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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문화 바꿔야 한다!

제사문화를 놀부님 제사법으로 변화시켜 가족갈등을 해소하자

이순복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2/18 [14:20]

새 시대의 제사문화(놀부님 제사법)는 이런 것.

 

머릿글

 

제사를 정의하여 가감 없이 고인을 추모하는 문화라 말한다. 그러니 문화는 시대의 변천을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제사문화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상을 따라 변화가 더디어 각 가정이나 가문에 크나 큰 갈등을 초래하여 부부갈등 고부갈등 가문갈등을 초래하여 허다한 폐단을 자생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백 년 전에 놀부님이 나타나셔서 제사문화를 혁명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였으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놀부님의 사적을 심도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 이순복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그래서 이러한 문헌들을 읽고 감동을 받은 바 있어 시대에 알맞은 제사법을 연구하다보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돈 일천 원과 오천 원에 새겨두고 존경하는 두 분을 향하여 불끈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주자라는 얼토당토 않는 중국인을 너무나 숭배한 나머지 제사문화에 폐학을 끼친데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그 남송대의 알량한 학문으로 주자학을 이 땅에 까지 보급하면서 너무나도 형식에 치우친 제사문화를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여러 가지 상례문들은 오늘에 반추해 보니 일말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와 같았다는 사실이다.

 

둘째로는 주자학에 바탕을 둔 제사문화는 우리 고대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오로지 남송을 향한 사대주의에 푹 빠뜨려 버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남성시대에 다가가서 조명해 보면 허무주의에 푹 빠진 정객들이 나라를 망쳐버린 중국사 중에서도 가장 무능한 시대였다. 그때 정객들은 심지어 양자강 이북의 강성한 나라들 때문에 패배주의에 푹 빠져 자포자기에 빠져서 소위 죽림칠현이 주도한 시대였다.

 

그 외에도 할 말은 많으나 짧게 한 마디 더 한다면 우리 돈에 새겨서 날마다 만나는 두 분에 대한 더 많은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어 민족자존의 길을 열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어 준 놀부님의 제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하고자 한다.

 

제사에 대한 이해

 

제사란 국어사전에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낸다.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한다. 제사의 동기는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에서 유래했다. 자연재해, 질병, 맹수들의 공격 같은 인간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이나 땅, , 바다, 고목, 높은 산, 조상 등에 절차를 갖추어 빌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신성에 대하여 지내는 종교 의식은 '제사(祭祀)'로 통칭할 수 있다.

 

일반명사로서 제사의 뜻은 이렇지만, 흔히 '제사'라고 하면 유교의식에 기반을 둔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수단으로서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제도로 고착되어 정치의 통치수단으로 변질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정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왕은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가정에서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종교적 면에서는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공자는 사후세게나 귀신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이율배반적린 행위로써 탓을 한다면 주자학을 발전시킨 이들을 탓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아들딸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차별이 없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사대주의가 팽배하고 스스로 소중화 의식이 강해지면서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기서 주시할 일은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전혀 재산을 유산으로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전통은 1990년대까지 유지되기도 했다.

 

그런데 제사에 파묻혀진 이런 제도는 복잡하게 변천하여 가정마다 연간 제사 횟수가 48회 이상이나 되기도 하였다. 원래는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위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 양반 가문일수록 불천위라 하여 영구히 제사를 모시는 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제례의 실용성 등에 대한 문제는 옛 유학자나 예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참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불필요한 논쟁이요 못난 조상들의 허례허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놀부님의 출현이 변화를 가져왔다.***

 

