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을 위하여-(224) 앙상블 이도(E-Do)와 철현금 연주자 유경화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1/25 [05:02]

지난 10월 9일 오랜 역사를 가진 런던 쇼디치의 거대한 가죽공장 부지에서 대중공연센터로 탈바꿈한 복합문화 공간 리치믹스(Rich Mix)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환상적인 한국 음악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바로 철현금(鐵絃琴)연주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유경화 교수가 이끄는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의 공연이었다. 이는 주영 한국문화원(원장 용호성)이 개최한 '2018 K-뮤직 페스티벌'의 두 번째 공연이었다.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품은 철현금(鐵絃琴)을 연주하는 유경화 교수를 리더로 베이스 연주자 서정철, 전통 악기 대금과 신생 악기 핸드팬(Handpan)을 연주하는 이경구, 퍼커션(percussion) 연주와 악기의 소리를 의성화하는 구음(口音)의 이준형, 어쿠스틱 기타 조영덕으로 구성된 앙상블이다. 공연과 함께 음악에 담긴 감성을 숨결처럼 표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풍연 교수의 영상이 어우러졌다.
 

▲ 2018 k-뮤직 페스티벌 철현금(鐵絃琴)을 연주하는 유경화와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 공연 장면 자료제공: 주영한국문화원     ©브레이크뉴스

 

 

이도(E-Do)의 공연은 유경화 교수의 작품 ‘망각의 새’(Bird of Oblivion)로 시작되었다. ‘망각의 새’는 2005년 발표된 유경화의 철현금 연주 음반 공감(共感)의 타이틀 곡이다. 구도의 길에 들어선 비구니(比丘尼)의 세속의 삶과 수행의 번뇌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이야기를 음악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철현금의 무한한 빛깔의 음색을 가진 악기가 펼쳐내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음악이다.

 

이어 앙상블 이도는 우리의 전통음악 ‘수궁가’와 ‘시나위’ 등 6곡을 공연하였다. 전통악기 철현금과 장구와 대금 그리고 서양악기 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와 핸드팬과 퍼커션의 타악기로 구성된 앙상블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감성의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깊은 사유의 명상이 선율로 펄럭거리고 들썩거리는 신명이 안겨드는 공연에 신비한 빛깔의 사운드를 경험했다는 현지의 많은 언론과 관객의 평가가 이어졌다. 또한, 음악의 섬세한 흐름을 깊은 울림으로 표현한 영상작품에 대한 호평도 빼놓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도(E-Do)의 공연에 대한 현지 언론의 관심은 놀라웠다. BBC 라디오 3은 공연이 있기 전 10월 5일 주요한 음악공연 가이드 방송에서 이도(E-Do)의 공연을 상세하게 안내하였다. 또한, 공연이 끝난 다음 날 10월 10일 예술인을 위한 문화공동체 '런던 뮤지션 콜렉티브'(London Musicians 'Collective)에서 운영하는 FM 라디오 방송 레저넌스(RESONANCE)는 이도(E-Do)를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라이브 연주와 함께 세세한 이야기를 청취자에게 전하였다. 

 

이어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지의 ‘로빈 덴슬로우’(Robin Denselow) 기자는 ‘정말 흥미롭고 놀라운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는 평가와 함께 유명 월드뮤직 매거진 송라인즈(Songlines)에서도 상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어 BBC 라디오 3의 월드 뮤직을 소개하는 프로 ‘뮤직플래닛’(Music Planet)의 금요일 진행자 로파 코타리(Lopa Kothari)는 월드 뮤직 앙상블 이도(E-Do)를 해당 주간의 주요한 공연으로 편성하여 스튜디오에 초대하였다. 방송은 수궁가 연주와 함께 수준 높은 음악의 성과로 평가하면서 그룹의 리더인 유경화의 철현금 연주를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필자는 이도(E-Do)의 공연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을 세세하게 살펴 가던 중 이와 같은 BBC 라디오 3의 월드 뮤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뮤직플래닛의 편성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는 브라질의 음악가로 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세계적인 음악가 ‘헤르메토 파스콜’(Hermeto Pascoal. 1936~)이 우리의 음악 그룹 이도(E-Do)와 함께 편성되어 있었다. 이는 영국 현지 음악 전문가들이 이도(E-Do)의 음악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82세의 세계적인 원로 음악가 ‘헤르메토 파스콜’은 키보드와 아코디언에서부터 플루트와 색소폰 등 셀 수 없는 악기의 능숙한 연주자로 월드 음악계에선 천재적인 즉흥 연주의 종결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특히 그의 색소폰 연주의 절묘한 호흡의 테크닉은 환상적인 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헤르메토 파스콜’에 대한 가장 극명한 평가는 미국의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가 생전에 ‘헤르메토 파스콜’에 대하여 그의 인상적인 음악은 우리의 생애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독보적이라고 언급한 사실에서 쉽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대체로 재즈에 대한 역사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뉴올리언스 재즈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1~1971)에서 비밥(bebop)의 창시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를 지나 마치 조경으로 다듬어 놓은 듯한 정원과 같은 의미가 있는 ‘쿨재즈’(cool jazz)의 실질적인 뮤지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일즈 데이비스’가 세기의 인상적인 음악가로 평가한 ‘헤르메토 파스콜’과 함께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가 영국 BBC 라디오 프로에 함께 소개된 사실은 우리의 음악에 대한 진정한 자긍심을 갖게 하였다.

