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 시인 새책 “어머니 봄날은 간다”…그 숙연함에 대하여

정신분석상담가 “죽음은 생명이다(태교 49개월)”는 태교 관련 책도 발간한 작가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8/11/06 [11:33]

▲ 윤정 시인.     ©브레이크뉴스

윤정 시인의 “어머니 봄날은 간다”는  새로운 시집(도서출판 북보자기)이 나왔다. 아니 이 책은 시집일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실기록이랄 수도 있다. 사실과 시의 융합이 시도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라는 삶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색깔 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숙연함”이 묻어 있다.

 

시인 어머니의 어머니(외할머니)가 태어나던 날 어부(부산 광안리)였던 아버지(외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도 일찍 사망했다. 고아처럼 자라난 어머니의 결혼생활도 순탄치 안았다. 이 책에서는 혼자되어 자녀를 키웠던, 시인 가족을 키웠던, 시인 어머니의 숨김없는 사생활이 노출된다. 윤 시인은 서문에서 어머니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윤 시인은 “어머니는 봄날이 무르익은 날 태어나셨다. 배움이 없어 글도 모르고 교양도 없었지만 강인한 생활력으로 자식들과 손녀 손자를 키우셨다. 철이 들면서 본 어머니는 늘 고무다라이와 함께 있었다. '고무 다라이(대야)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산다. 이 대야에 모래를 담으면 곤방 잡부가 되고, 술과 과자를 담으면 장사꾼이 되고, 생선을 담으면 생선장사가, 다라이에 담아지는 대로 사고팔면 묵고 살 수 있다.' 노동판에서 돌아와 술 한 잔 하시며 하시던 어머니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삶은 비극적인 상처의 연속이었다. '단디 살아라! 넘쳐도 문제고, 부족해도 문제다.' 어머니는 삶이 어떻다는 걸 일찍이 아셨기에 상처를 입더라도 피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 머문 상처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다. 자신을 치장할 만한 교양이 없으셔서인지 있는 그대로 눈물과 회한과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결국은 역동적인 삶을 일구어내셨다. 그 정신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 게 삶의 귀감이 되는 큰 선물이다. ‘어머니’라는 말은 딸도, 여자도, 아내도 대신할 수 없는 기표이다.”면서 “봄의 생명력은 두꺼운 겨울의 옷을 찢고 피어난다. 봄날은 숨김없이 드러나는 진실한 생명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봄날을 기다린다. 어머니는 숨김없이 드러내는 봄날의 꽃처럼 고통과 상처를 사랑으로 꽃 피우신다. 그래서 생명이 그리울 땐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건 내 속의 나다. 어머니는 나보다 먼저인 나다. 어머니 속으로 들어가면 우주와 만난다. 우주가 머물러 있는 생명 터전에 대한 경외심의 또 다른 이름이 어머니이다. 나의 삶 속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에게 가서 생명의 고향을 느끼고 돌아온다.”고, 애써 거부하거나 숨겨왔던 모성의 의미를-어머니와 관련된 감정을 토해냈다.

 

▲ 윤정 시인(왼쪽)과 정채 화가(오른쪽). 책 속의 정채 화가 삽화가 글을 더 빛나게 했다.     ©브레이크뉴스

 

윤 시인은 비비꼬였던, 상처 투성이의 어머니, 아니 고통과 고난어린 운명적인 삶의 길과의 조우를 가감없이 쓰고 있다.


“부모의 부재(시인 모친의 경우)라는 커다란 상실 앞에서 아이는 묻고 따지고 싶은 게 많아진다. '어머니가 왜 죽었어?' 언니와 만난 날 아이가 묻는다. '아버지는 왜 내가 태어나는 날 돌아가신 거야?' 오빠와 만난 날 아이가 묻는다. 아버지는 어부였는데 돈을 벌러 바다에 나갔다가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대신 바다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할 정도로 각박했던 삶이 아버지를 데려갔다. 어머니 아버지는 영영 가버린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산에 누워 계실 뿐이고, 아버지는 바다에 누워 계실 뿐이다. 봄꽃 향기가 드높은 날에도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나던 피고름 냄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가 첫사랑의 기억처럼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봄날은 간다.”

