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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DJ'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외로운 정치역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과 정치철학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실천해 왔던 리틀 DJ

신재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8/19 [10:53]

▲ 한화갑 전 새천년 민주당 대표.    ©브레이크뉴스

 

"머리는 빌리면 된다" 와 "머리는 나에게 있으니 나의 뜻에 따르면 된다" 라는 이 상반된 두 표현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을 상대로 민주화 투쟁을 했던 야당의 양대 산맥인 김영삼-김대중 총재(당시 직책), 두 정치 거목의 용인술을 비교, 설명할 때 언론에서 간혹 쓰는 표현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두 정치거목의 비서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김영삼 총재의 비서들은 충신 보다는 책사가 많았고, 김대중 총재의 비서들은 책사 보다는 충성심이 강한 충신들이 많았던 걸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감옥 보다는 정치권 안에서만 투쟁을 했던 김영삼 총재와는 달리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가택연금, 해외망명 등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해야 하는 김대중 총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외교, 통일, 종교 등 전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김대중 총재에게는 지식을 갖춘 사람보다는 군사‧독재정권과 목숨을 건 투쟁을 함께 할 수 있는 충성심이 강한 강직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 더 필요했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시대 때 김대중 총재의 비서들은 투옥은 기본이고, 고문은 물론 협박과 회유를 견뎌내야만 했기에 그렇다. 몇 달 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넘게 투병생활을 하다 운명을 달리한 김홍일 전 의원을 떠나보내면서, 그 당시의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투사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육체적인 핍박과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없는 그야말로 살인과도 같은 고통이었다는 걸 과거 진상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김대중 총재의 동교동 비서들은 김대중 총재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고 있다는 진정성에 탄복을 했고, 또한 몸소 앞장서서 희생을 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었기에, 고난과 고통의 눈물겨운 민주화 투쟁을 함께 하기 위해 동교동 비서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도 불사하는 충성스런 동교동비서들 중에 지식을 겸비한 다시 말해서, 머리가 있는 비서가 한 분이 있었다. 바로 서울대학 출신의 한화갑 비서(민주당 전 대표)다. 오직 충성심과 의리로 똘똘 뭉쳐진 동교동 비서들 속에서의 서울대 출신 한화갑 비서의 책사 겸 충신으로서의 역할은 당시 야권의 민주화 투쟁의 선명성을 강조했던 김대중 총재에게는 여러 가지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지 경쟁은 필수이기에 비서들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을 것.

 

군사‧독재정권과 투쟁을 함께 하는 민주화동지 이전에 김대중 총재의 신임을 얻어야 하였기에, 서로의 견제는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동교동 비서들 중에 한화갑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의 학벌 차별화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비서들의 집중 견제는 피할 수없는 운명이었고, 야당 때부터 한화갑 비서는 다른 동교동 비서들과는 좀 떨어져 있는 외로운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비서들과의 정보 교환은 물론이고, 김대중 총재에게 대면보고 하는 체계에서도 때로는 소외가 되는 서러움도 겪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제1세대 비서로 양갑으로 불리는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대표는 동교동계의 좌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권노갑 고문을 중심으로 비서의 체계가 갖춰지면서, 한화갑 대표는 조직 안에 둥지를 틀수가 없었다. 늘 홀로 숨죽이며 견제를 견뎌내어 왔다. 그러다보니 김대중 대통령을 섬기는 동교동 비서들 간에 협심보다는 견제의 대상이 되어, 2002년 한화갑 대표의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계기로, 호남후보는 안 된다는 동교동계 비서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서로의 견제는 최고의 정점을 찍으며 감정의 골은 더 깊어 갈 수밖에 없었다.

 

한솥 밥을 먹었던 동교동 비서들의 도움 없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 1위를 하며 체면을 유지하는 걸로 만족을 하고 경선후보 사퇴를 하게 됐다. 정치세계의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외로운 정치역정은 시작된다. 그 이후 대통령후보 경선으로 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피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설정은 현실 정치권에서는 더욱 더 험난한 정치인의 길을 예고한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집권 여당의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함께 누려야 하는데, 권력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 친위 세력으로부터 계속된 견제와 따돌림으로 시련의 외로운 정치인이 되어 버린 것.