 

▲ BBC 라디오 3 뮤직플래닛(Music Planet) 출연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 연주 장면 출처: 주영한국문화원     ©브레이크뉴스

 

아티스트 유경화는 누구인가?

그는 4살 나이부터 전통무용을 배워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거문고를 전공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유경화의 음악적 배경을 상세하게 살펴보면 실로 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먼저 우리의 민속 음악을 대표하는 사물놀이를 잠시 살펴야 한다. 1971년 창덕궁 옆에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의 조언과 자문에 바탕을 두어 우리의 생활 의식과 현대적인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건물이 세워졌다, 선구적인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의 작품이었다. 이후 1977년 신관 형태의 건물이 다시 건축되면서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건물 ‘공간’(空間)이 세워진 것이다.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아호 혜곡(兮谷)은 일제 강점기 시대 상황에서 모든 재산을 바쳐 민족의 정신 문화재를 지킨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 내려준 아호였다.
 
당시 원로 문화 예술인들의 요청으로 ‘공간’(空間) 건물 지하에 소극장 형태의 공연장이 만들어졌다. 바로 ‘공간사랑’이다. 1978년 2월 이곳에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등 4명이 민속놀이 음악 '웃다리 풍물'을 발표하면서 ‘사물놀이’가 탄생하였다. 이는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으로 우리나라 민속학 정립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남긴 심우성(沈雨晟. 1934~2018) 민속학자가 창안한 명칭이었다.

 

이후 우리나라 사물놀이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가장 깊은 의식을 헤아려간 김용배(1953~1986)가 1984년 국립국악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물놀이패를 창단하였다. 당시 김용배가 국립국악원 옆에 있었던 국악고등학교에 민속 음악의 교육과 후진 양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사물놀이반을 모집하였을 때 유경화와 동기생이었던 해금연주자 강은일과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등이 함께 사물놀이를 배웠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절친이었던 이들이 각 분야의 유망한 솔리스트가 되어 2000년 프로젝트 그룹 ‘상상’으로 등장하였다.

 

유경화는 이외에도 타악기의 명인 김덕수와 아쟁의 명인 이태백 교수 그리고 타악기 음악의 중요성이 절대적인 전통무속 동해안별신굿의 김정희 명인과 무속음악의 신들린 타악기 연주로 잘 알려진 김명대 명인에게서 연주법과 무속음악이 품은 장단과 가락을 공부하였다. 그는 특히 진도 북춤으로 당대의 예인으로 평가받았던 전남 진도 출신의 박병천(朴秉千. 1933∼2007) 명인에게 고법(鼓法)과 춤과 소리와 사설로 구성된 종합적인 음악성을 품은 진도 씻김굿에 내재한 전통 무속의 다양한 음악들을 사사하였다.  
       
