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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신 속 비밀의 심연으로 기어 들어가 새 세계를 발견했던 화가

[한국 수채화의 선구자 배동신 화가 '탄생 100주년' 생애-8] 동신이즘을 탄생시키다!

후랭키 작가 | 기사입력 2020/07/02 [01:01]

▲ 배동신 화가의 자화상.   ©브레이크뉴스

마사에는 1999년 사망했고, 연규도 동신이 숨진 뒤 7년 후 121일 지켜보는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숨을 거두었다.

 

동신이즘의 탄생

 

동신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특별함은 소재의 제한성과 테크닉의 부재 이다. , 바다와 배, 쟁반에 담긴 과일, 똑같은 포즈의 여인 누드, 자화상과 여인 초상을 그린 인물, 여인 누드 데생과 군상 등. 그리고 몇 장 남긴 동물 크로키가 그의 작품의 전부이다. 그러나 동신의 입장에서 이런 식의 특징에 대한 구분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신의 미학은 무질서와 비상식의 영역 안으로 자신을 숨기고, 현실에 대한 거부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러한 동신의 분노는 더욱 욕구불만의 응어리로 응집하고 그것이 폭발할 때 마다 형편없이 헤집어지고 흐트러진 근거 없는 형식으로 집결된 조화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동신은 결국 자신의 어릴 적 커다란 슬픔이 분노로 분출된 그 줄기를 타고 자신의 정신 속 비밀의 심연으로 기어 들어가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태초의 무질서한 혼란과의 교감인 것이다. 무질서의 혼란은 자유였고 동신은 자유를 품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모든 세상의 ""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만의 정신 속 세계로 통하는 태초의 자유, 완벽한 동신의 절대 자유를 바랬던 것이다.

 

동신과 연규의 묘.  ©브레이크뉴스

동신은 남도의 풍광 속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기법을 무시한 자유로운 조형적 구성의 운용을 미끼로 회화의 본 모습을 낚아 들이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동신의 회화는 바로 그 미끼를 준비하는 치열함이다. 회화의 본질이 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결론에 대한 뒤바뀜의 해석은 동신의 삶 속에 원죄처럼 달라붙어 있는 분노와 함께 늘 이글거렸다.

 

-목포 앞바다 1976년작 (39.6x27.3cm), watercolor on paper

 

 

목포 잎바다 풍경에 있어서 동신은, 조형적 구도를 하늘과 육지 그리고 바다로 구분했다. 바다는 겹친 선박들의 이미지들로 파랑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리고 정박된 고깃배들과 뒤엉킨 바다를 중심으로 작은 항구와 육지의 건물, 그리고 하늘이 따로 떼어져 맥없는 공간의 느낌을 연출한다. 바다 위의 복잡함에 대한 쉼터와 같다. 화면의 전체적인 느낌은 어수선하고 어리숙하다. 그러나 가늠할 수 없는 어떤 현장감에 빨려 든다. 동신이 그린 회화성 짙은 바다 풍경은 바다와 그 밖에 다른 풍경들이 야릇한 조화를 이룬다. 더불어 화면 전체에 흐르는 굴곡의 볼륨감을 느끼게 한다. 바다를 하나의 덩어리로 구분하고, 해안선을 따라간 건물들의 뿌연 실루엣을 만든 하늘은 화면 윗 공간의 언저리에서 바다의 강렬함을 보여 주는 센서의 ""이다. 작품을 보는 관객의 의식은 머지않아 그 키를 찾아내고 생각에 잠긴다.

 

변형된 산의 모습(형태)을 화면 가운데 대부분의 화폭에 놓았다. 그리고 몇개의 큰 선들이 골을 이루고 그사이 작은 선들이 가지를 치듯이 펼쳐지면, 선과 선 사이 굴곡으로 형성된 면 위에 색감의 농담이 앉아 볼륨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동신이 뭉개듯 만든 산의 한 덩어리는 화면 속에서 황금비율의 대비 따위를 무시하고, 전체를 장악한다. 화면 윗부분 언저리 겨우 보이는 하늘과 화면 밑자락에 있는 둥 마는 둥 남은 들판의 존재는 뻔뻔하게 꽉 차지한 덩어리의 답답함을 허공에 띄우고 잡아주는 절대 안정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커다란 입체의 한 덩어리와 겨우 남긴 비율의 공간은 절대 구도를 이루는 안정된 조화의 핵심이다. 이처럼 단순한 조형의 본질로 연출된 회화의 작 품속 전경은 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 태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나주 금정산 1962년작 25호 watercolor on paper ©브레이크뉴스

