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염라대왕 간의 선문답(禪問答) 대결?

민족 정치지도자이자 화합주의자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타계(他界)에 부쳐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6/24 [08:18]

▲23일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진공동취재단

 

‘한(恨)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情)만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6월23일 별세했다. 그는 일제 36년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아 수학(修學)하고, 6,25 전쟁 300만 동족이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군인으로서 지켜냈고, 산업화 과정에서 차선책으로 강목 바지저고리에 짚신 신던 서민을 구하고 진보 좌파 산업현장 ‘자본가 타도’ 투쟁에서 차선책으로 지식인들을 다소 목덜미를 억누르기는 했으나 초기 자본주의 싹을 키워냈고, 군사정권 영남 기득권 준동에 힘을 못 쓰던 YS와 DJ를 삼당합당과 내각제 고리로 대통령으로 옹립해서 결국 오늘날 ‘경제대국 코리아~’ 자유만발한 인권과 복지를 국가가 보호해주는 세상을 만드는데 형설지공(螢雪之功)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고 이승을 떠났다. JP가 49제 중음천(中陰天)을 지나 저승사자에게 양 어께를 부축 받고 금빛 휘황찬란한 패셔니스트인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전 자민련 총재)의 저승행과 염라대왕 간의 대화를 상상해본다. 아래 글은 필자의 소설적 상상으로 쓴 글이다.

 

◆염라대왕(閻羅大王) 대왕이 물었다. “본관과 관등성명(官等姓名)을 말하라.

 

-그러니께 시방 10억겁(億劫)의 살면서 억조창생(億兆蒼生)의 공과(功過)를 다루시는 분이 뭐라고 혔슈? 절조 높고 기개 창망(蒼茫)을 단번에 스캔하시는 분이 모자라게끔 속간(俗間), 아니 군대에서나 쓰는 육두문자성 말로 저를 능멸하시는 거유? 아래 세상에선 이미 군사문화가 청소됐고, 김재규가 말한 ‘자유가 만발한 자유세계’를 이루었으며, 5G 4세대 산업이 시작되어 곧 재택근무가 30% 이상으로 ‘주부도 경제다’란 구호가 스멀스멀 생겨나는 초스피드 동시적 정보화 공유시대에 대왕께선 실언하신 거유. 내 충효의 본고장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일제 강점기처럼 사람을 상하로 가르지 않는 구먼유. 내 이미 죽었으나 다시 죽는 건 두렵지 않네요. 사과허슈?


◆내 금방 쇼크 먹었네. 간밤에 선계(仙界)의 수하(手下)들의 흐트러진 기강을 재교육시키며, 아부성 송로주(松露酒)를 사방에서 권주(勸酒)하는 바람에 숙취로 망언(妄言)의 결례를 운정(雲庭)에게 범하고 말았네. 용서해주시게나?


-석가는 억조창생이 다 부처라고 혔고, 예수는 존엄을 버리고 죽기 전날 제자들을 포도주와 빵으로 배불리 먹이시기 전에 열두 제자 발에 묻은 사막의 모래를 하나하나씩 다 세족(洗足)의 하심(下心)으로 머리를 땅바닥에 두엇다고 혓슈?


기왕에 취기 떨치지 못한 대왕의 하문(下問)이니, 대왕과 저도 계급장 떼고 인간답게 수평적 대화를 요구허는 바닝께 다소 결례가 있더라도 섭섭해 하지 말고 귀담아 들으슈.


나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충절지조의 고장 충북 제천에 본관(本官)을 둔 청풍(淸風)김씨의 후예로서,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김대유(金大猷) 어르신의 후예로서, 또 신라 경순왕의 12세 손으로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의 후예이기도 허구요. 부친이 충남 부여에 터를 잡고 2000석지기 대농(大農)으로서 7형제를 두셨는데 제가 다섯째로 태어낳구먼유. 왜정과 6,25 때 혈족이 단 한명도 처단되지 않은 것을 보면, 덕은 작으나 이 민족과 향리(鄕里)에게 나쁜 짓을 안혓다고 볼 수 잇지 안 것슈? 이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관등성명(?)과 가족관계 질의응답을 마치것슈. 순서대로 하문 더 하시쥬?

