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성민들의 하소연이 바로 천심이 아니겠는가?

<역사소설 대륙풍운(大陸風雲)-77>천하 망종 조왕 윤과 손수의 최후

이순복 소설가 | 기사입력 2018/04/19 [01:01]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조왕 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속에서 깨어 나온 심정이 되었다. 태산같이 믿었던 사마아와 허초 장형과 같은 상장이 다 죽자 의지할 장수가 없어지니 손수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손수를 면전에 불러놓고 노골적으로 원망하기를

손시중, 경이 원망스럽소. 짐은 황제자리를 탐하지 않았소. 짐이 구석을 누렸음은 인신의 극에 이른 것인데 경이 공연히 천자를 폐하게 하여 짐에게 찬역의 누명을 지게 하였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래도 된단 말인가. 수십 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짐의 소중한 장수들이 이미 죽었으니 장차 짐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황공무지로소이다. 폐하.”

손수는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말했지만 노회한 그도 이 마당에서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바로 이때 성 서남쪽에서 방포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함성이 궁궐까지 들리고 동시에 사자가 급히 들어와 아뢰기를

지금 성도왕과 제왕의 군사가 낙양성을 에워싸고 맹렬히 공격하나이다.”

장흥장군이 이궐산에서 포위되어 원병을 청해 왔습니다.”

 

급보는 꼬리를 물고 연이어 들어왔다. 이에 조왕 윤과 여러 중신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자 복윤이 겨우 입을 열어 아뢰기를

폐하, 속히 칙명을 내리셔서 백성의 동요를 막으소서. 낙양성은 견고하여 수십만 군의 공격도 능히 견딜 수 있사오니 우선 민심을 적극적으로 수습하옵소서.”

복윤의 그와 같은 진언은 오랜 세월동안 전진(戰塵)속에서 싸워온 용장의 관록에서 나온 말이었다. 조왕 윤은 곧 3부의 사마를 불러 성중 백성들의 동요를 막게 했다. 그리고 즉석에서 복윤에게 원수의 절월을 주고 군사를 지휘하여 난국을 수습하라 명했다. 그때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손수는 본성을 드러내어 간계 하나를 주달하기를

폐하, 속히 하간왕 옹에게 밀조를 내려 황태재에 봉하옵소서. 하간왕이 회의를 품던 중 친왕들이 기병하자 체면 때문에 짐짓 친왕연합군에 참여한 것뿐입니다. 알아 본 바 하간왕은 아직도 섬서에 있다고 하옵니다. 하간왕이 친왕연합군을 이탈하면 여러 친왕들은 자연 분열하고 말 것입니다.”

 

조왕 윤은 손수의 말을 따져보지도 않고 즉시 하간왕을 황태재에 봉한다는 조서를 써서 은밀히 사신을 보내 활로를 찾고자 부심했다. 날마다 크고 작은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그렁저렁 세월은 흘러갔다. 친왕연합군이 낙양성을 에워싼 지도 1달이 넘었다. 낙양성은 과연 견고한 성이었다. 제왕은 여러 친왕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더욱 굳게 포위망을 펼쳤다. 물 샐 틈 없게 포위하자 낙양성은 안팎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제왕은 여러 친왕에게 격려하여 말하기를

성이 떨어질 날은 멀지 않았소이다. 낙양성은 지구전을 견디지 못합니다. 머지않아 양초가 떨어지면 군민이 다 같이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과연 제왕의 말은 적중했다. 성중에는 양식이 떨어져 군사마저 먹일 수 없게 되었다. 손수는 군사를 풀어 백성들의 곳간을 털었다. 그리고 보이는 곡식을 모조리 징발했다. 마지못해 식량을 내놓은 백성에게는 증서를 써서 주고 난이 평정되면 2곱으로 배상한다고 했다. 백성들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민심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낙양성민들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성은 드높고 도적은 들끓고 아사자는 늘어만 갔다. 낙양성은 굶주리고 병들고 도적질하고 빼앗고 되는대로 훔쳐 먹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이대로는 안 돼. 문을 열고 항복을 해야 해.’

