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굴 대특종]유족 등록통지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전봉준 장군 증손자

[역사 발굴-제4탄]전장수 박사 인터뷰 “아버지 전익선으로부터 ‘너의 증조는 녹두장군,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대장’” 듣고 자라

박용규 박사 | 기사입력 2021/05/01 [10:25]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같은 해 9월에 국무총리 소속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가 발족되어 2009년 12월에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참여자 3,644명을 등록하였고, 유족 10,567명에게 유족 등록 통지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등록된 전봉준 장군의 경우 2005년 4월 25일에 전봉준의 손부(손자며느리) 김연임이 유족 등록을 신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심의도 하지 않고, 유족 등록 신청 범위인 손자에 해당하지 않는 손부가 신청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탈락시켰다. 법 규정에 얽매인 참으로 매정한 조치였다.

 

전장수 박사의 모친 김연임 여사(전봉준 장군의 손부, 전봉준 장군의 손자 전익선의 처.) Ⓒ 전장수   ©브레이크뉴스

2017년 12월 특별법이 개정되어, 참여자의 후손 범위가 고손까지 확대되었다. 201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속으로 심의위원회가 다시 출범하여, 유족들이 계속 등록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2018년 9월 10일 김연임의 아들 전장수(전봉준의 증손자)가 유족 등록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심의위원회는 결과통보 기한을 훨씬 넘기고도 지금까지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매우 잘못된 일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전봉준의 증손자로 자처하여 나선 전장수가 제출한 유족 등록 신청서와 심의위원회에 제출한 방대한 증빙자료를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전장수 경제학 박사와 필자와의 인터뷰 내용, 전 박사가 아버지 전익선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기술한 것으로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는 다음과 같은 연유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전익선이 아들 전장수에게 구술한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전봉준의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이 매우 상세하다.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전용현)와 할아버지(전봉준) 가족의 내력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둘째, 전익선이 아들의 대학 입학 때 진고개 식당에서 한 말, 즉 “전봉준 장군의 여동생 이름이 이 음식점의 이름과 똑같은 고개(古介)다.”라는 말은 직계 후손임을 방증한다. 전봉준의 여동생 이름이 ‘전고개’이기 때문이다. 손여옥의 손자 손주갑 선생은 4월 6일 필자와 전화 통화에서,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전봉준 직손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고 말씀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셋째, 2021년 3월 22일 필자와 전장수 박사와의 통화에서, 전 박사가 서 너 살 때부터 아버지 전익선으로부터 “너의 증조는 녹두장군이다.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대장이다. 이 얘기는 남에게 하지 말아라. 얘기하면 죽을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듣고 살았다고 증언한 점이다. 아울러 4월 4일 인터뷰에서 전 박사가 “아버지(전익선)로부터 전의천은 전봉준 장군의 아들 전용현이고, 족보의 전동길이라고 들었다. 이 말씀을 아버지로부터 수십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라고 필자에게 밝힌 내용이다. 이러한 증언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직계 후손만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전장수 박사(왼쪽)와 함께. 경상대 정문 앞 스타벅스 안에서. (2021, 4, 4.) Ⓒ 박용규 ©브레이크뉴스

 

넷째, 4월 4일 인터뷰에서 전 박사가 12살 때,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전옥례 대고모 할머니를 만나러 간 것을 밝힌 점이다. 이 내용은 전 박사가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에도 나와 있다. 전옥례는 전봉준의 장녀로 이미 기존 연구에서 밝혀진 바가 있다.

 

다섯째, 4월 4일 인터뷰에서 전 박사가 14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정읍에 있는 증조부 전봉준 장군의 묘소를 찾아갔다고 밝힌 점이다. 이 내용도 전 박사가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에도 상세히 나와 있다. 지난 4월 9일 전 박사는 전화 문자를 통해, 정읍에 있는 전봉준 장군 묘소에 최근 2018년, 2019년, 2020년 봄에 찾아갔었다고 필자에게 밝혔다.

 

여섯째, 부친 전익선이 80대 중반까지도 조부(전의천)과 증조부(전봉준)과 고조부(전창혁)의 묘소를 벌초하였다고 아들 전장수 박사에게 밝혔다는 점이다. 정읍 비봉산의 전봉준 묘소, 백산에 있는 전창혁 묘소, 함평 곤봉산에 있는 조부(전의천)의 묘소에 벌초하고 돌아왔다고 아들 전 박사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전창혁, 전봉준, 전의천이 제 조상이 아님에도, 벌초를 했겠는가? 제 조상이니까 벌초를 했을 것이다. 이 내용도 인터뷰가 끝난 뒤에 4월 4일 전 박사가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에 나와 있다. 

 

일곱째, 전 박사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아버지 전익선이 고조할아버지(전창혁), 증조할아버지(전봉준)과 증조할머니(이순영), 할아버지(전용현)와 할머니(이양림)의 제사까지 모두 지냈었다고 밝힌 점이다. 제 조상이 아니라면, 제사를 지낼 리가 없지 아니한가? 이 내용도 전 박사가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에 나와 있다.  

