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진행되면서 최초의 궁전으로 건축되어 감옥으로 바뀐 콩시에르쥬리가 등장하였다. 비운의 이국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가 투옥되었던 공간과 단두대에 처형된 혁명의 역사를 주요한 공연으로 연출한 것이다.
당시 유행하였던 혁명의 노래 ‘사이라(Ça ira)’를 올림픽 사상 최초로 등장하는 헤비메탈 밴드 고지라(Gojira)의 연주 속에 목이 없는 앙투아네트 왕비를 콩시에르쥬리 감옥 여러 방 앞에 세워두고 뿜어 대는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1793년 10월 16일 당시 혁명광장인 콩코르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처형으로 38세의 삶을 마쳤다. 1월 21일 부군 루이 16세 왕(1754~1793)이 처형된 9개월 후였다.
파리올림픽 개막식 영상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단두대에서 잘린 목이 혁명의 노래 ‘사이라(Ça ira)’의 다음과 같은 가사를 노래하는 섬뜩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아!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Ah ! ça ira, ça ira, ça ira) / (귀족들을 등불에 매달아라!-les aristocrates à la lanterne!) / (아!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Ah ! ça ira, ça ira, ça ira) / (귀족들을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Les aristocrates on les pendra)
프랑스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음성이었다. 러시아 태생 프랑스 영화감독 사샤 기트리(1885~1957)가 1954년 발표한 영화 “만약 베르사유 이야기가 나에게 전해진다면(Si Versailles m’était conté)”에서 민중의 딸로 출연한 에디트 피아프가 시위대 선봉에서 베르사유 궁전 철문에 올라 혁명가요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를 부르는 장면이 스쳐갔다.
영화는 당시 프랑스에서만 700여만 명의 관객이 동원된 대 히트작으로 이어 1957년 미국과 1960년 영국에서도 개봉되었다.
프랑스어로 ‘괜찮을 거야’라는 뜻인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이 노래가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90년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던 1789년 7월 14일을 연례 국경일로 지정하면서 열린 프랑스 혁명 기념 축제에서 울려 퍼진 혁명가요였다.
노래의 기원을 헤아리면 장 앙투안 비쿠어(1760~1794)라는 여성 음악가의 곡에 전직 군인 출신의 거리 가수 라드레(Ladré)가 가사를 붙여 부른 것이 시초였다.
노래의 주요한 후렴구이면서 제목인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가 유래된 내용도 역사이다. 1783년 9월 3일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미국의 독립된 주권을 영국이 인정하는 역사적인 파리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역사에는 미국의 독립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 피뢰침의 발명자로도 익히 알려진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존재한다.
프랭클린은 미국 최초의 외교관으로 1776년부터 1778년까지 프랑스에 파견되어 미국의 독립을 위한 프랑스의 지지를 얻어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어 다음 해 1779년 최초의 미국 대사가 되었다. 당시 치열하게 전쟁 중인 미국의 독립 전쟁에 관하여 물을 때마다 늘 서툰 프랑스어로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라고 대답하여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던 역사에서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 혁명 가요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의 원곡은 장 앙투안 비쿠어라는 여성 음악가의 춤곡이다. 그녀는 1786년 당시 유행하였던 영국의 컨트리 댄스에서 유래된 콩트르당스 곡을 여럿 작곡하였다. 짚고 갈 대목은 이 음악은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하프시코드로 즐겨 연주한 춤곡이었다. 이러한 음악에서 혁명가요가 탄생하여 단두대의 처형으로 이어진 것이다.
역사적인 음악을 작곡한 장 앙투안 비쿠어는 몇 곡의 음악만이 전해지는 34살의 짧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보졸레 극장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보졸레 극장은 1784년에 문을 열었던 인형극 극장이었다.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 북쪽 팔레 루아얄에 있는 팔레 루아얄 극장이 바로 보졸레 극장 자리다. 이러한 인형극 전용 극장이었던 보졸레 극장에 담긴 이야기도 한 편의 드라마다.
