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인 시절의 박정희 전 대통령 ©브레이크뉴스 |
친일-좌익-사생활 등 전력 자세히 파헤쳐
그가 쓴 이 책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좌익-사생활 등 전력이 자세히 파 헤쳐져 진 것. 김 교수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창씨 개명을 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1937년 대구사범을 졸업한 박정희는 문정소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그러나 일종의 영웅주의적 자아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단조로운 교사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1939년 2년여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만주로 달려가 군인의 길을 택했다."면서 "다음해 봄 신경군관학교에 정식 입학한 그는 소망하던 사관생도복을 입었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이때 다카기 마시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생활 부분에서는 "그에게는 아내 김호남과 딸 재옥이가 있었지만 단신으로 떠났다. 아내와의 관계도 사실상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1952년 육영수와 재혼한다. 육여사와 결혼하기 전 약 1년간 동거한 약혼녀가 있었지만 1948년 11월 박정희가 남로당 사건으로 체포되자 갈라섰다."라고 기술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에 몸담게 된 배경에서는 "그가 교직을 떠나 결정적이 이유는 일본인 교장과의 불화와 차별대우였다고 한다. 차별대우의 수모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입은 자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팠고, 그 상처를 메우려는 보상 심리가 그의 영웅심을 자극, 군인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것"이라면서 "만주군관학교에서 2년의 예비과정을 마친 박정희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유학생에 편입했다, 그리고 1944년 3등이라는 발군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마침내 황군 장교가 되어 만주 관동군에 배속되었다."고 한다.
좌익심취 셋째 형 박상희 경찰이 즉결처분
| |
▲박정희 전 대통령 ©브레이크뉴스 |
"이리하여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옥죄었던 박탈감과 열등 콤플렉스에서 해방되었다. 아미 당시 박정희의 눈에는 광활한 만주벌이 장부의 호연지기를 펼 수 있는 천혜의 무대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도 못돼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이 변신은 그에게 또 다른 콤플렉스를 심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민족을 등진 친일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김호진 교수는 박정희와 그의 셋째형의 좌익 전력도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를 공개했다. 김교수는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한지 채 열흘로 안돼 박정희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10.2인민항쟁이다. 이때 좌익사상에 심취했던 셋째 형 박상희가 봉기에 가담했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즉결처분된 것이다. 김종필의 장인이기도 한 박상희는 박정희를 남로당으로 이끈 장본인"이라고 전제하고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로 남로당 군사부 책임을 맡고 있던 이재복의 자술서에 따르면, 그는 고향에 돌아온 박정희에게 공산당 선언 등의 책자를 주며 남로당 입당을 권유했다" 한다.
군내부 남로당 활동 사형선고 받아
김교수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에 복무할 당시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김교수는 이에 대해 "80일간의 단기교육을 받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는 1946년 12월 육군 소위로 임관돼 남아의 웅지를 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그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면서 "1948년 여순반란 사건을 계기로 군내 좌익 소탕작업이 벌어지자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그해 11월 체포된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949년 1월 강제 예편되는 아픔을 겪는다. 날개가 채 여물기도 전에 또다시 주변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그는 군부 남로당 조직을 실토함으로써 살아 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다. 이리하여 자기가 살아 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데 대한 또 하나의 정신적 콤플렉스를 느끼게 된다."라고 서술했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그 형제에 대한 좌익 전력이 자세하게 재론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차기 대선 예비후보로 활동을 시작한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박근혜 의원의 이념성향을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moonilsuk@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