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12월 14일 최초의 열기구를 하늘에 띄운 ‘몽골피에 형제’(Montgolfier brothers)는 1783년 9월 19일 베르사유 궁전 광장에서 국왕과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리와 닭과 양을 태운 열기구 ‘레보용 비행선’(Aérostat Réveillon)의 성공적인 비행을 마쳤다, 이후 두 달 후인 11월 21일 인류 최초의 사람을 태운 열기구를 띄울 준비에 분주하였다.
또한, 1783년 8월 27일 최초의 수소 열기구를 띄운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Jacques Alexandre César Charles. 1746~1823)과 로베르 형제(Robert brothers)도 최초로 사람을 태운 수소 열기구의 비행 날짜를 1783년 12월 1일로 결정하였다, 이에 10일 간격으로 연속 이어질 인류 최초의 하늘로 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파리는 물론 프랑스를 건너 주변 서유럽 여러 나라에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몽골피에 형제’(Montgolfier brothers)와 기획자 ‘장 밥티스트 레베용’(Jean-Baptiste Reveillon. 1725~1811)은 열기구의 외형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다, 높이 7m 지름 15m의 기구 상단에는 태양이 한 해 동안 지나가는 길 ‘황도’(ecliptic)에 있는 12개의 별자리 ‘황도 12궁’ ‘조디악’(zodiac)이 그려졌다, 이어 중앙에는 왕실의 문장과 루이 16세 왕의 초상을 연속 교차하여 배치하였다, 이어 하단에 황금 사자와 그 밑에 독수리를 넣으면서 전체적으로 왕실의 문양이 붉고 푸른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졌다,(‘장 밥티스트 레베용’을 기획자로 표현한 내용은 다음 칼럼에 소개된다)
![]() ▲ (좌로부터) 1783년 11월 21일 최초의 유인 열기구 비행장면과 열기구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1783년 10월 15일이었다, 당시 가장 성업 중인 공장들이 들어서 있던 파리의 포부르 생 앙투안(Faubourg Saint-Antoine) 동네에 있는 ‘장 밥티스트 레베용’의 제지공장 공터에서 최초의 인간 열기구 비행을 40여 일 앞두고 시험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열기구에 탑승할 인물은 프랑스 과학자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Jean-François Pilâtre de Rozier. 1754~1785)와 프랑스 왕실 경비병이었던 ‘푸랑수아 로랑 다를랑드’(François Laurent d'Arlandes. 1742~1809)였다, 이들은 열기구의 통제와 조종에 대한 교습을 받았던 내용을 다시 점검하고 열기구에 올랐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준비한 밧줄에 묶인 열기구는 준비한 밧줄의 길이만큼 약 730m를 하늘로 올랐다. 리허설은 대성공이었다.
이어 대망의 1783년 11월 21일이 밝았다, 열기구가 출발할 ‘뮈에트 성’(Château de la Muette)이 자리한 파리 서쪽의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점심 무렵에 이르자 ‘블로뉴 숲’으로 통하는 길은 줄을 선 귀족들의 마차 사이로 군중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지난 9월 19일 베르사유 궁전 광장에서 열렸던 열기구 비행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이유는 ‘루이 16세 국왕’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지난 열기구 비행 이후 베르사유궁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까닭이었다, 이곳 뮈에트 성은 국왕이 황태자 시절 1770년 5월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여 국왕 내외가 신혼생활에서부터 7년간 거처하였던 곳이었다.
정원 귀빈석에는 국왕 내외와 왕족에서부터 주요한 외국사절과 초청받은 각계의 귀족들이 운집하여 쌀쌀한 11월 말의 날씨에도 그 열기가 뜨거웠다, 드넓은 ‘불로뉴 숲’ 까지 몰려든 인파 속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열기구가 이동할 하늘길을 점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 주변에 몰려들어 좀 더 좋은 길목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그날따라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 자리를 옮길 때마다 웅성대며 그 뒤를 따라갔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지나고 숲속 천막 캠프에서 대기하고 있던 거대한 열기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갈 프랑스 과학자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프랑스 왕실 경비병이었던 ‘푸랑수아 로랑 다를랑드’ 를 태운 열기구가 출발지점인 ‘뮈에트 성’으로 들어서자 탄성을 지르며 하늘로 오르게 될 두 사람의 생명이 걸린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며 웅성거렸다.
성 중앙에 도착한 열기구의 간단한 점검이 끝나고 사회자가 국왕 내외와 주요한 귀빈들을 소개하고 큰 목소리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늘로 오를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푸랑수아 로랑 다를랑드’ 를 소개하자 큰 박수와 탄성이 쏟아지며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이어 오후 1시 55분경 국왕의 초상과 왕실의 문장이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자 큰 박수와 환호성이 성안을 흔들었다.