당시 어린이들이 인형극을 펼치면 무대 뒤 성우와 가수들이 대사와 노래하였던 인형극은 큰 인기가 있었다. 같은 시대 팔레 루아얄에는 1680년 루이 14세의 칙령으로 개관된 유서 깊은 코미디 프랑세즈와 이탈리아어 연극 전용 극장이었던 코미디 이탈리아 극장이 있었다. 문제는 인형극 보졸레 극장이 생겨나 큰 인기를 얻으면서 두 극장이 운영난에 처하였을 만큼 인형극의 인기는 천정부지였다.
이에 두 극장이 연합하여 보졸레 극장의 어린이 출연을 문제 삼아 어린이들의 출연이 금지되면서 인형 극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1787년 베르사유 극장 감독으로 여성 배우이며 연출가였던 마르게리트 브뤼네(1730~1820)가 보졸레 극장을 인수하였다.
마르게리트 브뤼네 그녀는 누구인가! 프랑스 혁명이라는 격랑의 물결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물빛 선연한 그림자를 남긴 시대를 거머쥔 여인 마르게리트 브뤼네를 살피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서부터 나폴레옹 1세 황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설득과 제안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다. (드라마와 같은 여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방대하여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이어 짚고 간다. 세계사적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무수하게 얽혀있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관통한 이국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이 잘린 처형을 인류의 제전 올림픽 개막식에서 특히 평등(Equality)이라는 주제에 등장시킨 사실은 아쉬움이 많은 연출이었다. 감각적인 흥미에 치중하여 역사의 일깨움을 승화된 메시지로 전하지 못한 까닭이다.
승화된 메시지로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은 동시대 프랑스 각 장르의 예술에 넘쳐난다. 소중한 역사의 행간을 세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인류의 축제에 목이 잘린 앙투아네트 왕비를 나열한 연출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예술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성인을 이르는 조각상 케팔로모어는 세계 주요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3세기 중반 무렵 파리의 드니 초대주교는 순교의 언덕 몽마르트에서 참수된 후 자신의 목을 껴안고 파리 생 드니까지 걸어가며 설교한 일화는 대표적이다. 그는 프랑스와 파리의 수호 성인이다. 이러한 역사에서 목이 잘린 앙투아네트 왕비를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연출한 것은 엄밀하게 역사의 속살이 아닌 감각적인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와 예술의 정신을 세계로 연결하는 행사이다.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희망과 가치를 상징하는 너무나 소중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In-depth Analysis] The Paris Olympics Opening Ceremony Considered by the Gallery Director (6)
As the Paris Olympics Opening Ceremony was underway, the Conciergerie, which was built as the first palace and then turned into a prison, appeared. The main performance was the space where the unfortunate foreign queen Marie Antoinette (1755-1793) was imprisoned and the history of the revolution in which she was executed by guillotine.
The revolutionary song ‘Ça ira’, which was popular at the time, was played by the heavy metal band Gojira, which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Olympic history, and the headless Queen Antoinette was placed in front of several rooms of the Conciergerie prison, and red smoke reminiscent of blood spewed out filled the air.
On October 16, 1793, Queen Marie Antoinette was executed by guillotine at the age of 38 at the Place de la Concorde, the revolutionary square at the time. It was nine months after the execution of her husband, King Louis XVI (1754-1793), on January 21.
The opening ceremony video of the Paris Olympics featured a chilling scene in which Marie Antoinette's severed head from the guillotine sang the lyrics of the revolutionary song "Ça ira."
(Ah! It'll be alright, it'll be alright, it'll be alright-Ah ! ça ira, ça ira, ça ira) / (Hang the aristocrates on the lantern!-les aristocrates à la lanterne!) / (Ah! It'll be alright, it'll be alright, it'll be alright-Ah ! ça ira, ça ira, ça ira) / (We will hang the aristocrates-Les aristocrates on les pendra)
It was the voice of French national singer Edith Piaf (1915-1963). In the 1954 film “Si Versailles m’était conté” by Russian-born French film director Sacha Guitry (1885-1957), Edith Piaf, who appeared as a daughter of the people, climbed the iron gate of the Palace of Versailles at the forefront of the protests and sang the revolutionary song “Ah! It’ll be alright (Ah! ça ira)”.
The film was a huge hit, attracting over 7 million viewers in France at the time, and was released in the United States in 1957 and in the United Kingdom in 1960.
This song, which symbolizes the French Revolution and means “It’ll be alright” in French, was first sung in 1790. It was a revolutionary song that resonated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celebrations held on July 14, 1789, when the Bastille prison, the starting point of the French Revolution, was designated as a national holiday.
