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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오늘 많이 외로워 보였어요!

이헌영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 제3장 동해

이헌영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6/26 [14:55]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강릉 경포대 바닷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나오자 바다의 울림이 미세하게 땅울림으로 느껴졌다. 

3월 중순의 바닷가는 쓸쓸하다. 바닷가 모래밭에 몇 몇 남녀가 바다를 향해 서있거나 서성이고 있다. 

장훈은 신영철 비서관과 사람이 없는 곳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가슴도 부풀어 오른다. 거대한 바다의 울림에 압도당하는 자신을 큰 숨으로  받아들인다.

먼 바다에 크기를 가늠할 수없는 배가 떠있다. 가는 건지 오는 건지 배는 한동안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다. 

일사불란하면서도 사정없이 연이어 밀어닥치는 파도를 보다가 예전에 본 영화 스팔타카스의 전투장면이 떠올랐다. 커크 더그라스도 생각났다. 아주 어렸을 때 본 그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로마 대 군단이 저벅저벅 밀려오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가슴이 뻐근했던 기억이 지금 이 순간 생생히 떠오른다. 그 로마 대 군단이 지금 이곳으로 끝없이 밀려오고 있다.

로마의 대 군단은 맹렬하게 밀려와서는 깨지고 부서지며 물세례를 뿌리고 물러났다. 물러 나갈 때는 “촤아악츠르르” 하며 한 순간에 물러나는데 뒷정리가 예술이다.   

어찌나 깔끔한지 장훈은 쳐들어오는 모습보다도 물러나는 모습에 더 경이로움을 느꼈다. 어느 미장이가 저토록 말끔하게 미장 질 할 수 있을까?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경이로운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과연 내가 저 파도처럼 내 인생전체를 던져서 무언가를 하고  뒷모습을 경이롭게 할 수 있을까?…저 파도처럼!’

그 사람, 정관영의 편지에서는 그런 경이로움의 낌새가 분명히 느껴졌었다. 

먼데서, 사람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누군가, 이 날씨에 사납고 무서운 바다에 뛰어든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응원인지 걱정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며 수선을 떨고 있다. 이윽고, 한 남자가 수영복 차림으로 걸어 나옴으로 소란은 진정되었다. 

오랫동안,  바다와 파도를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기증이 났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앉지 않았다. 다시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이내 하늘을 보다 다시 고개를 떨어트려 발밑의 모래를 보았다. 

‘이 모래들은 다 어디서 와서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일까?’

모래를 툭툭 차보다 언젠가 여러 번  해봤던 놀이가 생각났다. 

발가락사이로 모래가 삐져 올라오던 느낌과, 발가락 사이를 모래가 간질이며 새어나가던 느낌이 몇몇의 앳된 얼굴들과 겹친 채로 그려지다 지워졌다.

‘내 나이가? 그 애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세월이…뭘 하다가’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신영철 비서관이 다가왔다 

“그만가시죠, 어디 가서 뭘 좀 드셔야죠.”

둘은 천천히 모래밭을 걸어 나왔다. 식당 갈일이 난감하다. 

결국 컵라면과 김밥 한줄 그리고 호빵 2개를 사와서 차안에서 먹었다.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화진포에 도착 했을 때는, 얼추 하루해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송림에 둘러싸인 화진포 호는, 벌써 어둠을 머금어 저쪽은 보이지 않고 침묵 속에 반짝이는 물빛을 보이고 있었다. 

장훈은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 전에는 이런 느낌을 자주 느꼈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오붓한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비집고 나오다 스러진다. 

발자국 소리와 바짓단 부딪치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소리에 집중했다. “치이버억  치이버억” 

걸음을 멈춘다. 소리도 멈춘다.  걷는다. 소리도 따라온다. 

뒤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절대로 돌아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교차 한다. 돌아보지 않는다가 이긴다.

어릴 적 밤길에서도 늘 돌아보지 않는다가 이겼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생각하다가 소리 내어 물어본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대답이 없다. 하염없이 걷는다.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다. 무엇인가 생각하다를 반복하며 걸었다. 크게 숨을 들여 마신 후, 입으로 길게 뿜는다. 

이대로 무한정 걷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정관영 의원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다 스러졌다.  

‘만나보긴 해야겠지?’

한참 후, 그만 걸어야겠다. 고 생각할 때쯤, 신비서가 다가오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만 숙소로 가시죠!”