 

◆이 사람 운정, 생긴 것은 부처님 문수보살상인데 나의 취중실언을 문제삼으니, 참으로 염왕 10억겁 만에 자네같은 꼬장꼬장한 사람은 처음일세. 자자, 그러지 말고 죄인처럼 무릎 꿇지 말고 여그 용상(龍床)으로 후딱 올라와 나와 송로주나 한잔 나누면서 담소나 나누세나. 나도 말이 주재자(主宰者)요 킹이지만 고독이 몸부림칠 때면 속간에서 보고 올라오는 염문설에 욕정을 억누르느라 요가명상의 몰아지경을 자청하며 겨우 참아낸다네. 어찌 억조창생이 암수없이 무성생식(無性生殖)으로 종을 잇겠는가? 뭘 하느냐? 후딱 운정 선생께 올릴 술상을 내오지 않고? 이것들이 그 청정비구 감시하고 보고 올려 생사 이탈권을 행사하라 했더니만, 압구정동 텐프로인가 뭔가 따라가서 수백만원어치 술과 풀싸롱 접대를 받았다고. 내 이놈들아! 감찰반장이 이미 보고했다. 지상(地上)의 공과를 따지기전에 내 이 참에 선계의 군기(軍紀)를 바로잡고 정화(淨化)하여 자가당착에 빠진 내 체면 복원과 저승의 히포크라테스처럼 윤리적 기강을 바로잡겟노라.


-그만허면 됐슈! 아무리 그래도 염왕으로서 체면이 있지 사바세게 속물인 저에게 이런 불평등한 상석권주(上席勸酒)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니 어디 저를 다 털어 보슈! 죄가 있으면 화탕지옥(火湯地獄) 지옥으로 보내시든가, 아니면 도솔천 외원(外院)으로 보내 이미 방면받은 수천수만의 시서화(詩書畵) 묵객(墨客)들과 억겁의 청정무구(淸淨無垢)의 덕(德)을 닦아 후손과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왕보다 한 끗발 높은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익스프레스 페덱스로 보내고 싶은 잔망(殘亡)이 대왕께 바라는 바의 전부요. 오뉴월 엿가락 늘이지 말고 KTX급으로 이 몸의 공과를 후딱후딱 가려주시오.

 

◆내 듣기로는 운정 자네가 세속에 있었을 때, 선문답과 메타퍼로, 다시 생각게 하는 문답법으로 사람들을 훈계시켰다고 들었는데, 천상에 올라와서는 왜 성질이 그리 급한가?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느린 것 같아도 속내는 엄청 급해유. 사설(私設) 늘이시지 말고 공식적인 취조자리이니 후딱 질문혀슈? 헐뀨? 말뀨?

 

◆그럼 설렁탕에다 깍두기로 점심하고 초스피드로 질의사항을 묻겠네. 내 질문이 화살 같은데 운정 자네가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서 실언을 할까 염려되네. 내 원망 말게나. 지상에는 어린 고등학생들이 줄세우기 점수로 공부하다 망치면 재수삼수 한다면서... 한 문제 틀리면 재수하고 세 문제 틀리면 인서울 대학진학이 어렵다면서? 여기는 10억겁 동안 ‘태양이 지지 않는 대영제국 같은 나라’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네. 지옥 빼놓고, 태양은 영원하며 시간은 정지되었으나 더 이상 늙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영겁 속에서 고준담론(高峻談論)은 사리처럼 빛난다네.

 

참, 운정 자네가 서울대 2년 수학하고, 1948년에 육사 8기로 임관했고, 5,16 군사혁명을 주도했고, 민족의 동의도 부실하게 얻고도 1962년 도쿄에서 이케다(池田) 수상과 오히라(大平) 외상과 밀담하여 식민지 배상금 6억불과 차관 3억불을 받고 퉁쳤다면서?


-이왕지사 이승의 연을 접고 저승의 억겁 판결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염왕이 갑이요 내가 을인디 뭘 속이것슈?