1. 일찌기 놀부님께서는 제사로 인하여 주부님들의 갈등이 심대할 것을 예견하시고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합리적인 제사문화를 실천하였다. 그것은 가정경제와 생활편리 그리고 가족 간의 화목과 조상을 정신적으로 숭배하는 모범을 내놓고 실천한 것이다. 놀부님은 자린고비 냄새도 나지만 제사를 통하여 불편을 최소화하였다고 본다. 그는 화기애애만을 주장하며 제사법을 새로 내어 놓고 실천했던 것이다. 여기서 화기애애는 제사를 드리고 나서 가족상호 간에 전혀 불평불만이 없게 된다는 표현이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정신적인 제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놀부님이 실행한 제사법을 따라 새 시대의 제사법으로 온 국민이 정착하여 모든 대한민국의 가문에 빛이 크게 나고 정신적인 제사로 승화되어 제사가 돌아오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을 만나는 화목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 놀부님 제사법은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행해지는 모든 제사에 대한 정신은 따르고 숭배하고 보존할지라도 제물로 드리는 종류나 그 조리방법과 형식은 자유자재로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3. 제사드릴 제물은 아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시중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모든 것과 제사 받을 어른이 생시에 좋아 했던 모든 것을 구하여 정신에 크게 치중을 둔 제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금기시해 왔던 복숭아나 석류 그리고 장어나 갈치와 같은 특별한 것은 드리지 않고 사양해도 된다는 것이다.

 

4. 제상 차리기

 

이것을 예전에는 진설이라 했는데 진설이란 일정한 법도를 따라 제물을 차리는 것인데 후에 예시하겠으나 오늘날 이를 냉철하게 따져보면 전혀 쓸모가 없는 형식에 치우친 것으로 과거 주자학에 깊이 빠진 분들의 말씨름이니 이를 탈피해서 보다 건설적인 상차리기를 하되 자유자재로 행하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선언하는 바이니 이를 여행하여 제사 드리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에게 제사 드리기를 바라는 바이다.

 

. 수저나 저 그리고 술잔이나 촛대를 놓지 않는다.

 

. 제기를 사용하지 않고 원과 각의 두 종류 1회용 스치레폴 용기나 은박 용기를 사용하고 깨끗이 버린다.

 

. 술은 제상에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음료수나 녹차 홍차 청정수를 사용한다. 단 깨끗한 도자기나 유리컵에 정성을 모아 한 그릇만 떠 놓는다. 본래 신이란 관념으로 모시는 것이고 문화의 성질이 짙은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용기에 정성껏 떠 놓고 이 한 그릇의 차나 청정수가 동이물과 같은 양이라고 믿고 드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여러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려도 좋다. 그것은 제사 주관자의 마음이다.

 

. 모든 음식은 생것과 인스탄트 식품으로 상을 차린다. 부언 설명하면 오곡과 백과를 생것으로 드리고 해물류도 마른 것으로 익히지 않고 차리며 육고기류도 건포를 올린다. 통조림 떡 빵 과자 면류도 제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식혜나 나물류 전류와 같은 만들기도 번거롭고 부패하기 쉬운 음식은 배제하고 집에서 조리하는 모든 음식은 사양한다는 말이다.

*초와 향 그리고 꽃과 화분 그리고 조화는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사가 정신적인 것이지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자재로 제물을 드린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5. 신위와 축문은 마음에 새기고 형편이 여유로우면 작은 현수막을 붙여도 좋다. 예를 들면 부모님을 모신 날. 갑신년 추석날. 조부모님 추모의 날이라는 현수막을 편하게 제작하여 달아도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의식이 시작되면 마음이 쓰인 대로 말로써 제례의식을 행한다. 기도를 드리듯 고해도 좋다. 제사를 드리려고 옷을 별도로 입거나 절을 드리는 일도 자유자재로 한다. 다만 옷이든 절이든 마음으로 정갈하게 성심성의를 다하여 하여야 한다. 절은 해도 좋게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존경으로 제사를 마친다. 각각의 가정의 기호에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음향기기도 사용할 수 있으며 종교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찬송찬미를 하고 서로 간에 덕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모든 절차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학교에서 배워왔던 의례의식에 준해도 나쁘지 않다.