당시 열기구는 파리에서 약 9km까지 900m의 높이로 25분간을 비행하고 오늘날 이탈리아 광장(Place d' Italie)에서 가까운 ‘뷔뜨 오카이’(Butte- Aux-Cailles)에 당시 밀밭이 있는 언덕의 풍차 사이에 안전하게 내렸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연료도 충분하게 남았지만, 열기구에 불이 붙는 바람에 두 조종사는 침착하게 불을 끄고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인류 최초로 하늘을 정복한 역사가 열린 것이다, 하늘 저편 또 다른 세상으로 존재하는 태양과 달과 별을 바라보며 날아가는 새와 구름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게 생전 처음 하늘을 날아가는 사람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충격과 감동이었다. 이와 같은 충격은 파리 하늘에 연속하여 나타났다.
‘몽골피에 형제’의 최초 유인 열기구가 파리 하늘을 날아간 10일 후인 12월 1일 지난 8월 27일 최초의 수소 열기구를 띄운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Jacques Alexandre César Charles. 1746~1823)과 로베르 형제(Robert brothers)의 수소 열기구 인간비행이 이어졌다, 수소 열기구가 출발할 장소는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사이에 있는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이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후손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1519~1589)가 1533년 ‘헨리 2세’ 왕(Henry II-French. 1519~1559)과 결혼하여 왕비가 된 후 1559년 ‘헨리 2세’ 왕이 세상을 떠나자 1564년 이탈리아식 정원으로 만든 곳으로 1667년 일반에게 공개된 공간이었다.
열기구가 떠오를 장소의 귀빈석에는 프랑스군의 원수(Marshals) 칭호를 받은 ‘루이 앙투안 드 공토’(Louis Antoine de Gontaut. 1700~1788)와 프랑스 장군 출신의 귀족 ‘앙투안 드 비네로 뒤 플레시스’(Antoine de Vignerot du Plessis. 1736~1791)에서부터 귀족 출신의 화학자 ‘루이 조제프 달베트 달리’(Louis Joseph d' Albert d' Ailly. 1741~1792)와 함께 많은 귀족과 유명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대사로 와 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지난 8월 27일 수소 열기구 비행관람과 10일 전 있었던 ‘몽골피어 형제’ 열기구 비행관람에 이어 이번 비행에도 참석하여 피뢰침의 발명가다운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또한, 몽골피에 형제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Joseph-Michel Montgolfier, 1740~1810) 도 참석하였다.
수소로 채운 풍선의 조종사는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Jacques Alexandre Charles. 1746~1823)이 맡았으며 부조종사는 로베르 형제 중 동생인 ‘니콜라스 루이스 로베르’(Nicolas-Louis Robert. 1760~1820)였다. 오후 1시 45분 튈르리 정원과 콩코드 광장을 메운 인파의 환호성과 함께 지상을 떠난 수소 열기구는 약 550m의 높이로 떠올라 파리 하늘을 날았다. 지난 11월 21일 ‘블로뉴 숲’ ‘뮈에트 성’에서 최초로 하늘을 날아오른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가 25분간 비행하여 9km를 날았던 것과 달리 무려 2시간 5분을 자유롭게 날면서 36km를 비행한 열기구는 파리 북부 발두아즈(Val-d'Oise)의 ‘네슬레 라 발레’(Nesles-la-Vallée)에 도착하였다.
열기구를 따라 장애물 경주마(chasers)를 타고 달려간 일행이 도착하였을 때 열기구를 조종하였던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은 감격의 숨을 몰아쉬며 열기구를 붙들고 있었다. 이어 더욱 높은 고도의 상승을 위하여 다시 열기구를 비행하였다, 무려 3000여 미터에 가까운 고도로 급상승한 열기구는 높은 기압에 귀의 통증을 느껴 3km 정도 비행하다 내려왔다, 당시 열기구에는 기압계와 온도계를 갖추고 최초로 대기의 기상상태를 측정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 열기구는 샤를의 이름과 커다란 자루를 뜻하는 ‘발룬’(ballon)을 붙여 ‘샤를르에 발룬’(Charlière ballon)으로 부르면서 오늘날의 애드벌룬(ad balloon)이 되었다, 이와 같은 수소 열기구 ‘샤를르에 발룬’은 몽골피에 형제의 인류 최초의 열기구 유인 비행을 뒤이은 비행이었지만 선구적인 수소기체를 활용한 과학적인 비행의 역사를 열었던 점에서 더욱 깊은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이후 1784년 1월 19일 ‘몽골피에 형제’는 형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가 최초의 하늘을 날았던 과학자 출신의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비행 경비를 후원한 4명의 프랑스 귀족을 태우고 리용(Lyon)에서 다시 하늘로 올랐다. 당시 이전에 비행하였던 무게의 몇 배로 늘어난 중량에 대비하여 열기구를 제작하였지만, 갑자기 비가 내리는 기상 조건으로 짧은 거리 비행 끝에 착륙해야 했다.
