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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고 없고 없는 마음

허공처럼 텅 빈 마음 그 것이 참마음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19/10/22 [10:56]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누가 대인일까요? 아마도 그 사람은 마음이 허공과 합일(合一)한 사람이 아닐까요? 보통 동양종교를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비움의 종교라면 서양 종교는 성령(聖靈) 충만의 채움의 종교라고 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꽃꽂이도 이와 같아서 서양은 다양한 종류의 꽃을 360도 꽉꽉 채워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양의 꽃꽂이는 꽃과 꽃 사이 여백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전하는 데 주력하지요. 그러니까 전 방위가 아닌, 특정 각도 전시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채우고 메우는 과정에서 서양식 꽃꽂이는 꽃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양 꽃꽂이는 꽃과 풀 하나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신(神)이 창조한 자연을 가감 없이 즐기자는 것이 서양의 가치라면, 인간과 꽃이 함께 창조해내는 빈 여백 속의 자연 찬미가 동양의 가치입니다.
 
원불교의 성가(聖歌)중에 <입정(入定)의 노래>가 있습니다. 마음의 원리를 밝힌 노래이지요.
 
「예쁘고 밉고 참마음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 참마음 아닙니다./ 허공처럼 텅 빈 마음 그 것이 참마음/ 이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마음 없습니다,/ 안에서 나가는 마음 없습니다./ 없다는 한마음 그 맘도 없습니다./ 없고 없고 없는 마음 그대로 그대로.」
 
정산(鼎山) 종사께서 《법어(法語)》 <원리편>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대들은 허공이 되라. 허공은 비었으므로 일체 만물을 소유하나니, 우리도 대인이 되려면 그 마음이 허공 같이 되어야 하나니라. 자신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써 하고, 가정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써 하고, 나라를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써 하며, 모든 동지와 모든 동포를 대할 때에도 또한 빈 마음으로써 화(和)하여, 매사에 상(相)이 없고, 원근이 없으며, 증애(憎愛)가 끊어지면 불보살이니라.」
 
아예 생각 자체를 지우고, 머리를 텅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禪)의 본질입니다. 1993년 열반한 성철스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기자가 산보에 나서는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스님은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은 무슨. 아무런 생각도 안 해요."
 
노자의 도덕경에는 비우는 것이 경쟁력이라며 몇 가지 비움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허심실복(虛心實腹)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워야한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차고 욕망이 가득하면 머리가 무거워져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둘째, 약지강골(弱志强骨)입니다.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라.’ 의지가 너무 강하면 마음의 상처가 됩니다.
 
셋째, 색태폐문(塞兌閉門)입니다. ‘감각기관을 닫고 정신활동을 정지시켜라.’ 입을 막아 말을 아끼고, 눈을 막아 화려한 색을 피하며, 귀를 막아 아름다운 소리를 멀리합니다.
 
넷째, 좌예해분(挫銳解紛)입니다. ‘날카로움을 꺾고 복잡함을 풀어라.’ 날카로운 칼은 남에게 상처주기 쉽습니다. 그 날카로움을 꺾어 누구도 찔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섯째, 화광동진(和光同塵)입니다. ‘광채를 줄이고 세속의 눈높이에 그 눈높이를 맞추라’ 빛이 강한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여 들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허공과 같이 텅 비어있는 마음이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허공처럼 텅 빈 마음이 바로 우리가 진리와 하나 된 모습이지요. 텅 비어있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구하고, ‘없고 없고 없는 마음 그대로 그대로’인 사람이 아마 이 세상 최대의 대인이고, 최고의 인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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