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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강단사학, 기득권 지키기보다 민족의 앞날 생각해야

대동강 낙랑설, 한사군 한반도설 고집 강단사학 민족-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큰죄 짓고있어

심백강 역사학 박사 | 기사입력 2017/06/16 [15:51]
▲ 심백강  역사학 박사.    ©브레이크뉴스

중국의 국가 주석 시진핑이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했을 때 강단사학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했다. 성명서 하나 발표되지 않았다. 그런데 도종환의원이 문체부장관에 지명되자 민족사학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의 날을 세웠다. 이는 저들이 국가와 민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기득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강단사학은 고조선이 한반도에 있었고 한사군의 낙랑군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이씨조선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건국된 이후 사대주의자들이 제시한 이론이고 한사군의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 식민주의자들이 강조한 주장이다. 따라서 이는 모두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고조선 한반도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명,청시대에 자신들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이씨조선을 얕잡아본 중국의 학자들은 발해의 모퉁이 요서에 있었던 고조선을 말살한 채 한반도 고조선설을 날조했고 이씨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은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사군 한반도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일본은 식민통치를 장기화할 목적으로 반도사관을 형성했다. 대동강 변의 토성리에서 와당을 비롯한 한나라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자 이를 낙랑유물로 둔갑시켜 대동강 낙랑설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했다.


광복 70년이 흐른 지금 그것은 이미 철지난 낡은 이론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민족사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속속 발표되어, 일제의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한국사 조작이 증명되었고 특히 ‘사고전서’라는 사료의 보고를 통해 낙랑군이 대동강유역이 아닌 중국 하북성의 갈석산 동쪽 조선하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강단사학이 일제의 실증사학을 가장한 위증사학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철지난 낡은 대동강 낙랑설을 붙들고 늘어지는 데 있다. 그동안 민족사학계에서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한사군 한반도설이 깨진지 이미 오래전 일인데 강단사학은 애써 모른척하며 아직도 대동강 낙랑설에 갇혀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하북성 동남쪽 갈석산 부근에 설치되었다는 것이 ‘사고전서’ 같은 세계가 공인하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실하게 증명된 이상, 이제 한사군 한반도설은 70년 전 일제가 식민통치를 영구화하기 위해 주장한 낡은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단지 강단사학계만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민족사학의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의도적으로 폄하, 외면하고 유사사학이니 사이비사학이니 하는 악의적인 이름으로 매도하면서 일제가 우리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실증사학을 가장해 위증한 대동강 낙랑설, 한사군 한반도설을 고집하는 강단사학은 민족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일제의 조선사편수회 역사관에 충실할 것인가.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자랑스러운 올바른 한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주어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강단사학은 지금 목전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먼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


강단사학은 그동안 실증사학을 내세우며 고고학 위주의 역사연구를 해왔다. 그러나 고고학은 문헌학의 보조학문이다. 문헌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동이 가능한 와당과 같은 2차, 3차 고고유물만을 가지고 낙랑의 위치를 대동강유역으로 단정하는 것은 실증사학이 아니라 실증을 가장한 위증사학이다.


고고학적인 1차 유물은 강과 산이다. 강과 산은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무제는 갈석산 동쪽에 낙랑군을 설치했다고 ‘전한서’에 기록되어 있고 북경 북쪽에 고조선의 조선하가 있다고 송나라시대의 ‘무경총요’에 적혀 있다. 낙랑군이 대동강유역이 되기 위해서는 대동강유역에 갈석산과 조선하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역사상에서 대동강 유역에 갈석산과 조선하가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대동강 낙랑설을 주장하려면 대동강 부근에 갈석산과 조선하가 있었다는 근거를 문헌적 고고학적으로 함께 제시하여 실증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일본은 식민통치를 위해 고고학을 빙자한 위증사학으로 조선의 역사를 30여 년 동안 왜곡했다. 광복 후 강단사학은 다시 일본의 위증사학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70여년 동안 속여 왔다. 강단사학은 지금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소아적 발상에서 벗어나, 대승적 차원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양심에 귀 기우리며 민족의 먼 앞날을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shimbg2001@hanmail.net

 

*필자/심백강. 역사학 박사. 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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