업체대표 “발암물질 검출된 제품이야말로 제대로 만든 흑삼” 억지 주장
그 밖에 홍삼 농축액과 흑삼 농축액의 색이 거의 같다는 점을 이용해 몇 번 덜 쪄도 되는 홍삼 농축액을 대신 넣는 행위도 문제다. 흑삼이 되면 인삼 향이 더욱 진해진다고 호도하는 일부 업체의 행태도 시정되어야 한다. 아홉 번 찌면 당연히 향이 다 날아가는데도 마지막 증숙 과정에 수삼을 함께 넣어 향이 배게 하는 편법을 쓰는 것이다.
벤조에이피렌 검출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흑삼 업계에서는 제품이 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해왔다. 단순히 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무시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흑삼 업계에 바란다. 우선 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엄격한 구증구포 제조공정을 거친 흑삼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된다면, 흑삼 업계는 구증구포 제조 방식을 포기해야 한다.
반면에 특정한 제조공정을 거칠 경우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이 기준에 적합한 표준공정을 만들어 모든 제조업체가 철저히 이를 지켜야 한다. 그것만이 흑삼 업계가 땅에 떨어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흑삼이 인삼류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정부에서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소비자를 위해 하루 빨리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흑삼 가공 제품의 경우 생산 방식 자체에 탄화 요소가 적지 않은 이상, 제품 품질 기준에 탄화 검사나 발암 물질 검사를 포함시켜야 한다.
이영돈 pd의 한마디
“장수의 신기루 빠진 사람들…딱하다!”
▲kbs 1tv 소비자 고발의 이영돈 pd ©조신영 기자
식품업계에서 신비한 것으로 포장된 식품을 보면 뭔가 구린 게 있을 것 같다. 흑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렸다고 하면 뭔가 신비한 힘이 그 뒤에 숨어 있을 것 같다. 그 왜곡된 신비감을 무기로 심리적으로 약해진 암환자나 정력 환상에 사로잡힌 남성, 그리고 장수의 신기루에 빠진 사람을 유혹한다. 대부분은 이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요즘은 팔지 못한 흑삼을 골프 연습장 등에 가서 싼 값에 세일하기도 한다. 속지 말자. 단박에 건강이 좋아진다고 하면 일단 그 말을 의심하고 봐야 한다. 모든 좋은 것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수삼의 연근을 속이는 실태를 보면서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지금까지 직접 사거나 선물로 받은 6년근 수삼이 다 6년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방송을 통해 본 진짜 6년근 수삼은 정말 크고 다리도 매우 굵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6년근은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오랜 시간 철저하게 속임수를 써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내가 다시 인삼을 사게 된다면 반드시 다리 굵기부터 확인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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