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과연 해소할 필요가 있고 또 가능한 것일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완벽한 사회주의 체제의 중간인 정치 경제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길원 박사 | 기사입력 2019/10/19 [08:44]

▲ 이길원 박사.     ©브레이크뉴스

불평등 해소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8 세기 칼 마르크스와 엥겔의 공산주의 이념 선언 이래 인간의 감성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의 해소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의 대중 지지 획득과 권력쟁취에 절대적 영향을 끼쳐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완벽한 해소가 과연 가능하고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출생할 때 부모로부터 타고난 DNA가 각양각색인 점을 감안하면 사람은 그 본성에서 완벽한 평등과 공존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하얀 피부 색깔과 잘 생긴 얼굴을 타고 난 반면에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예능에 천재적인 재주를 타고 났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경쟁상 선천적인 이점을 가진 반면 어떤 사람은 뛰어난 운동신경을 타고나서 스포츠 분야에서 명성과 부를 획득하는데  월등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다른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장점과 개성을 타고 났기 때문에 노력하기에 따라 모든 사람은 그 하나의 분야에 성공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이들 자신의 재능을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본성, 즉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감안하면 이들 다양한 사람들을 평등화 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반하며 비로 그런 이유로 평등화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또한 그런 평등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를 묻지 않은 수 없다. 완벽한 평등은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능력과 재능,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똑 같은 사람이 그 죽은 자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히 평등한 사회에서는 예컨대 큰 인물이 죽었다고 애도할 필요가 없고 사람은 기계의 부품처럼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존재가 될 것이다.   

 

아담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이점을 최대로 활용, 분업을 통하여 생산 활동에 참여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국부가 증가하고 모든 사람이 번영해 진다는 점을 그의 국부론에서 설파했다. 부와 소득의 평등을 경제와 사회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운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부와 소득의 생산 측면에서 고찰할 경우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구 쏘련, 대약진 운동 시대 모택동의 중공, 혹은 김일성 일가의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장악하여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하는가를 국가가 결정하는 극단적인 공산주의 경제정책을 편 결과 수천만의 아사자들을 낳은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볼세비키 혁명을 통한 급격한 사회주의화의 경제적 파탄을 본 전후 서구에서 유행한 변형된 사회주의, 즉 사유재산권의 인정과 기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지만 과도한 세 부과를 한 후 재분배를 통하여 부와 소득의 평등화를 실현하는 사회 민주적 사회주의(social democratic socialism)가 보여준 경제적 성과는 어떠했는가?  

 

영국의 경우 19 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의 경제성장률은 사회주의 혹은 국가주의라고 그 체제가 평가되던 20 세기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지역적으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유럽이 같은 시기의 동남아 여럿 나라에 비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며 같은 유럽에서도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한 1949-1966 기간의 자유보수주의 정권 시대의 독일이 당대의 서구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독일은 1982 년 이후 헬무트 사회주의 정권 등장 이후 시행한 세율인상을 포함한 강력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과 평등화 시책의 결과 높은 인플레와 10%에 달하는 악화된 고용율 및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을 보였다. 이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편 불란서의 경우에도 미테랑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 역시 악화된 고용율과 인플레이션으로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부의 불평등을 잉태한 주범으로 평가받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비교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우선 인간이 가진 이기심을 인정하고 부의 생산과 소비를 소비자가 결정하는 소비자 주권주의(consumer sovereignty)에 의한 부의 창출을 실현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본축적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축적된 자본은 기업가의 활동을 통하여 노동생산성을 증가 시키고 그 결과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평균적인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이미 위의 역사적 사실에서 보인 바와 같이 여러 경제학자들의 고찰을 통해  검증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발생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활수준은 분명히 향상되어 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18 세기에 들어와서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풍요와 괄목할만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평균 수명의 연장, 낮은 유아사망률 등을 통하여 인간의 삶이 획기적으로 호전된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주의자와 일반의 신념체계의 변화에 분명히 일조했다. 

 

그러나 평등화 실현을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 경제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평등화에 저항하는 사람의 이기주의적 인간성을 개조해 개인의 욕심을 절제하고 모든 사람이 화합하고 상부상조하여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소위 말하는 인간개조를 통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부와 소득 불평등의 주범으로 배척되는 자리에 독버섯처럼 자라는 사회주의자와 그들의 이념적 투쟁은 통상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 불평등은 사회적인 악이며 평등화의 실현이 곧 사회적 정의가 되는 이상적인 세계를 약속하고 정치권력을 찬탈하는 것이 오늘 날의 현실이다. 다음의 사례에서 불평등 해소가 과연 사회정의인가를 살펴보자. 갑의 연봉은 8,000만원인데 반하여 을의 연봉은 5,000만원이다. 즉 사회적 정의가 유린되는 소득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져오는 경제성장의 결과로 두 사람의 소득은 2 배로 늘어나 이제 갑의 연봉은 1억 6,000만원, 을의 연봉은 1억으로 두 사람 모두 소득은 늘어났으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렇지만 을은 지금까지 과도한 물질주의와 타락한 사치성 소비라고 욕했던 갑의 소비 패턴을 따라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을은 심화된 불평등으로 과연 더 불행해 질까 아니면 여태까지 부러워하던 갑의 소비패턴의 일부라도 실현하게 된 것을 기뻐할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시점에서 보이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일시적 현상으로 다른 시간대에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위의 사례에서 예컨대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을은 사업에 성공하여 갑에 비해 월등한 부를 축적하게 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을 100% 평등하게 하는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인간 본성이 그 것과 배치되기 때문에 가능하지도 또한 그럴 당위성도 없다고 본다. 다음의 사례는 평등화 시도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남, 미인으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평등하게 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인 평등화는 불가능함으로 사회주의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평등화 사례가 가능할 것이다. 우선 미남, 미인세를 신설해 타고난 미남, 미인에게 이 세금을 부과한다. 이 돈은 미남, 미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제공되어 그들이 성형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를 하기위한 술값으로 쓰게 하여 평등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상기 사례에서 보여주는 평등화 실현의 모순을 사회주의 체제의 강도를 완화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세금 부과의 정도를 조절하여 어느 수준까지 사회주의 정책을 통한 재분배를 할 것인가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그 정도라는 것이 매우 임의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의사에 따라 권력자의 권력유지 수단으로써 사용될 가능성이 높고 궁극에는 권력자가 독재자로 변신하는 데 수단으로 사용되기 마련이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완벽한 사회주의 체제의 중간인 정치 경제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andrewkwlee@naver.com

 

*필자/이길원, 경영학 박사. MBA-American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management. 영남대학교 객원 교수. Finance Director-한국화이자(주) CEO-BBX Korea.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브레이크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