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심민섭 과거고백…왜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가?

심민섭 화백 “여자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눈물이었던 것 같다” 회고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9/11/08 [09:33]

▲시사만화가 심민섭 화백.   ©브레이크뉴스

시사만화가 심민섭 화백은 요즘 자신의 페이스 북(Minsoub Shim)에 “시사만화쟁이의 자전적 정치수기, 굴곡”이란 글을 연재하고 있다.

 

필자는 차길진 법사와 친분 때문에 심민섭 시사만화가를 알게 됐다. 두 분은 친구 사이이다. 차길진 법사의 환갑날, 환갑잔치가 있었다. 이때 심 화백이 차 법사의 친구로서 마이크를 쥐었다. 차려진 환갑 상 앞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한 시간 동안, 심 화백의 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심 화백, 화가인데도 입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그의 글발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이스 북에 떠 오르는 “시사만화쟁이의 자전적 정치수기, 굴곡”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 1992년 12.18 대선 직후, 시사만화가 심민섭의 작품.  ©심민섭

 

그는 알려지다시피 아동만화 500여권을 그린 뛰어난 인기 만화가였다. 또한 택시운전 5년이라는 이색경력도 있다. 시사만화가-시사만평가로서 주간한국 6년, 일간스포츠 2년을 근무했다. 서울경제는 1년 기고 했다. 이어 한국일보, 세계일보, 국민일보, 대전일보 등에서 시사만화가로 재직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블루스(광화문 연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필자는 심 화백의 “시사만화쟁이의 자전적 정치수기, 굴곡, ㅡ72회”를 읽고, 잠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왜 이래"하며 훔쳐냈다. 인간사의 굴곡이 그 글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 화백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이 스스로 따라온 것은 진솔한 과거고백. 아내와의 잊지 못할 세상살이를 있는 그대로, 신세타령하듯이 쓴 내용 탓이었다.

 

▲헤어진 아내와 다정했던 한때.  ©브레이크뉴스

그의 글은 시작 부분에서 “차길진 법사의 신통력은 확인한 바 없지만, 내 마누라의 신통력은 확인했다. 내 마누라는 신들렸었다. 신기(神氣)가 몸에 들어와 신의 전령사가 되어 있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내 자가용과 버스와 접촉사고가 나서 사이드미러가 부셔져 수리했었다. 집에 갔더니 마누라가 왜 당신 차의 거울이 보이느냐고 캐물었다. 편지가 왔다. 편지 속에 웬 카드가 보이느냐고 마누라는 따졌다. 편지 안에는 국민카드가 들어 있었다. 내 주머니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다 안다. 이게 바로 신들림의 정체다. 신기가 들어와 있을 때 그녀는 신과 소통한다. 목사가 신통력이 있겠는가? 스님이 그러하겠는가? 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무당이거늘, 우린 그것을 미신의 표상으로 삼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엔 항상 10만여명의 신기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을 접하지 않고는 몸이 아파서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면서 “아무리 절대적 종교가 제압해도 무당의 세계는 없앨 수 없다. 그들은 점을 치며 먹고 산다. 그들이 신을 신성하게 접해 신기가 왕성할 때, 그 예언은 적중한다. 용한 점쟁이는 그때 생겨난다. 그들이 미신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종교들이 미신일지 모른다. 무당의 세계에선 여타 종교처럼 아름다운 말이 없어 우매한 믿음으로 타박 받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내 마누라는 19살 때 내게 시집왔다. 나와 13살 차이였다. 날도둑 소리 들었다. 나는 나의 숫총각 순정을 32살 때 그녀에게 바쳤다. 그 이전엔 나는 어떤 여자와도 체험한 일이 없는 보기 드문 문화재였다. 그녀는 세상이 버린 여자였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학력은 초등학교 4년이 전부다. 결혼할 때 내 신분은 신세계백화점 주차장 요원이었으니, 그런대로 두 사람의 환경은 맞아 떨어졌다. 나는 항상 속물적 결혼조건을 경멸한다. 속물적 잣대는 인간 최대의 야비성이다. 나의 속물적 꿈은 그녀를 귀부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무당의 전문가 고 서정범 교수가 밝히기를, 신들린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이 불우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내 마누라도 거기에 해당된다. 나는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신기가 나를 당혹케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그동안 번 돈은 그녀의 신기로 많이 탈진됐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만다. 그녀는 항상 1000% 행복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속물에겐 신의 세계가 버겁다. 그녀와 헤어지기 바로 전 날에도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두 사람은 사랑을 했다. 그때의 마누라가 제일 예뻤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그녀와 헤어진 뒤 나는 행복했을까? 속물근성에서 벗어나 결혼했지만 나는 음흉한 또 다른 속물적 이유로 헤어진 속셈 때문에 25년을 개고생 한다.  홍천에 사는 게 그 이유다. 천벌 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천벌 받아 마땅하다”는 글로, 과거를 호되게 참회(?)했다.

 

그는 아내와의 다정했던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 몇 장도 공개했다. <사진설명>도 자상하게 붙였다. 글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알도록 <사진설명>을 인용한다.

 

▲심민섭 시사만화가. 시사만화가-시사만평가로서 주간한국 6년, 일간스포츠 2년, 서울경제 12년을 일했다. 이어 한국일보, 세계일보, 국민일보, 대전일보 등에서 시사만화가로 재직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블루스(광화문 연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브레이크뉴스

“1.마누라 처녀시절 사진이다. 티 없이 맑은 얼굴이지만, 그녀는 세상에서 버림받았고 나중엔 내가 버렸다 돌이켜보면 천추의 한이다 그리고 내 운명이다. 죽기 전에 얼굴은 보고자 한다.
2. 속리산 법주사로 데이트 갔었다. 내가 여자 만나는 날엔 비가 오는 징크스가 있었다. 여자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눈물이었던 것 같다.
3.일체의 형식을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신혼여행은 터덜터덜 시외버스 타고 동해안 구경했다.
4.아이들과 함께 자주 여행을 했다. 이때 이풍경이 이제 와서는 눈물겹도록 그립다.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스스로 만드는 점괘를 지니고 있다.“

 

심 화백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젊었을 때 소설가가 꿈 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그가  써 내려가는 필치, 그 속에는 소설가적 상상력과 묘사력이 충분하게 입증돼 있다.


심 화백의 글 중 한 구절인 “여자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눈물이었던 것 같다.”는 말이 오래오래 짙은 그림자 되어, 뇌리에 남아 있다.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시사만화가 심민섭. 그는 이제 홍천이라는 시골동네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콩을 털어야 한다”며, 서둘러, 필자와의 전화통화를 끊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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