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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을 위한 추도문을 쓸 수없는 강한 이유!

3당야합으로 호남이 왕따를 당했다!

이재관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11/25 [11:28]

줄을 서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조문하러 간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여나, 야나, 보수 언론이나, 진보 언론이나 모두 다 김영삼의 업적을 소개하고, 그를 존경, 추앙, 추모하기에 바쁘다. 필자 역시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죽었으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는 게 마땅하겠지만, 도저히 그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과연 김영삼은 국민에게 추앙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니올시다!”이다. 특히 호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분들에게는 김영삼이야말로 부형을 죽인 초나라의 창왕을 오자서가 부관참시 했듯이 사후에라도 복수하고 싶을 정도로 미운 인간이다. 왜인가?

 

▲ 이재관     ©브레이크뉴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18년 장기집권을 하던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그해 10월 26일 후배인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비명횡사했다. 부마 민주화운동의 진압방법을 두고, 경호실장 차지철 등과 다투고 있던 김재규는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던 모든 혼란과 악의 축이 박정희라 생각하고, 그를 죽여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서 그를 죽였다.

 

그가 죽자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 유신독재가 발령한 비상계엄령 때문에 사석에서도 정부나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하면 끌려가야 했고, 세 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면 신고해야 했던 그 살벌한 세상이 끝났다. 그야말로 정치의 봄이 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죽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던 1980년부터 1981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 까지의 기간을 일컬어 외신에서는 <서울의 봄>이라고 했다. 억압과 통제 속에 살던 거의 모든 국민들이 서울의 봄을 즐겼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고마움을 느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 후보로 김종필, 야당 후보로 김대중, 김영삼, 소위 3김들이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노라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벌레를 잡아먹고 있는 사마귀 뒤에 매미가 노리고 있고, 매미 뒤에는 참새가, 참새 뒤에는 사냥꾼의 화살이 번득이고 있다는 말처럼, 3김 뒤에서 박정희의 추종자이며, 후계자인 전두환 군부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여 서울의 봄을 종식시키고, 3김에 의한 대통령 승계, 즉 민주화를 저지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서, 이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 전국확대라는 기사를 보고 필자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고향으로 가던 중에, 잠깐 들렀던 대인동의 다방에서 들었던 시위중인 대학생들의 노래 가사가 이랬다. “전두환이 물러가라, 좋다. 좋다. 신현확이 물러가라, 좋다. 좋다. 전두환이 물러가라, 신현확이 물러가라, 전-두- 환- 이- 물러가라!”

 

도대체 전두환이가 누구인가? 그 당시에는 그의 권세가 그렇게 대단한지를 몰랐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던 12.12 사태가 제2의 5.16 군사 쿠데타였음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5.18 민주화 운동이 왜 필요했는지를 그 당시에는 몰랐다. 대부분의 국민들처럼 먼 훗날에서야 알았다. 필자로서는, 그 당시 가난 때문에 학교를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둘 여력조차 없었기 때문이었고, 대부분 국민으로서는 철저한 언론통제 때문에 왜곡된 정보만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5.18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것을 끝으로 서울의 봄은 끝났다. 그와 함께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수많은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했던 수많은 열사들의 꿈과 희망도 좌절되고 말았다.

 

무고한 민주시민들을 학살한 반민주적이고 불의한 군사 독재자인 전두환은 민주정의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통치했던 7년은 무법천지였다. 전두환이 일해재단 등을 통해 착복한 돈은 수조원대에 달했다. 2인자 노태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밑의 똘마니들은 얼마나 착복했을까? 그 돈을 가지고, 그들의 자식들은 얼마나 호의호식을 하고 있을까?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에 대한 전 국민적인 반항이 일어났다. 5.18 민주화운동의 강제진압 후에 쌓여 온 독재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1987년 6월항쟁으로 폭발하였고, 대통령 선거 직선제 항복선언인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 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 모두가 다음 대통령은 민주적인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김대중, 김영삼은 대권욕에 눈이 어두워서 서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뻗댔다. “내가 연장자이니 네가 양보해라. 아니다, 내가 직선제 선언을 이끌어 냈으니 네가 양보해라!” 티격태격 싸우다가, 김대중과 김영삼 둘 다 출마해서, 결국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야 했다. (여담, 당선 가능성이 더 컸던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대통령 후보직을 양보한 것을 보면, 안철수는 그 그릇의 크기가 김대중, 김영삼보다 더 큰 듯 하다.)

 

민주화 동지관계였고,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로써 원수가 되었다. 김대중은 평화 민주당을 창당하였고, 이어서 이루어진 총선에서 노태우 제1당, 김대중 제2당, 김영삼 제3당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것도 환장할 일인데, 3당으로 전락한 데 대해 김영삼의 좌절감은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었을 것이며, 3당 총재로서 실제 정치현장에서 받았던 대우, 차기 대권에 대한 갈망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후에, 마침내 김영삼은 자기 자신이 평생 맞서 싸웠던 군사독재정권, 민주시민 학살세력과 손을 잡고 말았다.