 

▲송혜근 소설가(오른쪽 두번째)가 윤정 시인(중앙)의 시집을 평하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그녀는 바다로 뛰어든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듯 편안하고 자유롭다. 물질을 하는 손길이 능숙하다. 예전에는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낀 꼬맹이였는데, 이제는 다른 해녀들과 어 깨를 나란히 한다. 바다는 그녀를 배신하지 않고 늘 먹을 것을 내어준다. 그녀가 물질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뛰어 논다. 바다는 먹을 것도 내어주고 놀이터도 되어 준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새벽 일찍 바닷가로 나가서 바다가 토해 낸 미역과 파래를 줍거나 까꾸리로 잡아채서 건져 올린다. 이도저도 마땅찮으면 고깃배가 들어온 선창가로 가서 버려진 생선을 줍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서 버려진 배추 잎을 줍기도 한다. 움적거리면 살 수 있다. 체면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장바닥에서 남정내들과 싸움질도 한다. 그런 모습 속에서 예전에 고개도 들지 못했던 수줍은 처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어머니의 봄날은 이미 지나갔다.”

 

”아버지는 대학을 나와 군에서 수송 장교로 복무했다. 그러던 중 미군 차량의 부속을 빼내어 민간인에게 팔다가 일반병으로 강등되셨고, 다시 특무상사로 진급되어 제대하신 분이 다. 6.25전쟁과 여수순천반란사건에 공을 세워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아버지는 사춘기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새 어머니와 불화를 겪으면서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 속에서 성장하셨다. 6.25때 북한군을 사살하고 시체에서 창자를 끄집어내어 목에 감고 찍은 사진을 보았을 때 아버지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결혼한 후에 원망과 분노를 나의 어머니에게 투사하며 사셨다. 한글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업신여겼고 툭하면 폭행을 했다. 어머니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들르는 남편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은 반찬이 풍성했고, 아껴둔 이부자리도 꺼내셨다. 오랫동안 나는 그런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부모 없는 서러움을 아셨던 어머니가 우리들을 자신처럼 만들고 싶어하지 않으셨구나 하고 이해했다.“

 

“금년 설 어머니 집에는 큰딸의 약혼자도 인사차 왔다. 어머니는 큰 손녀 사위감을 반갑게 맞았다. 설상을 물리고 나서 모두 모여 앉았을 때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오면서 우리 큰 손녀도 사랑하고, 둘째 손녀도 사랑하고, 셋째 손녀도 사랑하고, 막내 손자도 사랑하려고 살아왔지만, 다 거짓말 아이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사랑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 아픔을 사랑할라꼬 살았다 아이가!' 어머니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철학책과 종교책을 뒤져가면서 공부하고, 정신분석상담을 통해 깨달은 것을 어머니는 그저 묵묵히 몸만 쓰면서 살아오시면서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던질 만큼 고통스러워도 남편과 자식, 손자손녀와 이웃을 사랑해야 했다는 어머니의 삶은 놀라웠다. 어머니가 하신 생명의 고백 속에 어머니의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아서 봄날에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화려한 봄은 늘 지나가지만 생명의 봄은 봄을 기다리며 산다. 그 봄 속에 핀 꽃이 어머니의 생명이다.”

 

이 책이 시집이라면 '어머니'를 시제(詩題)로한 연작시집일 수 있다. 윤 시인은 계속해서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이 책에 가득 담았다. 아래 인용되는 시들은 한결같이 '어머니'가 공통된 시제다.

 

“어쩌면 당신 가슴에 슬픔은/별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어쩌면 당신 가슴에 비극적 운명은/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있을 거예요/어쩌면 당신의 잔인한 봄날은/찬란한 희망의 눈물로 닦아 놓을 거예요/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나보다 먼저인 당신의 봄 속에서/나는 살아갑니다.”

 

위 시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향해 “당신의 봄 속에서 나는 살아갑니다”고 읊조리고 있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잔인한 봄날을 찬란한 희망의 눈물로 닦아 놓았다고 쓰고 있다. 시에서는 비극을 노래하지 않았다. 축약된 어머니의 일생을 투영시키면서, 다만 희망을 건져 올렸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들의 생명이다.


