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전쟁 대비를 위해 척자점(擲字占)을 쳤다!

이순신 척자점(擲字占)은 4개 윷 던져 괘 만들어...실제 전란 중에 어떤 사건을 예측하기 위해 이 점법을 자주 사용

노승석 작가 | 기사입력 2021/02/25 [15:30]

▲ 노승석  《교감완역 난중일기》저자.   ©브레이크뉴스

예로부터 이상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많은 통치자들은 항상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이념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전쟁 대비이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병법가 손무(孫武)가 “전쟁이란 사생과 존망이 달린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전쟁과 관련된 역대 위인들의 업적은 후대에 시사 하는 바가 남다르다.

  

4백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의 국난 위기에서 나라를 구원한 이순신은 뛰러난 전략가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인물로 역사에 자리매김한지 오래이다. 특히 이순신이 위대한 점은 남다른 혜안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전쟁을 철저히 대비해 나간 것이다. 이러한 자세와 노력으로 《난중일기》를 쓰게 되었고 또한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고 전쟁을 하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전략을 실천할 수 있었다. 

  

한편 몇 달 만에 전국이 도탄에 빠진 조선에서는 전쟁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주역점(周易占)이 유행하였다. 대나무 50개를 가지고 점을 치는 정통 《주역》 점법의 번거로움에서 탈피하여 절기의 변화와 괘상(卦象), 숫자를 중시하는 상수역의 점법이 개발 된 것이다. 이러한 주역점은 중국 한 대(漢代)의 주역학자 맹희(孟喜)에서 시작되어 초연수(焦延壽)와 경방(京房)이 계승하였고, 송대(宋代)에는 진박(陳摶)과 소옹(邵雍)이 대표적이다.

 

또한 민간에는 간편하고 신속하게 점을 칠 수 있는 실용역이 유행하였다. 이는 두 가지인데, 첫째, 동전으로 점을 치는 척전점이다. 이는 초연수의 《초씨역림(焦氏易林)》점법으로 동전을 6회 던져서 괘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윷을 던지는 윷점(柶占)이다. 이는 윷점의 일종인 이순신의 척자점(擲字占)을 들 수 있는데 4개 윷을 던져 괘를 만든다. 이순신은 실제 전란 중에 어떤 사건을 예측하기 위해 이 점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홀로 앉아 아들 면(葂)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척자점(擲字占)을 치니, “군왕을 만나보는 것과 같다[如見君王].”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하다. 다시 쳐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如夜得燈].”는 괘가 나왔다. 두 괘가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 또 유 상(柳相, 유성룡)의 점을 쳐보니, 점은 “바다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다[如海得船].”는 괘를 얻었다. 또 다시 점치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如疑得喜].”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 -《교감완역 난중일기》 갑오년 7월 13일-“

 

이순신 역점에는 숫자의 개념과 물상의 현상을 중시하는 송대 소옹(邵雍)의 주역이론이 큰 영향을 주었다. 하나의 괘(卦)에서 체용(體用)과 오행을 적용하여 체괘(體卦)와 용괘(用卦), 호괘(互卦)에서 현재와 진행상황을 예측하고, 변괘(變卦)에서 미래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역학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이순신의 척자점은 《난중일기》사례로 볼 때 적중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순신의 척자점은 전란 중에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한산도와 그 일대에서 전쟁을 대비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사용한 하나의 실용역임이 틀림없다. 다만 척자(擲字)라는 말의 근원이 문헌에 분명하게 보이지 않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윷점으로 추정할 뿐이다. 왜냐면  《난중일기》 9만여 자(字) 중에는 실제 윷을 뜻하는 ‘윷사(柶)’자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순신이 전란 중에 척자점을 친 것을 마치 윷놀이를 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누구나 이순신의 선구적인 자세를 본받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문헌기록에도 없는 내용으로 역사를 왜곡해서도 안될 것이다. skku1001@naver.com

 

*필자/노승석

《교감완역 난중일기》저자. 고전 및 초서, 이순신 연구가.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Yi Sun-shin hit the scoring dot to prepare for the war!

