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ㅡ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 사유재산 포기하고, 저작권도 포기...서민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절제하는 삶 살아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6/28 [09:49]

▲ 톨스토이     ©이반 크람스코이가 그린 1873년의 초상화.

톨스토이는 1828년에서 1920년까지 82년의 지구별 여행자였다.


그의 생애는 자기 변혁의 도정이었다. 대학 중퇴, 카프카스 여행, 결혼, [참회록] 집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가출. 톨스토이는 두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귀족이었으므로 가정교사로부터 초등, 중등교육을 받고 16세에 카잔 대학 동양어과에 입학했다. 그는 상류사회의 쾌락을 좇는 분위기와는 다른 사유의 장으로 들어선다. 19세에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왔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자 결심한다. 그는 그때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나는 공부와 수양을 쌓는다.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둘째, 지주로서 농장을 경영한다. 어린 그에게 이 과업은 그를 지치게 했고 이후 4년 동안 그는 방황을 겪는다.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남을 것인가, 사유하는 삶을 살 것인가?


23세에 톨스토이는 카프카스를 여행하며 러시아의 주류 사회와 단절된 변방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이후 군에 입대하고 크림 전쟁을 경험한다. 이 과정 동안 [유년시대], [소년시대[, [습격], [세바스토풀] 등 1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완성한다.

 

톨스토이는 소박한 민중의 모습이 나태하고 사치스러운 귀족의 모습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자연과 융합되어야 하며 인간적 삶은 결국 신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0세 무렵 톨스토이는 독자적으로 농민을 교육시키는 데 관여하기도 한다. 18세의 소피아와 결혼한 톨스토이는 이후 약 15년간 심리적으로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진입한다. 악필이었던 톨스토이의 곁에서 대필하고 원고 정리까지 맡아주었던 소피아는 헌신적인 아내였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발간되어 톨스토이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사회적 진보가 개인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인간성의 충실이 전체적 조화에 이르는 전제 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진 톨스토이는 인간 관계의 조화를 통해서만 자신의 사상을 관철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가 도달한 곳은 '사랑'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했던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저작권을 포기하여 서민들에게 돌려주고자 했고 난민을 구하고 극히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저작권을 포기하거나 사유재산을 포기하는 등의 문제는 가족들과 첨예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고 80이 넘은 톨스토이는 어느 겨울, 집을 나선다. 폐렴에 걸린 톨스토이, 아스타포보라는 시골 역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며 지구별 여행을 끝마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은 1889년, 그가 61세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다. 그는 선을 추구하는 것만이 참된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의 단상은 이후 10년 가량 계속되었고 퇴고를 거듭한 끝에 69세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책을 완성한다. 하지만 당시 검열을 피하기 어려웠으므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원고를 에일모 모드에게 넘겨준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예술의 사명은 인류의 안녕과 행복에 있다. 차디찬 이성이 아니라 따뜻한 감정이, 폭력 대신에 평화가, 그리하여 사랑으로 가득한 나라를 만드는 것. 이를 위해서 간결하고 단순하고 성실한 예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문을 통해 연극과 음악에 관한 글, 예술에 관한 신간이나 시, 소설을 소개하고 전람회나 그림에 관한 기사들을 들여다 본다.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연기를 하는지 시시콜콜 자세히 기사화되어 있다. 어떤 음악가가 무슨 곡을 어떻게 노래하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어떻게 연주했으며 그 곡의 장점은 어떠한가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다. 그 방면의 비평가나 전문가들의 글들도 빼곡하다. 대도시라면 어디든지 박물관, 미술학교, 음악학교, 연극학교와 전시관과 연주회장 들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십 만의 노동자ㅡ목수, 석공, 페인트공, 실내장식가, 재봉가, 이발사, 보석상, 땜장이, 식자공ㅡ가 예술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가혹한 노동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아마 모든 인간 활동 가운데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만한 노력이 기울여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수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전생애를 다 바쳐 재빨리 발을 옮기는 것을 배우든지(무용가), 건반이나 현을 다루는 법을 배워 그 음률을 익히든지(음악가), 물감이나 그밖의 도구를 이용하여 눈에 띄는 것을 닥치는 대로 묘사하는 법을 습득하든지(화가), 혹은 여러 어구를 여러 가지 풍으로 옮겨 그 하나하나에 운을 맞출 수 있도록 공부하기도(시인)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그 바탕이 선량하고 영리해서 어떤 유익한 사업이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바보가 되는 특수한 일에 종사하면서 점점 편벽해지고 생활상의 모든 정상적인 일에 둔감해지며 아울러 일면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만 발이나 혀나 손가락을 놀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전문가로 만족하는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이서영 작가.     ©브레이크뉴스

 

다소 심하지만 톨스토이의 말을 정리하자면 무언가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는 한 분야에 몰입하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다른 분야나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아르고스가 되지는 말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일면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 어떤 의미에서 전문가는 한 분야의 달인일 수는 있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전문가는 편벽된 사고를 지향할 수도 있음을 지시하는 톨스토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봄직하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다양한 분야를 포섭할 수 있어야 옳다. 전인적인 시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보고 해석하고 그것을 기능적으로 뛰어난 기교로 연주할 수 있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도구로 깊이 있는 사랑을 전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톨스토이의 모든 것은 인류애의 사랑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융이 말하는 전인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나의 행복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행복에 이르러야 한다는 결론.

