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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한글 창제의 민족사적 의미

세종 이도 즉위 600돌 기념 연재(5회)

박용규 박사 | 기사입력 2018/06/12 [10:19]

세종이 만든 한글이 민족사에 기여한 점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맹률의 타파를 가져와 우리민족을 문화민족으로 만들었다. 해방 뒤 남북의 정권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한글 강습운동을 전개한 결과, 짧은 시기에 문맹이 없는 국가로 변모하였다. 5천년 역사에서 지금처럼 민족 구성원이 문맹이 없는 시기도 없었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을 전용한 결과,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에카르트는 <조선어 회화 문법>(1923년 하이델베르크)의 서문에서 우리 민족과 한글, 조선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한 민족의 문화 수준을 언어와 문자에 따라 측정한다면 조선은 지구상에서 최상의 문화 민족일 것이다. 한글은 수천 개에 달하는 형용사와 동사를 가진, 표현력이 풍부한 문자이며, 조선어는 자연에 대한 조선인의 자세한 관찰과 풍부한 정신적 자산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언어이다.”

▲ 민족 정체성을 드러낸 한글로만 쓴 비석 앞에서 선 남북의 두 정상(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에 기념식수를 하고서)   ©청와대


둘째, 민족 구성원간의 소통에 기여하였다. 두 개의 남북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같은 언어와 문자의 사용 때문에 쌍방 간의 소통에 불편을 주지 않았다. 세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남북은 분단되어 있지 않았다. 세종의 꿈은 남측이든 북측이든 한민족이 평화롭게 잘 살기를 희망했다.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면서 교류하여 분단을 종식시키는 것이 세종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일이다.


셋째, 남북의 화해와 교류에 기여하였다. 우리민족이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토가 분단되고 국가가 분단되었으며 민족까지 분단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언어와 문자의 분단은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바탕으로 남북은 국어 규범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말 큰사전>은 발간되지 못하였다. 일제가 탄압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1947년에서 1957년에 걸쳐 6권의 <조선말 큰사전>이 편찬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이후 남북은 각기 다른 국어사전을 편찬하였다.

 

▲ 박용규 박사     ©브레이크뉴스

20세기 말 남과 북은 대화를 시작하고,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통일방안까지 합의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조류에 따라 남과 북은 하나의 국어사전을 편찬하기로 합의하였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출현이 그것이다. 이 사업회는 그 내면을 보면 남쪽의 민족주의자와 북쪽의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애로 뭉쳐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시기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과 사전편찬사업이 민족독립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듯이, 분단시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도 민족통일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한국어와 한글을 사용하는 남북한 국민은 근간에 상호간의 갈등을 종식할 것이다. 같은 말글로 쓰인 동일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남북 민중은 동일한 문화공동체, 민족공동체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미·소 등 외세에 의해 분단된 우리 민족이 반세기를 지나면서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야만 평화와 행복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말이 다르고 글자가 이질화되어 있다고 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는 통역 없이 대화하고, 세종이 만든 한글을 사용하여 남북합의문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한글이 남북화해의 기본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hispak@hanmail.net

 

 *필자/박용규(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문학박사, <조선어학회 항일투쟁사>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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