이와 같은 유경화가 철현금(鐵絃琴)연주자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가 밝힌 내용에 의하면 거문고를 전공한 그가 1990년 무렵 전남 출신의 천재적인 국악인 ‘안향련’(安香蓮. 1944~1981)이 거문고 명인 임동식과 함께 연주하였던 철현금 연주 녹음테이프를 듣고 그 소리에 매료되어 철현금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천재적인 국악인 ‘안향련’에 대하여 잠시 살펴본다. ‘안향련’은 전남 나주지방에서 농악대의 꽹과리와 피리연주로 일대에 알려졌던 상쇠 안영길의 손녀다. 안영길의 두 아들 안기옥(安基玉. 1894~ 1974)과 안기선(安基先. 1904~1959)은 모두 국악의 길로 들어섰다. 바로 안기선의 딸이 안향련이다. 이와 같은 천재적인 국악인 안향련과 연관된 이야기는 실로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여기서는 철현금 연주자 유경화의 철현금 입문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인 까닭으로 필요한 내용만 요약하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안향련의 아버지 안기선은 판소리 다섯 마당에 능한 소리꾼으로 1953년 목포 정악원이 조직되면서 소리 사범으로 초빙되어 안향련의 나이 9세에 목포로 이주하였다. 당시 목포에는 전남 곡성 출신의 여류 명창 장월중선(張月中仙. 1925~1998)이 있었다. 장월중선은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존재한 세기의 명창 임방울 극단과 1942년 창설된 조선창극단에서 일하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목포 인근 오늘날 신안군 섬으로 피난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부군의 고향인 목포에 정착하여 사설 국악원을 운영하였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 안향련의 큰아버지 안기옥(安基玉. 1894년~1974)에 대한 이야기다. 1883년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전남 영암 출신의 김창조(金昌祖. 1865~1919) 명인이 1902년 나주에 공연을 왔을 때 상쇠 안영길의 8살 아들 안기옥을 보았다. 전언에 의하면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쪽에서 신들린 듯 가야금 타는 흉내를 내는 너무나 어린 소년의 비범한 손놀림이 김창조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는 것이다, 저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상쇠 안영길의 아들이라는 대답에 그를 데려가 10년간 가르쳤다. 이후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거문고 산조를 창시한 백낙준(白樂俊. 1876~1939)을 찾아 다시 거문고를 배웠다. 백낙준은 1896년 거문고 산조를 창시한 인물이다. 이후 안기옥은 1930년 무렵 전남 목포에서 활동하다가 1934년 창설된 전통 판소리와 기악의 연구단체 조선음악연구회에 몸을 담았다. 이 단체는 발족 이후 조선성악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1936년 함흥으로 이주하여 후진을 양성하던 중 1942년 당대의 명창 이화중선(李花仲仙. 1898~1943)과 해금과 가야금의 명인 유대복(柳大福. 1907~1964) 그리고 충남 홍성 출신으로 당대 소리북의 명고수 한성준(韓成俊. 1875~1941)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순회 위문 공연을 하고 다음 해 돌아왔다. 이때 명창 이화중선이 귀국선에서 풍랑으로 인한 사고와 스스로 세상을 버린 추정이 엇갈리는 비통한 이유로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에 나라의 소리를 가슴에 안겨주던 우리의 명창을 잃고 말았다.

 

