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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김종인-조웅-일본의 공세

최초의 여성 대통령 향한 국내외 각종 공세들 분석

심상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2/24 [01:34]
취임식을 목전에 앞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힘들게 하는 사안들이 즐비하다. 그 중 몇 가지 사안들을 짚어본다.
 
그에 앞서, 호칭에 관련되어, 박근혜 당선인의 아버지는 ‘박통’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다. 뭐 YS니 DJ니 하는 영어 이니셜만큼 현대적이지는 않지만, 박통은 어감이 친근하고 심지어 귀여우며,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단단한 모습과 어울리는 바가 있다. 그래서 나도 ‘박통’이라는 호칭을 칼럼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 심상근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의 줄인 말은? 인터넷을 뒤져보니 ‘박통령, 뽀통령(주: 뽀로로) 만나다. ‘문화콘텐츠 주력산업 되야’이라는 제목의 세계일보 기사가 지난 1월 16일자로 떴었다. 박통령은 박통을 일컫기도 했지만 ‘박통’이 훨씬 더 많이 사용되었다.  박통의 영애가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으니 세계일보에서처럼 ‘박통령’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연습 삼아 이 칼럼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박통령으로 호칭하겠다.
 
곧 취임할 박통령에 대한 공세들 중 하나가 김종인 씨의 최근 발언이다. 오늘 아시아경제 보도에 의하면, “…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 추진위원장이 경제민주화 후퇴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김 전 위원장은 22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새 정부, 한국경제의 희망을 말한다' 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강연 자리에서 "인수위원회 발표를 보니 원칙 있는 시장경제가 경제민주화라고 포괄했는데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의 결여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박근혜 당선인의 정직성만 믿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1년 내내 약속했는데 안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정직성만 믿고 있다"? 흠… 그러면 정직성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2012년 10월 12일경 발표한 ‘김종인-남경필의 경제민주화 언론 플레이 제목 하의 칼럼에서, ‘박근혜 입장을 왜곡하고 비트는 김종인, 남경필의 언론플레이 분석’이라는 부제를 달고, 박통령의 정직성과 김종인 전 위원장의 의도적 왜곡을 지적하였었다.
 
당시 게임은 이랬다. 박통령은 2012년 내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하여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었다. 박통령은 재벌을 건드리는 것은 시종일관 반대였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이를 인식하면서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였다. 그의 의도는 재벌 흔들기를 포함한 경제민주화의 실행이었다. 그는 박통령을 내부적 힘 겨루기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고 믿었다. 왜? 대선에서 당선을 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밀면 밀릴 것으로 계산하였다. 우선 이한구 원내대표를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 박통령 당사자를 밀었으나 입장을 바꾸지 않자 재벌 흔들기에 앞장 섰던 남경필 의원, 그리고 다른 불만이 있었던 이상돈 당시 위원 등과 합세하여 일종의 ‘쿠데타’를 감행하였다. 이 때 안대희 전 위원장과 이준석 전 위원도 가세하였다. 그 이전 이틀 간 내부적 공세를 권력투쟁으로 치부하며 버티던 박통령은 급기야 상기한 김종인 발 다발적 쿠데타에 직면하자 정치적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임태희 등 캠프 인사들의 면담 요구를 받고 심야회동에 참석했고, 김무성 전 의원 기용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명예직에 가까운 공동선대위원장 직을 제안했으나 김무성 전 의원은 캠프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요구하였고, 박통령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의 칼럼에서 지적했지만, 개혁파라는 김종인, 이상돈, 남경필의 동시다발적 쿠데타의 결과로 원조보수가 들어선 것은 아이로니컬했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누가 들어오고 나가고는 박통령의 지지율에 눈곱만치도 영향을 준 적이 없다. 박통령 지지자들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를 지지한다.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10월 8일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박근혜 후보가 직접 언급한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7월 17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여 살펴보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는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토론회에 참석해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 민주화 방안에 대해 야당과 차별화된 구상을 내놓는 데 주력했다. 박 후보는 '재벌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라는 민주통합당의 공세에 대해 "저는 그런 식으로 막 나가는 게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재벌에 대한 민주당의 주장은 재벌 해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그러나 대주주 사익 추구, 재벌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지적하면서 "그런 걸 바로잡는 법이 있었지만 실천을 하지 않았다. 말로 백 번 하기보다 법을 확실히 지키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서 남용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 활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이었다. (인용 끝)
 
