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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디폴트와 위기 불감증에 빠진 한국경제

우리는 그리스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권오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7/03 [14:18]

 

▲수출을 기다리는 한국 자동차

 

지난 2015630일 긴박한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연장은 거부됐다. 그리스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게 빌렸던 부채 15억 유로에 대한 부채상환 만기일을 지키지 못하고 사실상 '디폴트'(default)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EU의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이 긴급 전화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국 구제금융 연장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71일에 디폴트를 막기 위해 기존 구제금융을 단기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2년간 국가채무 상환용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을 재차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유로그룹은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요청에 대해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대 채권국인 독일이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하지 전까지 새로운 제안에 대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어 쉽게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전망이다.

 

디폴트는 공·사채나 은행융자 등, 계약상 원리금 변제시기·이율·이자 지불시기 등이 확정되어 있으나 채무자가 사정에 의해 이자 지불이나 원리금 상환을 계약에 정해진 대로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으로 '채무불이행'이라고도 한다. 한 나라의 정부가 외국에서 빌려온 빚을 상환기간 내에 갚지 못한 경우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디폴트는 빚의 상환을 일시적으로 미루는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moratorium)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위기상황을 뜻한다. 다시 말해 모라토리엄은 나중에라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이고, ‘디폴트는 아예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파산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곧 국가부도인 셈이다.

 

사실 그리스의 디폴트는 이미 예견되었던 결과이다. 그리스의 경제는 정부 수입보다 정부지출이 많아서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산업국이라고 할 수 없는 그리스의 정부수입은 관광과 올리브와 오렌지 등 지중해성 작물 수출에서 대부분이 산출된다. 다시 말해 정부의 수입이 어느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그런데 그리스가 EU에 가입하고 나서 서유럽 국가들의 임금과 복지수준에 맞추기 위해 정부의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지출에서 부족한 부분은 국채발행을 비롯한 국가채무를 통해 해결되어왔다.

 

 

▲ 권오중     ©브레이크뉴스

올해 GDP 대비 그리스의 총 외채 비율은 175%EU 국가들 중 최고를 나타냈고, 올해 들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미 해마다 무역수지 적자도 20억 달러 내외를 나타내면서 그리스 정부의 재정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또한 2013년도를 기준으로 볼 때, GDP 대비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24.3%EU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고, 이로 인하여 GDP 대비 조세부담률도 20% 수준으로 EU 국가들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는 현재 EU 27개국들 중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심각한 상태이다.

 

그리스가 심각한 재정수지악화에 빠진 이유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과도한 복지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현재 기준으로 했을 때 21.3%로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하면서 EU의 평균 수준 정도지만, 그리스 경제의 불건전성을 감안하면 엄청난 복지지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지출은 이미 1970년대부터 국가의 세입을 훨씬 초과해 왔었는데, 과도한 복지지출은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더욱 심화시켰고 결국에는 국가경제를 디폴트로 몰고 갔다.

 

과도한 복지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무원 임금과 연금이다. 지금껏 그리스 공무원들은 황제 복지를 누렸다. 그들은 정시에 출근하는 일도 드물어서 제시간에 출근하면 정시 수당까지 지급했을 정도이고, 85만 공무원에게 주는 월급이 GDP50%가 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신임 치프라스 정권의 포퓰리즘은 더욱 심각했다. 그는 IMF의 긴축 정책에 대한 국민 반발에 편승해 당선된 뒤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을 내세우면서 경제를 살릴 방안은 내놓지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 경제를 더욱 궁지로 몰고 갔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IMFEU와 대립각을 세우며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포플리즘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국가의 복지수준은 정부의 재정상태가 좌우한다. 복지시스템에서 독일이나 스웨덴과 같은 고부담-고복지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국민의 고부담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그리스 경제문제의 본질은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저부담 고복지라는 복지 정책이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모두 장기적으로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면 견딜 수 없고 결국 파산하고 신용불량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그리스는 복지 제도 개혁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갔으나, 정작 빈곤 문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그리스 사태는 포플리즘에 빠져 잘못 설계된 복지 정책의 최종 결말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한번 시작된 복지 제도는 취소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지출은 국가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게 된다. 이는 분명히 포플리즘으로 국민을 속이는 정치인들과 저부담 고복지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공동책임이다.

