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안]2차 동학혁명 참가자, 독립유공자가 되어야

125년 만에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지정

박용규 박사 | 기사입력 2019/06/11 [16:25]

125년 만에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지정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국가기념일 행사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에서 근대사를 활짝 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94년 3월에 일어난 1차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투쟁이었고, 같은 해 9월에 일어난 2차 동학농민혁명은 항일 구국 투쟁이었다.


1894년 6월 21일(양력 7월 23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여 고종을 겁박하고 친일 정권을 세웠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한 나라의 존망이 달린 사태였다. 남의 나라의 궁궐을 불법적으로 무단 점령한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이에 동학농민혁명 지도부는 ‘경복궁 점령 사건’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거병하였던 것이다. 이를 흔히 ‘제2차 동학 농민 운동’, 혹은 ‘제2차 동학 농민 혁명’이라고 한다.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한 것이었다.


화력의 열세로 동학혁명군은 일본군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였다.


1894년 11월부터 1895년 3월까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동학농민군은 최소 3만에서 5만 명에 달하였다.(박맹수,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2011, 676쪽.)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 회선포를 가지고 동학혁명군을 대량 학살하였다.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거병한 ‘제2차 동학 농민 혁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5년을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까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거병한 ‘제2차 동학 농민 혁명’ 참여자에 대해 단 한 명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지 않았다.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올해 4월 30일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단과 ‘참여 내용’을 밝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및 유족등록 신청 안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및 유족등록 신청 안내>, 2019.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발간한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강판성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무장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김관서는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영광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김명숙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됨”

 

“김운현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9월 21일(음 8.22) 충청도 충주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됨”

 

“김재희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0월 경상도 하동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총살됨”

 

“김학식은 수접주로서 전라도 광양, 순천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됨”

 

“노인경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함평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봉윤홍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영광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성두팔은 서사(書寫)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고창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이군서는 대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무장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이배지는 충청도 아산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1월 8~9일(음 10.11~12) 사이에 일본군과 관군에게 살해됨”

 

“이상삼은 아전 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전라도 함평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뒤 수성장(守城將) 행세를 하였다가 1894년 12월 9일 체포된 뒤 같은 달 30일 일본군 진영에서 총살됨”

 

“이장태는 접주로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5년 1월 전라도 담양에서 체포되어 일본군 진영에서 처형됨”

 

“이창휴는 충청도 아산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1월 8~9일(음 10.11~12) 사이에 일본군과 관군에게 살해됨”

 

“임제환은 도집(都執)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28일 전라도 해남에서 체포되어 1895년 1월 5일 일본군 진영에서 처형됨”

 

“장지홍은 도집강(都執綱)으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대둔산에 피신하던 중 1895년 2월 18일(음 1.24) 관군 및 일본군에게 사살됨”

 

“조명구는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영광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최문학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무장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최원규는 집강(執綱)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28일 전라도 해남에서 체포되어 1895년 1월 5일 일본군 진영에서 처형됨”

 

“최이현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함평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함”

 

“가병인은 문장준의 권유로 동학에 입도해 9월 10월 태안, 서산, 해미전투와 홍주성 전투에 참여 후 태안 백화산에서 도피 중 일본군에게 총살”

 

“김재황은 장흥 옥산성과 석대전투에 참전하던 중 일본군에 의해 생포되어 처형됨”

 

“김춘필은 동학접주로 1894년 9월 삼례봉기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남덕유산 영각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처형됨”

 

“박기옥은 동학접주로서 무안지역 전투 이후 현경면 평산리에 은신 중에 마을 사람의 밀고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처형됨”

 

“서주흠은 동생 서길흠과 함께 1894년경 광양현 지역에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백운산 동굴로 피신하였으나 발각되어 일본군에게 총살당함”

 

“오정선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곡성에서 접주로 활동하다가 12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남원에서 처형됨”

“전창섭은 1894년 나주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으며, 나주성 북문 안에서 일본군과의 전투 중 사망함”

 

“최기현은 동학농민군으로 1894년 10월 하동군 고성산 전투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895년 6월 23일 처형됨”

 

“황종모는 1894년 3월 김제지역 책임자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으나, 1895년 1월 일본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함”

 

“최장현은 동학접주로 무안지역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나주전투에서 전사함”

 

“최현익은 1894년 안성 지역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다가 귀가하였으나, 12월경 이웃주민의 밀고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함”(경기 안성)

 

“황찬수는 평안도 영유 출신으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전선을 절단하려다가 1894년 10월 황해도에서 일본병사에게 체포되어 처형됨”

 

“이순서는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5년 1월 8일(음 1894.12.13) 황해도 봉산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됨”

 

“이문보는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1월 5일 평창, 후평 등지에서 관군, 일본군과 전투 후 체포되어 처형됨”

 

이처럼 동학혁명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지역 등 전국에 걸쳐 활동하였다. 위의 내용은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한 항일 선열(101명) 가운데 그 일부만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필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유족이 1만 527명이라고 하는데, 유족분들에게 몇 가지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적용 대상자)에 따르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순국선열)”은 독립유공자가 된다.


‘국권침탈’시기를 언제부터 규정하고 있는가? 국가보훈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을 국권침탈시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동학농민혁명(1894∼1895)은 국권침탈시기에 해당한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대상요건>에 의하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1895년)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분”으로,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실이 있는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라고 규정하고 있다. 1894년과 1895년에 걸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나 싸운 동학농민혁명참여자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항거하였고, 그 반대와 항거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독립유공자가 되고도 남는다. 일본군에 의해 억울하게 처형당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항일 선열(101명)은 독립유공자가 될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박용규 박사.     ©브레이크뉴스

여기에 해당자가 있으면, 그 유족은 국가보훈처에 관련 서류(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 제적등본 및 가족관계증명서, 유족의 주민등록등본 등)를 제출하면 된다. 유족이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직접 또는 등기우편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유족이 서류를 갖추어 국가보훈처에 제출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에게 연락을 주면,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다. 참고로 필자는 독립유공 대상자 3명의 서류를 직접 제출하여, 독립유공자로 선정을 해 드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일은 국가보훈처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협업하여, ‘제2차 동학 농민 혁명’ 참여자에 대해 일괄적으로 관련 서류를 만들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해 주는 것이다.


경복궁을 무단 점령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순국한 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해,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해 주는데서 진정한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hispak@hanmail.net


    

*필자/박용규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역사학 박사.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근대사 전공.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역임. 대표저서 <조선어학회 항일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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