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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自刎)’ 자결(自決)한 애국지사

이승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4/15 [17:18]
우선 1925년 9월 22일 당시 <동아일보> 기사 전문을 그대로 적어 본다.

“10년만에 출옥한 석일(昔日)의 의병수령/ 무상한 세태 인정을 비관 자문(自刎)/ 의병 수령으로 활동하다 15년 언도받고 대구에서 복역/ 11년만에 가출옥 세상에 나오니 너른 천지에 홀 몸”

“전북 전주군(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살던 이순옥은 한일합병 당시 전북 경내를 흔든 의병장 유치복의 생질로 자기 형 원옥과 함께 그 부하가 되어 그 대장 격으로 크게 활동하다 기 대장이 불행히 일본 관헌 손에 잡히자 그 단체의 운명은 다해 눈물을 머금고 각기 헤어져 유리 표박하다가 자최를 감추어 처자로 더불어 여생을 보내고자 집에 잠복하여 있는 것을 밀정이 탐지하고 체포하야 가진 형벌을 당하고 대구지방법원으로 넘겨 15년이라는 언도를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철창생활을 해 오다 11년만에 가출옥이 되어 지난 16일 전기 고향에 돌아갔던바 자기 형 원옥은 일찍이 옥중에서 사망하고, 자기만 홀로 그리운 처자를 만나려 하였으나 그 아내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개가했을 뿐 아니라 그 형수조차 또한 그러하였고, 자기가 살던 집은 벌써 형적조차 없어져 전북 부호 백인기씨 소유 논이 되고 말았으므로 이 광경을 목도한 그는 끝없는 세상의 변천에 아픔을 억제하고 지난 19일(?)밤 그 동리 앞 ‘불무청리’ 주막 조성근 집에서 그날 밤을 지내던 바 밝는 새벽에 가졌던 주머니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오래 동안 고민타가 오전에 이르러 그만 황천의 객이 되고 말았다는데 그는 약간의 금품을 가졌다하며 경찰은 타살이 아닌가 하고 시체를 검안하였으나 자살이 분명하다 하더라(이리)”

실명 4인과 날자 16․19일이 나온다. 시간까지 확실하다. 독립유공자 제사나 받아 자시는지. 외숙 유치복 고흥유씨 집안은 ‘일문구의사사적비’를 세웠고 유족이 있어 매년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추념행사를 한다.

이원옥 순옥은 이름 하나 불러주는 사람 없이 지방에서 눈감아버렸다. 외로운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마찬가지이다. 난세를 헤쳐 나온 유씨들이 좀 챙겨주면 좋지 않을까? 강호 천지에 우뚝한 유희태 사단법인 일문구의사 선양사업회장의 배려를 기다려 본다.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 사료(史料)조사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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