동신은 영산포에서 나주를 오가며 금정산을 바라본다. 그럴 때면 금정산은 동신에게 정겨운 풍광의 정취를 풍기며 그 자태 속으로 동신의 시선을 끌어안는다. 크지도 높지도 않다. 하늘과 맞닿은 선명한 능선에서 흘러내린 계곡의 선들은 동신만이 느끼는 특별한 조형의 세계를 보여준다. 산 아래 흔들리는 작은 나뭇가지들과 아담한 수풀들이 듬성듬성 햇살에 반짝이면, 크고 작은 물체의 덩어리가 커다란 대비를 낳는다. 이때 금정산은 이미 동신의 감정을 일렁이는 흥분 속으로 몰아넣고야 만다. 수채의 화폭속 물비린내 풍기는 한판의 전투가 시작되면 동신의 붓날은 몰아치듯 순식간에 어떠한 테크닉이나 방식도 없는, 기괴 하지만 정겨운 금정산이 동신이즘으로 탄생된다.

 

-복숭아_19870724(39.5x27.4cm) watercolor on paper

검붉은 외곽 동그라미 안에 세피아의 반짝이는 암영 속에서 노랑색과 주황색 그리고 뒤로 또 다른 동그라미들이 모여있다. 각자의 원형은 독립된 조형을 의미한다. 거친 터치와 어리숙함이 그대로 꽃자주색 오봉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정물인 복숭아의 형상들은 각자의 형태와 생기를 머금고 화면의 중앙에서 부드럽고 포근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온화한 분위기 안에서 언뜻 강렬한 볼륨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채화의 은은한 껍데기 속 내면에 놓여진 과일들의 알맹이들이 울렁이는 듯하다. 그래서 그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한다. 그 때, 과일을 담은 오봉의 커다란 보라색 붓질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수선한 모든 것들을 휘몰 듯 가두어 버린다.

 

동신의 정물은 몇 날을 노려보느라 과일이 썩어서 문들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단숨에 낚아채듯이 완성이 된다. 그러게 사물의 영혼은 순식간에 빨려 나와 동신의 화폭에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 무등산_1986_0610(39.5x27.7cm) Watercolor on Paper.    ©브레이크뉴스

동신은 이른 아침 일어나 방문을 열어 제치며 새벽의 내음을 깊이 들이 마신다. 그는 광주시 장동 2층집 테라스에 서서 저 멀리를 바라본다. 무등산이 뿌옇게 웅크린 체 동신과 눈을 맞춘다. 동신이 기다려왔던 오늘은 저 무등산의 조형성을 흩으려 놓고 다시 새롭게 세우는 짓을 하려는 것이다. 셀 수없이 반복해 왔던 작업을 또 저질러 보기 위해 오늘 또 그 무등산을 대면하는 날이다. 그래서 월산동 언덕 베기 늘 똑같은 그 자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본다. 산은 거대한 괴물의 모습으로 항상 그랬듯이 더욱 사나운 기세로 동신을 덮친다. 동신은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그의 반짝이는 눈 속에 산을 담고, 깜박이며 붓질을 한다. 멀리서 보이는 동신의 몸짓은 마치 이상한 아이이거나 미친 노인의 기괴한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그의 화폭엔 무등의 능선이 격동하듯 거대한 각을 세우며 일어서고 있다. 어느덧 마지막 붓 끝이 지면에서 떨어질 때, 동신의 깊은 내면에서 끌려 나온 무등산의 모습은, 모든 이의 어린시절 처음 봤던 낯 설움이 떠오른다. 그저 천진한 아이의 그적거림인냥, 그리나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는 깊고 커다란 볼륨감의 공명을 느끼게 한다.

