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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을 건너온 감성의 소녀 - "스미다 아이코"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4/04/08 [08:46]

▲ 한일가왕전 톱7 스미다 아이코 / 출처: MBN

 

한일가왕전 자체 탐색전에서 일본 대표 톱7의 막내인 16살 소녀 스미다 아이코(住田愛子)가 부른 노래 “사랑으로 물든 다리(愛染橋)”가 화제다.

 

일본의 인기 가수이며 배우였던 야마구치 모모에가 1979년 말 싱글앨범으로 발표한 노래로 결혼이라는 인생의 다리를 건너는 여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발표 다음 해 배우 미우라 토모카즈와 결혼 후 은퇴하여 화제가 되었다. 가수 노래 중 엔카에 가장 근접한 노래로 크게 히트하여 싱글 음반 총판매가 1,000만 장을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작곡가는 호리우치 다카오이다. 포크 그룹 엘리스 멤버로 활동 중에 이 노래를 작곡 후 솔로로 데뷔하여 엔카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이 노래도 커버하였다. 작사는 마츠모토 다카시가 썼다.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드럼 연주까지 다재다능한 그는 감성적인 소설가로도 활동하였다. 3년간의 짧은 활동 후 해체한 일본 대중 음악사에서 선구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 록 밴드 핫피 엔도의 드럼 연주자였다.

 

특히 노래 가사에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천년 수도였던 교토 말을 뜻하는 교고토바(京言葉)를 사용하여 심미적 우아함을 담아냈다. 이는 작사가 호리우치 다카오가 효고현 고베 태생이며 작곡가 마츠모토 다카시가 오사카 태생인 점에서 교우고도바와 고베 방언, 간사이 방언의 역사적 연관과 무관하지 않다.

 

노래 주제인 아이젠 바시(愛染橋)는 오늘날 오사카 최대 번화가 난바를 품고 있는 나니와구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작은 다리였다. 오사카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도톤보리강 지류인 고즈이리보리가와가 도시 개발로 매립되면서 오늘날 존재하는 한신 고속도로가 되었다. 

 

노래가 탄생한 배경을 깊숙하게 헤아리면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제1회 수상 작가 가와쿠치 마쓰타로(1899~1985)를 살피게 된다. 그는 유명 여성 잡지 여성클럽에 1937년 2월호에서부터 1938년 5월호까지 소설 사랑으로 물든 나무 “아이젠 가스라(愛染かつら)”를 연재하였다.

 

미모의 미망인 간호사와 젊은 의사의 사랑을 그린 소설을 원작으로 노무라 히로마사 감독이 당대의 여배우였으며 선구적인 여성영화 감독으로도 시대를 관통한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와 우에하라 켄이 열연하여 1938년 말부터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이어 1965년 후지 TV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안방을 사로잡았으며 1968년 속편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어 1976년 NHK 토요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인기 드라마였다.  

 

가와쿠치 마쓰타로는 나가노현 벳쇼온천에서 소설의 집필을 구상할 때 온천에 있던 거대한 나무 정령수에서 소설 제목 아이젠 가스라(愛染かつら)의 실마리를 찾았다. 소설과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1939년 나가노현은 나무를 구립 천연기념물 아이젠 가스라(愛染かつら)로 지정하였으며 1974년 우에다시(上田市)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며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다.  

 

역사의 행간을 촘촘히 헤아리면 우리나라 고대 백제의 숨결이 출렁이는 일본의 가장 오랜 역사를 품은 사찰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에 일본어로 아이젠묘오로 부르는 애염명왕(愛染明王)을 모신 애염당(愛染堂) 사원이 있다. 애염명왕은 석가의 진리를 은밀하게 전하는 뜻을 가진 진언밀교의 특명자를 말한다. 

 

불교에서 애염(愛染)은 많은 뜻이 있지만, 깊은 감정적 유대인 애착으로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남녀 간의 갈등과 번뇌를 지우고 진리를 일깨우게 하는 존상이 애염명왕(愛染明王)다.

