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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우즈 족과 발칸 페체네그

정길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4/11/09 [07:43]

▲필자/ 정길선 박사     ©브레이크뉴스

본래 우즈 족은 페체네그 왕국을 건국하는데 있어 건국 부족으로 함께 했지만 점차 페체네그의 차별적 대우와 더불어 그들의 용맹성을 이용하여 전쟁으로만 일관하게 만드는 페체네그 공동체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이러한 우즈 족의 타 부족 영토 불법 점거는 페체네그의 유목 공동체를 분열시켰고 우즈 족의 점령지인 도네츠크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부족은 드네프르 강 하류로 내려가 헤르손(Kerson)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같은 소속의 부족을 밀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형식으로 자연히 부족 사회 내부가 붕괴되었고 중앙 정부는 깊은 불신에 시달리게 되자 페체네그의 일부 부족들 중 영토를 잃었던 부족들은 942~970년 경 헝가리로 잠입해 정착한 반면, 본류와 중앙 정부는 점진적인 서진을 계속했다. 페체네그의 서진은 11세기 초에 드네스트르(Dnestr) 유역과 오늘날의 베사라비아(Bessarabia) 지역까지 남하함으로써 흑해 북부에 대한 페체네그의 영향력이 감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한 키예프 공국은 1036년 야로슬라프 왕이 노르만, 슬로베니아, 노브고로드 인들과 연합군을 결성했고 키예프 근교의 전투에서 페체네그 군을 궤멸시켰다. 

 

종래 페체네그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던 비잔틴 제국도 바실레우스 2세(Basileus Ⅱ)때 제1 불가리아 제국에 대한 통치를 확고히 함으로 인하여 더 이상 페체네그와 동맹 및 협조를 구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페체네그의 남하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위협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페체네그를 경계하는 측면으로 돌입했고 양국 관계가 단절되자 다급한 페체네그는 발칸 반도 쪽으로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 페체네그의 발칸으로 이동은 그 동안 제1 불가리아 제국의 치세에서 다시 회생한 비잔틴 제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붕괴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페체네그의 발칸 진출은 중세 시대에 판도를 변경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페체네그 인들은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로 진입하면서 약탈과 파괴가 난무했고 세르비아, 보스니아를 장악하면서 비잔틴 제국에 상당한 위협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036년에서 1048년에 이르는 12년 동안 페체네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페체네그를 상대로 한 비잔틴 제국의 기록이 거의 서술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서 나타나는데 크림 반도 이북에서 강력한 유목 공동체로 군림한 페체네그가 발칸 반도로 밀려 내려오면서 그 숫자가 극히 미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세기 비잔틴 사가 케드레누스(G. Cedrenus)의 기록에 의하면 페체네그의 내부는 심각한 분열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 세력이 드네프르 강 연안을 지배했던 시기보다 극도로 약화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당시 13개 부족의 연합체인 페체네그의 두 지도자는 투라크(Turak)와 케겐(Kegen)이었다. 11개 부족을 통솔하는 투라크의 통치권에 2개 부족을 규합한 케겐이 도전함으로 인해 1048년경 두 세력 간에 대격돌이 벌어졌다. 투라크의 세력에 밀린 케겐은 결국 2만 명의 페체네그 종족들을 이끌고 비잔틴 제국에 망명해 버렸다. 케겐의 세력은 헝가리 왕국 국경에 위치한 투나 강변에 집중 배치되어 투라크가 이끄는 동족 집단을 공격하고 또 그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투라크는 비잔틴 제국에 사절을 보내서 케겐에 대한 처벌과 페체네그에 대한 공격 중지를 요청하였으나 비잔틴 제국은 이를 거부했다. 따라서 투라크는 비잔틴 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1049년 80만 대군으로 비잔틴 제국을 침공하여 트라키아에 진입했다. 그러나 투라크의 군대는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 군대에 케겐의 세력까지 합류한 연합군에 의해 패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투라크 자신도 케겐의 군사들에게 생포되어 콘스탄티노플로 압송되었고 그의 부하들과 함께 기독교로 개종하여 비잔틴 제국에 굴복하여 비잔틴 제국의 종속국이 되었다. 

 

이 때의 페체네그 군사들은 대부분 해체되어 비잔틴 제국의 영역인 불가리아 지방의 수비군으로 재배치되었다. 이는 새롭게 성장하는 헝가리 왕국의 남하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일부의 종족들은 비잔틴 제국의 군대에 편입되었다. 물론 많은 페체네그 잔존 세력들은 다시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영내로 돌아가 세력을 회복하여 비잔틴 제국과의 끈질긴 투쟁을 지속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비잔틴 제국 군대에 편입된 1만 5천명의 페체네그 족 소속의 기병들이 셀주크투르크 군의 진격으로 인하여 위급해진 아나톨리아 동부 전선으로 파송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잔틴 제국의 기록으로 나타나 있으며 당시에 비잔틴 제국의 군대로 차송된 페체네그 패잔병들은 대부분 비잔틴 제국 영토인 아나톨리아의 수호를 위해 희생되었고 셀주크투르크의 포로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여제인 테오도라(Theodora)의 명으로 인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아시아 측의 위스퀴다르(Uskudar)에 도착한 페체네그 기병들은 돌연 동부 전선 투입에 반대하여 다시 해협을 건너 1050년경 투나 유역으로 회군하게 된다. 그러한 비잔틴 제국의 원칙 없는 퇴각 직후 셀주크투르크는 아나톨리아에 진입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는 계기가 된 1071년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투르크 간의 말라즈기르트(Malazgirt) 전투에서 셀주크투르크가 승리함으로 인하여 비잔틴 제국의 군대에 일부인 페체네그의 기병대가 동족이나 마찬가지인 셀주크투르크 군에 투항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결국 페체네그의 이동과 비잔틴 제국의 쇠망은 우즈 족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고 우즈 족 또한 쿠만(Kuman)이라고도 불리는 킵차크(Kipchak)족, 혹은 폴로베츠(Polovet)의 위협으로 인하여 이동을 개시하였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 Uz tribe of Eurasia and the Balkan Pechenegs

