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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탈수기를 돌리니 만백성은 놀라지마요!

겨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노동자 김씨의 황당한 봉변!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12/16 [10:07]

김씨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찾은 손바닥만한 도심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의 한복판이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캐럴송만이 귓가를 간질거렸다. 한해 한번 있는 초등학교 동창회를 막 끝내고 전철을 두어 번 갈아타고 집 근처에서 취기를 달래려 공원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술을 마시니 담배가 더 당겼다. 일정한 직업 없이 일당잡부를 하면 하루 8만원이 주어지는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겨울이라 눈 비 오면 오면 미끄럼과 동파 등의 문제로 일감이 징검다리 거르듯 한가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수입이 적으니 가장의 체통은 땅에 떨어졌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막일마저 들쑥날쑥이니 카톡 문자가 오는 것도 반가움을 넘어 두려움으로 변했다.

 

집에 가봐야 비정규직을 넘어 기필코 정규 입사하여 무너져가는 가세를 바로세우겠다고 대학 졸업 후 5년째 추리닝에 컵라면으로 골방에 처박혀있는 외동아들, 밤늦게 식당에서 찬모로 일하다 돌아오는 마누라를 합해 3인 가족의 단출한 가정이었다. 그나마 김씨는 자신이 자식을 더 두지 않은 것을 신이 내린 축복으로 삼았다. 한집안에 무직자 둘 셋이 되는 가정은 어떠한 마음의 지옥과 현실의 불협화음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까? 김씨는 애시 당초 맞벌이 가정을 이루고, 일상에 지쳐 술로 널브러지는 무능함을 신이 긍휼이 여겨 자신에게 불안하지만, 다소 가벼운 짐 덩어리인 독자아들 하나만 점지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이래권 작가     ©김상문 기자

 

독자아들이 태어날 때만 해도 된장찌개에 김치 계란프라이로 단출한 식사도 꿀처럼 감사하고 달콤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들에게 들어간 학원비만 줄였어도 얼추 통닭가게라도 했을 법한, 그간의 아들에 대한 투자가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에, ‘차라리 폴리텍 대학이나 중식 요리학과나 보낼 걸’ 하고 자신에 대한 무능에 자탄과 자괴감이 오십 넘어서부터 일상으로 다가왔다.

 

이 험하고 드센, 이쑤시개도 들어가지 않을 직장의 문이 아들에게 열리기란 애시당초 세상이 층층시하 거대한 성벽이었다. 삼류대학 출신에 더듬거리는 영어실력 때문인지는 모르나,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도 세 번이나 아들은 견뎌 내지 못했다.

 

세무사! 국가공인 자격증이니 동네 장사 잘되는 한 귀팅이에 사무실을 차려 종자돈을 만들고, 나중에는 사업을 하겠다는 아들의 황당한 꿈마저도 저버릴 순 없었다. 이미 환가(還家) 인턴의 쓰라림을 알고 있는, 비정규직 700만의 설움을 입사 석 달 만에 깨닫고 상대를 나온 몸으로써 세무사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집안에 셀 것이라곤 마트에서 몽땅 사다놓은 라면과 냉장고 안의 계란과 시들어가는 대파뿐인데도, 부자들의 감세를 위해 세무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투지가 가상스럽고도 측은하였다.