 

그는 언젠가 신작 오페라를 연습하는 광경을 구경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1막이 진행되는 중이어서 그는 관람석으로 가기 위해 무대 뒤를 통과해야 했다. 그는 어둠과 먼지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의 사람들. 그는 100명의 악사들과 잘 차려 입은 남녀들과 신사복 차림 사내 둘이서 무대 위를 부산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한 사람은 무용교사인데 이 사람은 노동자 열 명의 1년치 급료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연습을 하는 사람들. 어떤 때는 호른이 아리아의 가락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장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지휘봉으로 악보대를 후려진다. 모든 것이 중단되고 악장은 호른 주자에게 듣기 민만항 욕을 입에 담으며 꾸짖는다. 제자리로 돌아온 악장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연기를 하는 행렬이 간격을 너무 좁혔다. 다시 지휘봉 소리와 욕설, 그리고 다시 반복. 그러다 갑자기 지휘봉이 다시 올라가고 악장은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합창단원을 향해 호통을 친다.


"뭐야, 자네들은? 죽어 나자빠졌나? 암소 같은 녀석들 같으니라구! 나무토막처럼 멍청히 뻣뻣하게 서 있다니, 모두들 숨통이라도 끊어져 버린 건가?"


다시 처음부터 반복.


이렇게 해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나 계속된다. 이런 예비 연습은 마구잡이로 계속된다. 그의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일까? 만일 이 오페라 가운데 드물게나마 즐겁고 아름답게 들리는 주제가가 있다면, 이런 유치한 의상이나 행렬, 노래나 손짓 따위를 몽땅 빼 버리고 오직 그것만 부르면 좋지 않겠는가?'

 

그가 보기에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예술 그 자체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이 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비평이라는 것도 그렇다. 여러 유파의 비평가들로부터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전부 예술 분야에서 제외하게 된다면, 예술 영역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금껏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정의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우선 미학의 창시자인 바움가르텐의 미학에 관한 정의를 제시한다.


"논리적인 인식의 대상은 진리요, 심미적(감성적)인 인식의 대상은 미다. 미는 감성에 의해 인식되는 완전한(절대적인 ) 것이고, 진리는 이성에 의해 지각되는 완전한 것이다. 그리고 선은 도덕적 의지에 의해 달성되는 완전한 것이다."

 

멘델스존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이란 막연한 감정에 의해 인식된 미를 진과 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이 예술의 목적은 도덕적 완성이다."

 

칸트의 미학론의 근거는 이렇다.


"인간은 자기 몸 밖에서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 속에서 자기를 인식한다. 자기 몸 밖의 자연 속에서는 진리를 찾고 자기 자신에게서는 선을 찾는다. 전자는 순수이성의 일이고 후자는 실천이성의 일이다. 이 두 가지 인식의 수단 이외에 인간에게는 판단 능력도 있다. 그것은 추리력을 빌 것 없이 판단하며 욕망 없이 쾌감을 낳는다. 이 판단력이 미적 감정의 기초가 된다. 칸트에 의하면 미란 주관적 의미에서는 그 개념이나 실천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쾌감을 주는 것이며, 객관적 의미에서는 어떠한 공리적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인식되는 것만으로 그 목적에 조화될 수 있는 사물의 형식이다."

 

아담 뮐러는 이렇게 말한다.


"미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치 태양이 유성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보편적 미로, 특히 고대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성미인데, 이를 개성미라 하는 까닭은 관찰자 자신이 미를 끌어당기는 태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예술의 미다. 모든 모순을 내부에서 조화시키고 있는 세계야말로 최고의 미다. 모든 예술 작품은 이 우주적 조화의 재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예술은 곧 생활의 예술이다."

 

아담 뮐러의 주장은 톨스토이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담은 최고의 예술은 곧 생활의 예술이라고 하였다. 톨스토이의 주장도 그렇다. 예술을 생활로부터 분리시켜 무대로 옮겨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댓가로, 타자에 대한 어떤 공경도 없이 단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예술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었다. 그는 무대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지치고 피곤하고 다치고 상처 입은 많은 노동자들을 먼저 보았다. 생활의 예술, 내 안에서 발현되는 예술이야말로, 여러 가지 모순을 내부에서 조화시킬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톨스토이에게는 진정한 예술로 보이는 것이다.

