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김대중 노선을 회복해야 산다

평화개혁세력의 복원, 열린우리당 우경화 견제가 민주당의 사는 길이다

변희재 | 기사입력 2004/03/28 [18:02]

민주당의 내분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물론 수차례 지적했듯이 민주당이 몇 석의 의석을 얻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추미애 의원이 지적한 대로 햇볕정책과 6.15정신의 계승할 수 있는 정당이 이번 총선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지난 분당 이후 민주당은 끊임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흔히들 철밥통이라 불리는 호남 기득권 세력들이 주도하는 한-민 공조, 그리고 낡은 정치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시대 정치 등등 민주당 스스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치적 행위를 반복한 결과이다. 민주당은 엄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넘겨받은 정당이다. 아직까지도 반 김대중 정서가 팽배한 한국에서 자산은 내팽겨치고 부채만 떠안아 허우적대었으니 지지율 3% 대로 떨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진보 지식인이나 진보 언론에서조차 민주당을 호남 기득권 세력, 한나라당을 영남 기득권 세력으로 분류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민주당이 한-민 공조를 지속할수록 이러한 등식은 점점 더 설득력을 얻어왔다. 서청원 가석방 결의안과 노대통령 탄핵안?이르면 정말 과연 민주당이 그간 한나라당과 대척되었던 정당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불신은 풀리지 않았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당권파의 지지를 받는 전성철, 장성원 등이 주로 tv 토론에 나오고 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을 급진 진보로 몰아붙이고,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함께 묶어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작태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무슨 낯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승계하겠다고 떠벌릴 수 있겠는가?

지난 수 개월 동안 민주당의 약점과 한계는 이미 모두 드러났다. 추미애 의원 역시 이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소장파 의원의 측근은 "정말 우리당에 수구적인 인사들이 이토록 많은지 놀랍다"고 실토했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수많은 실책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고 민주당 전체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면서 민주당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 시민사회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글을 쓴 적이 없다. 또한 민주당의 분당 때에도 신당 창당으로 인해 정치개혁이 가속화될 것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정치개혁의 측면에서만 보면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분당이 가져온 또 다른 역효과 역시 이 시점에서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분당 직후 양당이 개혁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사실 상 서로 죽이기를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했다. 노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민주당의 감정을 자극했고, 이에 민주당은 허둥대며 주적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탄핵까지 밀어붙이게 되었다. 개혁정책으로 경쟁하며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어제의 동지끼리 생사를 건 싸움판만 벌였던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내의 개혁세력은 반으로 갈라져 그 힘이 10분의 1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공병과 의무부대 600명만 파병된 1차 파병 때, 30여명의 평화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일치단결하여 반대여론을 몰아갔던 것에 비해, 분당 이후 최정예 전투병이 파병되는 데도 양당의 의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fta 통과 때는 농촌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반대 의사를 제대로 밝힌 의원조차 드물다. 재벌에 대한 규제가 계속 풀리고 있는 데도 이를 지적할 만한 힘조차 상실했다. 검찰이 칼을 휘두르고 청와대에 관료세력들이 무혈입성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손으로 뽑은 개혁성향 의원들은 자신들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당 내에서 강경파들에 밀려 입지를 잃어버린 결과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국사회의 개혁에 어떠한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열린우리당과의 분열로 인해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기획자들의 공학에서나 통할 법한 논리이다. 책임있는 언론과 논객이라면 그보다는 민주노동당까지 포함하여 진보, 개혁, 평화 세력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 더욱 더 키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선거결과는 그 다음에 따져도 된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은 단일 정치세력이 아니다. 마치 민주당이 정통 야권 세력에다 정권을 잡은 뒤 따라붙은 기회주의 세력이 더해졌듯이, 열린우리당도 그와 똑같이 다양한 세력들이 혼재되어있다. 총선 이후에 열린우리당도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똑같이 이러한 세력들 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석 수에 상관없이 여당 노릇을 해야하는 열린우리당을 과연 누가 견인할 것인가? 열린우리당이 그냥 압승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 상황이 열린우리당 내의 개혁세력에게 힘을 줄 수 있도록 판이 짜여져야 한다.

그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은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등에서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서히 보수화되면서 정책적으로 한나라당과 근사치에 가까워진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만의 견제로 개혁 쪽으로 견인될 수 있겠는가? 이왕이면 북핵문제와 남북경협, 이라크 파병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제대로 된 민주당이 붙어주는 것이 전체적으로 개혁세력에게 힘을 더 실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까지는 민주당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혀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추미애 의원과 소장파들이 선대위를 구성했다고 해서 갑자기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거결과에 당분간 신경을 끊으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몇 석을 얻든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까지 왜곡된 민주당의 노선이 제대로 잡히도록 최소한 언론과 논객의 양심으로서 관심을 갖고 비판과 격려라도 해주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토록 망가지게 된 데에는 언론의 탓도 엄연히 있다. 언론이라면 파당적인 관점에서 특정당의 승리를 위해 타 당을 죽이는데 힘을 쏟으면 안 된다. 한나라당까지 포함하여 그 정당이 제대로 된 길을 가도록 옆에서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다지 좋은 예는 아니지만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에 갖고 있는 관심의 반의 반이라도 개혁언론이 민주당에 보여주었더라면 민주당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사라져야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자 구도가 형성된다는 반개혁적인 미신은 하루빨리 버리기 바란다. 그렇게 양자구도를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술에 취해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 사람이 일어나려고 할 때는 누구라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상식이다. 이는 민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개혁될 때도 똑같이 해당되는 상식이다.

지난 수 개월 간 이미 민주당이 나아가야할 길은 정해졌다. 청와대가 관료에 장악된 이상 열린우리당이 총선 이후에라도 뚜렷한 개혁노선을 펴나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선명한 진보노선을 표방할 것이다. 민주당은 정통야당으로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정책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김대중의 dj노믹스를 계승하고, 국제와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보다도 더욱 더 선명한 평화노선을 선언해야 한다. 다음 번 tv 토론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조를 비판하는 한심한 짓거리 대신, 민주노동당과 함께 이라크 파병 철회를 공약으로 내세워라. 그렇게 하면서 시민단체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 내의 평화개혁세력과 연대도 새롭게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탄핵역풍으로 오히려 정책선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총선판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장본인도 역시 민주당이다. 그 점에서 민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우파 개혁노선을 되찾는다면, 낡은정치 청산과 함께 한국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들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민주당이 힘없이 죽어서는 안 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보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정통야당 지지자들을 다시 규합할 수 있다면 설사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더라도 훗날 역사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열된 개혁세력이 다시 모이고, 잃어버린 평화개혁 노선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한다는 이 말, 지금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말이고, 이 말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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