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벽을 허문 초현실주의 시대 이야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2/05/20 [16:14]

▲ 만 레이(1890~1976)의 사진 작품 (앵그르의 바이올린) 48.5x37.5cm   


지난 5월 14일 토요일 밤 뉴욕 크리스티 라이브 경매는 초현실주의 미술 애호가인 멜빈 제이콥스(1926~1993)와 로잘린 제이콥스(1925~2019) 부부의 소장품 특별전 “초현실주의 세계”였다. 소장품 중 전화 응찰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진 작품이 있었다. 초현실주의 사진 작가 만 레이(1890~1976)의 사진 작품 (앵그르의 바이올린)이었다. 48.5x37.5cm 크기 사진은 최고 예상 가격 90억 원(700만$)을 훨씬 넘는 159억 2,780만 원(1,240만$)에 낙찰되어 사진 작품 사상 최고가의 역사를 썼다. 

 

제이콥스 부부는 남편 멜빈 제이콥스가 럭셔리 백화점 블루밍데일 임원으로 재직 중에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의 메이시스 백화점 패션 디렉터와 전국 부사장이었던 여성 로잘린 제이콥스를 만나 1957년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멜빈 제이콥스는 1982년 미국 최대 백화점 그룹 삭스 피프스 에비뉴 회장에 취임하여 1993년 은퇴 후 3개월 만에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이콥스 부부가 만 레이의 사진 (앵그르의 바이올린)을 소장한 것은 1962년이었다. 그해 5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만 레이 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전시 후 제이콥스 부부가 만 레이에게 직접 구입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시대를 관통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부인 로잘린 제이콥스는 결혼 전이었던 1954년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 많은 이야기의 열쇠와 같은 지인 윌리엄 넬슨 코플리(1919~1996)를 만났다. 

 

멜빈 제이콥스(1926~1993)와 로잘린 제이콥스(1925~2019) 부부와윌리엄 넬슨 코플리(1919~1996)


윌리엄 코플리는 뉴욕병원에서 태어나 두 살 때인 1921년 미국 정치인이며 언론 재벌이었던 아이라 클리프턴 코플리(1864~1947)에게 입양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를 낳았던 생모가 당시 유행한 전염병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언론 재벌 클리프턴 코플리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미전역에 17개 언론사를 거머쥔 코플리 프레스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윌리엄 코플리는 10살 때 어머니로 존재하였던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양아버지 뜻으로 기자가 되었던 그는 1946년 결혼하였다. 당시 처제의 남편으로 동서였던 캐나다 태생 아티스트 존 플로야트(1916~1968)와 깊게 교유하였다. 존 플로야트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면서 1940년 러시아 태생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작업하였던 계기로 유럽 초현실주의를 새롭게 인식하였다. 존 플로야트에게 그림을 배웠던 윌리엄 코플리는 이러한 영향으로 초현실주의에 깊게 매료되었다. 

 

이는 잠시 정리가 필요한 내용이다. 러시아 태생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으로 왔다. 다음 해 1940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이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접목된 실험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제작을 추진하였다. 당시 음악 지휘를 맡았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해설을 담당한 음악 평론가 딤스 테일러가 선곡한 8곡 클래식 음악은 바흐(토카타와 푸가 D 단조), 차이콥스키(호두까기 인형), 폴 뒤카(마법사의 제자),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 베토벤(전원 교향곡), 아밀카레 폰키엘리(시간의 춤), 무소륵스키(민둥산의 하룻밤), 슈베르트(아베마리아)와 같은 세기의 음악이었다. 

 

네 번째 곡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서 태초의 자연이 생성되고 진화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잠시 역사적인 부연 설명이 필요한 음악으로 1913년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러시아 발레단 음악이었다. 당시 실험적인 음악과 안무로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실험적인 음악에 대한 찬반의 함성이 그치지 않았던 공연 역사에 유례가 없는 소동을 낳은 음악이었다. 이 음악이 월트디즈니 판타지아 제작에 사용되면서 존 플로야트가 스트라빈스키와 교감하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였다. 이때 유럽 초현실주의에 대한 깊은 인식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당시 2차대전으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또 한 사람의 주요한 아티스트가 있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만 레이였다.