장훈은, 대답대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음을 옮겼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콘도는 조용했다 

제철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콘도는 그들이 유일한 투숙객인 것 같다. 직원이 장훈을 알아봤지만 신영철비서관의 간단한 설명으로 정리됐다. 

방2개의 콘도는 깨끗했지만, 오래된 티는 어쩔 수 없다. 

“술 한잔합시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도 좀 해야 되잖아요?” 

“의원님 술 안하시잖아요?”  

“조금씩 합니다. 주로 집에서만 하고 밖에서는 거의 안하지요. 혹, 기자들 한 테라도 꼬투리 잡힐 염려도 있고, 이미지 관리해야지요. 정치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꽤 했었어요. 집에서 혼자 술 할 정도면  꽤 좋아하는 편 아닙니까?”

장훈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 놓듯이 말했다. 

“아! 정말이에요? 진짜 술 못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 지금 횟집이 문을 열었을까요? 일단 우선 알아봐야죠. 밑에 가서 알아  볼게요.”

신비서가 내려가고 조금 후에, 전화벨이 울리고 이어서 신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오십시오. 요기 가까운데 횟집들이 여러 집 있대요. 영업 한답니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횟집들은, 불을 환히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족히 열 집은 넘을 것 같은 횟집들이, 어두운 바다를 향해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손님은, 아예 없어 좀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명수네 횟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주인 여자는 의외라는 듯 하다가 곧 “어서 오세요” 한다.  

주인 여자가 몇 가지 찬을 놓으며 장훈을 보고 갸우뚱 한다. 

장훈이 마주보며 호기롭게 말했다.

“예! 국회의원 허장훈입니다. 조용히 술 한 잔 하고 가려고 합니다.”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금세 말귀를 알아듣고 대답했다. 

“맞아요! 허장훈의원님이시지요?…예! 어차피 오늘 올 사람도 없을 거예요. 싱싱한 걸 루 맛있게 해드릴게요.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한다. 

“고맙습니다!” 장훈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몇 잔 때까지 별말 없이 술잔을 부딪치다가 신비서관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의원님! 힘드시지요? 외롭고요?”

장훈이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씩 웃으며 말을 던졌다. 

“아니! 안 힘들어요. 안 외롭고요.…그런데 우리 영철씨는 행복합니까?”

신비서는 우리 영철씨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들었다 . 

“글쎄요. 행복한 건지 안한 건지,…그래도 저 정도면 행복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의원님, 오늘 많이 외로워 보였어요. 뒤에서 보니 뒷모습이 많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장훈이 빙긋이 웃었다. 

“뒷모습은 누구나 외로워 보이는 겁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뒷모습은 외로워 보이더라고요. 나무들은 안 외로워 보여요? 특히 지금같이 앙상한 가지들을 보면… 반대로 어린것들은 다 사랑스럽더라고요. 아기들은 물론이고 강아지, 송아지, 얼마나 사랑스러워요. 아! 돼지 새끼들도…. 어느 시골집에 갔는데 그 집 돼지우리에 새끼들이 열 몇 마리 정도 되나 봐요. 내가 돼지우리 앞으로 갔더니 아! 이놈들이 저희들 먹이 주러왔는지 알고, 쪼르르 몰려오는데,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놈들이 얼마나 예쁜지, 정말 귀엽더라고요.” 

장훈답지 않았다. 신영철 비서관은 장훈이 술 한 잔하자고 할 때, 오늘, 저녁술자리에서 긴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내심 기대와 긴장을 하고 있었다. 

신영철 비서관은 장훈이 이 자리에서는 심각한 정치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소주 2병을 마시는 동안 내내 장훈은 유쾌했다.  

그러한 장훈을 신영철 비서관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호수 앞에서 멈추어 섰다 깊은 적막 속에 음울하기까지 한, 호수 물위에 요요한 달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영철씨! 너무 멋지잖아요? 딴 세상에 와 있는…아! 좋다”  

“아! 그러네요.”

“이럴 때 시를 하나 읊어야 되는데…영철씨! 내가 시를 하나 …김광섭님의 [내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어우! 좋지요.… 잘 들어 보겠습니다.”

장훈은 목을 가다듬었다.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계속> book365@daum.net

 

*필자/이헌영

 

소설가.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2017)을 발표. 2018년 한국예총 <예술세계신인상에 장편소설 은미야 괜찮아 노래해!가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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