 

먼저 서울대를 중도 하차하고 육사 8기에 입교한 것은, 일제시대부터 세력을 확장한 박헌영 일파의 남로당 공산주의가 창궐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지경에 불가피혔슈. 내가 죽어 식솔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려는 일념뿐이었쥬. 솔직히 공산주의란 것이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누자는 것이고 자유와 비판을 잠재워 노동당원 배만 채우고, 민중은 개돼지로 사료 나눠주듯 관리하는 것이 맞잖어유? 민주주의는 상상의 자유와 창의성이 다양하게 보장되고 교류되어야 시너지 발전효과가 일어나지 않것슈? 난 유물론(唯物論)이 싫고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레닌의 달콤하면서도 등골 서늘한 공포와 스탈린의 정적 숙청으로 수백만이 처형되고 수용수군도(收容所群島)로 유배되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처지에 속을 리는 없었쥬.


5,16은 지금의 판단으론 내란죄로 사형감이나, 막 일본에서 해방되어 흰 강목에 짚신으로 차림하고 똥이 비료요, 지게가 트럭으로 대신 이용되어 국민들이 굶주리며 등골 휘는 비참한 상황을 문사(文士)이자 해외 유학파인 이승만과 윤보선이 서민경제를 외면한채 깡패와 합세하고 정적을 두들겨패며 학생시민을 학살한 정권과, 스코틀랜드의 명문 에딘버러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여 경제에 문외한이고 구석기시대 고인돌이나 신석기시대 토묘(土墓)나 파헤치는 축에 적당한 윤보선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국태민안을 기반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덴 박정희 장군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결국 박 대통령 덕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발 수출과 월남전 참천 간호사 독일파견으로 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닦았잖유?


◆전두환이란 살인마에게 겁박당하여 갑작스런 정계은퇴와 제주도 땅 투기 등 부정축재자로 몰린 전력(前歷)이 있다면서?


-참, 대왕님도... 여기 저승에 회계 세무사가 없슈? 다 뒤져보라고 허슈? 난 종로구 신당동 한 집에서 한평생 살면서 말년에 휠체어 보조하는 일꾼에게 한 달씩 최저임금 준 것과, 시서화에 아마추어로서 졸행(卒行)하는 가운데 후배들이 집안을 들락거리며 내 그림 한점 팔아주면서 생활비 보태주길래 받아쓴 것이 전부요. 내 주머니 뒤져보슈? 죽을 때 입에 넣어준 쌀 세 숟가락, 속칭 저승 노잣돈 삼천석과 입에 넣어준 백원짜리 세 개(삼천냥)가 전부요.

 

박대통령은 일본군 육사를 다녀서 군사적 지식이 많고, 교사를 통하여 국민을 가르치려 했으나, 소수를 계도하기 보다는 전체 국민을 상대로 김일성처럼 “비단옷에 이밥 소고기국을 먹게 해준다”고 초발심을 세웠는데 쩐(錢)이 없었잖유?

 

역사적으로 철천지원수이자 한때 문물을 전해준 상국(上國)임을 일본인들도 잘 알고 있슈. 일본 국고가 14억불이었는데 박 대통령께서 8억불을 보상금 아니 배상금으로 받아오라 명(命)하셨는데 ‘왜놈 원숭이 빤스’들이 집요하게 스시 대접하고 6억불을 고집하니, 내가 차관 3억불을 더 달라해서 원래 목표치 보다 많은 9억불을 포항제철 등 국가 기간산업과 대구의 가발수출업에 골고루 나눠줘 제조업의 기초를 닦은 거유.◆1990년 자네가 주도하여, ‘민주자유당+통일민주당+신 민주공화당’ 3당합당을 시켜 대도무문(大道無門)의 YS를 당선시켜,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안 좋아 IMF를 불러들여 수백명을 자살케 하고 수십만을 일자리에서 내쫓게 만들었다면서? 한솥밥 먹은 자네도 공동정범(共同正犯)이 아닌가?


-어따 말허시는 것 좀 봐요. 대왕님 말 좀 가려서 하슈? 어떤 미친놈이 제 나라 국민을 사지(死地)로 내몰 것슈? 유태인과 유럽 오일머니가 펀드를 조성하여 헷지펀드로 융단폭격해대는데, YS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강만식 장관만 믿었다가, 환율방어에 올인하다 외환보유고가 빵꾸나서 깡통 차고 캉드쉬에게 경제주권을 잠시 빼앗기지 않았겠슈? 그리고 염라대왕께서 신통방통한 능력을 가진 걸로 아는디, 종교 과(科)는 다르지만 기독교 신앙심 높은 YS의 꿈이라도 개입하여 지속적으로 훈계라도 하시지, 우리나라가 얼매나 미워서 수수방관했다가 이제 와서 IMF의 죄인으로 삼아 말 몽둥이를 치신 데유? 이렇게 되면 대왕님과 약조한 취조심문 후 선문답(禪問答) 대담은 없던 걸로 치쥬?