 

6. 제사를 드리는 시각도 자유자재로 편하게 정한다. 현대인은 서로 직장을 가진 몸이니 토요일 또는 일요일 국경일 설이나 추석날을 제사일로 정해서 형제자매가 교통하기 좋은 날로 정해도 무방하며 제사 드리는 시각도 조석주야 어느 때를 정해도 나쁘지 않다. 다만 형제자매가 한마음으로 정한 날이 제일 좋은 제삿날이고 시각이 될 것이다.

 

7. 제사드릴 유사 정하기이다. 유사란 제사를 드리는 주관자를 말한다. 형제 자매간에 서로 원하는 자가 유사가 된다. 다만 제물이나 그날 먹고 마실 음식은 미리 상의한 대로 준비하되 형제자매가 서로 자유자재로 준비해 오며 제사의 주장은 유사의 재량에 맡긴다.

 

특히 제사드릴 장소도 어느 곳이든 형제자매가 모이기 좋고 만약 귀신이 있다면 속되지 않고 신성한 장소를 가려서 하면 된다. 예들 들면 꼭 가정집이 아니라도 고즈넉한 곳에서 현수막 달고 성심껏 제사드리면 된다. 호텔이나 유원지의 민박에서 제사를 드려도 좋다. 유원지의 아늑한 곳도 좋다.

 

8. 가급적 합제는 피하고 종교단체에 제사를 맡기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찰에 맡겨서 모둠으로 영혼을 모신다는 불경스런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합제를 드리고 종교단체에 맡기는 일이 생겨난 원인을 살펴보면 부녀자들이 제물제찬을 준비하는데 냐하면 언제 어느 때 어디서나 편의점이나 음식물도매상에 들려서 마음으로 예를 갖추어 위에 열거한 제물을 형제자매간에 성의껏 사와서 정갈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면 된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제사를 드리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가족행사의 날이 된다면 합제를 드리거나 시설에 제사를 맡기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제사란 원래 마음의 제사가 제일이다. 그러니 부담이 되는 제악을 일소하고 형제자매가 친목을 도모하는 장으로 만들어 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제사를 받는 조상님도 마음이 편해서 후손들에게 큰 복으로 보답할 것이다.

 

9. 제사 드릴 날짜도 형제 자매간에 제사가 든 달을 중심으로 편하게 정하되 제사 드는 달의 달력에 미리 표시를 해 두고 어머니 제사일이면 어머님이 제사 받으러 오실 날 이라고 달력에 써 두어 관념의 제삿날을 미리 정해 두어 천지부모에게 효성을 보이는 것이 좋겠다. 부모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천신으로 화하였기에 천신께 제사 드리는 것이니 이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여러 형제자매가 뜻을 합하면 그 날이 제삿날이 되는 것이니 부모님을 천신으로 반드시 기억하며 제사를 드려라. 그 천신은 마음의 제사를 바라는 것이지 냄새나는 나물이나 전 기타 구시대의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깨우치기 바란다. 이것이 문화인이 할 도리이고 지식인이 살아가는 도리이다.

 

10 음복이란 제사에 올린 음식을 제사를 마치고 형제자매가 함께 나누어 먹고 복을 받는 행위이다. 그러하니 제물로 사용했던 떡 치킨 피자 빵 과자 과일 음료수 등등 음식을 고루 갖추고 제사를 드린 후에 나누어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복을 받는 행위이다. 다만 생것으로 제상에 올린 것은 유사의 재량으로 형제자매가 나누든가 다음 유사가 가져가든가 편리를 따라 처리하면 되나 만약 값비싼 인삼과 같은 약제나 건어물은 연장자를 드려서 공경의 예로 삼는다.

 

11. 아래는 과거에 우리 조상님들이 제사 드리는 형식들을 첨부한다. 이것은 과거사를 알고 그 옛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자는 것이니 참고하기 바라며 문화한 참으로 허망하기도 하지만 인간을 옥죄이는 철갑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바란다.

