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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숙의 시로 여는 밝은 아침] 2. 자기소개서 - 맹문재 시인

강민숙 작가 | 기사입력 2021/01/14 [03:27]

▲ 강민숙 작가     ©브레이크뉴스

 

<강민숙의 시로 여는 밝은 아침 2>

 

자기소개서 

맹문재 

 

내가 만약 입사기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개와 소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함께한 추억을 

코흘리개 짝꿍과의 우정을 

자랑할 수 있을까?  

 

강아지를 쓰다듬은 마음을 

참새를 바라본 눈길을 

막장 속에서 살아가는 쥐 이야기를 

인감도장처럼 찍을 수 있을까?

   

추모사업회의 후원을 

광장의 구호를 

병방 작업조 광부들의 밤참을 

경력처럼 내세울 수 있을까?

  

탄가루 묻은 공기를 

파란색 보자기에 싼 아버지의 도시락을 

상장처럼 꺼낼 수 있을까? 

 

<해설>  

수 십 년 동안 입시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에 대해 직접, 때로는 순회강연까지 다니면서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눈 만 뜨면 자기소개서를 붙들고 수정해주면서도 왜 시인의 시처럼 자기소개서에 ‘개와 소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함께 했던 추억과 강아지를 쓰다듬었던 마음과 참새를 바라본 마음을’ 써보라고 말하지 못 했을까요.

 

추모사업회의 후원과 병방 작업조 광부들의 밤참을 경력으로 쓰지 못 하는 현실. 탄가루 묻은 공기와 파란색 보자기에 싼 아버지의 남루한 도시락을 상장처럼 꺼내지 못하는 냉엄한 사회 구조. 어떡하면 남들보다 더 반지르르한 스펙을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작은 선행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마치 전문가마냥 지도해 온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폴란드에 가면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 있습니다. 어린 당나귀를 좁은 통로로 들이밀어 빛을 보지 못해 눈이 멀어 소금 짐만 평생 나르다가 뼈가 굵어져서 나가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당나귀는 하루 종일 쳇바퀴 돌리 듯 무릎 꿇은 채 일만 하다가 종당에는 얼굴도 모르는 어미를 부르다 죽어 인부들의 식탁에 오르고 신발이 되었겠지요.

 

그 누가 자기소개서를 쓸 때 ‘막장 속에서 살아가는 쥐 이야기와’ 어린 당나귀가 늙어 죽어간 비참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자기소개서를 쓰겠다고 찾아오면 시인의 시부터 보여주겠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주변에 ‘막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둘러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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