 

▲ 일본 오사카 소재 사원 애염당(愛染堂) / 출처: 愛染堂

 

이와 같은 애염당(愛染堂)앞 언덕 비탈에서부터 사랑으로 물든 다리 애염교(愛染橋)가 있었다. 다리가 놓인 비탈 기슭에 1909년 선구적인 애염교보육원이 세워졌다. 이를 정리하면 일본 아동복지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시이 쥬지(1865~1914)가 1892년 나고야 고아원을 임시 운영하다 오카야마로 옮겨 최초의 아동복지시설 오카야마 고아원을 설립하여 1903년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오카야마 대학 수련의 시절 길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가 보살핀 사실이 계기가 되어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과 보살핌으로 삶을 바친 그가 1914년 지병으로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를 후원하였던 구라사키 방직 대표 오하라 마구사부로(大原孫三郞, 1880~1943)가 직접 나서 애염교보육원을 도맡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1937년 애염교 병원(愛染橋病院)을 세워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 

 

오하라 마구사부로는 영국에서 도입한 최신 방적기계를 바탕으로 거대한 부를 쌓아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헌신과 미술품에 대한 신성한 이해를 거머쥔 삶을 살았다. 1930년 아카야마 구라시키에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 오하라 미술관(大原美術館)을 설립한 인물이다. 

 

바로크 시대 작품에서부터 모네와 고갱, 샤갈과 르누아르 그리고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에 이르는 세계 명화들로 가득한 미술관은 절친이었던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1881~1929)의 영향과 자문도 컷지만, 그림자처럼 세계 정세와 삶의 가치와 방향을 조언한 인물이 있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가와쿠치 마쓰타로의 소설 “사랑에 물든 나무(愛染かつら)”이거나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 “사랑에 물든 다리(愛染橋)”가 탄생한 것이다. 

 

스미다 아이코(住田愛子) - 애염교(愛染橋) 유튜브 링크

 

한일가왕전 자체 탐색전에서 일본 대표 톱7의 막내 스미다 아이코가 부른 “사랑에 물든 다리(愛染橋)”를 들으며 필자는 많은 생각을 매만졌다. 가사에 담긴 이야기를 맑은 음색과 서정으로 헤아려간 청량한 느낌이 와닿는 어린 소녀의 감성이 놀라웠다.

 

특히 소녀의 노래 중 (나는 외로운 여자거든-うちは淋しい女やからね) / (사랑 같은 건 잘 몰라-愛なんてよう知らん) 소절에서 혼잣말 같은 놀라운 감성을 구사하는 16살 소녀에게 국경이 없는 박수를 보낸다.

 

노래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헤아림은 다양하다. 좋은 노래와 잘 부르는 노래는 누구나 공감하고 느껴진다. 특히 우리 국민은 높은 열기를 가져온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숙련되어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평가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심사위원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만, 어린 소녀가 부르는 노래에서 타고난 재능이 느껴진다. 개인적 생각에 이번 한일가왕전에 출전한 톱7 중에서 마치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16살 소녀의 노래에는 한 줄기 바람결 같은 특유의 애절함이 있다. 마치 흘러드는 물길과 같은 해협을 건너온 감성의 노래였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 song "愛染 Bridge" sung by Aiko 住, a 16-year-old girl who is the youngest member of Japan's top seven representative Japanese singers, is the talk of the town.

 

It is a song released as a single in late 1979 by popular Japanese singer and actor Momoe Yamaguchi, which contains the heart of a woman who crosses the bridge of her life of marriage. Coincidentally, the year after the announcement, she retired after marrying actor Tomokazu Miura and became a hot topic of conversation. It was a huge hit as the closest song to Enka among the singer's songs, setting a milestone of total sales of more than 10 million single albums. 

 

The composer is Takao Horiuchi. While working as a member of the folk group ELRIS, he made his solo debut and covered the song as an enka singer. The lyrics were written by Takashi Matsumoto. Versatile from classical music to drumming, he also worked as an emotional novelist. He was a drummer for the rock band Hoti Endo, which had a pioneering status in the history of Japanese popular music, which disbanded after three short years of activities.

 

In particular, the lyrics of the song contain aesthetic elegance by using Gyogotova (言葉), which means Kyoto horse, which was the capital of the millennium from the Heian period to the Edo period. This is not irrelevant to the historical connection between the Kyogodova, Kobe dialect, and Kansai dialect, as the lyricist Takao Horiuchi was born in Kobe, Hyogo Prefecture, and Takashi Matsumoto was born in Osaka.

 

The theme of the song, Eisenbashi (愛染 Bridge), was a small bridge that actually existed in Naniwagu, which today contains Osaka's largest bustling city. Gozuri-Borigawa, a tributary of the Dotonbori River that flows east and west through downtown Osaka, was reclaimed by urban development and became the Hanshin Expressway that exists today. 

 

If you look deeply into the background of the song's birth, you will look at Matsutaro Kawakuchi (1899-1985), the first-time winning writer of the Naoki Prize, Japan's most prestigious popular literature award. He published a series of "Eisen Gasra (愛染かつら)" in the women's club of famous women's magazines from the February 1937 issue to the May 1938 issue.