  

폐단이 많았던 과거의 여러 제사법

 

대체로 과거에 알려진 제사의 매뉴얼은 집안마다 지역마다 제각기 특색이 있어서 다양하게 존재한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 등은 따로 올리기도 한다. 아주 싫어하던 음식이 있으면 빼기도 하고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하는 말이다. 각 가정마다 제례의식엔 사소하거나 또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아는 척하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후술하겠지만 사실 제사 관련 상차림은 원래는 딱 이거다 하고 고정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속설이 붙어서 묘하게 발전되어 왔음을 밝히는 바이다.

 

차례와 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명절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하며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한다.’ 따라서 설날과 추석에 한해서 제사가 아니라 차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차례도 제사에 포함되는 개념이므로 설날이나 추석에도 제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제사의 변천

 

여기서 혁명적인 제사법을 소개한다. 그것은 놀부님의 제사법이다. 놀부는 제물 대신에 종이에 음식 이름을 써서 올렸다. 조선 후기 주자가례가 널리 보급되면서 사당을 지을 능력이 되지 않는 집에서는 사당을 그린 그림을 대신 걸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놀부님은 재력도 있으면서 구두쇠라 아끼려고 했다고 전해지나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일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놀부님은 첫해에는 그와 t같이 제사를 드렸으나 다음 해에는 제기 위에 그냥 동전을 올리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3년째에는 지방을 써서 신위를 들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음식 앞에다가 신주를 들이 밀고 다니며 제사를 드렸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요 제사를 돈드리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 천재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린고비 제사법이니 버리고 놀부님이 우리에게 전해준 편리와 화목과 공경하는 마음만을 따르기로 하고 미래를 향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위에 열거한 놀부님 제사 드리는 법이다. 이에 대한 진화 발전을 기대한다.

 

현대에는 너무나도 자연애가 깊어져서 그러한지는 모르나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아 졌다. 이는 유교적인 의식 보다는 추모 행사에 가까운 것으로 개인이 생전에 아끼던 반려 생물을 추모하기 위한 경우이다. 그리고 의학 및 생물학 연구를 위한 실험 과정에서 희생된 생물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도 있다. 또 알기로 치맥 페스티벌은 닭들을 위한 위령제도 있었으니 아무튼 자신들의 정신세계에 가장 편한 쪽을 택하여 행할 일이나 필자는 이 모든 것을 참고하여 놀부제사법을 여행하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한국의 제사의 자취

 

환단고기에는 배달국 시대부터 제사문화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비하하는 까닭에 기록을 피하였다. 그러나 신명에 의한 복을 받고자 자연숭배로서의 제사의식이 행해진 것른 사실이다. 그 후 삼국시대에는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자기 가문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발전하였다. 일반 민중보다 왕가에서 먼저 행해 졌으며 고려 말에는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문의 무덤(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사이에서 활발해졌으나 별로 보급되진 않았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지도층에서는 절에 제사를 맡겨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남아 주자가례와 같은 유교의례는 사회전반에 보급되지 않았으나 16세기 중반 성리학이 심화되어 양반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되고 주자가례에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행하여지고 있다.

 

제사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

 

제사를 드리는 것은 후손들에게 공경심과 효심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사회적 소속감, 연대감을 증진하며 가족 간의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의미가 있다. 특히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 초래되는 단절과 공동체 의식의 결핍을 보완하여 현대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사방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현대 가족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가족애를 확인 할 수 있는 자리가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제사를 올리는 집은 조상에 대한 숭배의 목적이 아닌 친척 형제와의 관계유지와 전통적인 관례와 풍습으로 하는 것이지 조상신을 모신다는 종교적인 이유는 매우 약해졌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명절증후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죽은 사람의 정성을 드린다는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여자들이 명절을 싫어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종갓집들은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기일에도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종갓집 맏아들은 결혼 기피대상 1순위이다.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제사상을 차리는 몫은 전부 여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서서 도와주려고 해도 집안이 보수적인 곳이면

 

남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는 고정관념에 빠져서 주부가 힘들게 제사상을 차려놓아도 누구하나 수고했다는 말이 없고 잔소리와 면박까지 주고 용돈을 건네주는 시누이나 동서들을 편애한다. 게다가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때문에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 때문에 싸우면서 이혼하는 집안이 생길 지경이다.