여기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충남 홍성 출신 고수 한성준(韓成俊)을 그냥 지나쳐 가기엔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 많다. 그는 고종 임금 앞에서 춤을 선보인 근대무용의 아버지로 우리 전통무용의 연구와 많은 공연 기획을 통한 체계적인 계승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종합 잡지 모던 일본사(現代日本)가 1940년 제정한 조선 예술상의 1941년 제2회 무용 부문 수상자였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이 회화 부문 수상자였다. 이러한 역사를 헤아리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1899~1931)에 이어 아동문학의 산맥을 형성한 아동문학가 ‘마해송’(馬海松. 1905~1966)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필자가 좌충우돌처럼 철현금 아티스트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방대한 이야기에 접근하는 부분에 대하여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만큼 소중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한 사실이 없는 점에서 필자가 칼럼의 내용 중 연관성을 가진 부분에서 이를 이야기하는 행간의 의미를 잘 살펴주기를 거듭 바란다. 이와 같은 조선예술상을 제정한 일본의 잡지 모던 일본사(現代日本)는 1930년에 창간된 잡지이다. 바로 아동문학가 마해송이 초대 사장이었다. 이후 조국 광복이 이루어져 1945년 귀국 때까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제정한 상이었다. 바로 이러한 일본의 잡지 모던 일본사(現代日本)는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대중을 겨냥하여 창간한 계열잡지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는 통속 소설 ‘진주부인’으로 잘 알려진 작가 ‘기쿠치 간’(菊池寛. 1888~1948)이 1923년 1월 창간한 잡지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TIME이 1923년 3월에 창간된 사실에 비추어 선구적인 역사를 살피게 된다. 바로 우리의 아동문학가 마해송이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창간과 함께 편집부에 입사하여 창립자 ‘기쿠치 간’에 이은 사실상 편집장과 다름이 없었던 내용을 일본의 문예춘추사는 편집부 입사라는 짤막한 자료로 대신한다. 마해송은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니혼 대학 예술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 문예춘추사에 입사하였다. 이후 1930년 모던 일본사(現代日本)가 창간되면서 사장으로 옮겨간 사실만 보더라도 문예춘추에서의 역할은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조선의 인물이 일본이 자랑하는 최대 잡지의 편집에 미친 영향을 거론하려는 그런 소아적인 생각이 아니다. 문예춘추가 제정한 순수 문학에 중점을 두는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대중성을 지향하는 ‘나오키상’(直木賞) 이 바로 세 차례에 걸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낳은 직간접적인 영향의 산실이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일본 순회공연을 다녀온 안기옥은 이후 하늘이 내린 민족의 몸짓을 사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9)와 전통 예술 연구에 열정을 펴다 조국 광복을 맞았다. 다음 해 1946년 월북하여 ‘조선민족음악연구소’를 이끌며 북한 전통음악의 바탕을 일구는 업적을 남기고 1973년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월북한 형 안기옥을 두었던 운명으로 동생 안기선(安基先. 1904~1959)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에 술로 고통을 달래다가 천재적인 딸 ‘안향련’(安香蓮. 1944~1981)이 1957년 13살 때에 전국 어린이 명창대회에서 장원 하였던 기쁨을 안고 1959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안향련은 여러 스승을 사사한 이후 1970년 김소희(金素姬 1917~1995) 문하에 전남 진도 출신의 신영희와 목포 출신의 박계향과 함께 입문하였다. 당시 TV 프로그램의 국악 지원에 힘입어 천재적인 명창의 이름을 날렸으나 빗나간 사랑의 아픔을 안고 1981년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필자는 당시 목포에서 성장하면서 여러 인연으로 명창 안향련의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필자의 어린 기억에 의하면 그가 상당한 활동을 하던 시기에도 목포에 자주 내려와 활동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필자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목포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 조선내화의 창립자 성옥 이훈동(李勳東. 1917~2010) 회장이 종친이셨으며 선친과 각별하여 지금은 성옥기념관으로 자리한 자택에 선친을 따라갔을 때마다 현관을 들어서면 놓여있던 당시는 상상할 수 없는 진귀한 전축으로 알고 있었던 기계가 있었다.

 

당시 기계는 둥근 반구형의 유리로 씌워진 거대한 크기로 마치 건반처럼 나열된 숫자의 버튼을 누르면 해당 음반의 음악이 나오는 기계였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틈에 나는 신기한 기계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 기계에 명창 안향련의 음반이 걸려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에 칼럼을 쓰면서 목포 성옥기념관에 이와 같은 기계의 소재를 문의하였다.

 

기념관 학예실의 답변은 우리의 소리와 함께 음악을 좋아하였던 이훈동 회장이 1960년 무렵 독일에서 수입한 자동레코드 재생기로 현재는 작동되지 않아 독일에 수리를 의뢰하였지만 끝내 복원되지 못하고 현재 성옥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살펴보니 감회가 밀려온다. 이는 1947년에 제작된 월리처(WURLITZER)사의 레코드 자동재생기 주크박스(juke box)였다.

 