가끔씩 작은 실수에도 버럭 소리 지르는 마누라를 보면 건강한 몸뚱이가 저주스러웠고, 차라리 현장에서 몸을 다쳐 장애수당과 보상금이라도 받아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한심한 꿈을 꿔보기도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이 온몸을 칭칭감은 구렁이처럼 절절이 느끼며 숨죽여 살아가고 있는 김씨였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의 희뿌연 인생도 이젠 머리정수리로부터 백발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새벽 다섯 시에 현장을 간택받는 인력사무소에서 젊은 사람에게 밀려 하루를 공치는 날이 많았다. 그나마 막일을 하면서 기공(技工)에게 군소리 들어가며 무진 인내를 하면서 어께 너머로 배운 설비며 방수 페인트 기술력을 인정받아 인력사무소 소장의 추천+기공의 부름을 받으면, 일당 8만원에 2만원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2만원을 더 받는 날은 세상이 밝아보였다. 길바닥의 동태며 자반고등어를 검은 비닐봉지에 싸들고 룰루랄라 기쁜 내색을 감추며 주방 싱크데에 올려놓으면 마누라는 늦은 시간에 돌아와 덜거럭거리며 아침을 준비해뒀고, 김씨는 애써 코를 드르렁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체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살다가~살다가~지쳐 쓰러지면 차라리 스르르 잠들게 해줘~!’ 그것이 차라리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는 이 세상 최후의 최고의 선물이리라!

 

백만 외국인들이 건설현장을 잠식해오는 통에 이젠 토종 노동자들마저 베스 아가리 안의 송사리 신세로 여기저기 인력사무소에서 새벽 한숨들이 탄광촌의 저녁 돼지고기 굽는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현실이다.

 

별반 나아질 것 없고 뾰족한 자본이나 기술도 없는 김씨에게 세상의 온갖 유유자적한 초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추리닝차림에 골방생활 5년째인 아들의 책값과 간간이 컵라면에 소주, 그리고 골목길 한쪽에서 피워대는 담뱃값을 마누라가 대주는 까닥이었다.

 

내년부터 각오할 것이라곤 갑당 2000원이 오르는 담배금연 뿐이었다. 담배 한 갑에 4500원이라? 한갑 원가 950원 세금 3500원 제세하고 365일을 합산하면 1277500원! 자신과 아들의 담뱃값을 합하면 2555000원에 10%가 넘는 담배 애국세 자진납부라? 즉 이백오십만원이면 한달내내 겨울 댓바람 새벽바람을 안고 현장 뛰어도 벌기 힘든 고액이다. 일 년에 2000만원 노동을 해도 한달분 임금을 슬그머니 빼가는 담뱃세인상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금연뿐이다. 니코스탑 패치를 어께에 붙이고 뗀지가 벌서 두 달째다. 삼일이 고비다. 니코패치를 삼일정도만 붙이면 답배가 역겹고 머리가 핑도는 것같은 현상이 온다. 가까스로 끊을 만하면 마누라가 소릴 지르거나 일과 후 회식장소에서 동료가 담배를 권하면 적이 거절할만한 명분이 서지 않아 도로아미타블이 되곤 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아들과 250만원 절약을 위해 금연결의식을 하리라 마음먹고, 소래포구에서 시작된 초딩망년회를 마치고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기도 뭐하고 또한 어린 학생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자릴 은근히 빼앗을 수도 없어,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취기가 더해 귀가를 앞두고 집 근처에 위치한 공원에 들른 것이다.

 

찬바람에 머리도 식히고, 로댕은 아니지만 연말선물로 250만원 금연효과가 낳는 적금의 복음을 아들과 마누라에게 선포하리라 마음먹고 익숙한 공원의 낡은 벤치에 앞으로 허릴 굽히며 담배에 라이터 불을 댕겼다.


푸우우~천사의 드레스 같은 하얀 연기여 허공으로 높이높이 오르거라!


지난 38년간 나의 심장을 다독이며 그 얼마나 위로를 해주었던가? 친구가 없었더라면 오원춘 박춘봉과도 같은 야수들의 또 다른 분노들이 폭발했을지 모른다. 공자는 예법으로 치세와 민중의 예법을 가르쳤지만 친구는 삼인면살(三忍免殺)의 겸손과 인내를 가르친 내 생애의 최대 스승이라오. 친구여 안녕…….!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내 천수를 다하고 가장으로서 애비로서 체통을 세우려 너와의 아쉽지만 과감한 이별을 선언한다. 용서하라 친구여! 정 용서가 안 되면 우리 서로 잊기로 하자! 앞으로 너의 향기가 나는 곳엔 얼씬하지 않으마. 왜 그러냐구? 나 살고 싶다, 인간답게 가장답게! 너는 나의 폐와 혈관을 아늑한 유혹으로 공격했지만 나는 너그럽게 너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나의 일상이 무너뜨리는 년 애국세 250만원의 괴물로 변한 너에게 이별을 고한다. 휘황찬란한 네온과 캐럴송이 사방에서 공격해오고 잇는 추운 공원 벤치에서 김 씨는 우아하지는 않지만 비굴하지도 않게 허공을 향해 “푸우우~!” 폐에 가득한 답배연기를 하늘로 뿜어댈 즈음이었다.