 

하늘에 있는 후손들을 위한다는 조상들이 자신에게 상을 차려주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고생 시키고 면박을 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까지 음식을 차려주는 것을 과연 원할까 싶다.

 

사실 제사음식은 맛이 없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공통적으로 밥, , , 삼색나물, , 산적, 생선 정도가 올라가는데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갓 만든 게 맛있는 법이다. 다양한 음식이 한 번에 올라가야 하고 어느 정도의 양이 또 필요한지라 조리 시간이 길어져 어쩔 수 없이 음식이 식는다. 들인 돈은 많은데 정작 먹을 때에는 죄다 식은 음식이 되어서 푸석푸석하거나 질겨지기 십상이다. 다시 가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갓 한 음식만 못하기는 마찬가지로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도 의례를 크게 간소화해서 치르는 경우가 많다. 조상들의 제사일 을 아예 한 날짜에 몰아서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상 진설을 가짓수를 줄여 지내기도 한다. 아무튼 제사 간소화는 집안마다 가족마다 방법이 다 다르다.

 

여러 가지 방식의 제사에 대한 이해

 

제주도에서는 제사를 식게라고 부른다. 균분상속의 전통이 남아있어 시집간 딸과 사위도 제사에 참석한다. 자녀가 생기면 자녀도 동행하므로 외손자가 제사에 참석하는 게 유별난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제사에 초대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제주도 사람이 제사에 초대한다면 혈족만큼 친밀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된다. 제주도에서만 상에 올리는 음식들이 있다. 빵 양애 빙떡 그리고 갱도 생선국으로 올린다. 주로 생선미역국을 올린다. 지역특성상 어적도 빠지지 않고 올린다. 상어, 오징어, 옥돔. 명절 때 차례 상에 만두를 올리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경북 지방의 경우도 제주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방에서 보기 힘든 돔배기 같은 음식이 제사에 올라온다. 제사 음식들 중에서도 비중을 상당히 높게 치는 편. 집안에 따라서는 문어도 삶아서 올라온다.

 

안동시는 헛제사 밥이 라는 음식이 있다. 안동의 제사 밥이 맛있기로 유명하자 그곳에 부임한 미식가 관리가 이를 원하였는데, 아랫사람이 실제 제사에 쓰인 음식은 아니고 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어 대접하자 관리가 이를 먹고서는 "향이 나지 않으니 진짜 제사밥이 아니다.

 

신숙주의 본관인 고령 신씨의 일부 집안에서는 제사상에 숙주나물을 올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제수와 달리 종묘제례나 사직제례에 쓰이는 제수에는 익히지 않은 날 것과 양념하지 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종종 산신제나 일부 종중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산신제에서 이렇게 올리는 것은 유교의 영향이다. 산신제에는 고기를 잘 쓰지 않으나, 이는 현재 대부분의 산신각이 절 안에 있는 것도 있고, 남자 산신에게만 고기를 올리는 곳도 있다. 영월군의 태백산 산신제에서는 쇠고기를 쓰는데, 이는 영월에서 사망한 단종(조선)을 태백산 산신으로 존대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이후 제사의 주체는 일반적으로 남성, 특히 장남이 지내는 것으로 인식되나, 현대에는 평등 의식으로 인해 형제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지내거나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다. 또한 노론 출신 문중에서는 처음부터 딸과 집안 며느리 또한 제사에 직접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발의 가문인 광산 이씨 문중에서는 칼로 고기나 무를 썰 때 정철정철정철...’이라고 외운다고 한다. 이발의 가문은 정여립의 난 때 정철의 주도로 철저하게 숙청당해서 정철에 대한 원한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제사와 관련되어 나온 말들을 보면 제사상에 음식을 놓는 방식을 쉽게 외우기 위한 다양한 단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은 주자가례, 국조오례의 등과 같은 유교 서적에는 나오지 않는 근거 없는 단어들이고, 80~90년대 언론들이 몇몇 가문들의 상차림을 참고하여 상은 이런 식으로 차려야 한다며 만들어 전파된 단어들이다. 동쪽이니 서쪽이니 하는 말이 있지만 신위를 북쪽으로 상정하고 동쪽은 신위를 마주보고 오른쪽을, 서쪽은 왼쪽을 말한다.