Yi Soon-Sin's scholar dot (擲字占) is made by throwing four yuts... This divination is often used to predict certain events during the actual war.

-Roh Seung-seok author

              

Since ancient times, many rulers who have pursued ideal politics have always tried to achieve a peacefulness with the ideology of Yeomin Dongrak (與民同樂). The first task for this was preparation for war. As Sonmu, a military expert in the Warring States era in the spring and autumn, said, “The war is a serious affair of a country with mortality and existence, so we cannot help but look at it.” The achievements of successive great men related to the war have special implications for future generations.

  

Lee Soon-shin, who saved the country from the national crisis of wind lanterns during the Imjin War 400 years ago, has long since established himself in history as an outstanding strategist and a person who established a revolutionary major. In particular, the great thing about Yi Sun-shin was that he knew in advance that a war would take place with an extraordinary insight and prepared for the war thoroughly. With this attitude and effort, he was able to write a 《Vanjoong Diary》, and also made a win-win situation first, and was able to practice the strategy of Seonseung Gujeon to fight war.

  

On the other hand, in Joseon, when the whole country fell into a riot after a few months, the leading point (周易占) was popular to predict war in advance. The traditional “protagonist” divination with 50 bamboos was developed to break away from the hassle of divination, and the divination method of the water supply area, which emphasizes the change of seasons, gwaesang, and numbers. This main role began with Maeng Hee, a leading epidemiologist in one of the Chinese era, and succeeded by the first training and Gyeongbang, and during the Song Dynasty, Jin Bak and Soong (邵雍) is representative.

  

In addition, a practical service that can easily and quickly dot divination was popular in the private sector. There are two things. First, it is a pretend point to score points with coins. This is to make a rule by throwing a coin 6 times using the divination method of Cho's Yeokrim (焦氏易林). Second, it is the yut point (柶占) that throws yut. This can be referred to as Yi Sun-sin's scoring character dot (擲字占), a kind of yut dot, and throws four yuts to make a gwae. Yi Sun-shin frequently used this divination method to predict certain events during the actual war.

 

“I was worried about the condition of my son Myeon, so I hit the ‘Zoo’, and it’s like meeting the king [如見君王]” came out. It is very long. He struck it again, and the word came out saying, "It's like getting a lamp at night [如 夜 得 燈]." Both of them were long and my heart was relieved. Also, when I looked at the dot of Yu Sang (柳相, Yu Seong-ryong), the dot was "It is like getting a ship in the sea [如海得船]." Again fortune-telling, a ruling came out saying, "It's like getting joy from doubting [如疑得喜]." It is very long. -《Vanjung Diary of Sympathetic Companion》 July 13th, Gap-Oh-"

 

The leading theory of Song Dae Soong, who emphasized the concept of numbers and the phenomenon of objects, had a great influence on Yi Sun-shin's emphasis. He predicts the present and progress from Chegwa (体卦), Yonggwa (用 卦), and Hogwa (互卦) by applying Cheyong and the Five Elements in one gwa, and predicts the present and progression from Byeongwa (變卦) to the future. A method of predicting the outcome was used. Yi Soon-shin's scoring point, which was influenced by this epidemiological theory, is confirmed to have a very high hit rate in the case of Nanjung Diary.

  

In this regard, Yi Sun-shin's repertoire must be one of the practical roles he used to prepare for war and predict the future in Hansan Island and the area as Samdosugun controller during the war. However, since the origin of the word "Sukja" is not clearly visible in the literature, it is only assumed to be a similar form of Yut. This is because out of the 90,000 characters in the 《Nanjung Diary》, ‘Yu-sa (柶)’, which actually means Yut, does not appear at all. Furthermore, it should not be interpreted that Yi Sun-shin's scoring during the war was played as if he played yut-nori. It is good for anyone to imitate Yi Sun-shin's pioneering attitude, but that does not mean that history should not be distorted with content that is not in the literature. skku1001@naver.com

 

*Writer/Roh Seung-seok

The author of The Nanjung Diary of Sympathetic Wan. Classical and Chaucer, Yi Soon-shin resear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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