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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를 미국의 키신저에 비교하는 이유

“박지원이 만들어냈던 남북정치에서의 족적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0/07/21 [16:03]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할 때의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의 모습. ©브레이크뉴스

 

청와대는 지난 7월3일 박지원 전 의원-전 장관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파격적인 인사발표였다. 

 

그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해 미래통합당이나 일부 반대자들의 극렬한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 7월27일,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적과 내통한 사람”이라는 날선 발언이 인구에 회자됐다. 그는 지난 7월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55주기 추모식 이후의 발언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이라면 달리 볼 수 있지만, 국정원은 대한민국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정보기관인데, 적과 내통하는 사람을 임명한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비난했었다. 

 

이런 발언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 발언에 대한 반론을 즉각 내놨다. 지난 7월 20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해 야당이 '적과 내통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아무리 야당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했다”고 덧붙였다.

 

아마 야당이 그런 주장은 한 것은 지난 2000년 6.15 김대중-김정일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관련된 사안 때문인 듯하다. 당시 박지원은 특사로 비밀리 북한을 방문했었다. 남북은 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권 차원의 결단이 없으면, 남북접촉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의 국회 청문회는 7월27일. 그 이전이나 청문회 과정에서 박 내정자에 대한 비난이 다소 나올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여당이고, 대통령의 의중에 실린 국정원장 인사라는 점에서, 청문회를 마치면 국정원장직 업무수행으로 순항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그를 중용했을까? 청와대는 지난 7월3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내정에 대해 "4선 국회의원 경력의 정치인으로 메시지가 간결하면서 명쾌하고, 정보력과 상황 판단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제18, 19, 20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여 국가정보원 업무에 정통하다. 박지원 후보자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였으며 현 정부에서도 남북 문제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이다. 박지원 후보자는 오랜 의정활동에서 축적된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정치력, 소통력을 바탕으로 국가정보원이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토록 하는 한편, 국가정보원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알렸다.

 

이날 박 내정자는 페이스 북에 올린 글에서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는 통보를 청와대로부터 받았다. 만약 소정의 절차를 거쳐 공식 임명 받으면 각오를 밝히겠지만 먼저 제가 느낀 최초의 소회를 밝힌다”고 전제하고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어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정(政)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 SNS 활동과 전화 소통도 중단한다”면서 “후보자로 임명해 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감사드리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이 하염없이 떠 오른다"고 밝혔다.

 

과거 한때, 박 내정자는 문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앙숙(?)관계였다. 오풍연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지난 7월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통 큰 인사에 박수를 보낸다. 둘은 앙숙이나 다름없었다. 문 대통령과 박 후보자 간 ‘구원’의 역사는 오래 됐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몰표를 받아 집권했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 벌어진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고, 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 후보자는 검찰수사에 휘말려 옥살이를 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대세론’을 앞세운 문 대통령과 ‘당권-대권 분리론’을 주장하는 박 후보자가 대표직을 놓고 격돌했다. 박 후보자는 ‘친문 패권주의’를 내세워 문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문 대통령이 3.5%포인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지만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후였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박 후보자를 중용했다. 이제는 유종의 미만 남았다. 멋진 조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박지원의 국정원장 내정 인사는 신의 한 수였다”고 표현했다.

 

그 이전, 박지원이 만들어낸 남북정치에서의 족적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2000년에 가졌던 김대중-김정일, 첫 남북정상회담은 박지원의 비밀 방북이 만들어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남북 간 전쟁이 아닌, 금강산 관광-개선공단 운영 등의 진전된 남북 협력관계 사례를 만들어낸 시발이었다. 

 

그의 과거 치적은 미국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업적과 비교될 수 있다. 키신저(1923.5.27.~), 전 미 국무장관은 미중관계를 연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닉슨 방중(訪中)의 길을 열었다. 미중 외교관계로 발전케 했다. 그는 국무장관에 취임한 이후, 1972년 중동평화조정에도 힘썼다. 뿐만 아니라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접촉, 미-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키신저의 중국 비밀방문에 따른 미중 외교관계 개설은 오늘날 미중관계 발전하는 첫 단추를 끼는 일이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 미 키신저의 업적에 비유된다. 그가 국회 청문회를 거쳐 국정원장직을 수행할 때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 '평화 프로세스'의 충실한 이행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김정은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평화협정 체결-남북 자유왕래 등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추진되지 않고, 그 실천이 모색되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는 미중일러 등 강대국이 개입된 국제정치의 미묘한 입장차이 때문이었을 것. 

 

필자가 볼 때, 국정원은 그 규모, 예산, 역사 면에서 세계 여러 국가의 정보기관 가운데 상위 5위권에 들어가는 막강한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은 세계가 알아주는 거대한 정보기관인 것이다. 국정원은 한반도의 평화를 안착시키고, 한반도의 대륙화를 앞당기는 등의 업적을 쌓아 민족웅비의 정보기관으로 도약해야할 것이다. 대한민국을선진국가로 만드는 임무도 부여돼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절에 국정원의 노력으로 1953년에 체결됐던 한반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는 등이 진전이 이뤄진다면, 이는 민족장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기는 일이 될 수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대에 기대가 크다. 남북한 간 평화는 곧 돈이다. 남북 간 전쟁은 경제적으로 볼 때는 완전파멸이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대에 한반도의 평화안착, 더 나아가 동북아시의 평화안착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막강한 국정원이 되었으면 한다. 박 내정자는 정부의 인사 발표 후 첫 일성에서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다”고 말했는데, 그의 남다른 국가-민족에 대한 '애국심-충성'의 결과를 기대한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비록 중앙정보부(전3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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