◆사람 참 삐치기는 선수네! 그리고 일각에서 자네가 독도를 일본에게 팔아먹었다는 분노가 있다는데... 그리고 박정희-전두환 시절까지 DJ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결국 호남에서 5,18 광무 민주화운동에서 수백 명의 시민을 학살 부상케 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설도 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DJP연합으로 내각제를 실현하려다 동교동계로부터 왕따당했다는데 속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DJ를 데이고꾸(帝國)호텔에서 DJ를 현해탄에 수장시키려고 한 것과도 자네가 연관되어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는데, 속계에서는 자네가 불리하면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데는 선수라 하던데 어찌 생각 하시는고?


-저는 무혈혁명 5,16은 주도했어도 살인을 교사하거나 직접 죽인 경우는 없슈. DJ는 중앙정보부 아랫사람들이 과잉 충성하여 저지른 일탈성 사건유. 염왕께서 알다시피, DJ는 ‘갓 블라스 DJ'입니다. 전두환도 DJ를 탄압한다고 미 레이건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고 정부의 정통성도 인정치 않자 DJ를 가택연금 풀고 정치활동 재개를 허락하지 않았슈? 저는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종자(從者)들에게 종종 말혔슈. 이승에서 다 털고 왔으니 후딱 결심공판 결과를 내리슈? 지는 항상 2인자요 그림자라 지체 높으신 대왕의  송로주(松露酒)친구가 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슈. 나 화장실이 급혀유...


◆최종적으로 자네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자네는 공구과일(功九過一)의 화합과 인정, 대화와 타협의 달인으로 판정했네. 이 시간 이후로 자네는 도솔천(兜率天) 외원(外院)으로 가서 시인묵객(詩人墨客) 수천과 선문답을 주고받아 깨우치는 바가 있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위정자들의 꿈에 현몽케 하여 그네들의 정신에 채찍을 가하고 국태민안의 선조(先祖)로서 억만세(億萬歲) 곱하기 천억겁(天億劫)의 국사(國師)을 누리시게나. 이승에서 고생 많았네.


편히 쉬면서 즐기시게나. 여봐라! 운정 선생을 도솔천 외원으로 모셔라!


-감사혀유. 이 판결을 받을라고 ‘봄부터 소쩍새는 울어대고 여름엔 천둥 번개가 일었으며 가을엔 무서리 맞은 국화 같은 향기를 피어나게’ 했구먼유. 부연설명 없으시면 저 그냥 가유?


염라대왕이 취조를 마치고 등을 돌리는 순간 JP의 등뒤로 쿵하는 소리가 들리며 꽃향기가 허리케인으로 몰려왔다. JP가 몸을 돌리자 황금쌍두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염왕의 등이 들썩거리는 모습을 뒤로 한체 JP는 염왕의 보디가드 두 명이 가운데 앉히며 호위하고 휫하고 휫바람을 불자 12차선 융단길을 단숨에 달려 도솔천 정문에 다다랐다.

 

꽃향기 가득한 야외 들판에 바비큐 요리가 한창이었는데, 염왕의 호위무사가 돌아가자 JP는 조심스럽게 군데군데 쳐저있는 천막 사이로 발길을 백 걸음 옮길 즈음에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그여 동지! 마 이래 오소!” YS 와 DJ였다. “시방 무슨 일이요?

