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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모은 금 빼돌려 2조 세금 도둑질…"金면피 너무하다"

LG상사·삼성물산·SK상사·현대종합상사·한화 등

이보배 기자 | 기사입력 2008/02/25 [17:08]

취재/이보배 기자

“있는 놈들이 더 한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최근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직원과 금(金) 도매상 등이 변칙적인 금괴 수출입 거래를 통해 2조원대의 세금을 포탈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imf 외환위기 때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아진 금으로 이 같은 폭리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한 초대형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세금 포탈에 가담한 대기업은 lg상사, sk상사,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한화, ls니꼬 동제련, 고려 아연 등 7개 기업. <주간현대>는 서울중앙지검이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밝혀낸 금괴 불법유통 2조원 부가세 포탈 전모에 대해 취재했다. 

 

세금 허점 이용해 금괴 거래 부가세 내지 닪고도 환급받아

불법유통 주도한 대기업은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해 '황당'

대기업 간부 '돈 맛'에 퇴사후 금수출 업체 설립, 금괴 변책거리 본격가담

'괘씸죄'에 법원도 쇠방망이 꺼내들어…범행 가담자에 중형 선고 줄줄이 

 

검찰에 따르면 ls상사, sk상사 등 대기업 직원들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국민들이 모은 금 225톤을 수출하는 데 참여했다. 처음에는 이득을 봤다. 하지만 같은 해 중반 원화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익률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되자 이들은 정부 세법상의 허점을 발견 한 뒤 이를 범죄에 활용했다. 정부로부터 금 가격의 10% 부가세를 돌려받는 수법을 고안해 낸 것.

돌고 도는 금괴에 주머니 ‘두둑’

이들은 영세율, 면세제도 및 부가세 대리징수제도 등 세법상의 전문 지식과 금괴거래를 이용해 거액의 부가세를 포탈하고 부정환급 받은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2월21일 기자가 직접 찾은 종로 금도매시장.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귀금속 쇼핑을 하고 있었다.     © 이보배 기자
범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금력과 수출입 업무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상사와 대형 금 도매업체와의 공모가 필요했고 이 두 기업과 업체를 축으로 160여개의 폭탄업체를 비롯한 수백 개의 종로 금도매업체가 이에 가담해 세기의 범죄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금괴는 수출입할 때 세금이 면제되고 내수용으로 거래되면 부가세(10%)가 붙는다.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던 금이 수출용으로 거래되면 수출업체가 금값 외에 부가세를 판매업자에게 지급하고 판매업자는 국세청에 이를 납부해야 한다. 대신 수출업체는 수출할 때 판매업자에게 줬던 부가세를 국가로부터 환급 받는 구조로 돼 있었다.


때문에 부가세의 부담 없이 영세율 또는 면세로 매입한 금괴를 과세로 전환해 매출한 후 수출업체로부터 받은 부가세를 국가에 납부하지 않고 폐업, 도주하는 판매업자 즉 폭탄업체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이번에 적발된 금 도매상들은 노숙자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폭탄 금괴도매상을 설립하고 단 1~2개월만 거래한 후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은 채 폐업해 버렸다. 이때 세금부담이 없어서 금괴의 원가를 시세보다 낮게 매출해도 업자는 이득을 보게 된다.


이렇게 팔린 금괴는 ‘과세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끼워 넣은 여러 도매상’들을 거쳐 유통되다가 수출된다. 결국 국가는 폐업한 ‘폭탄업체’ 때문에 걷지도 못한 세금을 수출할 때 환급해 주게 되고 반복해 금괴가 수출입 되면서 국고는 그 만큼 축나고 대기업과 금도매업체의 주머니는 ‘두둑’해 진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폭탄업체가 1000만원어치 금괴를 ‘헐값’인 950만원에 팔면서 부가세 납부용으로 95만원을 따로 받은 뒤, 폐업하고 95만원을 챙기는 것이다. 시세보다 낮게 팔아도 떼먹은 세금이 더 많아 결과적으로 이익이다. 대기업으로서도 싼값에 산 금을 수출해 이익을 얻는 데다 나중에 부가세도 환급 받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실제 지난 2000년 6월 sk상사는 순도 99.5%이상의 금괴 100kg를 10억8658만원에 수입해 10억3520만원에 다시 사들여 수출했다. 수입금액보다 5000여만 원이나 싼 가격에 수출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득을 봤다.
sk상사->c무역->b금속(폭탄업체)->m사->sk상사의 거래 흐름에 따라 종로 금시장을 거치면서 5000여만 원이나 산 가격으로 탈바꿈했고 폭탄업체가 내지도 않은 10%의 부가세를 환급받았기 때문이다.

선고된 벌금만 2조4600억 원 ‘허걱’