그 입장에 맞섰던 김종인 전 위원장의 신념은 알아줄만하다. 재벌을 혁명적 수준의 개혁 대상으로 보고, 심지어 노동자 대표를 재벌경영 이사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의 자신의 좌파적 신념을 굳세게 지켰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자신의 좌파적 신념을 당시 박근혜 후보가 공유하는 것처럼 세상을 현혹한 점이다. 나는 10월 12일 칼럼에서 이를 상세히 지적하였었다.
 
나는 왜 김종인 식 내지 민주통합당 식 재벌 흔들기가 나라 말아먹을 짓으로 귀착될지를 나의 칼럼에서 누누이 설명하였었다. 여기에서 그 논거를 다시 반복하기에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지만,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수출 없이는 한국은 도루 거지나라가 될 것인데, 중소기업들이 수출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아직 모른다. 아무리 혼신을 다 하여 육성을 해주어도 수출에서 재벌의 몇 분지 일도 담당할 수 없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는 현실이다. 과학에서 노벨상을 수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영인 것과 관련성이 있다. 유럽에서도 노벨상 잘 타는 나라들은 괜찮고,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칼처럼 노벨상 잘 못 타는 나라들은 한 때 잘 나가다가 현재 굉장히 힘들다. 청년 실업률이 50%이다. 재벌은 그 규모와 속도 상 노벨상 수상 수준의 과학기술 실력과 무관하게 수출로 돈을 벌 수 있다. 이는 그러나 중소기업들에게 적용이 안 된다. 고로,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수출을 할 능력을 보일 때까지는 재벌을 흔들거나 치면 안 된다. 나라가 그대로 망하고 작살난다. 진실이다. 재벌이 버티어 주어야 한다. 흔들면 같이 망한다. 버티는 동안 국민 누군가가 노벨상 수상을 할 수준으로 과학 교육을 높여야 한다. 아니면 결국 중국 등에게 밀리어 가난해질 것이다. 
 
상기한 보도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은 "박근혜 당선인의 정직성만 믿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1년 내내 약속했는데 안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는데, 그 ‘재벌 흔들기’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박근혜 후보 입에 강제로 넣어 삼키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실패했고, 급기야 쿠데타까지 감행하고, 심지어, “박정희도 박근혜처럼 하다가 총 맞아 죽었다”는 식의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정직’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고 입맛이 쓴 행위이다.
 
박통령에게 향한 다른 공세로서, 조웅이라는 자칭 목사가 박통령에 대하여 마구잡이 명예훼손 발언을 하는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떠있었다. 취임식을 앞두고 어처구니 없는 악독한 발언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개인적인 행위라기보다 거대한 조직의 사주를 받은 의도적 공격이라고 믿어진다. 종북세력들이 기승을 하며 그를 두둔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배후 정체가 짐작이 간다. 이는 한반도에 해가 두 개 떠있을 수 없다는 기조 하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국적 행적을 말살하려는 끈질긴 행위와 맞물려 있다. 종북세력과 전교조, 진보세력 일부가 조연으로서 적극 돕고 있는 이 노력의 확장선 상에서, 이제는 박근혜 차기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훼손하려는 프로그램이 시동된 것이다. 북핵과 쌍둥이의 관계를 가진 남한 말살 프로그램이다.
 