 

- Jeong Gil-seon Columnist

 

Originally, the Uz tribe joined the Pecheneg kingdom as a founding tribe, but gradually they became strongly dissatisfied with the Pecheneg community, which used their bravery to only engage in war, along with the Pechenegs’ discriminatory treatment. The Uz tribe’s illegal occupation of other tribes’ territories divided the Pecheneg nomadic community, and the tribe that controlled the Donetsk area, which was occupied by the Uz tribe, moved down the Dnieper River and pushed out the tribe of the same group living in the Kherson region.

 

In this way, the tribal society naturally collapsed and the central government suffered from deep distrust. Some of the Pecheneg tribes that had lost their territory infiltrated Hungary and settled there around 942-970, while the main stream and the central government continued their gradual westward advance. The Pechenegs' westward advance in the early 11th century led to a decline in their influence in the northern Black Sea, as they extended southward to the Dniester River and present-day Bessarabia. Taking advantage of this situation, the Kievan Rus formed an alliance with the Normans, Slovenes, and Novgorodians in 1036, and annihilated the Pechenegs in a battle near Kiev.

 

The Byzantine Empire, which had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with the Pechenegs, had solidified its rule over the First Bulgarian Empire during the reign of Basileus II, and thus had no reason to seek alliance or cooperation with the Pechenegs any longer. However, since the Pechenegs' southward advance threatened Byzantine territory, the Byzantines instead turned to a wary stance against the Pechenegs, and when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severed, the desperate Pechenegs began a large-scale migration toward the Balkan Peninsula. The migration of these Pechenegs to the Balkans indicates the collapse of the absolute influence of the Byzantine Empire, which had been revived during the First Bulgarian Empire. Therefore, the Pechenegs' advance into the Balkans is recognized as an important event that could change the landscape in the Middle Ages.

 

The Pechenegs plundered and destroyed Bulgaria, Macedonia, and Thrace, and they posed a significant threat to the Byzantine Empire as they took control of Serbia and Bosnia. However,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the Pechenegs during the twelve years from 1036 to 1048. This is because the Pechenegs, who had been a powerful nomadic community north of the Crimean Peninsula, were pushed down to the Balkans, and their numbers became extremely small. And according to the records of the 11th-century Byzantine historian G. Cedrenus, the Pechenegs were internally seriously divided and their power was significantly weakened compared to when they ruled the Dnieper River.

 

At that time, the two leaders of the Pechenegs, a confederation of 13 tribes, were Turak and Kegen. Kegen, who united two tribes, challenged the rule of Turak, who ruled over 11 tribes, and a great clash broke out between the two forces around 1048. Kegen, who was pushed back by the power of Turak, eventually led 20,000 Pechenegs into exile in the Byzantine Empire. Kegen's forces were concentrated along the Tuna River on the border of the Kingdom of Hungary, and played a role in attacking the compatriot group led by Turak and defending against their invasions.

 

The Turks sent envoys to the Byzantines to ask them to punish Kegen and stop attacking the Pechenegs, but the Byzantines refused. Therefore, the Turks declared war on the Byzantines and invaded the Byzantines in 1049 with an army of 800,000 men, entering Thrace. However, the Turks were defeated by the combined forces of the Byzantine and Bulgarian armies, including Kegen's forces. In this battle, the Turks themselves were captured by Kegen's forces and taken to Constantinople, where they converted to Christianity with their men and submitted to the Byzantines, becoming a vassal state of the Byzantines.

 

At this time, most of the Pechenegs were disbanded and reassigned to the defense of the Bulgarian province, which was part of the Byzantine Empire. This served to defend the southward advance of the newly growing Kingdom of Hungary, while some tribes were incorporated into the Byzantine army. Of course, many Pecheneg remnants returned to Serbia, Bosnia, and Croatia, regained their power, and continued their tenacious struggle against the Byzantine Empire. One interesting part here is that 15,000 Pecheneg cavalrymen who had been incorporated into the Byzantine Empire's army were sent to the eastern front of Anatolia, which was in danger due to the advance of the Seljuk Turks. This is recorded in the Byzantine Empire, and most of the Pecheneg remnants who were sent to the Byzantine Empire's army at that time were sacrificed to protect Anatolia, which was Byzantine territory, and were also captured by the Seljuk Turks and launched a counterattack against the Byzantine Empire. However, the Pecheneg cavalry, who crossed the Bosphorus Strait and arrived at Uskudar on the Asian side by order of Theodora, the Byzantine empress, suddenly opposed the deployment to the eastern front, crossed the strait again, and returned to the Tuna basin around 1050. Immediately after the Byzantine Empire's unprincipled retreat, the Seljuq Turks entered Anatolia, and as a result, the Seljuq Turks won the Battle of Malazgirt in 1071, which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present-day Turkish Republic. As a result, it is known that the Pecheneg cavalry, which was part of the Byzantine Empire's army, surrendered to the Seljuq Turks, who were like compatriots to them. In the end, the migration of the Pechenegs and the decline of the Byzantine Empire were due to the pressure of the Uz people, who also began to migrate due to the threat of the Kipchak people, also called Kuman, or Polovet. lukybaby7@gmail.com

 

*Author/ Jeong Gil-seon.

 

 

Novatopos member, historian, paleoanthropologist, columnist, research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Eurasian Paleoanthropology, Russian Academy of Sciences.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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