 

민심이 천심이 아니던가. 굶주린 성민들의 하소연이 바로 천심이 아니겠는가.

이를 좌시 못한 좌위장군 왕여가 성민들의 원성을 더 이상 참지 못해 가슴 아파했다. 그는 남몰래 중군사 조천과 우군사마 왕최를 찾아가 숙의하기를

아무래도 성이 곧 깨어질 것 같은데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지 두 분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싸우다 죽고 굶주려 죽은 시체가 날마다 늘어 가니 그 참상을 차마 눈뜨고 못 보겠소.”

친왕들이 기병한 것은 조왕과 손수의 부도한 것을 죄 주려고는 것이지 백성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지 않소.”

그렇소. 이렇게 시간만 축내다가 성이 깨어진다면 우리도 조왕 밑에 있는 벼슬아치들이니 옥석구분(玉石俱焚)으로 화를 당하고 말 것이오.”

 

세 사람은 마침내 뜻을 모아 바깥에서 싸우는 친왕들의 군사와 호응하기로 밀약하였다.

그럼 좌위장군께서 우위장군의 뜻을 떠본 후 거사일시를 확정합시다.”

왕최의 의견에 따라 왕여와 조천은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어 서로 혈맹을 맹세하였다. 우위장군 이의는 새벽녘에 좌의장군 왕여의 방문을 받았다. 이의는 왕여의 자상한 이야기를 듣고 쾌히 응낙하고 즉석에서 혈맹을 맺었다. 그날 밤 왕여 조천 왕최 이의 네 사람은 이의의 집에 다시 모여 작전계획을 세밀하게 짰다. 거사는 다음날 밤 3경을 디데이로 하여 왕여와 조천은 휘하 군사를 이끌고 손수의 저택을 쳐서 권속과 도당을 일망타진하기로 하였다. 또 이의와 왕최는 동문으로 나가 수비병을 달래어 성문을 열고 성도왕의 군사를 맞아들이자고 하였다.

 

다음날 밤 왕여는 우위군 군사들에게 대의명분을 설파하자 모든 군사가 다 찬동하였다. 얼마나 조왕과 손수의 조정이 부패한 것인지 알만한 하였다. 3경이 되자 왕여와 조천은 휘하의 3천군을 휘동하여 손수의 저택을 들이치고 이의와 왕최는 이보다 2식경 앞서서 동문에 이르렀다. 동문은 좌위군이 관장하고 있었으니 이의는 수비병들의 사령으로서 친히 성문에 나와 지휘하였다. 수비병들은 처음 있는 일이라 의심치 않았다. 이의는 2경부터는 자기 심복 장교와 군졸들로 성문을 파수케 하고 그 밖의 군사들은 물러가 쉬게 하였다. 드디어 3경이 되자 약속대로 손수의 저택 쪽에서 불꽃이 일고 함성이 들려왔다. 이의는 즉시 포를 터뜨리고 성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미리 내통을 받고 대기해 있던 성도왕 휘하의 석늑과 급상이 노도처럼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장사 노지는 견수와 석초에게 일지군을 주어 남문을 열고 제왕의 군사를 맞아들이도록 하였다.

 

