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 압승, 광주는 '내용적 변화' 택했다

절차적 흠결보다 '정권 교체-호남 보수화 퇴치' 열망

박진철 기자 | 기사입력 2014/06/06 [18:09]
 
▲  윤장현 후보(왼쪽)와 안철수 대표              ⓒ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영령들의 슬픔을 간직한 채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야 모두 '이기지도 지지도 않은'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선방'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선전'했다. 진보로 범위를 좁혀 보면, 의미 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압승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박원순(서울시장), 윤장현(광주시장) 등 진보 성향 후보들은 압승했다. 반면 같은 야당이라도 김진표(경기도지사), 송영길(인천시장) 등 관료 출신 보수파나 신자유주의 성향의 후보는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패했다.
 
또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를 간판으로 내건 진보정당들은 참패했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야권 단일 후보 성격의 진보 후보들이 크게 선전한 선거였다. 국민들은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는 세력의 진보 후보에게 큰 성원을 보낸 것이다.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 아직은 버릴 때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예상을 뛰어넘은 곳은 단연 광주광역시장 선거 결과다. 투표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후보의 패배 가능성이 더 높게 나왔던 곳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윤장현 후보의 압승이었다. 57.85%의 득표율로 현직 시장인 강운태 후보(31.77%)보다 무려 26%p 차이의 대승이었다.
 
호남 민심의 바로미터인 광주시장 선거는 다른 때보다 큰 주목을 끌었다. 안철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절차적 민주주의냐 내용적 변화냐. 의미 있는 몇 가지 구도가 형성됐고, 광주의 선택은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①정권교체를 위해 안철수를 아직은 버릴 때가 아니란 것, ②전략공천이라는 절차적 흠결보다 내용적 변화가 더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광주시민은 표로 보여주였다. 투표일 일주일 전까지도 크게 뒤지고 있던 윤 후보가 압승을 거둔 이유는 이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번에도 광주시민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택을 한 것이다.
 
광주시민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보수 정권을 2017년에는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는 열망을 강하게 표출했다. 동시에 전략공천을 빌미로 안철수를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당내 반발 세력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일단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에게 조금은 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또한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무소속 후보의 당선은 별 의미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손학규·박지원 vs 정동영, 광주에 대한 '다른 시선'
 
사실 윤장현 후보의 전략공천으로 안철수·김한길 지도부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당내 반발 세력은 안철수의 퇴진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당 중진인 박지원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까지 지도부 흔들기에 가세했다. 손 전 대표는 투표일 3일을 앞두고 "광주와 호남은 누가 당선되든 우리 식구"라며 무소속 강운태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해 기름을 부었다. 박지원 의원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경기도지사-인천시장 석패에 대한 당 지도부 책임론을 거론하고 나섰다.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장수를 흔들어댄 책임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다.
 
중진 중에 정동영 상임고문만 선거 초반부터 윤장현 후보 당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5월 13일 광주시의회에서 윤 후보를 옆에 세워놓고 "윤장현 후보야 말로 광주정신에 적합한 인물"이라며 "윤장현의 승리 없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도 없다"고 지지를 선언했다. 투표일 하루 전날까지도 광주에 내려가 윤 후보와 유세차를 타고 광주 시내 곳곳을 돌며 지원사격을 했다. 정 상임고문은 "광주가 윤장현을 선택함으로써 정권교체 대한 열망을 새정치민주연합에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정 상임고문은 윤장현의 압승으로 끝난 5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전략공천 역풍 때문에 처음 광주 내려갈 때만 해도 '안철수 대표가 받을 계란을 왜 대신 맞으려고 하느냐'며 주변에서 만류했다"면서 "그러나 3주 만에, 마지막 날 윤장현 후보와 유세차를 같이 타고 도는데 이미 바닥이 뒤집혔다. 광주는 정권 심판을 넘어서 정권교체의 문을 열어야겠다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광주시민, 관료 출신·호남 보수화 '징치(懲治)'
 
정권교체와 안철수라는 이유 말고도 광주시민이 윤장현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본질적인 이유도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더 간절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강운태-이용섭이라는 관료 출신 연합 세력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참패를 안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강운태-이용섭 연합 세력에 대한 일종의 '징치(懲治)'의 의미도 담겨 있다.
 
광주는 '인물론'라는 미명 하에 소위 잘나간다는 관료 출신 보수파(관료 마피아)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못지않게 야당도 정책 파트의 수장들은 대부분 관료 출신들이 독차지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서민을 위한 과감하고 진보적인 정책보다, '안정감' 혹은 '온건 개혁'을 앞세워 관료-재벌대기업 카르텔의 방패막이 역할을 더 많이 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게 그거'라는 대중적인 인식을 광범위하게 심어줬고, 보수정권이 아무리 큰 실책을 범해도 국민들은 여전히 제1 야당을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어쩌면 광주에게 '안철수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광주시민들은 안철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변화를 갈망했던 것이고, 그것을 관료 출신 후보들보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진보 성향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표출한 것이다.
 
승리보다 '채찍', 가슴에 새겨야
 
그렇다고 광주의 선택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나 위임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광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전략공천 과정과 리더십 부족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줄 수 있는 대안정부로서 믿음이 없다는 점은 가장 큰 흠결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잘했다면 애초부터 광주시장 선거는 논란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는 곳이다.
 
광주는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보다 능력있고, 보다 진보적으로 변화하라는 채찍을 가한 것이다. 광주의 압도적 승리에 도취돼 변화와 진화를 게을리하다 또다시 정권교체에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걸 주문한 것이다. 승리보다 이면에 담긴 채찍을 더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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