 

제사에 쓰였던 어휘(한번 읽어보라고 적어 본다.)

 

어동육서(魚東肉西) : 물고기는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두동미서(頭東尾西) : 물고기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가게 놓는다.[19]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이시(棗栗梨枾) : 왼쪽부터 대추,,, 감 순서로 놓는다. 다만 대추, , , 배 순으로 놓는 조율시이(棗栗枾梨)도 혼용되고 있으며 이는 집안마다 다르다. 고로 남의 제사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 말자.

 

좌포우혜(左脯右醯) : 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놓는다.

 

반서갱동(飯西羹東) : ()은 서쪽에, ()은 동쪽에 차린다.

 

생동숙서(生東熟西) : 날것은 동쪽에, 익힌 것은 서쪽에 차린다.

 

건좌습우(乾左濕右) : 건한 음식은 왼쪽에 습한 음식은 오른쪽에 놓는다.

 

적전중앙(炙奠中央) : 적과 전은 중앙에 위치한다.

 

접동잔서(接東盞西) :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남좌여우(男左女右) : 남자는 제사상의 왼쪽에서 여자는 오른쪽에서 절을 한다.

 

상차림 논쟁에 대한 편견을 부시자는 뜻에서 살펴보면 보통 제사상 하면 떠올리는 상차림 대신 바나나, 피자 등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서 밤, 대추, 곶감, 약과 등과 같은 전통 상차림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이라면 올려도 상관없다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 상차림이라 부르는 형식도 196931일 공포된 가정의례준칙과 80~90년대 언론 등에서 몇몇 가문의 제사상 차림을 종합하여 상차림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널리 퍼뜨린 표준 형식일 뿐이다.

 

한국의 전통 상차림이라 보긴 힘들다. 전문가 견해도 주식인 밥, , 나물 등은 반드시 올려야 하지만 그 밖엔 피자나 치킨이나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외래 과일을 올려도 무방하다.

 

 

불교식 제사 지내는 법

 

고려시대에는 집이 아니라 절에 조상의 위패를 맡기고 제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조선시대에는 금지되었는데 조선이 망한 현대에 들어서 다시 절에 제사를 맡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5만원만 내면 절에서 대신 차례를 지내준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사후 일정기간 동안 불교식으로 조상의 성불을 기원하는 법회를 연다. 이를 법사(法事), 법요(法要)라고 한다.

 

천주교식 제사지내는 법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발언한 뒤 천주교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제사가 허용이 되었다.

 

우선 지방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을 쓰더라도 지방에 신위(神位)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이름과 함께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치소서"라고 쓴다.

 

그리고 제문을 올리는 등 조상""에게 바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제례의식들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에게 바치는 기도(연도, 위령기도)로 대신한다. 물론 집안에 따라, 특히 다종교 가정(?)인 경우 다양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어쨌건 핵심은 천주교에서 인정하는 제사는 어디까지나 조상에 대한 추모와 그들의 평안을 하느님에게 비는 기도라는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의 경우도 제사의 의의는 돌아가신 조상에게 예를 갖추고 살아있는 친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예식이라고 정의했다. 공자의 어록이나, 그 이후 발간된 그 어느 유교 경전을 봐도 제사가 조상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상귀신과 소통하는 행사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 유교식 제사에서 조상신을 모시는 형식으로 된 의례를 삭제해도, 유교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러하지만 간혹 이 선을 넘는 경우도 있는 법이기 때문에 천주교식 제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정교회의 제사

