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송혜교 대신 전지현이라면?

현실의 인물은 만화 속의 '여신'을 대체할 수 없다

변희재 | 기사입력 2004/07/29 [14:00]

 

 

 

 김혜린 원작의 만화 ‘비천무’가 영화화될 때 과연 절세미인 설리 역을 누가 맡는지에 관심이 모였다. 제작진측에서는 별다른 고민 없이 한국 최고미녀 스타 김희선을 캐스팅했다. 최고미녀 역은 최고미녀가 맡으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발상은 무수한 ‘비천무’ 안티팬을 양산하고 말았다.

‘영화를 보면 바람을 타고 분노가 춤을 춘다’는 말로 표현되듯 만화 ‘비천무’의 팬들은 만화의 감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분노로 안티사이트까지 만들게 됐다. 물론 비판의 초점은 설리 역을 맡은 김희선이었다. 대사는 물론이고 몸동작, 춤, 표정까지 만화상의 완벽한 미인 설리를 표현하기에는 아무리 김희선이라 하더라도 무리였다.

 당시 개봉극장에서는 김희선이 "당신이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들은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었다. 그 만큼 김희선의 연기는 만화 비천무의 팬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원수연 원작의 만화 ‘풀하우스’를 소재로 한 kbs 드라마 ‘풀하우스’ 역시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역시 라이더와 앨리 역을 맡은 비와 송혜교에 대한 원작 팬들의 반발이 거세다. 깡마른 체구에 톡톡 튀는 지성미를 갖춘 앨리와 비교할 때 송혜교의 캐릭터나 외모는 너무 다르다는 의견은 기획단계부터 줄기차게 제기됐다. 송혜교의 통통하고 귀여운 외모가 매력적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원작의 앨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송혜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비' 역시 귀족 출시의 라이더를 연기하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뚤어지긴 했지만 순정을 품고 있는 지성미의 라이더와 달리 지금까지의 '비'의 대사는 그냥 '싸가지없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이 단지 김희선이나 비나 송혜교의 개인적인 자질 탓만은 아니다.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라는 미디어의 장르적 차이 때문에 비롯되는 필연적인 문제이다.
 
 미국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수용자들의 참여도에 따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구분했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전달돼 수용자가 상상할 여지를 줄이는 영화는 핫미디어이고, 적은 정보만 전달돼 수용자의 참여 폭이 넓은 만화는 쿨미디어다. ‘비천무’의 설리를 예로 들자면, 만화상의 설리는 단지 펜으로 겉만 표현됐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여신을 설리에 대입할 여지가 있다. 반면 영화상의 김희선은 이미 현실의 여인 김희선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신 설리는 인간 김희선으로 전락하게 된다. '풀하우스’의 송혜교에 대한 비판도 똑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이상’을 표현할 수 있는 만화상의 매체 캐릭터를 가져와서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인간 연기자를 내려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원작자인 원수연 역시 비-송혜교 커플이 원작과 또 다른 ‘풀하우스’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다만 원작을 재해석한다 했을 때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자세만은 필요하다. 원작의 내러티브는 물론이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주인공 캐릭터의 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상의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지면 원작의 내러티브와 대사까지도 맛이 죽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풀하우스’의 앨리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국내 연기자는 외모나 성격으로 볼 때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라고 톡 쏴붙이는 전지현이 아닐까 한다. 특히 전지현은 영화 <4인용 식탁>, <여친소>를 연속으로 실패한 뒤, cf에서의 위력도 현저하게 감소되고 있다. 싸이더스와의 계약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전지현이 만약 <풀하우스>의 '앨리'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첨가하여 라이더역도 '비'가 아닌 삐딱한 조인성이 했다라면 전지현과 함께 비주얼의 측면에서 보다 만화적 상상력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원작의 팬들로부터 빗발치는 비난을 그들이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봐야 전지현과 조인성도 현실의 인간이지 만화상의 '신'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 스포츠서울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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