이후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는 1984년 6월 23일 아주 중요한 비행이 있었다, 그것은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 왕’(Gustav III of Sweden. 1746~1792)이 프랑스를 방문하였을 때 이를 축하하는 열기구 ‘구스타브’(La Gustave)를 제작하여 축하하는 비행이었다, 당시 열기구에는 형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와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 그리고 프랑스 화학자 ‘조제프 루이 프루스트’(Joseph Proust. 1754~1826)가 탑승하였으며 이와 함께 최초의 여성 비행자가 탑승하였다, 그는 프랑스 오페라 가수 ‘엘리사벳 시블’(Élisabeth Thible. 1765~)이었다, 이러한 배경은 오페라를 사랑하였던 ‘구스타브’ 국왕을 위하여 기획된 것으로 구스타브 국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용(Lyon)에서 열기구가 하늘로 올랐다, 당시 하늘로 오르는 열기구를 보며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 왕’ 은 ‘더 높게’ ‘높게’를 연발하며 하늘을 날아가는 신비한 광경에 도취하였다.
![]() ▲ (좌로부터) 1984년 6월 23일 오페라 가수 ‘엘리사벳 시블’(Élisabeth Thible. 1765~?) A. Reeker의 WDR-TV 영화 ‘Venus in the Cloud -ship’ 중에서 / 1783년 DLSFBCHL 열기구 비행기념 프랑스 우체국 스탬프/ 출처: 출처: https://en.wikipedia.org/ ©브레이크뉴스 |
이때 오페라 여가수 ‘엘리사벳 시블’이 로마 신화의 지혜와 기술의 여신인 미네르바(Minerva)를 상징하는 옷을 갈아입고 오페라 코미크(opéra comique) ‘라 벨 알센’(La Belle Arsène)의 아리아를 불렀다, 이 작품은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단장이었던 극작가 ‘샤를 시몽 파바르’(Charles Simon Favart(1710~1792)가 대본을 쓰고 작곡가 ‘피에르 알렉상드르 몽시니’(Pierre-Alexandre Monsigny. 1729~1817)가 작곡하여 1773년 초연된 작품이다, 3000m의 높이로 45분 동안 52km를 비행하였다, 당시 여가수 ‘엘리사벳 시블’은 열기구의 연기를 마셨으나 침착하였고 기구가 상티이(Chantilly) 숲 근처에 내리면서 평탄하지 못한 지형에 몇 번을 부딪쳐 발목을 삐었지만, 끝까지 의연하게 행동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와 같은 열기구가 영국에서 날아오른 역사는 영국의 약학자 ‘제임스 테일러’(James Tytler. 1745~1804)에 의하여 1784년 영국 하늘을 비행하였다, 미국에서의 첫 유인 열기구 비행은 프랑스 발명가 ‘장 피에르 블랑카르드’(Jean-Pierre Blanchard. 1753~1809)의 순회시연으로 1793년 1월 9일 필라델피아의 ‘월넛 스트리트 교도소’(Walnut Street Jail)운동장에서 하늘을 날아 뉴저지주 글로스터 카운티(Gloucester County)에 착륙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날아오른 열기구의 비행을 지켜본 인사들을 보면 당시 대통령이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과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1831)가 모두 열기구 비행 현장에서 날아오르는 열기구의 비행광경을 지켜본 인물들이었던 사실에서 신성한 하늘을 나는 비행과 하늘이 내리는 대통령의 연관성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사실 또한, 역사가 남긴 경이로운 기록이다.
이와 같은 열기구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늘을 정복한 ‘몽골피에 형제’(Montgolfier brothers)와 뒤를 이어 과학적인 수소가스 열기구의 비행으로 과학의 소중함을 일깨운 ‘로베르 형제’(Robert brothers)의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정신은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무한함을 보여준 실체였다, 이러한 바탕에서 121년 후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가 동력 비행기로 최초의 인간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 다음 칼럼은 (210) 우주의 꿈을 키운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과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