검찰은 이런 식으로 검은 욕심을 채운 대기업 7곳의 전(前) 직원과 서울 종로 금도매상 500여 곳을 적발, 102명을 구속기소하고 16명을 불구속기소, 21명은 지명수배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게 된 대기업 간부들이 회사를 퇴사하고 금수출업체 등을 설립하는 등 금괴변칙거래에 본격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구속 기소된 sk상사 정아무개(50) 전 금속팀장은 재직기간 중 8개의 폭탄업체와 공모해 부가세 321억 원을 포탈했다. 퇴직 후에는 스스로 금도매업체를 설립, 11개 폭탄업체와 공모해 부가세 28억 원을 받아 챙겼다.
현대종합상사 신아무개(36) 전 비철금속팀 대리도 퇴사 후 홍공에 금거래 알선업체를 세우고 부가세 225억 원을 포탈했다. 신아무개는 퇴사 후 약 2년 만에 중국 상해에 있는 호텔에 100여억 원을 투자할 정도의 재력가로 성장했지만 결국 구속기소 됐다. 같은 기업 김아무개(45) 비철금속팀 대리도 퇴사 후 3개의 수출업체를 설립, 운영하면서 부가세 167억 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대형 금도매업체 대표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이번 범행에 적극 가담한 종로 금도매업에 j금은의 권아무개(58) 대표는 폭탄업체 및 변칙거래 도매업체 20개를 주도해 부가세 1025억 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s금은 박아무개 운영자 역시 46개의 폭탄업체와 공모해 부가세 746억 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g사 신아무개(55) 대표도 구속 기소됐다. 그가 빼돌린 부가세는 모두 529억 원. 검찰 수사 결과 그는 홍콩 금괴 수출업체와 연계해 범죄수익 40억 원을 해외로 빼돌렸다가 투자 형식으로 다시 들여와 2001년 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내와 중국에 아파트, 토지 등 수십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입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도 쇠망방이를 꺼내들었다. 금괴변칙거래의 실체가 규명됨에 따라, 수십 개의 수출입회사 및 폭탄업체를 관리하면서 850억 원의 부가세를 포함한 이아무개에 대해 징역 12년에 벌금 1700억 원이 선고되는 등 본건 범행의 가담자들에 대하여 중형선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부가세 1200억 원을 포탈한 심아무개에게는 징역 10년에 벌금 2410억 원이 선고 되는 등 1심이 끝난 87명 중 41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들의 선고 내역을 모두 합하면 징역 161년6개월, 벌금은 2조4627억 원에 이른다.


검찰은 “이 외에도 수사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된 금도매업체 실운영자 및 재산내역, 대기업 관련 과세자료 등을 국세청에 인계해 금괴변칙거래로 포탈한 부가세액을 징수토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가세 납부방식을 변경한 새 법률이 올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기업 세금 ‘포탈’에 국민들 ‘허탈’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국민들. imf시절 당시 나라 한번 살려보겠다고 장롱 속에 있던 아기 돌 반지까지 긁어모아 나라에 내 놓은 국민들은 대기업까지 가담해 세금을 포탈했다는 소식에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서울 마포구 양아무개(35)는 “악덕 장사꾼이나 하는 탈세를 하면서 어떻게 ‘윤리경영’ 운운할 수 있는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세금 꼬박꼬박 내는 선량한 납세자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정말 세금 낼 마음이 싹 가신다”고 울분을 토했다.


국민의 갸륵한 애국심을 팔아 자기 뱃속 채우기에 급급했으니 민족과 나라에 대한 배신에 다름 아니다. 죄질도 괘씸하지만 범행 시기에 분통이 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해당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해명했다.


lg상사는 “직원이 연루되어 있긴 하지만 개인의 견물생심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기업과 기업이 연계해 벌인 일이 아니라 개인이 폭탄업체와 손잡고 개인적 이득을 챙긴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현재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깊은 이야기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종합상사 역시 “당시 재직했던 직원들은 대부분 퇴사했고 그때 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 수사가 진행 중이고 내부적으로 조사도 진행되고 있으니 발표내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해 난감한 입장을 표명했다.


기업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아이러니하다는 입장이다. 간부급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수십, 수백에 이르는 금액을 포탈할 수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2조원의 세금 포탈도 포탈이지만 땅에 떨어진 기업 윤리의식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허술한 세금망도 문제이지만 기업 윤리의식을 높이지 않고는 국민들의 믿음은 물론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번사건이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bobae38317@hanmail.net


종로 금도매시장 현장 인터뷰 
“세금포탈 기업은 밉지만…금붙이에 세금 붙인 건 문제있다."

▲종로 3가에 위치한 금도매 상가에서 부부로 보이는 중년 커플이 반지를 고르고 있다.     © 이보배 기자
지난 2월21일 기자는 종로 금도매시장을 직접 찾았다. 10년이나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 금도매시장에서 이 같은 유통구조가 계속 돼왔다는 점에 착안. 현장에서 일하는 업자들은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기업과 금도매업체간 세금 포탈 사건으로 인해 국내 금시장에도 여파가 있을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종로에 도착한 직후 사라졌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금을 구입하러 나온 것. 먼저 주요 도매업체 대표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다른 업체와 이야기 해 봐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기자라는 말에 업소에 발을 붙여놓기가 무섭게 손 사레를 치며 함구하는 곳도 여럿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난감해 하고 있을 즈음 ‘g’도매업체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여러 도매업체들도 피해를 입었다.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유통루트에 가담한 업체도 있지만 하나같이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검찰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업체도 세무조사를 끝낸 상태”라며 “이런 이유로 대부분 취재에 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d소매업체’ 정아무개 대표는 “500개가 넘는 도매업체가 가담했다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비밀리에 거래했을 것이다. 구속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죄를 저지른 사람도 나쁘지만 우리나라의 조세법에 문제가 있다. 금은 재산의 가치로 평가해야지 제품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만 원짜리 5천원으로 바꾸면서 세금 받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붙이는 오래전부터 재산의 형태로 집안 장롱 속 깊숙이 모셔져 왔는데 이를 제품으로 여겨 세금을 붙인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으로 “종로 금시장 분위기가 달라지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정아무개는 “어차피 금 시세는 국제시세를 따라가게 되어 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세금을 포탈한 것이니 금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크지 않다. 다만 국민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의 여파가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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