 

필자는 전봉준의 증손자를 만나고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느꼈다. 항일투쟁의 총사령관 전봉준, 그 증손자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지 못할 때, 우리 역사는 외세의 굴레로부터 단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이웃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느낄 때에, 우리는 같은 겨레이고, 같은 동포이고, 같은 국민인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이웃이 아니고, 같은 겨레가 아니고, 타인일 뿐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는 즉각 답을 내야 한다. 국가기관의 업무를 맡고 있는 심의위원회는 정해진 기한 내에 결과통보를 보내야 한다. 마냥 미루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본다. 김개남·손화중·김덕명 등의 유족에게는 진즉 등록 통지서가 발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독 전봉준의 유족에게만 결정이 늦추어지고 있다. 보국안민의 민주 국가 건설과 항일투쟁의 총사령관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진두지휘한 전봉준 장군, 전봉준의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지금까지 전봉준의 아들 전용현의 직계 후손이라고 밝힌 분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었다. 

 

전봉준의 아들 전용현의 직계 후손이라고 분명히 밝힌 전장수가 아닌 다른 유족이 나타났는가. 전봉준의 증손자라고 나타난 사람에게 전봉준의 후손이 아니라는 입증을 못한다면, 심의위원회는 유족 등록 통지서를 즉각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이 글을 계기로, 심의위원회는 전봉준 장군의 후손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밝히기를 바란다.(연재 끝). hispak@hanmail.net

 

*필자/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고려대 사학과 박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 전봉준(가마 중앙). 전봉준 장군이 일본영사관에서 심문을 받은 뒤에 찍은 마지막 모습(1895년 2월 27일). 2015년 고 양상현 교수가 전봉준 사진을 발굴 공개함. Ⓒ양상현

 

General Bong-joon Jeon's great-grandson who is not receiving the registration notice

[History Excavation-Part 4] Interview with Dr. Jang-soo Jeon “Your great-grandfather is General Nokdu, General Nokdu Jeon Bong-jun, and Captain Donghak” from my father Jeon Ik-seon.

-Dr. Yonggyu Park

 

In March 2004, after the'Special Act on the Recovery of Honor for Participants i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hereinafter referred to as the Special Act) was enacted, in September of the same year, the'Honorary Restoration Deliberation Committee for Participants in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hereinafter referred to as the Deliberation Committee) under the Prime Minister's office. 3,644 participants were registered and 10,567 survivors were issued a notification of registration of survivors until the was launched and the activity was terminated in December 2009.

 

However, in the case of General Bong-joon Jeon registered as one of the participants, even though Kim Yeon-im, the grandson of Bong-joon Jeon, applied for the registration of the bereaved family on April 25, 2005. He said he applied for a grandfather who did not, and was immediately eliminated. It was a truly cruel measure that was bound by the law.

 

Mrs. Yeonim Kim, mother of Dr. Jang-soo Jeon (grandfather of General Bong-jun Jeon, wife of Ik-seon Jeon, grandson of General Bong-joon Jeon.) Ⓒ Jang-soo Jeon

 

In December 2017, the special law was amended, and the scope of the descendants of the participants was extended to the high-grandchild. In September 2018, the deliberation committee was re-established under the Minister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allowing survivors to continue to apply for registration.

 

On September 10, 2018, Kim Yeon-im's son Jeon Jang-soo (Jeon Bong-joon's great-grandson) applied for registration as a survivor. However, it is said that the deliberation committee has not given an answer until now even after the deadline for notification of results has been exceeded. It's very wrong.

 

As a historian, I had the opportunity to look at the application for registration of survivors submitted by Jang-Soo Jeon, who pretended to be Jeon Bong-jun's great-grandson, as well as the vast amount of evidence submitted to the deliberation committee.

 

The contents of the interview between Jang Su Jeon and the author of economics, and the data sent to me by Dr. Jeon received oral dictation from his father, Ik-seon Jeon, are reliable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 it is because Ik-sun Jeon's oral statement to his son, Jang-soo, is too specific and trusts him. As mentioned earlier, Bong-jun Jeon's statement about his family and his life is very detailed. Since he is a direct descendant, it is believed that he was able to get to know the family history of his father (Jeon Yong-hyun) and grandfather (Jeon Bong-jun).

 

Second, the words Jeon Ik-seon said at the Jingogae restaurant when his son entered college, that is, “The name of General Bong-joon Jeon's younger sister is the same as the name of this restaurant” proves that he is a direct descendant. This is because Jeon Bong-jun's younger sister's name is'Jeongogae'. Son Yeo-ok's grandson, Son Joo-gap, said in a phone call with me on April 6, "I was convinced that I must be a direct hand of Jeon Bong-jun while listening to the story." I think the same thing.

