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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우리나라 헌법이 시민위한 쉬운 글로 바뀌어야 한다"

글의 바탕은 정직과 친절, 든든한 어휘다!

강상헌 우리글진흥원장​ | 기사입력 2018/03/21 [15:03]

▲ 강연하는 소설가 김훈.     ©브레이크뉴스

 

소설가 김훈의 회고(回顧)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그에게 여러 생각의 실마리인 듯 했다. ‘(얘기를 들으니) 진주성이 깨졌다. 닭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남지 않았다. 나는 밤새 앉아 있었다. 아침에 바람이 불었다.’ 난중일기의 많은 글 중 그가 들어 보인 이 글은, 힘이 크다. 이순신 장군의 스산한 심정까지도 객관적인 언어로 적혔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도 여러 차례 이런 모습이 나온다. 이런 표현들 말이다. ‘(백의종군 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받던 날 시골 객줏집 행랑방에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소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독백(獨白)으로 난중일기와 그 시기의 위급한 상황을 풀었다.

 

▲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브레이크뉴스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지만, ‘이순신을 풀어낸 김훈의 세상’을 엮은 것이다. 글은 ‘글 쓰는 이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난중일기는 장군의 세상, ‘칼의 노래’는 김훈의 세상인 것이다.

 

‘웃자란 언어’라고 했다. 요즘의 말글 더미들이 정직하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사실을 간결하게 표현한 이순신의 글에 그가 비춰본 언어 상황이다. 조장(助長)의 고사(故事)를 생각하면 뜻이 또렷이 다가온다. 빨리 자라는 것(長)을 돕겠다(助)고 벼 포기를 뽑아 올리면, 농사 망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는 얘기에서 나온 표현이다.

 

최근 우리글진흥원의 ‘공직자를 위한 국어능력 향상교육’에서 강사로 참여한 소설가 김훈을 만났다. 이순신의 글이 공직자의 (국민에 대한) 보고의 글로 모범이 되는 까닭을 말했다.

 

공공언어를 바로 세우는 일은 그의 말대로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 핵심이다. ‘글의 힘’이 보람을 갖기 위해 필요한 ‘글 쓰는 힘’의 내용일 터다.

 

“난중일기에는 병졸들이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아먹었는지, 화살촉이 몇 개가 남았는지와 같은 사실에 입각한 기록만 있습니다. ‘보고의 정직성’이 세상을 옳게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을 장군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이가 김훈에 관해 쓴 글에 나오는 이 대목이 적절한 설명이 되리라. “초년 기자 시절부터 우리는 사실(팩트 fact)과 의견(오피니언 opinion)을 명확히 구분해 쓸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화창한 날씨’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상쾌한 날씨’는 주관적 의견이다.”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자어(漢字語)의 바른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정확하고 적확(的確)한, 상황에 딱 맞는 단어를 그때그때 골라 쓸 수 있는 능력이 ‘글 쓰는 힘’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이 떠올랐다.

 

우리 교육에서 한자가 사라진 후 한자어의 뜻이 모호해지거나 다른 의미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자주 지적된다. 항공수송의 뜻 공수(空輸)가 (산지)직송 쯤의 말이 되거나, ‘남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마음’인 금도(襟度)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의 뜻으로 쓰이는 것 등을 말함이다.

 

▲ 강상헌 언론인.    ©브레이크뉴스

그는 법조문(法條文)이나 항해술(航海術), 중기(重機)의 매뉴얼(사용설명서)과 같은 글을 즐겨 본다고 했다. 난중일기와도 같이, 더 줄일 수 없는 간단한 문장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관련해 헌법도 도마에 올랐다.

 

“서태평양의 6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마이크로네시아에서 그 나라 헌법을 읽었지요. ‘바다는 단절이 아니라, 섬과 섬 사이의 연결’이라는 뜻의 전문이 인상적이었지요. 헌법 개정 얘기가 나왔는데 이번 기회에 헌법 전문의 문장도 바꾸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헌법이 시민을 위한 쉬운 글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한 문장에 여러 ‘가치’들을 다 넣으려니 난해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정직만큼 (독자를 위한) 친절도 공공문장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였다. 어휘는 이를 위한 실탄이다. 우리 글쓰기에서 돌아볼 대목이다.  kangshbada@naver.com

                                                 

*필자/강상헌. 우리글진흥원장​. 언론인.

 

*토막새김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사물의 이름에는 오직 하나의 명사, 움직임에는 하나의 동사, 그것을 꾸미는 데는 하나의 형용사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하나밖에 없는 이 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언어 선택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되겠다.

 

한자가 속뜻인 한자어는 놀랄 정도로 많은 어휘(語彙)를 만든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말은 실은 한자 공부에서 시작된 얘기다. 한자어는 외래어처럼 한국어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요즘 한국어에서 한자어는 일종의 프리미엄적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알고 쓰는 사람’은 ‘대박’인 것이다.

 

일물일어설은 큰 어휘력을 전제로 한다. 단어의 창고가 튼실해야 일물에 맞는 일어를 제 때 찾아 쓸 수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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