 

말은 그럴 듯하게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했으나, 그는 독재자의 소굴로 들어가서 철저히 그들과 한 몸이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은 빨갱이들이다. 언젠가는 노무현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라고 막말을 해대서, 그때 까지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것조차,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박정희 정권을 물리쳐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의 상주를 자처하는 김무성은 “시위대는 IS 폭도와 다를 게 없다. 철저히 진압해야 한다”라는 망언을 해가면서, 신유신 정권을 꿈꾸고 있는 박근혜의 내시 역할에 솔선수범하며, 독재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기 보다는 군사독재의 딸인 암 호랑이를 키워 세상에 내보낸 김영삼! 그의 3당야합이 없었더라면, 한 번은 김영삼이 하고, 또 한 번은 김대중이 했더라면, 이 나라가 얼마나 다른 나라가 되어있을까? 김영삼은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게 아니라, 독재정권의 연장과 부활에 기여한 민주주의의 역적이란 사실을 이제 조금은 이해했을 것이다.

 

그가 3당합당을 한 것은 대권욕에 눈이 멀어서 군사독재 세력과 야합했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남에서 민주세력의 씨를 말려 버린 폭거였다. 그 때까지 그를 추종하던 소위 상도동계라 불리던 민주개혁 새력들을 모두 몰고 민주 정의당과 합당을 해서, 수구보수의 한 축을 이룬 이후에, 동쪽은 보수 진영의 아성이 되었고, 서쪽은 진보개혁진영의 텃밭이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영남에서는 민주개혁진영의 씨가 말라서, 영남에서 민주개혁 진영에 속해 일하는 것은 항일운동을 하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청와대 직원들 중에 그 당시 한나라당 출신들이 많았던 이유다.

 

노태우(대구), 김영삼(부산, 경남, 울산), 김종필(충청)에 의한 3당야합은 필연적으로 호남 소외현상을 가져왔다. 자연스럽게 영남, 충청, 강원이 호남을 포위한 형세가 되었지만, 호남출신 인구들이 많은 서울, 경기, 인천 등을 독점하지는 못했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게 소외된, 포위된 호남인들이 그 근간을 이루고, 그동안 어렵게, 어렵게 존속해 온 정당이다. 호남의 힘만으로는 결코 정권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충청도의 힘(김종필)도 빌리고, 영남의 힘(노무현, 박태준)도 빌리면서, 김대중이 정권을 잡았고, 노무현이 또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이 왜곡시켜 놓은 동서지역 분열 현상을 바로잡지 않고는 이 나라는 결코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영남지역에서도 야당의 깃발이 흩날리고 호남지역에서도 여당의 깃발이 흩날려야 옳은 일이겠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이 민주정의당을 계승한 군사독재의 후예들이 모인 정당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해체되고, 새로운 합리적 보수정당이 출현하는 것이 옳다. 각종 개혁정책을 시행하려다가 박근혜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혀 와신상담 중인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에게 기대를 거는 부분이다.

 

이처럼, 호남이 근간인 정당에서 현재 문재인 새정연 대표의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김무성에게도 뒤진다는 여론 조사가 있었다. 여론조사를 떠나, 실제 호남에 가보면 문재인에 대한 혐오감이 지독하다. “새정연이 싫은 게 아니라, 문재인 때문에 새정연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정도면 문재인 대표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본들, 늪에 빠진 몸처럼 더욱더 깊숙이 가라앉을 따름이다.

 

김영삼은 박정희가 정권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동서지역 분열구도를 3당야합으로 완성했다. 김종필의 충청도도 3당야합의 한 축이었기 때문에 호남과는 사정이 달랐다.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에 의해 왕따 당한 호남을, 호남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들어 주었던 노무현 정권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한 문재인이, 바로 그 호남을 왕따 시키려 했다.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그러니 호남인들이 문재인을 싫어할 수밖에 없지 않나?

 

김영삼의 공과는 그 외에도 많다. 부하 관리, 곳간 관리를 잘못해 IMF를 초래해서 수많은 국민들을 자살하게 한 죄도 간과할 수가 없다. 물론 재임 중에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등 큰 개혁을 하긴 했지만, 그가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호남인들에게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그의 업적은 티끌만도 못하다.

 

더군다나, 독재의 고리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고, 이제 제2유신을 기획하며, 시위대를 IS 폭도들에 비유하면서 테러방지법으로 국민들을 옥죄려는 박근혜 정권을 출범시킨 것은 그가 저지른 죄들 중에서 가장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이 이러하니 필자가 어찌 김영삼을 위한 추도문을 쓸 수가 있겠는가? 애재라, 통재라!!

 

*필자/이재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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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꾸리 2015/11/27 [12:45] 수정 | 삭제
  • 이 따위 치졸한 인사가 칼럼니스트라니 개가 웃을 일이다. 누가뭐래도 ys는 문민정부의 길을 열었고 대한민국을 군사쿠데타가 불가능한 국가로 만들었다. ys 아니었으면 한국도 버마, 태국처럼 끝없는 군사정권의 시대가 계속되었을 거다. 그 공만 해도 imf의 과오를 덮고도 남는다. ys아니었으면 dj,노무현 정권도 없었다는게 결코 빈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역사바로세우기가 성공한 게 딱 이때뿐이었다. 뭐,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의 공이 티끌만큼도 못해? 아주 그냥 똥을 싸라. 오직 호남만이 정의고 호남인이 다 해먹어야한다는 정말못난 한 호남인의 악다구니로밖에 안들인다. 이번 장례식의 5.18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추모와 참배는 무엇이란 말이더냐. 너같은 못난 인간 때문에 호남인들이 욕을 먹고 반작용으로 지역주의가 더욱 더 심화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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