 

바다풍경 1975_0826 (39.6x27.3cm) watercolor on paper .   ©브레이크뉴스

동신의 바다 풍경은 수채화의 물맛과 동신의 순식간에 휘몰아친, 감정 이입이 한판 승부를 치른 전장과도 같아 보인다. 이젤을 세우고 화판에 종이를 고정시키자 곧바로 물 바른 붓으로 팔렛트를 건너뛰듯 하며, 화선지를 휘졌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점의 작품이 물비린내를 풍기며 나타나 있다. 그는 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밤 낯으로 자신의 화실과 침실 그리고 식사를 하는 중이거나 산책을 하는 중에도 이미 그의 작품의 모티브가 있는 현장에 도착하여, 그곳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면, 동신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동안 자신이 구상해온 자신만의 마음속 깊은 조형의 세계를 순식간에 펼친다. 마치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모든 사고에 대한 반대를 선언하는 듯, 머금었던 묵은 과거의 생각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동신의 작품 하나하나은 시시각각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러있는 낡은 생각을 정리하려는 동신이즘을 위한 의식의 기록들이다.

 

여인누드_1975_25호 watercolor on paper.    ©브레이크뉴스

동신은 누드를 그리기 위해 수 십장의 뎃상과 크로키를 한다. 몇 날 몇일 어쩔때는 몇 달이 지나간다. 그의 아내 연규는 그런 동신를 위해 기꺼이 모델을 자청한다. 남편의 예술혼까지 그녀는 동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동신의 시선은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을 지나가며, 세월을 읽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헌신과 노고를 그녀의 육신의 굴곡을 따라 장중하게 찬미한다. 동신이 그린 누드는 형태와 볼륨이 커다란 산의 땅덩어리와 같다. 단단하고 크다. 면과 선들이 얽히고 이어지면서 굴곡지고 흘러내린 모습의 못생긴 모양의 여체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여인의 육신이 아닌 자연의 슬픈 역사를 그린 모습처럼 동신의 감성은 늙어가는 아내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미의 본질을 찾아 쏜 살 같은 붓 놀림을 멈추지 못한다. 어느덧 동신은 아내의 눈을 마주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 배동신 화가.   ©브레이크뉴스

배동신(裵東信) 화가 약력

Dong shin Bae(1920~2008)

 

1920616일 전라남도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출생하여 광주 서석초등학교에서 벌교초등학교로, 다시 여수 서초등학교로 옮겨 수학하였다. 1943년 일본 카와바타(川端) 미술학교 양화과(洋畵科)를 졸업하였다. 1936년 그림을 그리러 간 금강산에서 박수근(朴壽根)을 만나 그림지도를 받았으며, 평양의 미나까이(三中井) 백화점 장식부에서 일하며 문학수(文學洙), 장리석(張利錫)과 교류하였다. 1937년 일본으로 가서 유학했다. 1945년 일본인 아내 와타나베 마사에, 아들 배용과 함께 귀국하여 전라남도 나주에 정착하였으나 부인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들, 딸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1958년 전남여자고등학교 재직 시절 제자였던 김연규(金年圭)과 결혼하였다. 1943년 일본 자유미술창작가협회 정회원이 되었다. 1946년부터는 광주서중학교, 전남여자고등학교, 순천사범학교, 진도중학교, 영암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1947년 제1회 개인전을 광주도서관에서 개최한 이후 1964, 1967, 1969년 전라도에서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으며, 1973년 서울, 1974년 일본 도교(東京)과 오사카(大阪)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수십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1968년에는 박철교, 강연균, 우제길과 함께 수채화 창작가협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오지호, 김영태, 최용갑, 김인규, 강동문, 김수호와 황토회전을 조직하고, 목포 미로화랑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72년에는 구상전에 초대 회원이 되었으며, 1975년에는 한국수채화협회초대회장이 되었다. 1978년부터 서울로 옮겨 활동하였으며, 1989년 전라남도 여수시로 내려와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1998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배동신 수채화 60년 초대전을 열었다. 누드, 과일바구니, 항구, 산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광주에 있는 무등산 즐겨 그렸다. 대부분 수채화로 제작하였는데, 큰 붓을 이용한 빠른 필치를 보여주며, 과감한 생략과 확대를 통해 대상을 변화시켰다. 또한 자유로운 선의 사용으로 운동감과 양감을 표현하였다.

 

1943년 일본의 제7회 자유미술창작가협회전에 소녀로 입상하였다. 1974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7년 제6회 오지호미술상, 2000년 대한민국문화훈장(보관장)을 받았다. hooranky@yahoo.com<>.

 

*필자/후랭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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