한편 손수의 집을 급습한 왕여와 조천은 잠자던 가솔을 모두 다 체포하여 끌어내었다. 반항하는 자는 목을 베니 불과 3각 만에 손수의 가솔과 그 동당을 모두 체포했다. 또 맨 먼저 입성한 석늑과 급상은 곧장 부마 부중으로 달려가 손회와 그 동당을 모조리 체포했다. 급상은 손회의 목덜미를 쥐고 밖으로 끌어내어 중인환시 하에 손회의 배를 갈라 그 간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 가솔을 닥치는 대로 목을 베어 씨를 말려 버렸다. 뒤늦게 남문으로 입성한 제왕과 장방은 단숨에 궁궐로 달려갔다. 아직도 멋모르던 금위군이 친왕군의 앞을 막다가 장이 휘두르는 칼에 목이 잘려 떨어지자 가로막을 자가 없어졌다. 제왕 경과 동해왕 월은 친히 칼을 뽑아 들고 대전으로 들어서니 구중궁궐 안이 갑자기 살벌해졌다. 그러나 반항하는 자가 없어 제왕 경은 어렵지 않게 조왕 윤을 찾아내어 그를 계하에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조왕의 아들 사마과와 사마무 그리고 사마견이 잡혀 오자 그들도 그 애비 곁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했다. 그리하여 찬역의 도배들이 한몫에 모두 다 소탕된 것이다.

새날이 되자 궁중 안팎이 토역의 대열에 나선 왕들의 군사로 장악되었다. 제왕 경은 곧 영창궁으로 신야공을 보내어 백치황제 혜제를 모셔와 다시 본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방을 낙양성중에 붙여서 민심을 안정케 하니 이로써 조왕이 황위를 찬탈한 100일 천하가 막을 내렸다. 조왕은 3개월여 만에 역적의 낙인이 찍혀 폐서인이 되었다가 이내 사약을 받고 죽었다.

한편 손수는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분노한 백성들이 달려들어 그의 사지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 밖에 복윤은 정세가 바뀐 것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손수의 도당들도 모두 풀잎에 이슬처럼 사라지니 173인의 3족이 주륙을 당하였다.

 

혜제는 조왕의 반역을 징치한 공을 포상하여 제왕 경에게 대사마의 관작과 구석을 내리니 인신으로써 최고의 귀한 사람이 되었다. 또 성도왕 영은 대장군에 봉하고 중외의 여러 군무를 도독케 하였다. 하간왕 옹은 진에 머물러 있었기에 5천호의 식읍을 증봉하고 장방은 무군장군에 봉하였다. 또 장사왕은 시중태위에 봉하고 동해왕은 중군도위에 임명하여 낙양성중의 병마를 도독케 하고 신야공은 왕으로 책봉하고 낭야왕은 절월을 주고 1천호의 식읍을 증보하여 영지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번 거사에 성안에서 내응한 왕여 조천 왕최 이의 등 4사람은 그 공이 지대하다하여 각기 호국편장군에 임명하여 중군도위 산하에서 병마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와 같이 논공행상이 끝나자 성도왕 영은 혜제에게 주달하여 석늑과 급상의 공이 지대함을 알리고 그들에게 응분의 벼슬을 내리도록 청하였다. 혜제는 곧 이들에게 벼슬을 주도록 대사마 제왕에게 일렀다. 제왕은 석늑과 급상을 불러 그 뜻을 물으니 석늑은 고개를 저어 벼슬을 사양하며 말하기를

이제 큰 일 하나가 끝났으니 나는 수하 군졸을 데리고 상당으로 돌아가서 노부모님을 봉양하겠습니다. 제가 원하기는 족형 석숭의 뒤를 이을 유자를 보살펴 주시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제왕은 석늑의 뜻을 갸륵하게 여겨 곧 석숭의 아들 석복을 위위에 봉하고 과거 석숭의 모든 재산을 찾아 주었다. 석늑은 제왕과 성도왕에게 작별을 아쉬워하며 귀향의 장도에 올랐다. 성도왕 영은 떠나는 석늑에게 황금 2천 냥과 채단 1천 필을 사례로 주고 급상과 1만군에게는 각기 은자와 필목을 주어 그들에게도 사례를 표했다. 제왕은 떠나가는 석늑에게 불쑥 한마디 던지기를

만약 장군의 뜻이 움직인다면 가는 길에 이궐산에 숨어있는 역도 장흥을 쳐서 그 2만군을 가져가도 좋소.”

석늑이 대답을 보류하고 그냥 미소를 지으며 낙양을 떠났다. 대장부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하였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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