 

“아씨, 미안하지만 담배 한 개피 빌려줄 수 있어요?” 공원 화장실 근처에서 네댓 명이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고 있던 무리 중 하나였다. 책가방 배낭을 깔고 앉아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일행 중 하나가 팔자걸음 비슷하게 걸어와 김 씨에게 덜컥 담배삥을 쳤다. 어찌 보면 대학생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코 밑에 잔털이 솟아오르는 고딩 같기도 했다. 담배도 음식이고, 김씨 또한 열일곱에 지하  만화방 까치담배를 시작한 전력이 있어 불쾌하지만 순간적으로 옛날 자신이 했던 것처럼 너그러운 담배인심을 회상하며 점퍼 안쪽에서 담뱃갑 언저리를 젖혀 한 개피를 뽑아 건넸다. 담배를 받아든 고딩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 친구들이 넷인데 세 개피만 더 주세요?” 김씨는 순간 머리 뚜껑이 열리는 화를 참지 못했다.

 

“어이, 학생! 담배를 벌써부터 피우면 건강에 해로우니 왠간하면 끊지 그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 아니 꼰대! 담배 한 개피주면서 어디서 훈계야. 야, 나 좀 쪽팔려서.” 그러면서 받은 담배를 김씨 얼굴에 던졌다. “에이, 재수 없어! 씨발, 어디서 훈계야. 우리 꼰대는 같이 나눠 피워도 잔소리 없는데....?” 순간 김씨는 피가 하늘로 솟구치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야 임마 너 이리 와봐? 자식보다 아래인 게, 어디서 불학무식 어른 협박이야?” 팽팽한 거리를 두고 설전에 밀린 학생이 화장실 근처에 소주+새우깡 파티를 벌이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짓으로 구원을 요청했다. 세 명 친구들이 느릿느릿 팔자걸음으로 현장에 다가왔다.

 

“뭔데?” 담배를 받아든 학생이 친구들을 구원병 삼아 김씨를 째려보며 씨부렁거렸다. “아니, 이 꼰대가 우리를 양아치로 보나 사서삼경 훈계잖아? 치사하게 담배 한 개피 가지고, 학교 샘  집안 꼰대보다 더하게 공자맹자 타령이잖아! 재수없으려니까, 내 동네에서 가오 구겼다. 얘들아 이 꼰대를 어쩌면 쓰겠다? 이 시방구리를!”일행 중 한명이 나섰다.

 

“야 꼰대, 여긴 우리 구역이거든. 자릿세 담배 네 개피 내고 고독을 씹든가, 아니면 번갯불같이 쌩 까고 사라져!” 

 

김 씨는 황당했다. 화가 났다. 자식보다 나이 어린 고삐리들한테 꼬리를 내린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너희들 고등학생들 같은데 일단 어른한테 그러면 안 돼지?”

 

그러자 한 학생이 나섰다. “야 꼰대 일단이고 이단이고 간에 치사하게 담배 한 개피로 훈계타령 할래?” 순간 김씨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엉겨붙는 학생의 뺨따귀를 후려갈겼다. “이놈들이 어디서 어른을 몰라보고...?”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한명이 소리쳤다. “야, 다구리 태워! 이 쉬발놈이 나이만 먹으면 장땡인줄 알고 까부네.” 이윽고 천수관음보살 같은 손발이 무더기로 김 씨의 온몸을 두들겨 팼다. 맞으면서도 김씨는 메마른 한 학생의 바짓가랭이를 물고 늘어졌다.

