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왜곡 날조한 한일관계사 중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가설'

국내 사학계와 언론계에서는 임나 일본부의 내용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해

홍순주 역사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9/16 [10:03]

▲ 홍순주 역사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일제 식민사관을 기초로 한일 역사를 가르치므로 고대부터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분리된 서로 다른 나라로 인식하게 만든다. 더욱이 대부분 정치 지도자 및 외교 책임자들이 AD 4C 한일 고대 관계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현저히 부족하여 정치인 들이 한일 외교협상 시 역사적 고대관계를 전혀 언급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처해 있다.

 

그런데 일제가 왜곡하고 날조한 한일관계사 중 가장 화두가 되어 온 것이 소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가설이다.

 

국내 사학계와 언론계에서는 임나 일본부의 내용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단순하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과거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 가설을 통해 고토회복 주장을 뒷받침 했던 것이기에 여기서 간략하게 밝혀 보고자 한다.

 

일제 경성제국 대학 교수였던 식민 사학자 스에마츠 야스키츠(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에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AD 4~6C 200년 간 지배 하였다는 임나일본부 가설을 날조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임나가라(任那加羅)는 영토 개념으로서 정부 감독부서인 임나 일본부와는 전혀 다르다.

 

요서 백제에서 346년 왕권 투쟁에서 온조계 제 13대 근초고왕에게 패한 비류계 제 12대 계왕의 아들 진정 세력이 한반도 남부 가야지방에 도피해 들어와서 350년 경에 세운 일종의 비류백제 국이 임나가라 국이었다.

 

즉 중국 발해만 내륙지역에 위치한 요서백제에서 왕권다툼에서 패한 비류계 세력이 한반도 남부로 도피해 내려 와 건설한 임나가라 7국 (350~369)이 약 20년간 존재하였다.

 

그러다가 온조계 근구수 태자의 공격 으로 왜열도로 쫓겨 나가게 되고 후일 이들 비류세력에 의해서 야마토 왜국이 건설된다.  참고로 한반도 임나가라 7국은 비류계가 한반도에 남부에 세운 백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임나(고령), 다라(합천), 안라(함안), 남가라(김해), 비시(창령), 녹국(경산), 탁순국 (동대구) 등으로 구성되었다.

 

반면에 임나일본부는 영토 개념이 아닌 정부 부서의 개념 으로서 정반대 로 백제가 큐슈 등 왜열도를 정벌한 후 이를 통제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감독 관청으로 대마도 및 큐슈 (백제령) 등지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결국 일제가 임나일본부 가설을 내세운 것은 역사적 열등감에서 한일고대사의 전개방향을 180도 거꾸로 왜곡한 것이었다.

 

한편 일본(日本, 히노모토)은 <해 뜨는 땅>이라는 의미로 백제인 들이 스스로 불렀던 국가 명이었다.

 

즉 일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개의 나라가 아니라 백제 왕족과 유민 들이 왜열도로 도피해 건너가서 세운 <또 다른 백제국> 의 별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정복지 왜를 통치하기 위한 기관이었으므로 임나백제부(任那百濟府)라고도 명칭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필자/홍순주 역사칼럼니스트.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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