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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사는 그곳이 바로 극락”

<불탄절 특집 인터뷰>전라북도 모악산 귀신사 주지 무여스님

정태기 종교전문 라이터 | 기사입력 2018/05/21 [13:20]

▲ 귀신사의 무여 주지스님(사진)은 “극락은 반드시 죽은 뒤에만 가는 곳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극락이 될 수 있다”면서“남을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고 설(說)했다.    ©브레이크뉴스

 

전라북도 모악산 자락의 귀신사. 절 이름으로 특이하다 싶지만, 귀신(歸信)이란 “믿음으로 돌아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이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번뇌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해주는 도량으로 사랑받는 곳. 절을 알고 좋은 터를 찾아다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찾았을 만큼 ‘마음의 쉼’으로 유명하다.

 

귀신사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인 명찰.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당시에는 국신사(國信寺)로 불렸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각 지방의 중심지에 세웠던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로서 전주 일대를 관할하던 절이었다. 당시에는 암자 여덟 개가 있고 금산사까지 말사로 거느리는 그만큼 큰 절이었다. 고려 말 이 지역에 쳐들어 온 왜구 300여 명이 주둔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귀신사는 옛 기록처럼 위엄 있는 모습은 아니다. 대적광전(보물 826호)과 명부전, 요사채 등의 건물이 남아있는 소박한 절인 것. 남아있는 건물들을 둘러보자면 겸손함이 느껴진다. 과거의 위엄을 내려놓았지만 그 내공을 보듬은 채 다소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소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소설가 양귀자는 ‘숨은 꽃’에서 귀신사의 분위기를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귀신사의 무여 주지스님은 “극락은 반드시 죽은 뒤에만 가는 곳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극락이 될 수 있다”면서“남을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고 설(說)했다.

 

▲ 귀신사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인 명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레이크뉴스

 

스님은“괴로움을 떠나려는 마음이 있어야 편안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쉼이 필요해 절을 찾는 이들에게 해답이 되는 가르침. 소박하고 편안한 절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며 깨달음으로 인도해 온 무여 스님. 5월22일은 부처님 오신날. 스님을 직접 만나, 불교적 삶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 마음이 편안해지는 실마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편안함을 얻는다는 것,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면 안돼요. 이고등락의 마음.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괴로움을 벗어나고 싶다, 온전히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절실함이 있어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유를 하게 됩니다.

 

- 욕심을 내려놓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개인의 욕심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근본적 해결은 결국 집착 없이, 걸림 없는 마음으로 보고 행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일을 치열하게 해도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번뇌가 없습니다. 열심히 하기는 해도, 안 된 것에 대한 집착이나 상실감이 없는 것이죠. 결과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어도‘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인정하는 거예요. 그렇게 걸림 없는 마음이 되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 현실에선 학벌 등 스펙이 걸림돌입니다. 사회적성공과 직결되니 갈등과 불만이 쌓입니다.
▲불교에서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인과응보’예요. 내가 부자로 산다면 전생에 많이 베풀었던 공덕이 있는 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내가 많이 베풀지 못한 결과인 겁니다. 그렇게 인과응보를 생각하면 내 분수에 맞는 삶에 만족하게 됩니다. 내 현실에 맞지 않게 더 바라기 때문에 괴롭고 세상에 불만이 생겨요. 모든 번뇌는 여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 모든 것은 인과와 업보의 결과인 건가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緣起法)입니다.‘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존재나 결과는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 어떤 일도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이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내가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고, 남에게 악행을 하면 나쁜 결과를 받는 이치입니다. 이것이 인과이며 업보입니다.

 

- 업보에 따르는 결과라면, 그 고리를 끊을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이 바로 수행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수행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맞는 기도 방법을 찾아 이것을 잘 실천하면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주로 하는 참선이 가장 대표적인 기도이며 수행법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생각을 집중하는 참선은 쓸데없는 망상이 없어지도록 합니다. 또 염불도 수행의 한 방법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또는 나무관세음보살 등 불보살의 명호를 외는 염불도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밖에도 부처님 경전을 정성껏 옮겨 적는 사경(寫經)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절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 하심(下心)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 정치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많이 발생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도 주지라는 소임을 살다 보니까 정치인들을 종종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저는‘왜 정치를 하려 하시느냐’고 질문해요. 그러고 나면 대부분 대답이 실망스럽습니다. 정치인처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 그것도 사유거든요. 그 자리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그것이 대원심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시민과 도민과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 아쉬워요. 그분들이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는지가 중요합니다.

 

-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고 화합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갈등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이의 생각을 귀담아 듣고 서로를 인정할 때 화합의 길이 시작될 것입니다.

 

- 우리가 결국 추구해야 할 사회는 어떤 곳일까요.
▲극락(極樂)입니다. 극락은 반드시 죽은 뒤에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극락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서로 도우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극락 아니겠습니까. 다툼에서 화합으로, 갈등에서 존중으로 나아간다면 그곳이 곧 극락이라 할 것입니다. jtk3355@naver.com

 

*필자/정태기. 종교전문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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