삐뽀삐뽀. 지구대 순찰차가 달려왔고 김 씨에게 붙잡힌 학생들을 제외하곤 뿔뿔이 도망쳤다. 경찰은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자택이 어디십니까? 나이 드신 분이 어린 학생들과 무슨 창피한 일입니까? 보아하니 쌍방이 다친 데가 없는 것 같으니 사과하고 귀가 하시겠습니가? 아니면 지구대로 가서 처벌 진술서를 작성할까요?” 기가 막힐 상황이었다. 옆구리가 몰매로 결렸고 입술 근처에 피가 찐득거렸다. “갑시다, 지구대로!”

 

지구대에 도착하고 얼마지 않아 담배 삥 뜯기 일당이 잔화를 받고 속속 모여들었다. 지구대 경찰이 물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부모입장으로 선처하시겠습니까? 처벌을 원하십니까” 김 씨는 갈등하다 어린 자식들에게 몰매 맞은 것에 화가 치밀었다. “처벌해 주십시오.” 지구대 안은 연말연시 취객난동으로 의자에 수갑이 채워진 사람도 있었고, 서로 삿대질하며 책임전가형 고선방가 충돌도 한창이었다.


조서를 마친 후 열두시가 넘어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자정이 넘어서인지 경찰서 정문 경비와 조사계 당직 두 명의 형사를 제외하고는 한적했다. 모두들 순한 양이 되어 차례를 기다리며 조서작성에 열중이었다. 조서작성 형사 외에 경찰 대부분이 퇴근한 상황이라서 인원통제나 도주방지 차원인지 창살이 있는 유치장에 김 씨와 학생들이 감금되었다. 자세히 보니 한 학생의 목에 불그레한 핏자국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정적이 한 시간 넘게 흘렀다.

 

갑자기 한 학생이 김씨를 향해 목을 가다듬었다. “아씨, 담배 있으면 한 개피 빌립시다.” 김 씨는 순간적으로 괘씸한 학생들의 태도에 분개했다. “없어!”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관이 큰 목소리로 학생들을 제압했다. “건물 안은 무조건 금연입니다. 그리고 학생들, 부모님 부를테니까 조용히 있어! 그리고 실내는 금연구역이야!” 우여곡절 끝에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조서를 받게 되었다.

 

조서 담당관 형사가 물었다.


“쌍방폭력으로 벌금 나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르신?


학생들 앞날은 위해서라도 훈방조치 선에서 마무리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야 그리고 너희들, 부모님 같은 분에게 담배를 얻어 피웠으면 됐지 집단 구타해! 임마들아, 야간 폭력은 특수가 붙고 일대사면 집단 조폭폭력이야. 빵에 가서 한번 혼나볼래? 사과드려! “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학생들 부모가 경찰서에 와서 신병인수를 하고 데려갔고, 김씨는 쌍방폭력 중에 피해자 쪽으로 조서가 작성되었고 새벽 보도를 홀로 터벅터벅 걷다가 취기가 가시자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앞이었다. 김씨는 담배를 빼어 물며 허공에 연기를 내뿜었다. 새벽 세시에 피우는 담배 맛은 황홀했다. 고독의 소나타.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 안정화시켜주는 길동무. 그러나 년 250만원의 담배 값을 감당하기엔 삶이 더 팍팍해질 것 같았다. 끊으리라. 끊으리라.

 

분명한 것은 한가구당 스모커가 둘이면 년 250만원의 애국세를 강제 징수 당한다는 사실이다. 애국이 뭔지는 몰라도, 김씨는 생계에 보탬되는 금연을 다짐했다. 갑오년 12월은 김씨에게 잔혹한 겨울인지, 금연으로 일상이 여유로위질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많은 애연가들의 간절한 염원을 묵사발 만든 답배소비세 인상에 만백성은 일단 반은 찬성하고 애연가들은 속 타들어가는 갑오년 끝자락이었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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