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싸이버시대와 여성노동의 문제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

손봉석 | 기사입력 2004/04/10 [13:39]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전 세계 노동력의 감소와 탈 시장의 도래’를 예견하였다.

정보통신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이 생산과정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다고 전제하는 이런 주장은  상품생산에 참여하는 이들만을 ‘노동자’로 보는 남성의 시각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남성 노동자들은 대량 실업에 직면하고 있으며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여성들에게 새로운 '저임금의 일자리'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정보화를 통한 가사노동의 상품화가 바로 그 여성들로 하여금 광범위한 '무보수 소비노동'을 부담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싸이버타리아트>/어슐러 휴즈 저(갈무리출판사, 번역 신기섭)     ©갈무리
오랜 비정규직 여성 노동 경험을 가진 저자 어슐러 휴즈는 <싸이버타리아트>(갈무리출판사, 번역 신기섭) 에서 세계화와 정보화의 이면에는 시장에 포섭되지 않았던 가사노동을 상품화하는 과정이 놓여있음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휴즈는 제도학문이 지금까지 ‘학술’이라는 명목하에 ‘나’라는 일인칭 주어를 글쓰기에서 추방해 왔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개인적 경험과 사회운동 과정, 현장 조사 결과 등 경험적인 자료와 맑스주의 이론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화해를 시도하고 그러면서도 긴장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슐러 휴즈 자신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불안하기 그지없는 프리랜서 연구자이고, 현장에 머문 여성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이기 때문으로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는 ‘이론좌파’가 아니다.

이 책이 '신기술과 가사노동'으로 시작한 것도 인상적이다.

'신기술과 가사노동'의 요지는 신기술들이 가사노동을 상품화하는 경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신기술이 생산의 자동화를 가져오고 생산의 자동화는 대량 실업을 유발하므로 자본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미처 살피지 못한 측면이 무엇인가를 지적한다. 

저자는 기술혁신이 상당수의 노동자를 극심한 실업과 빈곤으로 내몬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변화의 물결도 경제 전반에 영구적인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하지는 않았고  기존의 상품을 더 적은 인원을 동원해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신규산업'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신규산업의 핵심이 가사노동의 영역, 살림살이의 영역이라는 것이 휴즈가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다. 휴즈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새로운 상품화의 원동력이며, 가사노동을 대체하는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무보수 서비스 노동의 상품화가 노동의 성격과 형태를 변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사노동의 상품화는 새로운 상품 제조나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해 창출된 새 일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도록 하며 자본은 항상 값싼 노동력을 찾고 더욱이 새롭게 창출된 상품이 바로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상품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추진력이자 동시에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뿌리라는 주장이 이어진다.

휴즈는 그의 독특한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의 분석방법으로 상품의 세계화와 정보화가 동시에 가져오는 노동의 비정규직화, 가정의 일터화를 추적한다.

그녀가 30여년에 걸친 끈기 있는 탐구를 통해 밝히고자 한 한 가지 문제는 가정과 일터의 구분이 사라져버리고, 상품생산노동과 서비스노동, 무보수 가사노동, 무보수 소비노동의 관계가 빠르게 변환되는 것은 정보기술과 같은 신기술의 도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휴즈는,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과거 가정에서 보수 없이 이뤄지던 재생산 서비스 활동들을 점진적으로 화폐경제 속에 흡수하여 상품화하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라는 일반적 결론을 도출한다.

이제 노동은 가정과 공장이라는 분리된 특정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될 잠재성을 지니고 삶의 전 부면에 걸쳐 확장된다.

그 결과 전지구적 싸이버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프롤레타리아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 노동자, 사무 노동자, 정보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 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휴즈는 정보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의미하는 신조어 '싸이버타리아트'(cybertariat)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담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눈높이로 다가오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지난 250년 동안의 제조업 역사는 거칠게 말하면 가정에서 돈 받지 않고 하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서 시장에 넘겨주는 역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시장으로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돈벌이를 위한 일거리가 되고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환을 위한 게 된다. 이 과정은 가사노동의 사회화로 표현된다.” (책 40쪽)

휴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인 여성의 가사일이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상품화하는 과정 속에 현대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사노동의 공산품화는 기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나머지 일거리를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어느 단계에서건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여성들로 하여금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즈에 따르면 가사노동의 사회화, 상품화는 완료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휴즈는 상품화에 맞설 것을 주장한다.

저자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새로운 노동양식과 소비양식을 창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도록 가사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통제권의 확보가 필요함을 제기한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자본주의의 대안을 구성했던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뿐 아니라 재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권이 동시에 요구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휴즈의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이 보여주는 놀라움은 정보화의 감춰진 상처들을 과감히 폭로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동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를 쓰면서도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던 자신의 할머니보다 더 오랫동안 가사에 매달리는 미국 밀워키나 영국 월버햄턴의 주부를,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컴퓨터 칩을 만들면서 극도의 착취를 당하는 말레이시아 여성의 상황과 연결시키며, 생산과 재생산 모든 영역에서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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