The origin of the song is that it was sung by a former soldier and street singer named Ladré, who added lyrics to the song by a female musician named Jean Antoine Vicoure (1760-1794).
The origin of the song's main refrain and title, "Ah! It'll be okay (Ah! ça ira)", is also historical. On September 3, 1783, the Treaty of Paris was signed at the Palace of Versailles in Paris, in which Britain recognized the independent sovereignty of the United States. In this history, there is 'Benjamin Franklin' (1706-1790), who is also well known as the inventor of the lightning rod, who contributed the most to the independence of the United States.
Franklin was the first diplomat of the United States, and was dispatched to France from 1776 to 1778, where he performed the important mission of gaining French support for the independence of the United States. He then became the first American ambassador the following year in 1779. It was born from the history of how, whenever asked about the fiercely contested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she would always answer in broken French, “Ah! ça ira,” which became a catchphrase of the time.
The original song of the French Revolutionary Song, “Ah! ça ira,” was a dance by a female musician named Jean-Antoine Vicoure. She composed several contredances derived from the English country dance that was popular at the time in 1786. The point to note is that this music was a dance that Queen Marie Antoinette enjoyed playing on the harpsichord. This music gave birth to a revolutionary song, which led to her execution by guillotine.
Jean-Antoine Vicoure, who composed historical music, lived a short life of 34 years, with only a few pieces of music remaining. She was a violinist at the Théâtre de Beaujolais. The Théâtre de Beaujolais was a puppet theater that opened in 1784. Today, the Palais Royal Theater, located north of the Louvre Museum, is the site of the Beaujolais Theater. The story of the Beaujolais Theater, which was a theater dedicated to puppet shows, is also a drama.
At the time, puppet shows where children performed puppet shows and actors and singers sang lines and songs behind the stage were very popular. At the same time, the Palais Royal had the historic Comedy Française, which opened in 1680 by the edict of Louis XIV, and the Comedy Italia Theater, which was a theater dedicated to Italian plays. The problem was that when the Beaujolais Theater, a puppet theater, was created and gained great popularity, the popularity of puppet shows skyrocketed to the point that both theaters were struggling financially.
As a result, the two theaters joined forces to take issue with the children's appearances at the Beaujolais Theater, and the puppet theater was closed down as children were banned from appearing. At that time, in 1787, Marguerite Brunet (1730-1820), a female actress and director who was the director of the Versailles Theater, took over the Beaujolais Theater.
Who is Marguerite Brunet? If we take a close look at the turbulent waves of the French Revolution, we will see Marguerite Brunet, a woman who dominated the era, leaving a vivid shadow of water. There are many stories about her persuasion and suggestions, from Queen Marie Antoinette to Emperor Napoleon I, but she is a surprisingly unknown woman. (The story of this woman, like a drama, is so vast that we will discuss it separately.)
Let's continue. It is regrettable that the beheading of Marie Antoinette, a foreign queen who went through the turbulent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which is intertwined with countless various factors in world history, was featured in the opening ceremony of the Olympic Games, a festival of humanity, on the theme of equality. This is because the focus was on sensory interest and the awakening of history was not conveyed as a sublimated message.
The content that can be conveyed as a sublimated message is abundant in each genre of contemporary French art. The production that failed to examine the precious lines of history in detail and displayed the beheaded Queen Antoinette at the festival of humanity should be deeply reflected upon.
The sculpture Cephalomore, which refers to a saint who was martyred by beheading in Christian art, is housed in major museums around the world. In particular, the anecdote of the first bishop of Paris, Denis, who was beheaded on Montmartre, the hill of martyrdom, and walked to Saint-Denis in Paris while holding his own head and preaching is representative. He is the patron saint of France and Paris. In this history, the production of the beheaded Queen Antoinette at the opening ceremony of the Paris Olympics is not strictly speaking the inside story of history, but rather a sensual cross-section.
The Olympic opening ceremony is an event that connects the spirit of culture and art to the world. This is because it is an extremely precious event that symbolizes the hope and value of humanity overcoming current problems and moving toward a better future. artwww@naver.com
Author: Lee Il-young
Director of the Korea Art Center. Columnist. Po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