목포의 향토 사학자 박준상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훈동 회장은 임방울 명창의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특히 애창하여 신영희 명창에게 사사하여 직접 녹음하였을 만큼 소리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안향련 명창이 어려웠던 시절 늘 그를 격려하며 천재적인 소리를 아꼈다는 여러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 (좌로부터) 김용배 / 박병천/ 안향련/ 철현금 출처:https://wikipedia.org/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천재적인 명창이며 다양한 악기에 능하였던 안향련 명창의 철현금 연주에 매료되어 전공인 거문고에서 철현금 연주자의 길을 선택한 유경화는 이 시대 가장 깊은 울림의 철현금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철현금(鐵絃琴)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악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철현금(鐵絃琴) 악기는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중국에 전한 악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로마교황청은 중국의 선교 활동에 큰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로마 교황청은 당시 중국과 많은 무역을 하고 있던 포르투갈의 도움을 받아 1577년 선교사 이탈리아 출신의 ‘마테오 리치’와 ‘미켈레 루지에리’(Michele Ruggieri. 1543~1607)등 선교사 일행을 파견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수학과 천문학에 능한 명석한 두뇌의 선교사였으며 ‘미켈레 루지에리’는 언어에 능하였다. 이들은 포르투갈로 가서 무역선을 타고 인도를 거쳐 1582년 마카오의 포르투갈 무역 기지에 도착하였다. 이후 중국 광동성에 체류하면서 중국어를 공부하여 중국 문화와 풍속을 익숙하게 파악하였다. 이때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음역하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이마두(利瑪竇)로 ‘미켈레 루지에리’는 라명견(羅明堅)이라는 중국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포르투갈어와 중국어 사전을 만들어 두 나라의 우호적인 협조를 끌어냈다. 이어 광동성 총독의 요청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유럽식 세계지도인 1584년 제작된 ‘여지산해전도’(輿地山海全圖)와 1600년 제작한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에 이어 1602년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를 제작하였다. 바로 우리나라 숙종 시대인 1708년 이를 모사한 서양식 세계지도가 오늘날 규장각에 소장된 보물 제849호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이다.

 

당시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 황실의 선물용으로 가져온 자명종 시계와 망원경 등과 함께 ‘타현 덜시머’(hammered dulcimer)라는 악기가 있었다. 이는 1500년 무렵부터 유럽에서 제작되어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전하였던 시기에는 유럽의 주요한 왕실에서 사용되던 악기이다. 바로 철현금의 원형으로 기록되어온 악기이다.

 

이는 쉽게 현악기와 타악기가 어우러진 악기로 오른편에 베이스 브릿지와 왼편에 고음 브릿지가 있는 사다리모형의 악기로 현을 작은 봉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필자가 이탈리아 메디치가에서 최초로 제작된 피아노의 역사를 찾아 오랫동안 살펴온 자료에 의하면 오르간을 현으로 바꾼 전환적인 발상에서 유래된 악기이다. 이는 엄밀하게 중세시대부터 존재한 악기로 이를 발전시켜 ‘프살테리움’(psalterium)과 같은 악기가 생겨났고 더욱 발전된 메커니즘으로 ‘하프시코드’가 탄생하면서 ‘피아노’ 악기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이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어 중동지역은 물론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되어온 ‘산투르’(santur)악기에서 그 역사적 근원이 설명된다.

 

이와 같은 내용과 함께 18세기 청나라 시대에 유럽에서 전해온 ‘양친’(扬琴) 과 ‘다친’(打琴) 으로 부르는 서양에서 전해진 악기 양금(洋琴)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더욱 상세하게 유럽(歐羅巴)에서 전해진 악기라는 뜻으로 ‘구라철현금’(歐邏鐵絃琴)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 또는 ‘구라현소금’(歐邏絃小琴)으로 전해진 양금(洋琴)이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유경화 교수가 연주하는 철현금은 1940년대 남사당 인간문화재였던 김영철 명인이 거문고와 하와이안 기타의 속성을 헤아려 제작한 엄밀하게 개량형 우리의 악기다. (이 부분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기회가 되면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우리의 근대 음악사에는 이와 같은 철현(鐵絃)을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양금에서부터 개량형 가야금과 개량형 거문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악기가 존재한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일제 강점기 이전 대한제국 시대인 1900년 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되면서 군악대장을 맡았던 이윤용(李潤溶(1897~1910)이 펴낸 철현금보(鐵絃琴譜) 이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독일의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를 초빙하여 그가 1901년 2월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서양식 군악대장직을 수행하며 군악대의 바탕을 일구었던 선구자이다.

 

