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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

똥밥과 인문학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0/10 [18:38]

▲ 이서영작가/만다라 철학노트/인문학     ©블루노트

 

'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단어에 대한 기억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존재는 대개 엄마다. 엄마가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었다면 아기는 똥이 지저분한 어떤 것이라고 각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더분한 엄마였다면 똥에 대한 경쾌한 경험치를 아기에게 선물했을 수도 있다. 하나의 단어를 제시했을 때 그것에 대한 느낌이나 의미는 사실 전부 다르다.

 

'똥'이라는 단어는 '기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은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서의 '똥'이다. 프랑스어로는 이것을 '시니피앙'이라고 한다.
'똥'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경험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것을 '기의' 혹은 '시니피에'라고 부른다.

'사랑'도 그렇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발음할 때 누군가는 그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펼쳐질 것이고 누군가는 실연의 아픔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거나 가슴 한 구석이 아파올 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표현 속에 깃들인 의미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표현과 의미, 기표와 기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시니피앙은 그림이나 글 등을 말하고, 시니피에는 그림이나 글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서 올까?

태어나면서부터 노출된 환경과 교육과 경험에서 올 것이다.

똥은 무언가를 먹으면 영양소가 되어 몸에 쓰이고 남은 것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노폐물이거나 배설물이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어떤 똥을 쌀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붉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아이스크림 모양의 똥을 누고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으면 바나나 모양의 똥을 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은 똥이다.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물들은 다 똥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사과도 감도 배도 딸기도 똥이다. 침대도 거울도 똥이다. 책도 똥이다. 글도 똥이다. 말도 똥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다 '똥'이다.

 

책숲에서 살면서 책들 속 이야기들을 배부르게 먹은 필자의 머릿속은 밥을 먹으면 식도를 거쳐 위를 거쳐 작은창자를 거쳐 큰창자를 거쳐 항문으로 나오는 똥처럼, 의식과 무의식이 길항하면서 온갖 세상을 만나고 느끼고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뭉뚱거려 한 권의 책이라는 똥이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먹은 만큼 싸게 되어 있고 읽은 만큼 쓰게 되어 있고 마음 먹은 만큼 이루게 되어 있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게 되어 있다. 행동하는 만큼 결과물을 만날 수 있고 이야기하는 만큼 소통이 가능하며 이해하는 만큼 세상의 문리를 터득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순환한다. 처음 자리에서 출발했다가 목적지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책을 읽으면 책을 통해 삶의 진리를 만나고 다시 책을 쓰는 사람이 된다. 내가 먹은 밥은 똥이 되고 똥은 거름이 되어 새 생명을 이롭게 하며 그것은 또다시 다른 형태의 생명이 되어 우리의 밥상에 오른다. 나의 생각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의 결과물은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결벽증이 심한 엄마에게서 삶을 경험한 나는 결벽증이 심한 사람으로 성장하여 다시 나의 어린 세대에게 그것을 대물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승화된 삶을 산다면 그것이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다시 복이 되어 내게 되돌아올 것이다.

 

'똥'이라는 기표와 '똥' 속에 들어 있는 기의. 삶이라는 기표를 채워가는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단 한 번 피는 꽃과 같아 봄여름가을겨울을 평생 한 번 겪어내는 것 같지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새벽에 눈 뜰 때마다 날마다 피어나는 꽃 한 송이가 될 수도 있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 이 모두를 한 몸에 안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아이들에게 차가운 이성만 줄 것인지 따뜻한 감성까지 전해줄 것인지 결정하라고 하면 누구나 이 두 가지 요건을 선물로 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어른이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것이 아름다운 똥을 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몸에 좋은 것을 먹듯 마음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와 감사 가득한 선순환의 삶이 가능해진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 한 그루를 위하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열매를 맺고 싶다면 부지런히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 배운다는 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겸손한 영혼은 감사를 나눠준다. '똥'이라는 기표 속을 '거름'이라는 기의로 채우고 싶다면 우리가 먹어야 할 것은 분노나 질투, 상처 등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와 겸손과 감사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선순환의 세상이다. 늘 긍정하고 늘 배우고 늘 이해하고 늘 감사하는 삶.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는 사실을 들여다볼 줄 아는 영혼은 지구별 여행자로서 참 행복하겠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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