 

현대 예술론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셸링은, "예술이란 주관이 변하여 객관이 되기도 하고 객관 자체가 주관으로 변하기도 하는 세계관에서 나온 작품 또는 결과다. 미란 유한 속에 깃들인 무한의 표상이다. 예술 작품의 주된 특징은 무의식적인 무한이다. 예술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자연과 이성,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식의 최고의 수단이 된다. 미는 모든 사물의 원형 자체에 대한 직관이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제작할 경우 자신의 지식이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미에 관한 관념에 의해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셸링의 말, 주관이 변하여 객관이 되기도 하고 객관 자체가 주관으로 변하기도 하는 세계관에서 나온 작품 또는 결과물이 예술이라는 말. 미란 유한 속에 깃들어 있는 무한의 표상이라는 말. 이 말은 현실이 고도의 상징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으로 들린다. 삶, 생활이라는 유한된 공간 속에 무언가가 감춰져 있다. 이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의 주된 특징이 '무의식적인 무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유한한 실제가 사실은 우리의 무한한 무언가가 밖으로 표출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주관과 객관이 합쳐지고 자연과 이성이 합쳐지고 무의식과 의식이 합쳐진 결과물일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유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단지 사물로서 그 기능이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예술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이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그 자체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미는 모든 사물의 원형을 현실로 끌어오는 직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셸링은 예술가의 작품은 자신의 지식이나 의지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관념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까지 포함해야만 하나의 작품이 현실로 현존할 수 있음을 현시하는 중요한 지적이다.

 

헤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신은 자연과 예술에서 미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은 객관과 주관, 즉 자연과 정신,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미란 물질을 통하여 나타나는 관념의 빛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오직 정신과 정신에 관련된 일체의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연미란 정신에만 국한된 미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주로 정신적인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아름다운 것은 정신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이 말은.) 그러나 정신적인 것이 발현되려면 감성의 형식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이 감성을 통해서 발현된 것은 단순한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가상이야말로 미의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이러한 관념의 가상을 실현하는 것이며, 종교와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가장 깊은 문제와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의식에 올려놓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헤겔의 주장도 셸링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보인다. 결국 미,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이란 관념의 빛인 것이다. 나의 관념, 나의 생각이 현실 세상에 드러나는 하나의 형태. 이것이 예술이다.

 

스펜서의 예술론을 따라가 본다.


"예술은 일찌기 실러가 주장했던 대로 유희로부터 유래한다. 하등 동물은 생활력의 전부를 생명의 보존과 지속을 위해 소모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욕구를 채우고도 여력이 있다. 이 여력이 유희에 쓰이고 다시 예술로 전화한다. 유희는 실제 행위의 모방이며 예술 역시 그렇다. 미적 쾌락의 원천은 첫째, 훈련을 최대로 하고 손실을 최소로 하여 가장 완전한 형태로 감각ㅡ시각 또는 기타 감각ㅡ을 연마하는 일, 둘째, 감각을 환기시키기 위한 모든 자극물, 셋째, 이러한 자극물과 연마된 감각을 결합시키는 일이다."

 

스펜서의 예술은 구체적이다. 그는 동물 이상의 존재인 유희로서의 인간을 소급해온다. 그리고 이 유희를 가장 완전한 형태로 연마하여 그것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일, 이것이 예술로 가는 길이라고 보았다.

 

토드 헌터는 미는 모순의 조화라고 보았다. 몰리는 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고 보았다. 요약해 보면 결국 미란, 말하자면 예술이란 객관과 주관의 결합이며 관념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의 인식이 예술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예술이거나 아닐 수도 있다. 예술이라는 정의는 이처럼 수많은 이견들과 방향들이 있지만 결국 예술이란 나를 통하여 발현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톨스토이는 이렇게 많은 미와 예술에 대한 정의를 공부하고 대략 이렇게 정리한다. 하나는 미란 독립적으로 그 자체내에 존재하는 어떤 것, 즉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ㅡ관념, 정신, 의지, 신ㅡ의 표현 중 하나라고 보는 견해, 다른 하나는 미란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 개인적 이익을 갖지 않고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완전하지 않다. 결국 미에 관한 객관적 정의란 있을 수 없다. 나만의 정의가 있을 뿐.

 

그는 예술을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쾌락의 수단으로 보는 방식을 버리고 인간 생활의 하나의 조건으로서의 예술을 검토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예술이 인간 상호간의 교류의 수단임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을 만든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그 예술적 인상을 받는 모든 사람들 사이between에 일종의 교류를 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예술관은 종교적 예술관이다. 그에게 예술은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어떤 것이다. 그에게 예술은 쾌락도 오락도 위안도 아니다. 예술은 인류를 사랑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사업이다. 그는 말한다.


"예술은 인간의 이성적 의식을 감정으로 옮겨 놓는 인간 생활의 한 기관이다. 오늘날 만인에게 공통된 종교적 자각은 모든 사람이 다 형제라는 생각과 인간 상호간의 결합이 곧 행복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예술은 폭력을 배제해야만 한다. 예술은 동포애와 타인을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을 모든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대중 예술은 각각 성격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그 차이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화합해서 하나가 된다는 기쁨을 이론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현대 예술의 사명은, 인간의 행복은 인간 상호간의 결합에 있다는 진리를 이성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옮겨, 현재 만연하고 있는 폭력 대신 신의 세계, 즉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최고 목적으로 간주되는 사랑의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다. 예술의 사명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만인의 동포적 결합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

 

다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지상 최고의 예술이므로.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브레이크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