 

정교회는 추도식(追悼式)과 기도 그리고 특별히 성찬예배 때 그들을 위하여 봉헌물을 바치며 또한 그들의 영혼을 위한 자선 등으로 도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추도식은 세상을 떠난 지 3, 9, 40, 1년 만에 할 수 있다(통상 관례와 가족의 합의에 따를 수도 있다). 오순절 전 토요일과 금육주일 전 토요일에는 돌아가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추도한다. 추도식 때는 밀밥이나 쌀밥을 지어 와서 성당 안에 준비된 작은 제단 위에 놓고 촛불을 밝히고 분향한다.

 

성공회의 제사

 

제사를 굳이 배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천주교와 비슷하다. 다만 성공회 측에서는 신주 모시는 것을 지양하고, 대신에 영정사진을 내걸고 상도 간소하게 차릴 것을 권장하고 있다. 제사를 다분히 고인을 추억하고 친지들과 만남을 위한 한국 전통 문화의 예식이 아닌, 종교적인 의미로 제사를 하지 않는 이상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개신교의 제사 배척

 

개신교는 종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종파에서 제삿 상에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죄악시하므로 제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크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개신교에선 사람이 죽으면 심판을 받아 천국 또는 지옥에 간다고 보기에 제사상을 차려봤자 죽은 자가 와서 먹을 수 없다고 본다.

개신교에서는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권장하고 있는데, 천주교와는 달리 개신교 교리에서는 영혼을 위한 기도(위령기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조상에 대한 추도의식 또한 상당히 제한적이다.

 

 

천도교의 제사

 

천도교 종교의례에서는 청수일기(淸水一器)리 하여 항상 맑은 물 한 그릇을 준비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맑은 물 한 그릇만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낼 때도 있다. 이런 때는 벽 쪽에 위패를 놓고 위패를 기준으로 제물을 진설하는 일반적인 제사법(향벽설위)이 아니라 "향아설위"라 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상을 차린다. 이는 만인에게 한울님이 깃들어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2대 교주 해월 최시형부터 시작했다.

 

맺는 말

 

흔히 제사를 말하면 대추, , , 감의 순서(조율이시, 棗栗梨枾)로 놓고 잔을 올리고 오색채 나물, 탕과 식혜와 전 그리고 해물을 구어 올리고 매를 지어 갱을 끓여서 밤중에 수많은 가족이 절을 하는 의식을 행했다. 이것이 소위 제례문화이요 제례예식이다. 이 일을 하는데 며느리의 설음이 마지막 찌꺼기가 남아 비만을 유발할 야식을 먹고 나면 시시비비가 난무한 후에는 가족 간의 갈등을 초래하여 이혼이라는 비극으로도 발전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사에 쓰일 제물을 조리하는 문제가 문제에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알고 따져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조선조 16세기의 정객들의 이기심에 잔재가 오늘날 비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잘못된 제사문화를 오늘날 시대정신에 알맞게 변화시켜서 건전한 정신문화로 승화시켜 조상을 모시는 장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제사로 말미암아 가족 간의 화목이 다져지고 친화력이 돈독해 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제사문화가 가문의 행복을 약속하고 장자 장손의 권위를 높이고 그들의 배필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제사문화로 변화하여야 하겠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필자가 주장하는 놀부님 제사 드리기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이 놀부님 제사 드리기를 바르게 익히고 실천하여 조상이 기뻐하고 종가집 장손과 며느리가 보다 권위를 찾는 제사문화로 발전하여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리하여 제사를 마친 후 전헌상향이 남긴 갈등이 아니라 가화만사성이 온 누리를 덮기를 바란다.

 

정치 경제 사화 문화 전반에 걸쳐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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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srja1 2016/05/02 [16:01] 수정 | 삭제
  • 전통 제사를 흙탕물로 희석시켜 제사자체를없애버리려고하는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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