 

이후 존 플로야트와 윌리엄 코플리는 초현실주의 예술에 깊게 빠져들었다. 1945년 종전 이후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갤러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때 윌리엄 코플리의 양아버지 클리프턴 코플리가 1947년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 1948년 이들은 만 레이를 찾아가 자신들의 의지와 구상을 설명하고 전시를 허락받았다. 나아가 만 레이의 도움으로 세기의 작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전시 작품 출품도 수락받았다. 참고할 내용은 뒤샹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1915년 미국으로 영구 이주하면서 사진작가 만 레이를 만나 깊은 교유를 이어갔다. 이후 1921년 만 레이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몽파르나스에 정착하였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만 레이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 존 플로야트와 코플리는 1948년 9월 베벌리힐스에 코플리 갤러리를 열었다. 개관 기념전은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전이었다. 이어 만 레이를 비롯한 여러 초현실주의 작가 전시가 이어졌다. 당시 작품 판매가 부진하여 전시회마다 갤러리 스스로 많은 작품을 구입하여 많은 적자가 생겨나 개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1949년 봄 문을 닫았다. 그러나 당시 사들인 작품이 훗날 대표적인 컬렉션 작품으로 존재한 사실은 많은 의미가 있다.

 

이후 코플리는 1950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초현실주의 작가 그룹과 긴밀하게 교유하면서 스스로 많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이어 다음 해 1951년 만 레이가 파리로 다시 돌아오면서 코플리와 만 레이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져 이들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더욱더 왕성한 활동이 생겨났다. 당시 만 레이가 코플리에게 소개한 여성이 있었다. 훗날 노마 코플리로 역사에 남은 노마 래트너(1916~2006)였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러시아 이민자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1936년 벨기에 다이아몬드 사업가와 결혼 후 2차대전 중인 1941년 이혼하였다. 프랑스와 플랑드르 어에 능숙하였던 그녀는 미국 전쟁 정보국에서 번역가로 일하면서 많은 제작이 있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번역을 맡게 되면서 영화와 음악에 관련된 많은 인물과 교유하였다. 대표적으로 폴란드계 미국의 작곡가인 조지 앤타일(1900~1959)과 깊은 소통이 있었다. 조지 앤타일은 1922년 유럽으로 건너가 피아노 독주회를 열면서 베를린에서 스트라빈스키를 만나게 되면서 모더니즘 경향의 파격적이며 실험적인 음악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조지 앤타일을 통하여 노마 래트너와 만 레이가 만났다.

 

1951년 3월 미국에서 파리로 이주하였던 노마 래트너는 만 레이의 소개로 유부남 윌리엄 코플리를 만나 사랑에 빠져 1953년 12월 31일 결혼하였다. 새롭게 탄생한 코플리 부부가 파리 남부 외곽 생트 주느비에브 데부아에서 2.5km 거리의 롱퐁 쉬르오르주에 정착하면서 파리 전후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집합처가 되었다.

 

다음 해 1954년 윌리암 코플리는 언론 재벌 양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코플리 재단을 설립하여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후원하였으며 초현실주의 작품 수집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코플리 부부는 1962년 뉴욕 맨해튼으로 돌아와 1968에 이혼하였다. 이후 윌리엄 코플리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화가로 활동하다 1996년 세상을 떠났다. 노마 코플리는 금세공과 보석공예를 공부하여 뉴욕에서 가장 독창적인 보석 디자이너로 평가받으며 미술과 보석 컬렉션에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2006년 89세의 나이로 떠났다.

 

▲ 제이콥스 부부의 딸 페기 제이콥스 배더와 크리스티 CEO 기욤 세루티


이러한 역사를 안고 화제의 만 레이 작품을 소장한 제이콥스 부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제이콥스 부부가 결혼 전이었던 1954년 로잘린 제이콥스는 파리 여행에서 지인이었던 윌리암 코플리를 만났다. 당시 코플리가 사진작가 만 레이 부부를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제이콥스 부부는 만 레이와 긴밀한 교유를 통하여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또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긴밀한 우정을 나누며 그들을 후원하였으며 많은 작품을 컬렉션 하였다. 남편 제이콥스가 1993년 64세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일생을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작품 수집에 열정을 가졌던 로잘린 제이콥스는 2019년 94세로 타계하였다. 

 

로잘린 제이콥스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인 지난 5월 14일 크리스티 경매에 시대를 관통한 모든 컬렉션 작품을 내어놓은 그의 딸 페기 제이콥스 배더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일생을 바친 예술품 수집의 최종 관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모든 작품이 이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어 사진 작품 사상 가장 고가의 경매기록을 세운 만 레이의 작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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