 

Third, on March 22, 2021, in a phone call between the writer and Dr. Jeon Jang-soo, from the age of three or four, Dr. Jeon said from his father Ik-seon Jeon, “Your great-grandfather is General Nokdu. General Nokdu, Jeon Bong-jun. This is the leader of Donghak. Don't tell anyone about this. If you talk, he can die.” He testified that he lived after hearing the word. In addition, in an interview on April 4, Dr. Jeon said, “From my father (Ik-seon Jeon), I heard that Jeon Ui-cheon is the son of General Bong-jun Jeon Jeon Jeon, and that it is the path of genealogy. I have heard these words from his father for decades to get nails in my ears.” I don't think anyone can testify like this. I think that only direct descendants can do it.

 

 With Dr. Jang-soo Jeon (left). Inside Starbucks in front of the main gate of Gyeongsang University. (2021, 4, 4.) Ⓒ Yong-gyu Park

 

Fourth, in an interview on April 4th, Dr. Jeon revealed that when he was 12 years old, his father took him to meet the grandmother of Jeon Ok-rye's great aunt. This is also shown in the material that Dr. Jeon sent to me. Jeon Ok-rye is the eldest daughter of Jeon Bong-jun, which has already been revealed in previous studies.

 

Fifth, in an interview on April 4, Dr. Jeon revealed that when he was a 14-year-old junior high school student, his father took him to visit the graveyard of his great-grandfather General Bong-jun Jeon in Jeongeup. This is also detailed in the data sent to me by Dr. Jeon. On April 9, Dr. Jeon told me through a phone text that he had recently visited the grave of General Jeon Bong-jun in Jeongeup in the spring of 2018, 2019, and 2020.

 

Sixth, his father, former Ik-seon, told his son, Dr. Jeon Jang-soo, that his grandfather (Jeon Ui-cheon), his great-grandfather (Jeon Bong-joon), and his great-grandfather (Former Chang-hyeok) had demolition until the mid-80s. He is said to have told his son, Dr. Jeon, that he returned after being detained at the grave of Jeon Bong-jun in Bibong-san, Jeongeup, the mausoleum of Jeon Chang-hyuk in Baeksan, and the grave of his grandfather (Jeonuicheon) in Gonbong-san, Hampyeong. Even though Changhyuk Jeon, Bongjun Jeon, and Euicheon Jeon were not my ancestors, would they have been punished? Because he was my ancestor, he would have been punished. This is also shown in the data sent to me by a former doctor on April 4 after the interview was over.

 

Seventh, until Dr. Jeon attended middle school, his father, Jeon Ik-seon, revealed that his great-grandfather (Jeon Chang-hyuk), great-grandfather (Jeon Bong-jun), great-grandmother (Lee Soon-young), grandfather (Jeon Yong-hyun), and grandmother (Lee Yang-rim) had all served. Point. If it weren't for my ancestors, wouldn't there be no way to hold a rite? This is also shown in the data that Dr. Jeon sent to me.

 

When I met Jeon Bong-jun's great-grandson, I felt unspeakable sadness and pain. When the grief of Jeon Bong-joon, commander of the anti-Japanese struggle, and his great-grandson's grief cannot become my grief, our history cannot escape from the bondage of foreign powers. When we feel our neighbor's sadness as my sorrow, we are the same race, the same compatriot, and the same people. When not, we are not neighbors, we are not the same people, we are only others.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Participants Honor Restoration Deliberation Committee” must give an immediate answer. The deliberation committee in charge of the affairs of the state agency shall send a notification of the results within the specified time limit. I think it is job abandonment to be procrastinating. It is known that the registration notice was issued to the survivors of Kim Gae-nam, Son Hwa-jung, and Kim Deok-myeong.

 

▲ 박용규 박사. *Writer/Park Yong-gyu/Research Fellow, National Research Institute. Doctor of History, Korea University   ©브레이크뉴스

The decision is being delayed only for Jeon Bong-jun's bereaved family. I don't think it is polite to the bereaved family of General Bong-Jun Jeon and Bong-Jun Jeon, who le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s the commander in chief of the struggle against Japan and the construction of a democratic state of Boguk-an-min. Until now, I have not heard of anyone who has revealed that he is a direct descendant of Jeon Bong-jun's son, Jeon Yong-hyun.

 

Has there been any survivors other than Jeon Bong-jun's son, Jeon Yong-hyeon, who clearly identified himself as a direct descendant of Jeon Bong-jun's son. I believe that if the person who appears to be the great-grandson of Jeon Bong-joon cannot prove that he is not a descendant of Jeon Bong-joon, the deliberation committee should immediately give a notice of registration of the survivor. Taking this article as an opportunity, the deliberation committee hopes to reveal to the public about the descendants of General Bong-jun Jeon (end of series). hispak@hanmail.net

 

*Writer/Park Yong-gyu

Research Fellow, National Research Institute. Doctor of History,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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