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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주(미문학연구소장) 교수 “고사관석도(高士觀石圖)” 관련 주장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의 작품 명칭을 <고사관석도>로 재 명명해야...”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7/05/19 [00:17]
▲ 신석주 교수.     ©브레이크뉴스

그림 속에서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三昧境)을 느낄 수 있는 강희안(姜希顔, 1419-1464)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 대표적인 문인화로 알려져 있다.

 

이 <고사관수도>에서 보이는 깎아 세운 듯한 단애(斷崖), 매달린 넝쿨가지와 잎 그리고 바위와 수면을 배경으로 명상에 잠겨있는 고사(高士)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수면, 즉 물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라 하여 작품의 명칭을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라고 불리어져 왔다.

 

▲강희안<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23.4* 15.7Cm, 종이에 수묵, 1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이 그림의 그림 제목, 즉 작품 명칭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석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학점제 서양화 전임교수는 지난 4월 29일 열린 2017년도 춘계학술대회(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이영철교수)에서 신석주미문학연구소 논고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여러 정황의 근거로 볼 때 <고사관석도(高士觀石圖)>로 재 명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강희안 작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작품 명칭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고에서 그동안 불리어져 온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의 그림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여러 가지 정황의 근거를 내세우며 논고 속에서 타 인문학 논고에서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그림과 시대적 상황 등의 비교를 통해 색다른 주장을 한 것.

 

신 교수는 연구에서 “그 동안의 여러 연구와 작품 평(評)에 대한 모든 요소들은 수용하지만, 유독 그림 속의 주인공, 즉 고사(高士)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 ‘물’이 아니라 그동안 강희안이 즐기며 애착을 가진 돌, 즉 ‘수석(壽石)'이라는 것에 연구의 포커스를 맞춘다.

 

즉, <고사관수도>에서 보이는 명상에 잠겨있는 고사(高士)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물이라고 하여 작품의 명칭을 그동안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라고 불리어져 온 것에 대한 기존 명칭의 의문으로 시작되어 결국, ‘고사관석도(高士觀石圖)’라는 결론에 다다른다”고 설명하고 “그래서 진정 고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고 ‘돌’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

 

▲조영석,<고사관수도> 종이에 수묵, 27*18.3Cm, 17세기, 선문대 박 물관.     ©브레이크뉴스

그는 그런 이유의 타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논고 속에서 그는 여러 가지 그림의 대입과 자신이 직접 포토샵(Photoshop)으로 그림을 변경해가며 고찰해 나간다.

 

첫째, <고사관수도>의 양식적 특징에서는 그 시대의 다른 작가의 <고사관수도>를 내세운다.

 

다른 <고사관수도>의 그림에서는 고사(高士)가 바라보고 있는 그림은 물만 존재하는 구도의 그림이 주를 이루며 물속에 아무런 장식과 사물, 즉 군더더기가 없으며 또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서처럼 다른 그림에서도 돌은 있으나 결코 고사(高士)의 시선 안에 있지 않고 시선 바깥의 그림 우측 귀퉁이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후대에 ‘고사(高士)’로 시작되는 그림제목이 많다.

 

이런 탓에 강희안의 그림 역시 그냥 고사와 물이 등장하니까 물을 바라보고 있는 제목으로 잘 못 붙여졌다는 것.

 

연구자가 변형시킨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고사가 바라보는 수   면 위, 즉 앞에 있었던 풀과 돌을 제거해 봄으로써 다른 고사관  수도와 같은 느낌을 제시해 보았다.         ©브레이크뉴스

그래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서는 고사(高士)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물속에 있는 잡초들과 검게 칠해진 검은 물체(돌)에 시선이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그려져 있기 때문에 신 교수는 무엇보다도 강희안이 1차 주제를 ‘고사(高士)’로 잡고, 그 주제를 보강하는 2차 주제를 ‘물’로 생각했다면, 다른 <고사관수도>와 같이 물속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수석, 즉 괴석(怪石)에 대해 많은 애착을 느끼고 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는데, 그 글 속의 그의 심정은 바로 신 교수가 제시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인 것. 그림 속에 고사(高士)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진정 ‘물’이 아니고, ‘수석(괴석)’이라는 단초를 강희안의 글과 함께 논고에서 자세히 피력하고 있다.

 

셋째는 동 시대의 사대부 문인들의 수석에 관한 취미를 논고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추사 김정희 시대를 전후로 하여 사대부 문인들의 수석취미에 관한 자료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런 활동 등의 영향으로 그 시대에 수석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넷째는 그림을 확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림 속의 고사(高士)의 눈동자와 돌(수석)의 시선이 일직선상으로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강희안 ©브레이크뉴스

신 교수는 이러한 여러 정황을 근거로 “강희안의 작품의 명칭을 <고사관수도>가 아닌 <고사관석도(高士觀石圖)>로 재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논자의 오랜 애석(愛石)활동으로 인한 탁월한 식견에서 나온 논고이므로 주제가 생생하게 살아있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고사관수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하여 매우 참신한 논고”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문학 논고임에도 불구하고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 그림 속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실험을 통하여 과학적인 논증방법을 택해 논고의 참신함을 더해준다”는 논평이다.

 

이어 “논고 속의 돌에 대한 다양한 용어(괴석, 수석, 돌)의    혼재를 지적하여 개념의 통일성을 제언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움직이는 물과 움직이지 않는 돌의 철학적 의미를 더 연구하여 가미한다면 더 바람직한 논고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학계는 신 교수의 이 논고가 “한국미술사에 영향을 끼치는 비중 있는 논문이 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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