 

Based on a novel about the love between a beautiful widow nurse and a young doctor, director Hiromasa Nomura was an actress of the time and actresses Kinuyo Tanaka and Ken Uehara, who penetrated the era as pioneering women's film directors, shook the Japanese archipelago from the end of 1938. It was then produced as a drama by Fuji TV in 1965, capturing the audience's home turf, and a sequel drama was aired in 1968. It was then a popular drama that aired as NHK's Saturday drama in 1976.  

 

Matsutaro Kawakuchi found a clue to the novel title Eisen Gasra (愛染かつら) from a huge tree spirit water in the hot spring when he conceived the novel's writing at Betsho Hot Spring in Nagano Prefecture. With the novel and movie becoming a big hit, Nagano Prefecture designated the tree as the municipal natural monument Eisen Gasra (愛染かつら) in 1939, and it became a popular tourist destination in 1974 as a natural monument in Ueda City.  

 

If you look closely at the lines of history, there is a temple called 愛染 Shrine where King Ayomyeong is enshrined in Japanese at Sitenojie in Osaka, Japan's longest-running temple where the breath of ancient Korean Baekje fluctuates. Ayomyeong refers to a special name of the mantra that secretly conveys the truth of the Buddha. 

 

In Buddhism, Ae-yum (愛染) has many meanings, but it is reasonable to arrange it with a deep emotional attachment to Jews. King 愛染 is a reverence that erases conflicts and anguish between men and women and awakens the truth.

  

From the slope in front of the 愛染, there was the love-stained bridge Aeyumgyo Bridge. The pioneering Aeyumgyo Nursery School was established in 1909 at the foot of the bridge. To sum up, Juji Ishii (1865-1914), who is considered the father of Japanese child welfare, temporarily ran the Nagoya Orphanage in 1892 and moved to Okayama to establish the first child welfare facility, Okayama Orphanage, and was approved by the government in 1903. 

 

He died in 1914 at the age of 49 due to chronic illness after he devoted his life to the education and care of underprivileged children when he was training at Okayama University. At this time, 孫 郞 (1880-1943), the representative of Kurasaki Textile, who sponsored him, took charge of the Aeyumgyo Nursery Center, and based on this, he established the 愛染 病 Hospital in 1937 and still exists today. 

 

Based on the latest spinning machines introduced in the U.K., Magusaburo Ohara made a huge fortune and enjoyed dedication to underprivileged children and a sacred understanding of art. He was the first person to establish Japan's private art museum, the Ohara 術 Museum, in Kurashiki, Akayama in 1930. 

 

The museum, which is full of world masterpieces ranging from Baroque paintings to Monet, Gauguin, Chagall, Renoir, Picasso and Modigliani, was influenced and consulted by his close friend Kojima Dorajiro (1881-1929), but there was a figure who advised the world situation and the value and direction of life like a shadow. (This part will be postponed next time.) 

    

In this history, Matsutaro Kawakuchi's novel "Tree Drenched in Love (愛染かつら)" or Momoe Yamaguchi's song "愛染 Bridge" was born. 

 

Aiko Sumida (愛 住) - 愛染 Bridge YouTube Link

https://youtu.be/ZjTAmyaoeMI?si=QIzMYVIoK12C0sT1

 

I touched a lot of thoughts while listening to "愛染 Bridge" sung by Aiko Sumida, the youngest member of Japan's top seven, during the self-exploration exhibition of the Hanil Gawangjeon. I was amazed by the young girl's sensibility, which touched the refreshing feeling of the story in the lyrics with clear tone and lyricism.

 

In particular, I applaud a 16-year-old girl who uses an amazing sensibility like talking to herself in the verse of the girl's song (I'm a lonely woman-うちは淋しい女やからね) / (I don't know much about love-the 愛なんてよう らん) without borders.

 

There are various professional analyses and fathom of songs. Everyone sympathizes with and feels good songs and songs that are well sung.

 

In particular, the Korean people are skilled in many audition programs that brought high heat, and all citizens are judges with a high level of sensitivity.        

 

Although the language is different, the culture and environment are different, I can feel the natural talent in the song sung by a young girl. Personally, I think it's like an unprocessed gem among the top seven Korean and Japanese singers. 

 

The 16-year-old girl's song has a sorrowful feeling, like a ray of wind. It was like a flowing water path that crossed the strait. artwww@naver.com

 

Author: Lee Il-young

Director, Korea Art Center. Columnist.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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