나 자신 조웅의 미친 소리를 들어보았는데,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쌍욕을 섞어 하였다. 그의 이야기들이 믿을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가 떠들어댄 이야기들 중 가장 중대한 사안을 하나 분석하여 본다. 이 사안이 그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내지 척도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은, 박근혜 당시 의원이 몇 명 수행원들과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3일 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침대에서 뒹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진위 증명은 쉽다. 북한은 아무리 작은 꼬투리라도 이용하여 남한을 수세로 몰고, 돈이나 식량을 받아낸다. 그러므로, 박근혜 당시 의원이 그러한 행동을 하였다면 반드시 사진이나 동영상, 혹은 그 둘 모두 북한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통령을 평생 꼼짝도 못하게 할 호재이다. 그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그 증거와 자료만 있으면 대선 출마도 막을 수 있었다. 이제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었으니 박통령에게 3조원을 받치라고 하여도 거절 못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일언반구 그런 이야기 비슷한 것도 한 적도, 자료를 내놓은 적도 없다. 조웅 이야기는 고로 100% 악질적인 날조에 불과하다.
 
그리고 김정일은 김신조 무장간첩을 내려 보냈고, 조총련은 문세광을 보내어 아버지를 암살하려다가 어머니를 시해하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였지만, 부모를 죽이려던, 그리고 어머니 시해에 관련된 자와 동침을? 정말로 인간도 아닌 자들의 미친 소리이다.  
 
문화일보는 2월 15일 다음과 같은 신간 서평을 기사화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06년 피습사건 당시 마취에서 깨어나 뱉은 첫 마디로 알려진 “대전은요?” 일화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론 박 당선인이 마취에서 깬 뒤 집도의에게 “당신이 내 속살을 본 첫 남자네요”라는 첫 마디를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문화일보 천영식 기자가 2월 15일 펴낸 ‘고독의 리더십-인간 박근혜의 60년’이란 저서를 통해 공개됐다… 이 책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3시간여의 수술 끝에 마취에서 깨어나 집도의에게 수줍은 듯 ‘속살’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은요’는 그 다음날 당시 유정복 비서실장이 선거상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대전 판세를 묻는 박 당선인의 발언이 (수술 후의 첫 마디로) 다소 과장돼 알려진 것이다.”
 
박통령의 수도승과 같은 절제된 삶과 도덕적 결벽증은 유전인자적인 면도 있지만, 나의 분석으로는, ‘한에서 비롯된 독기’에도 관련이 있다. 옆에서 시종 지켜본 아버지의 애국심이 부정되고 짓밟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리고 장관을 지냈던 자조차 우연히 마주치면 시선을 돌리고 급히 피하던 경험을 하면서, 당시 박근혜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독기뿐 이었을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박통령이 은둔의 긴 세월 간 임신을 하였었네 출산을 하였었네 하는 헛소리가 나올 때 나는 항상 그의 사진들을 상기한다. 박통령의 사진들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10대의 사진들과 그 후 은둔시절의 사진들은 관상학적으로 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다르다. 10대 사진들은 볼이 통통하고 복스럽고 꿈에 그득 찬 인상이고 관상이다. 은둔시절의 사진들은 그와 정반대이다. 가슴이 시리게 황량한 인상이고 관상이다. 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량한 관상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행복의 표가 난다. 언젠가 아버지의 명예를 복구시키고 싶다는 일념이 아니라면 아마 박통령은 아주 예전에 쓸어졌을 것이다. 그 황량한 관상은, 언론에 보도된 한 관상학자의 의견에 의하면, 조카가 탄생한 후부터 그 10대의 복스러운 관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카를 얻고, 그리고 이제 대통령에도 당선되어 아버지의 애국을 이을 수 있게 된 후, 박통령의 관상은 10대의 관상으로 돌아 왔다.
 
그러한 사람을 두고 조웅을 시켜 온갖 헛소리, 미친 소리를 하게 사주한 세력은, 박통령이 5년 전 대선을 앞둔 경선후보 검증 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뱉은 말대로 ‘천벌을 받을 자들’이다.
 
