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公人)의 공언 ‘우리 일본’

정치인의 저 소리 일점일획, 다 고래심줄 우리 세금..

강상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8/15 [10:03]

아베 정권의 일본, 아무리 봐도 세계평화의 걸림돌로 보인다. ‘우리 일본’을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브레이크뉴스

 

공인의 말은 공신력 갖는 공언(公言)이다. 공언(空言) 즉 빈말이면 안 된다. ‘우리 일본’이라는, 어떤 정치인의 공석에서의 공적 발언에 관한 얘기다. 개인의 ‘말버릇’으로 공인(公認)돼서 잘잘못이나 적부(適否)를 따지는 일이 유야무야된다면 이는 공익에 이롭지 않다.  

 

기우(杞憂)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의미 없는) 말버릇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그런 말이 다시 들려서는 아니 된다는 말글전문가로서의 생각이다. ‘빈말’이니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인 것이다. 公言은, 空言도, 정치소비자인 납세자 언어대중의 본(本)이 된다.

 

그를 옹호하는 한 정치인은 이 문제에 대한 시비를 두고 ‘옹졸하다, 좁쌀 같다, 아니 섬뜩하다, 살벌하다.’고 했다. 옹졸한 좁쌀이 어떻게 섬뜩한 살벌함이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청구들을 각오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물론, 말버릇이라고 한 그 해명을 이해한다. ‘우리 일본’의 뉘앙스가 아베정권이나 자위대의 일본을 향한 (찬양하는)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은 한다. 그에게는 ‘자위녀’라는 별명이 붙어있기도 하다. 일의 전말(顚末)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 논란이 일자 그는 설명 자료를 내고 ‘말버릇이자 단순한 습관’이라고 해명했다. (자유)한국당에 따르면 그는 그간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 KBS’ ‘우리 고엽제 전우 여러분’ ‘우리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 등의 표현을 사용해왔다...

 

公자가 3천년쯤 전 처음 그려질 때의 모양. 갑골문은 (지금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여준다. (이락의 著 한자정해 삽화)      ©브레이크뉴스

그런데, 경우가 같은가? 자유당이나 그는 ‘우리 일본’과 ‘우리 고엽제 전우’가 동가(同價)의 대상이라 생각했을까? 굳이 이런 사례들을 해명의 방법이나 비교 이미지로 택했어야 했을까? 개인의 말버릇으로 용납(容納)해 구렁이 담 넘듯 망각의 늪에 구겨 넣을 주제가 아닌 이유다.

 

‘우리 일본’은, 앞뒤 말의 맥락(脈絡 context)을 보면 ‘우리의(our) 일본’이다. ‘나의(my) 일본’의 복수(複數) 모양이다. 그 ‘우리’에는, 언어상으로, 독자인 여러분이나 글 쓰는 이 사람도 자유당이나 그와 함께 포함된다. 우리 모두의 ‘나의 일본’이 되는 것이다. 

 

좁쌀 같다는 말 들을망정, 고백한다. 나는 아베의 일본을 ‘나의 일본’으로 보듬을만한 호방한 금도(襟度)를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모두 그 일본을 잔뜩 째려보고 있지 않는가? 

 

말에는 번식력이 있다. ‘말이 씨 된다.’는 말이다. 좋지 않은 말의 씨라면 ‘말버릇이자 단순한 습관’이라도 바로 버리는 것이 옳다. 가족모임 같은 사석(私席)에서라도 안해야 한다. 자녀들이 따라하는 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 해명 대신 그는 진작 이런 의지를 표명했어야 했다.

 

일점일획(一點一劃), 글자에서의 한 점과 한 획이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부분의 말이나 글을 이르는 말이다. ‘일점일획까지’처럼 쓰는데, 말과 글에서 작은 부분도 (큰 부분과 비교하더라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문장 부호 하나가 역사를 바꿨네.’하는 얘기와 비슷한 톤이다.

 

갑골문의 그림에서 비롯한 한자에서 점과 획의 의의는 절묘하다. 문자학자 故 진태하 선생, 칠판에 ‘딱’ 소리 나게 점 하나 찍고선 “일점일획이 중천금(重千金)이니!”라 했다. 천금처럼 무겁다는 뜻, 여러 강의주제가 그 점과 획에서 나왔다. 점은 찍고, 획은 (선을) 긋는 것이다.

 

성경(바이블)에서도 ‘일점일획’ 표현을 봤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8)라는 대목이다. 적절한 우리말 번역으로 본다.

 

‘우리 일본’을 (현장)정치학으로 풀면 가랑잎처럼 사소할 수 있다. 허나 말글의 의미에 비추면 그 뜻 이리도 섬뜩하게 삼엄(森嚴)하다. 한 사람(나라)의 말과 글은 그 사람(나라)의 생각과 판단의 바탕이다. 그 바탕이 미래 짊어진다. ‘말버릇’ 주장 계속하려면 공인이기를 포기할 것.

 

■ 토막새김

 

공(公)은 뭐지? 여러 짐작과 학설이 있다. 현대에 가까운 한 학설은, 서로 맞서는 개념인 공(公)과 사(私) 公私에 다 들어있는 ‘사사롭다’는 사(厶)자를 중심으로 실마리를 풀기도 한다. 일리 있다. 그런데 이는 현대의 의미로 거꾸로 추측한 역산(逆算)의 결과로, 어원과는 차이가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부터 여러 그림으로 公자는 등장한다. 유서(由緖)깊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주제라는 뜻이다. 厶나 私는 나중에, 公과 무관하게 등장한 것으로 본다. 문자고고학이다. 

 

여덟 八(팔)은 모양에서 짐작되듯 처음엔 ‘나누다’는 뜻의 그림이었다. 그 아래 나눌 대상(식량 사냥물 등)이 네모나 동그라미와 같은 모양으로 그려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눈다는 것, 분배(分配)는 자못 원초적인 관심사였다. 공(公)의 모양과 뜻이 세워진 것이다.

 

분배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첫 계단인 것이다. 공인 공무(公務) 공공(公共) 등의 뜻(퍼블릭 public)의 출발점이다. 나중에 개개인의 사적 영역이 중요해지면서 公과 私는 같은 자격으로 붙여 쓰는 말이 됐다.

 

연예인이나 상인(商人) 등 유명한 사람을 공인과 혼동하는 사례가 잦다. 그런 인물(셀러브리티 celebrity)들도 나름의 ‘사회적인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사례가 이어지는 것 같다. 알고 쓸 필요가 있는 개념이다. kangshbada@naver.com

 

*필자/강상헌. 언론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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