 

그리스 사태는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은 일단 많은 득표를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물론 그 공약들이 100% 포플리즘 공약이라고 매도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각종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서도 무분별한 복지공약은 남발되고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공무원 연금개혁에 대해서도 포플리즘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인들이 반대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국가의 경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그리고 심지어는 무상버스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후보자도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이념적으로 붕괴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져있다. 수출도 감소하고 국내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걷어 들일 세수가 부족해가고 있다. 세수가 부족하면 계획된 지출도 못하게 되기 때문에, 정부가 집행할 공공지출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은 최근 20여 년간 역대 정부들이 겪었던 어려움보다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는 최근에 부동산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역대정부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시도했던 방법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과연 내수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방출한 자금은 부동산 자본가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정작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껍데기 같은 부동산만을 소유하고, 대출이자를 내야 한다. 그래서 소수의 부동산 자본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대다수가 채무자(하우스푸어)가 되어 소비생활은 더욱 위축되는 결과를 나타낼 것이다.

 

경제는 큰 틀에서 자금의 원활한 순환이 생명이다. 그러나 시장에 풀린 자금이 순환되지 못하고, 이익이 금융권과 소수의 부동산 자본가들에게 집중되고, 돈이 순환되지 못하고 어딘가로 숨어들게 되면서, 일반 서민들의 가계부채만 증가시킨다면,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으로서, 신기루 같은 경기부양효과는 조그마한 변수에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 활성화를 통하여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은 한치 앞만 내다보고 많은 사람들을 채무자로 전락시킬 뿐인 미시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최근 그리스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과도한 복지지출만을 경계하면 될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그리스 사태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는 1000조원을 초과하는 가계부채가 어느 순간에 우리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더욱 더 잘 돌아가야만 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양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반대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경기는 침체일로에 서 있다. 여기에 정치인들의 선심성 복지예산배정으로 인하여 과도한 복지지출도 예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35%)이 그리스보다 낮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국가부채 이외에도 공기업부채, 지자체 부채, 가계부채 등 숨겨진 부채가 천문학적인 액수이고, 이를 모두 합산한다면 그리스의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 경제가 침체일로에 서게 된 이유는 결국 돈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된 부는 시장에서 돈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가 우리 경제에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칼 막스는 자신의 유물사관에서 한 사회의 붕괴는 반드시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내부적인 모순을 소수에 의한 이익의 독식이라고 주장 했다) 시장에서 돈이 원활하게 순환되지 못함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빚에 대한 불감증을 가진 한국인들은 위기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도리어 지금이 부동산 활황기의 시작이라고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정부는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해 있다. 그래서 정부는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여 정부의 사업을 지속하려 하고 있다. ‘추경은 지난해에 편성된 정부예산이 부족하여 추가적으로 예산을 증액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추경이 세수를 통해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 국채발행을 통해서 조달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예산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국채발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채도 결국에는 국가의 부채이기 때문에, 정부는 정부사업을 위해서 국가의 부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감소가 결국에 국가의 부채를 증가시키게 된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 국민의 나태함과 정치인들의 포플리즘 정책을 비난할 입장이 전혀 아니다. 그리스 정부의 과도한 복지지출은 그리스 국민이 원했던 부분도 있는 것처럼, 우리의 천문학적인 가계부채와 지자체 부채도 우리 국민이 대출을 원했고, 또 선심성 공약을 지지했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한 개인도 빚더미에 앉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든 지출을 줄이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빚을 갚으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경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빚더미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빚으로 빚을 갚고, 빚으로 편한 생활을 누리려 한다면 그는 어떤 종말을 맞게 될까? 우리 국민은 빚에 대한 공포감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나만 이익을 챙기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불감증에 빠진 한국 사회를 보면서 그리스 사태가 우리 경제의 미래일 수 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필자/권오중.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Philipps- Universität Marburg) 철학박사 (현대사/정치학 전공).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민주평통 정치외교분과 상임위원 역임. 한국외대 등 다수 대학 출강. 현재 사단법인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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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인 2015/07/03 [19:52] 수정 | 삭제
  • 우리나라 실물경제를 애리하게 지적을 했습니다
    100% 동감 입니다
  • 김병철 2015/07/03 [15:37] 수정 | 삭제
  • 비 전문가나 일반인도 알기쉽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 되어 있고 교훈도 있는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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