조웅은 나에게는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나의 칼럼이 게재되는 브레이크뉴스의 발행인에게는 구면이라고 한다. 21일자 문일석 발행인이 올린 글에 의하면, “… 사실을 이야기하면 저는 조웅 목사를 알고 있습니다. 알게 된 경위는 제가 그분을 취재원으로 찾아서 만난 게 아니고 그분이 저를 찾아와서 만나곤 했습니다. 찾아와서는 여러 정치적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그 내용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신빙성이나 증거가 전혀 없어 한 번도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40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폭로성 기자를 자주 써온 기자이기도 합니다… 폭로를 전문으로 해온 기자가 한 번도 기사화하지 않은 것은 그의 증언이 믿을 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인터뷰를 담은 동영상을 들어보았는데, 목사의 신분과는 거리가 멀게 “이놈의 새끼들” “자식들” “그놈” “그놈들” “새끼들” 미친놈들“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런 점에서 아주, 제 정신이 아닌 “이상한 목사” 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을 이런저런 거짓말로 비난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조웅 목사의 동영상에 담긴, 주간현대-저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거짓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고 현혹되지 말기 바랍니다.” (인용 끝)
 
언론사 발행인은 항상 명예훼손 고소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한다. 예전에 내가 보낸 칼럼 하나를 못 싣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 칼럼에 등장한 인사가 이미 자기와 언론사를 고소 중이라고 설명하였다. 조웅이 동영상에서 발행인과 현대주간을 물고 들어갔기 때문에 예방 차 해명한 것이 아닌가 나는 추정한다.
 
끝으로,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을 코앞에 두고 일본정부는 소위 다케시마 날 행사에 역사 상 처음으로 총리가 정부 고위관료들을 보내었다. 독도에 관한 분쟁에 대해서, 듣기는 많이 했지만 나 자신 사실관계 규명에 시간을 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제는 일본 외무성, 한국 외교부 등이 게시한 독도 관련 입장 및 다른 자료들을 좀 읽어보았다. 앞으로 더 시간을 쓸 예정이지만, 내가 받은 개괄적 인상은 아래와 같다. 독자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독도 관계 부분은 영어로 기술한 후 한국어로 간략히 번역하고자 한다.
 
Dokdo is an islet that can be seen from Ulleungdo even with naked eyes, as often noted in historical documents of Korea. Accordingly, it was regarded naturally by Koreans even back in Three Kingdom era and Chosun Dynasty that Dokdo was a part of Korea, and numerous historical documents recorded as such. One relevant fact regarding the Dokdo island dispute is that Japanese are traditionally much more skillful and mobile at sea compared to Koreans as a whole. Due to the fact, Koreans suffered from invasions by Japanese marine bandits, who frequented Korean coastal areas with ill purposes even hundreds of years ago. Also, Korea was almost conquered in so-called Imjin-Japan-Rampage that lasted from 1592 to 1958. These past Japanese aggressions indicate that Japan was indeed quite superior in marine activities even in the old days. In the mean time, Imperial Japan colonized Korea in 1910, fulfilling its everlasting desire to expand its realm of the governance beyond the islands of Japan.  
독도는 울릉도에서 맑은 날에는 보이는 작은 섬이다. 그러므로 삼국시대나 조선시대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당연시 하였고,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일본민족은 한민족에 비하여 해상 기동성이 강하다. 예를 들어 코리아는 왜구에 시달리고 임진왜란 때 거의 정복 당할 뻔 했다. 그러한 일본의 과거 공격성으로 미루어 볼 때, 일본인들은 예전에도 해양활동에 뛰어났었다. 1900년 대에 코리아는 일본의 숙원대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Accordingly, it could be speculated easily that Japanese, who were much more skillful and outgoing in marine activities, would have been active around Dokdo even hundreds of years ago. Actually, Japanese government presents old documents of their own that spelled out various marine activities around Dokdo. Yet, such marine activities cannot be a proof that Dokdo was a rightful part of Japan back in the old days. As the Japanese marine bandit activities along the coastal regions of Korean Peninsula cannot be used as a proof that those regions belonged to Japan, marine activities around Dokdo, recorded or not, does not constitute a proof that Dokdo belonged to Japan at the time. Simply, Japan has been quite advanced and active all along in the marine affairs. Lacking intimate communication means, Koreas and Japanese did what they wanted, and territorial ownership was a quite separate matter.     
기동성이 강한 일본왕국은 아주 예전에도 독도와 그 근방에서 어업활동 등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일본은 그러한 해상 활동을 기록한 예전 기록들을 독도 소유 주장에 관련되어 역사적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한반도 남쪽 해안지역에서 일본이 왜구활동을 했다는 것이 그 해안 내륙지역들이 일본 땅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듯이, 예전에 독도 지역에서 해상활동을 많이 했었다는 것이 독도에 대한 소유권의 근거는 될 수 없다. 단순히, 일본은 항상 해상활동에 선진국이었고 활동이 왕성했다.
 