독일의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는 우리의 근대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독일 드레스덴(Dresden)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군악대에 근무하던 중 1879년 일본에 초빙되었다. 당시 일본은 막부체제를 청산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서양문화에 대한 대폭적인 수용을 가져오던 때였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일본에 서양음악을 실체적으로 전한 대표적인 인물로 다양한 서양 악기들을 도입한 인물이다. 일본의 근대식 군악대는 1869년 요코하마에 주둔하였던 영국 육군 보병 군악대를 모델로 시작되었다, 이후 1871년 일본군의 육 해군 편제가 세워지면서 군악대가 창설되어 1872년 일본 최초로 도쿄 긴자 남쪽인 신바시(新橋)에서 요코하마 구간의 철도 개통식에 군악대가 등장하였다. ‘프란츠 에케르트’는 1883년부터 1886년까지 일본 교육성의 음악 분과에 일하면서 일본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현대 음악으로 편찬한 인물이다, 이어 1888년 일본 황실에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으며 1892년부터 1894년까지 일본 군악대에 독일 군악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프란츠 에케르트’는 1880년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1899년 3월 일본을 떠나 독일로 돌아가 프로이센 왕립 악단의 단장이 되었다. 1900년 대한 제국의 군악대가 창설되면서 주한 독일공사를 통하여 그를 초빙하여 1901년 2월 그가 한국에 왔다. 당시 우리나라 대한제국은 서양의 음악에 대한 미지의 나라로 50인조 정규 군악대의 각종 악기를 가지고 한국에 온 그는 군악대장 이윤용이 이끌던 군악대를 지도하여 탑골공원에서 정기적인 연주회를 통하여 서양음악을 소개하였다.

 

그는 1902년 8월 오적의 매국을 막지 못한 속죄로 자결하여 충절의 삶을 바친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작사에 곡을 붙여 ‘대한제국 애국가’(大韓帝國 愛國歌)를 만들었다. 이후 1910년 8월 29일 국권을 침탈한 ‘한일합병조약’으로 군악대가 해체되어 이왕직(李王職) 양악대로 바뀌었고 그가 만든 ‘대한제국 애국가’ 대신에 그가 만들었던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君が代)가 울려 퍼지는 굴절된 역사의 상황을 맞았다. 그는 6년 후 지병으로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 (좌로부터) ‘마테오 리치’/ ‘프란츠 에케르트’/ 1947년 제작 월리처(WURLITZER)사 레코드 자동재생기 주크박스(juke box) 목포 성옥기념관 소장 / 안향련 민요선집 음반 출처: https://en.wikipedia.org/ 목포 성옥기념관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초대 군악대장을 지냈던 이윤용(李潤溶(1897~1910)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펴낸 철현금보(鐵絃琴譜)는 많은 연구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많은 이야기 속에 필자는 철현금 연주자 유경화의 열정과 노력으로 우리의 개량 악기 철현금이 세계의 무대에서 깊은 관심과 호평을 받는 사실에 대하여 마치 철현금 악기가 중국에 악기를 모방한 악기로 해석되는 사실을 경계한다. 기회가 되면 한층 상세한 이야기로 이와 같은 역사성을 짚어 볼 것이다.  

   

우선 간략하게 요약하면 전통 현악기의 대표적인 거문고와 가야금이 공명판 위에 줄을 놓는 현침(絃枕)을 통하여 부들 끝에 현을 맨다. 이어 줄마다 안족(雁足)을 세워 그 위에 줄이 얹힌다. 많은 양금류도 이처럼 현이 얹히는 원리는 비슷하다. 그러나 철현금은 기타와 같은 공명판 위에 줄이 얹히는 것이 아닌 떠 있는 것이다. 또한 거문고의 술대를 사용하는 연주법과 함께 왼손의 농옥을 이용하여 음정을 끌어낸다. 이는 이론적으로 큰 폭의 피치(pitch)를 가진 다양한 공명으로 많은 음색이 가능하지만, 연주자에겐 극히 섬세한 음감과 기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악기이다. 가장 쉽게 말하면 다양한 음색의 섬세한 소리를 내는 만큼 그 소리를 표현케 하는 극히 섬세한 감각적인 기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많은 악기를 접한 외국의 주요한 음악평론가들이 유경화 아티스트의 철현금 연주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유경화의 철현금 연주는 우리의 민속 음악의 무악과 농악에 녹아내린 무수한 변주의 타악기의 리듬 즉 장단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바탕이 철현금이라는 악기의 섬세한 빛깔로 번져가면서 외국의 음악인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신비의 음악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내용은 영국 BBC 라디오의 지난 10월 12일 방송 월드 뮤직 소개에서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헤르메토 파스콜’(Hermeto Pascoal. 1936~)과 함께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E-Do)와 유경화 철현금 연주자가 당당하게 소개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에 우리의 개량 악기 철현금으로 세계를 빛낸 유경화 아티스트의 향후 음악 세계가 한층 기대된다.

 

이어 소리의 정신으로 세계를 걸어가는 아시안 뮤직 앙상블 어반사운드의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칼럼은 (225) ‘아시안 뮤직 앙상블 어반사운드에 거는 기대’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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