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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시발(始發)에서 전기차까지..대한민국 자동차 역사]②현대차 성공신화 서막 포니

김광호 기자 | 기사입력 2014/10/22 [16:46]
브레이크뉴스 김광호 기자=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자동차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에 비해 자동차 산업 역사가 현저히 짧은 우리나라는 현재는 세계 5대 자동차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한민국 토종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세계적인 VIP들의 의전차량으로도 자주 등장하며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한 때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가 인정하는 자동차 수출국이 된 대한민국. <브레이크뉴스>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강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를 되짚어 봤다.
 
현대자동차 성공신화의 서막을 알린 첫 차 포니. 포니는 외국 자동차업체의 기술이전을 받아 자동차를 조립하던 현대차가 꿈꾸던 우리만의 독자 모델로, 포니가 탄생하면서 현대차의 진정한 역사도 시작됐다. 

나아가 우리나라 자동차 공업의 자립과 도약의 발판이 된 포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세계 5위의 자동차 강국으로 우뚝 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만의 최초 독자 모델..자동차 강국 도약 발판

 
세계에서 16번째이자 아시아에서 2번째 고유 자동차 모델로 개발된 포니는 1976년 데뷔했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목표로 기획된 포니는 개발 시작 1년 반만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포니에 대한 토리노 모터쇼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만해도 전쟁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던 한국에서 고유 모델로 출품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세련된 디자인 역시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포니를 있게 한 디자이너는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로, 포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현대차는 가장 먼저 이탈리아로 담당자를 파견해 주지아로와 접촉했다.

당시 현대차는 포니의 디자인을 두 명의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는데, 한명은 80만 달러를 요구했고 다른 한명은 12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120만 달러를 요구한 이가 바로 주지아로였고, 세계 최고의 디자인을 원했던 현대차는 주저 없이 주지아로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는 미쯔비시의 4기통 1238cc엔진과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차체를 기반으로 1975년에 국산 고유 승용차 모델 1호 포니를 개발하고, 토리노 모터쇼에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울산에 연산 120만대 규모의 공장을 세운 후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포니는 시판 첫 해인 1976년 1만726대가 판매되면서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의 절반에 가까운 43.5%라는 놀라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포니의 인기는 해외로도 이어졌다. 1976년 7월 남미 에콰도르에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국이 늘어나면서 첫해 1019대, 1977년 4523대, 1978년 1만2195대를 수출하는 등 물량이 급증했다.
 
현대차는 포니 출시 이후 꾸준히 연결 모델을 선보였다. 1976년 포니 픽업, 1977년엔 포니 왜건을 세상에 선보였으며 1978년에는 배기량을 높인 포니 1400도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좌우로 문을 한 개씩 단 쿠페로도 출시됐다.

포니는 1982년 출시된 포니2로 그 열풍을 이어갔고, 1984년 단일 차종으로서는 처음으로 50만대 생산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 넘어 해외서도 선풍적 인기..‘불가능’을 ‘기적’으로

 
출시되자마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에 이른바 ‘마이카’ 시대를 몰고온 포니였지만, 사실 현대차의 고유 모델 개발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포드사의 기술을 빌려 5년 동안 자동차 조립 생산의 경험이 전부였던 현대차는 이전까지 부품 하나 스스로 설계해본 적 없는 초보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1973년 포드와 기술이전 협상이 결렬됐고 정부는 “엔진을 포함 국산화율 73%에 못 미치는 업체에겐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는 자동차공업육성계획까지 발표했다. 

현대차로서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현대차는 자동차 독자 개발에 나서기로 결심했고, 부족한 자금은 차관으로 메웠다. 엔진은 미쓰비시사를 설득해 ‘새턴’ 엔진 기술을 도입키로 했다. 그리고 현대차는 국산 고유 모델 개발 선언 3년 만에 포니 양산에 들어갔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경우였다.
 
포니를 개발한 주역들은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물불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뛰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포니를 개발한 경험은 현대차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주춧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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