Also, I have to give a credit to Japanese on an account that they have been substantially more professional and rigorous in carrying out their national businesses and affairs, as compared to Koreans. This assessment is accurate and valid, being applicable to the old-day Japan as well as the modern Japan, even though, alas, I expect objections and protests from some Korean people on this judgment call. It would not be too much a surprise if Japanese happen to possess documents relevant to the ownership claim on Dokdo that are more rigorous and detailed compared to the Korean documents. And by the same token, it would not be too much a surprise if there would exit some loose points and ambiguities in the relevant Korean documents, which are dated back to 1,000 years ago or even farther. Japan could be busy in depicting some of the ambiguities or even erroneous historical records that appear in the old documents of Korea as proofs sufficient to nullify the Korean assertion that Dokdo has been rightfully a part of its territory all along. But, as in the case of the old-time marine activities, it proves only that Japanese have been superior in the areas and fields of the relevance, namely recording and documentation, and it by itself does not prove that the islet Dokdo has belonged to Japan all along
일본인들은 한민족에 비하여 장인정신이 더 투철하고 업무처리에 더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코리아 측 기록에는 간혹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독도 소유권과 관계가 없다.
 
So far as the dispute on the rightful ownership of Dokdo is concerned, the critical and fatal event was the unilateral declaration by then Imperial Japan in 1905, which declared publically and internationally that the islet Dokdo belonged to Japanese territory as of the date. The Japanese action was a precursor of the subsequent colonization of Korean peninsula as a whole.
독도 소유에 관련된 중요하고 숙명적인 사안은 1905년에 일본제국이 그 소유권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 일본의 행위는 그 다음 일어난 식민지화의 한 선행적 조처였다.
 
When Japan surrendered without any preconditions in 1945, Japan was supposed to spit out all the territories it had devoured during the mad and insane rampages of the past that include the colonization of Korea and all the precursor behaviors thereof that include the takeover of Dokdo in 1905. That was the spirit of the terms and conditions of the surrender, and thus all the relevant events and affairs should be viewed and interpreted in that light. That is the Principle.
일본은 1945년 무조건 항복 후 그 전에 삼킨 영토들을 모두 내뱉어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관련 사안들은 이 조건 하에 해석되어야 한다. 독도 사안도 이에 포합된다. 그 것이 원칙이다.
 
Instead of upholding the Principle, Japan is now laying out various administrative records, such as quotations by some US officials or some documents during that chaotic period that speculated that Dokdo might have been belonged to Japan historically, instead of having been devoured by Japan during the insane colonization rampages. The afore-mentioned Principle should precede such subjective judgment calls by US officials, as those officials were not trained to be a judge for such complex territorial dispute that dates back to hundreds and even thousand years ago. Also, some of the US officials could be at the whim of some special interests. The afore-mentioned Principle precedes all and any disputes related to territorial matter.
그 원칙을 지키는 대신, 일본은 미국 관리들이나 자료들이, 독도는 아마 일본 땅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잡다한 것들을 펼쳐놓는다. 상기한 원칙은 미국 관리들이 발설한 주관적 판단을 앞서야 하는바, 그 미국 관리들은 수백 년 혹은 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복잡한 논쟁을 판단할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하등의 교육과정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그들은 특수이해관계에 억매여 있을 수도 있었다. 상기 원칙이 영토문제에서 가장 상위이다.  
 