 

“아따 내가 흑산도 홍어에 막걸리 준비했소. 첨엔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산이 투덜대더니만 이제 홍어 냄새만 나도 총알같이 거산이 뛰어온당꼐” 운정이 염왕심판을 받는다는 풍문을 듣고 의심 없이 당신이 도솔천에 오리라 생각혔소. 그려서 신부님께 년월차 휴가내고 운정 만나러 여기에 온 것이요. 이제부터 우리 삼김(三金)은 입에 담기도 징글징글한 정치애기 맙시다.“

 

YS가 첨언했다. “김동지가 내 옆에 없었다면 혼자서 우째 군정종식(軍政終熄)시키고 문민정부 몽뎅이로 재벌 갸들 군기 잡았겠노? 다, 이대(偉大)한 국민여러분들과 동지 덕에 확 밀어부쳤다 안 캅니까. 참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데이. 그래가 내사 마 마산 거제에서 비늘 하나 벗겨지지 않은 죽방멸치를 현철이한테 부탁해서 냉장택배로 받은  멸치회에 쐬주 한잔 땡기믄서 그간 속세에서 쌓은 은원(恩怨)을 풀어버립시데이. 그리고, 천국에서 내가 운정을 만나러 간다카니 노랑머리 파랑 눈 친구들한테 말했더니 이스라엘 키부촌에서 기른 양(羊)과 포도주를 보내왔구만. 자자, 한잔 쭈욱 댕깁시데이.”

 

DJ가 말했다.


“후딱 오시더라고 김동지? 운정 자네가 없었다면 어찌 내가 대권을 쟁취했것는가? 다 당신 덕이 90% 이상이라고 소문의 역사가 도도히 흘르고 있응께로, 괜히 쫄지 말고 후딱 이리로 와서 홍어코 한 점 해보더라고? 어께를 쭈욱 피고...이제 여그선 계급장도 없고 전생의 복덕과 악행만으로 줄자가 되어 철저한 선별과정을 거쳐 영생터가 정해 징께로 걱정 들어매고...당신이 여그 온것만 봐도 이승에서 허벌라게 덕을 쌓은 모냉이요. 안그겋소 영샘이 동지? 야권 단일화 못해서 노가리헌티 쟁권을 통째로 바친 실수를 가지고 여그까지 섭섭해서 말을 안하는 것이요, 풀어버립시다, 안 그렇소 운정동지?”

 

JP가 말했다 .


“운정이 말했다. “내가 저승 도솔천(兜率天)에 와서 두 각하를 뵈오니 감개가 무량허구 허천나게 기뻐 어쩔 줄 모르것슈...”


아직 후손들이 내가 여기  도솔천에 온지 몰랐을 것이고 지상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 빈손이라 객쩍네유. 그럼 내 염치 불구하구 두 각하가 가져온 멸치회와 홍어회 한 점 맛보것슈. 아직 내가 도솔천에 온 것을 후손들이 모르니 제사 때 가서 올린 음식으로 응대(應待)허것슈.”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JP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구곡간장 올올이 찟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염라대왕 심복이 내게 발설한 내용인 즉슨, 삼일 낮 삼일 밤 동안 술과 차를 나누며 대담(對談)을 치른 후 돌아갔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도솔천 정모모임이 계속 이루어질 것이라는 풍문이다.

 

도솔천 1차모임이 끝나고 나서, DJ 성모마리아 곁으로 절뚝거리며 떠나갔고, YS 는 조깅화로 갈아 신고 에덴동산을 향해 허벌라게 빠른 속도로 귀향했으며, JP만 도솔천에 홀로남아 삼천에서 오천 명 가량의 시인묵객들을 치열하면서도 느린 화법으로  애간장을 태우며 소일하고 있다는 풍문이다.

 

가끔씩 도솔천의 금기사항인 인간세계 탐방규칙을 무시하고 매월 초하룻날 소유주 우주선보다 천만 배 먼 거리에 있는 대한민국 삼각산 위에서 기도하다가 인시(寅時)에 이슬맞은 차림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선계(仙界)에 나돈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운정에게 차를 대접하며 가벼운 규율위반을 지적하면 운정은, “본규? 참말로 본규? 안 봤으면 말을 말어유? 설사 봤다고 혀도, 뿌리없는 조상이 어딨고, 후손 잘되기 바라는 마음은 어디서나 마찬가지 아녀유? 정 그렇게 나오면 염왕께서 삼천 궁녀를 도솔천 밖에 두고 혼외자만 이천이라는 소문이 자자혀유. 불까유?”라며 염라대왕 상투조종을 하며 선계의 2인자로서 실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풍문이다.

 

이상은 필자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의 산물이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쓴 글임을 밝힌다. 운정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극락왕생하여, 이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굽어 살펴 주소서.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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