시인은 어머니라는 시에서 “고통스럽다면/그만큼 희망이 있다는 거다/희망이 있다면/살아갈 수 있다는 거다/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그리움에 다가설 수 있다는 거다/그리움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당신으로 살아간다는 거다.”고 했다. 고통에서 희망이라는 묘약을 찾아냈다.

 

시인은 “바싹 말라 버린 낙엽을 보았는가?/홀로 대지를 뒹구는 것이 아니다/뜨거운 태양을 마셨고/그늘의 쉼터를 내어 주었고/찬 서리 맞으면서 달콤한 열매를 주었다/당신 몸속에 흐르는 붉은 피는/외로움으로 피어난 꽃이다.” 시인은 시어로서 “달콤한 열매”라고 구사했다. 외로움으로 피어난 꽃으로 대칭시켰다.

 

▲ 윤정 시인의 새책 "어머니 봄날은 간다"    ©브레이크뉴스

시인은 어머니라는 시에서 “바다에 들어가면/가질 것이 무엇인가?/바다 속은 넉넉하다/바다에서 돌아오면/가질 것이 무엇인가?/하늘 나는 갈매기는 가진 것이 없다/어머니! 나를 위해 당신은/아무 것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고, 무한세월을 견뎌온 '바다'를 건드렸다. 어부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시적 명상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어머니가 되겠습니까?/눈물을 흘리지 않고 웃을 수 있습니까?/눈물을 흘리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까?/산통 끝에 울부짖는 눈물로 태어났습니다./어머니는 어떤 눈물도 받아내며 계셨습니다./눈물이 흐르는 날/나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슬퍼도 웃을 수 있는 건/ 어머니 가슴에 피어난 나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길 앞에 서 있다/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시고 있다/아버지의 죽음 위에 어머니의 죽음 위로/걸어가신다/나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돌아올 수 없는 길 앞에 서 있다/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시고 있다.“

 

“아직도 닿지 않은 입술/아직도 입술에서 나오지 못한 이름/아직도 안겨보지 않은 품/마지막 나의 입술이 닿고 싶은 그대/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그 사람을 찾아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아픈 것이다/아픈 것이/살이 되고 피가 되려면/흔들거려야 하고/넘어져야 하고/일어서야 한다./그렇게 꽃으로 핀 것이/당신이다.”

 

위의 시들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듯이, 시인의 어머니는 세속말로 하면 “노도질풍을 견뎌낸 어머니”인 것. 그런 어머니를 향해 “그렇게 꽃으로 핀 것이/당신”이라고 존칭하고 있다. 무한의 존칭. 그런 어머니를 향한 시인의 소망이 아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람이 되어라 바람이 되어라/일어서는 줄도 모르고/파도가 일렁이는 것도 모르고/언덕을 오르는지도 모른다/바람이 되어라 바람이 되어라/꽃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새가 바람을 타는 것도 모르고/산바람이 되는 것도 모른다/바람이 되어라 바람이 되어라/고개 숙일 필요 없다/고통스러우면 떨어트려라/바람이 되어라 바람이 되어라/다 흔들거린다/어머니 가슴에 바람이 분다.”


지난 11월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M갤러리에서는 이 시집에 대한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책에 삽화를 그려준 정채 화가도 참석했다. 시인은 인사말에서 “어머니 봄날은 간다”고 했지만, 참석자 한 분은 “어머니 봄날은 온다”고 말했다. 시인이 시를 통해 들춰냈던 어머니는, 봄날처럼,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봄날' 그 자체였다. 시인이 시로 노래한 어머니는 2018년 현재 '91세' 나이이며, 부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윤 시인은 정신분석상담가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법을 배우고, 성직자로 있다가 사임했다. 월간기독 편집장도 지냈다. “죽음은 생명이다(태교 49개월)” “호모사피엔스. 욕망의 바이러스인가” “상실하는 그대에게 있으리라!” “자끄라깡, 왜! 예수사랑을 욕망하는가?” “4박5일 감정여행” “내가 나에게 미안해”라는 등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작가. 시집으로는 “몸 놀이” “50년의 고독”이 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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