Japan has a habit, or rather a national pastime, of mobilizing rather sentimental patriotism whenever the politicians feel that a nationalistic morale-boosting shot should be injected into the vein of Japan as a nation. And indeed one could even say that such a shot has been quite overdue in view of the fact that Japan has been suffering from economic stalemate for a long period. Actually, the old-day Japanese Imperialism was an example of such a politically-agitated patriotism. At the time, some murderers who assassinated cabinet members were released free by the courts, which declared that the murders were conducted out of the sheer patriotism. Such zeal might be okay domestically, but an attempt to stretch it beyond its territory would encounter furious and resolute opposition from the party at the receiving end. And the Dokdo dispute seems to be one of such examples. I am Korean, and could be tilted toward the Korean side unwittingly. Yet, I believe that the line of thinking I narrated above is largely correct and exact. After all, I am an engineer who was trained to be rigorous and precise in analyzing things.

일본은 침체에 빠지면 정치적으로 애국심을 고양하는 주사를 놓는다. 일본제국도 그러한 결과였으며, 당시 심지어 정부 각료를 죽인 자도 애국적 발로였다며 무죄 석방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광기가 국내적으로는 통할 수 있으나, 일본 국경을 넘어 적용하려는 경우 상대국에게서 강력한 반발을 받게 된다. 독도 사안은 그러한 예 같다. 나는 한국인이므로 나도 모르게 편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술한 논거는 올바른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사안들을 엄격하고 정확하게 분석하도록 훈련 받은 엔지니어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을 코앞에 두고 일본정부는 소위 다케시마 날 행사에 역사 상 처음으로 총리가 정부 고위관료들을 보내었다. 1900년 초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당시의 광기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일본은 다시 묻지 마 애국심을 자극함으로써 경제불황에서 빠져 나오고 중국과 대거리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충하려고 하는 것 같다.
 
취임을 목전에 두고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각종 공세를 받고 있는 박통령은 그러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국민들의 행복만을 위하여 전념할 것으로 믿는다. 다만 글쟁이로서 독도문제에서부터 날조된 인신공격에 이르기까지, 그 사실관계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를 느끼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sheem_sk@naver.com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박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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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로 2013/02/24 [22:43] 수정 | 삭제
  • 왜 사냐고? 그 질문은 어르신들에게 할 질문이 아닌데... 그 어른신들 노력때문에 대한민국은 잘 살게 된 것이다.
    나라가 이 모양? 세계경제가 지금 얼마나 엉망인지 아는가? 청년 실업률 50% 이상 되는 선진국들도 많다.
    대한민국이 이 모양이라고? 싫은 사람들, 그 잘난 좌파들이 사랑하는 북한으로 가면 된다. 아주 자유롭게 잘 산다더라!




  • 종말로 2013/02/24 [21:15] 수정 | 삭제
  • 다 늙은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이모양이다 ~
  • 강성대국 2013/02/24 [11:48] 수정 | 삭제
  • 심상근 박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조갑제, 지만원 씨가 주장하듯이, 통일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북한의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영원히 추앙하는 것이 북한의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는 영웅이 존재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안철수의 멘토인 법륜도 사석에서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본의건 아니건 안철수는 종북의 꼭두각시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긍정적인 지도자로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박정희를 그래서 좌파들이 짓밟는 것입니다.
    핵무기와 김일성 영웅화, 이 것이 북한의 필승카드입니다.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든 박정희는 죄인, 인민들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김일성 가족은 영웅, 이 것이 북한과 남한의 종북좌파들의 주장입니다.
    많은 2040세대 젊은이들은 멋도 모르고, 남한패망-북한필승의 이 음모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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