 

▲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모임.     ©브레이크뉴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대통령으로 당선을 시켜준 김대중 대통령의 뿌리가 있는 새천년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한 순간에 소수 야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명 친노 세력과 권력을 쫒는 민주당의 일부세력과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목소리를 함께 하는 세력들이 다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한화갑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국회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을 사수하기 위해 호남의 정치 1번지 광주에서 추미애 의원의 삼보 일배를 시작으로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며 힘들게 민주당을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해 보지만, 권력의 힘은 당할 수가 없는 것. 한화갑 대표를 제거하면 새천년민주당은 식물정당이 될 수밖에 없기에 정치사에서는 최초로 경선자금을 문제 삼아 한화갑 대표를 정치자금법으로 제거를 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열린우리당에 흡수하여 친노가 주류가 되는 새로운 노무현식 열린우리당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다.

 

친노가 부정을 하는 한화갑 대표는 친문재인 세력 역시도 부정을 하여 영원히 민주당에서 소외가 되는 정치 낭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같이 하고 싶어도 권력자의 눈에 거슬리면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정치다. 또한 정치는 현실이고 냉정한 게임이기에 나를 부정하고 정치적으로 배척당하면 떠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며 새로운 당도 만들어 보고, 여러 방면으로 정치권 재진입을 시도해 보았지만, 냉정한 정치세계는 김대중 대통령의 능력 있고 충성스런 비서출신의 한 정치인을 영원히 정치계를 떠나게 하고 말았다.

 

정치계를 떠난 한화갑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정작 도와주고 싶은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는 소외를 받게 되지만,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박근혜 후보의 손길을 마냥 뿌리칠 수가 없었기에, 호남의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호남에 대해 빚 진자의 입장이 되어 마지막 정치적 딜을 하게 된다. "입당은 할 수도 없고 또한 선거운동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어떠한 자리도 바리지 않는다. 다만 국민대통합을 위해 호남인의 인사에 인색하지 않고, 호남의 발전을 위해 특단의 정책을 추진 한다"는 확답을 받고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게 됐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다. 같은 시기에 새누리당에 입당을 하여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던 한광옥 대표와 김경재 전의원과 똑같은 행보로 보고 있다는 것.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광옥 대표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이 되고, 김경재 전 의원은 대통령 특보로 임명이 되어 보은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한화갑 대표는 보은의 대상이 아닌 호남을 대표했던 정치인으로서, 호남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인 딜을 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통령에게 그 어떠한 혜택을 원하지도 않았고, 또한 어떠한 자리도 맡겨지지 않았다. 정치는 그렇게 냉정한 것이다.

 

그런데 변화무쌍한 민심은 참으로 냉혹했다. 한화갑 대표의 호남을 위한 마지막 정치적 행위가 호남에서는 배신자라 낙인을 찍어 버린 것. 아마도 호남의 발전보다도 주군인 김대중 대통령을 핍박하고, 인권을 무시한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지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신재중 청와대 전 관저비서관. ©브레이크뉴스

결과론으로 봐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되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도의적 책임감은 항상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남을 대표했던 정치인으로서, 호남을 위한 마지막 정치적 행위에 있어서는 진정성을 믿어줘야 한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살아생전에 정치보복도 하지 않으셨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평상시의 말씀 그대로 일본에서 납치되어 바다 한가운데 빠뜨려 죽이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5.18 민주화운동의 주동자로 사형을 선고 했던 전두환 대통령도 모두 용서를 하지 않았는가. 직접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주군인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용서를 했는데, 충성스런 비서였던 한화갑 전 대표가 용서를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먼 훗날에 아니면 어떤 시기에 맞춰 한화갑 전 대표의 진실을 듣게 되는 때가 꼭 있으리라 기대를 해 본다.

 

필자는 장담한다. 정치를 마치는 마지막까지 호남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리틀 DJ, 한화갑 전 대표를 역사는 기억해 줄 것이고, 배신의 내용 역시도 반드시 바뀌게 될 것이라 믿는다. 고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험난한 민주화 투쟁을 하여 잃어버렸던 자유와 인권을 되찾는데 앞장을 선 리틀 DJ, 한화갑 전 대표를,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과 정치철학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실천해 왔던 리틀 DJ, 한화갑 전 대표의 외로웠던 정치역정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해주길 바란다.

 

이제는 정계를 떠나 한반도 평화와 정치 후진 양성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앞장을 서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도 힘찬 응원과 박수를 보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는 한화갑 대표만을 위한 게 아닌 호남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뛰고 있는 호남의 정치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가의 기준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신재중. 청와대 전 관저비서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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