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말과 글이 세계로 흘러간 경로

캐나다 인디언들 말속에도 우리말 느낌이 많이 나타난다!

강동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09/28 [10:24]
중기구석기시대(中期舊石器時代)에 살았으며, 약4만년전에 멸종되었다고 하는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말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거의 정설이 되어있는 이 학설이 옳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인류가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우 3만년전부터 라는 것이 된다.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복원하여 연구한 결과 그들의 후두(喉頭)가 현대인 보다 높게 자리잡고 있었던 탓으로 인후(咽喉)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큰 혀(舌)의 동작이 제한되어 오늘날과 같은 발음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대인들도 태어날 때의 후두 위치는 원숭이 같은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신생아가 차차 커가면서 성인(成人)의 후두와 같은 위치로 내려온다.”

▲ 강동민     ©브레이크뉴스
유아(乳兒)의 후두가 성인이 되면서 하강하는 현상은 바로 우리 몸의 진화과정을 재현해 주는 것으로써, 인간의 몸이 몇만년 동안에 이룩한 진화과정을 유아성장(幼兒成長)이라는 짧은 시기에 일어나는 변화로 재생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는 후두가 내려옴으로서 다른 동물처럼 먹거나 마시면서 동시에 호흡할 수 있었던 예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고 하는 학자들의 증언이다.

원시신앙 중 절대적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온 누리를 밝게 비춰 주는 태양 이었다.
태양을 아버지로 모시는 ‘태양신앙족‘은 생명 유지의 필수조건인 ’물‘을 어머니로 삼았다.
한민족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라(라-->나=태양. 일인칭)”라고 하며, 저들이 사는 곳을 ’라라(라라-->나라=國=태양의 땅. 태양의 자손이 사는 곳)‘라고 하였다.

그러니 ‘하라(하라=태양. 아버지)와 ’마라(마라=물. 어머니)‘의 흔적이 언어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한국어가 언어의 탄생과 발달을 탐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한국어가 태양신앙족의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하나님 표현은“아리랑(아: 밝다. 높다. 빛난다.  리: 사람. 소유격.  라(하): 태양)”즉 ‘태양처럼 밝으신 님’의 뜻이다.

원시문화의 선구자인 한(韓)민족의 언어 한국어가 세계의 모든 언어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어를 알면 인류가 최초에 사용하던 언어의 뿌리를 밝힐 수 있다!!”(말은 어떻게 태어났나? 박병식 지음) 고박병식 선생님은 책으로 증언 하였다.

영국 옥스퍼드 어원사전에 ‘A-PA(아빠)’ 이 말은 아버지를 존칭하는 말인데 ‘동양’에서 왔다. 'MA-MA(맘마)'이 말은 어머니를 존칭하는 말인데 동양에서 왔다. 이러한 우리말들이 300단어이상 어원사전에 적혀있다.

우리민족이 개척하고 언어에 영향을 가장 많이 오래 동안 끼친 곳은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의 한자(漢子)가 약5만자가 되지만 정작 중국 한족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글자(중어 발음)는 6천자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동이족의 문자라고 하며, 당나라와 송나라 때부터 발음이 제일 많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송나라 말경에 ‘북경(北京)’이 처음으로‘베이징’으로 발음 되었다.(사단법인 국어고전문화원 원장 윤경혁 선생님의 증언)

사실 ‘북경’은 ‘요(遼:916~1125: 거란국<契丹國))나라‘의 남경(남쪽 수도) 이었고 당시는 ‘북경(北: 발음기호: 必’墨切: ㅍ+= 푹)‘이라고 발음 하였지 ‘베이징’이라 하지 않았다.

고구려의 지명(地名)중 ‘집안(集安)’은 그냥 고구려의 집안이라는 뜻의 지명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집안을 중국식 표현으로‘지안’이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윤경혁 선생님은 반문 하신다.

허기야 고조선 옛날 조선(朝鮮)시대에는 중국 뿐 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전체가 우리선조들인 동이족의 활동 무대 였기에 우리민족이 큰집이고 종갓집 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의 사투리 중에는 ‘할매(할머니)’ ‘할배(할아버지)’ ‘밤무운나(밥 먹었느냐)’ ‘지렁(간장)’ ‘조푸(두부)’ ‘통시(화장실)‘ ’오냐 오냐‘ 등의 우리나라 경상도 사투리가 많다.
인도의 사투리 중에도 ‘살(쌀)‘ ’이랑‘ ’고랑‘ ’호미‘등의 농사 용어가 많으며 당나라 때 서로 말과 뜻이 잘 통하지 않은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민족의 고어를 잘 알아서 당나라 황제를 자문해준 ’시인 이태백‘은 고향이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백제와 관계있는 곳임) 출신이었다. 때문에 그곳은 우리 고어가 통용되어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현재까지 우리 고어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언어 중에는 일본어와 만주어 그리고 몽골어 순이다. 백제의 장수중 ‘흑치상지’란 장수가 있었는데 본명은 백제 왕족인“부여씨”이다. 고향은 조상이 봉을 받은 나라 ‘흑치국(黑齒國)’즉 ‘베트남’과 ‘장족’자치구 쪽 이었다. 특수 나뭇잎을 씹는 습관 때문에 이빨이 검게 물들어서 ‘흑치’라고도 하였다. 이곳에도 백제라는 지명과 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말은 100% 뿌리가 우리말인데, 가장 가까운 경상도 말이 약80%나 되고 나머지 20%는 북한,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말이 남아있다고 언어역사학자인 고 박병식 선생님은 증언 하셨다. 예를 들어 경상도말 중에 ‘마 마 그래도마’는 ‘마 마 게레도모’로 변하였고,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닌다. 할 때 ‘졸졸’은 ‘조로조로’로 변했고, 물건을 ‘슬슬’ 끌어 다닌다 할 때 ‘슬슬’은‘스루스루’로 변했고 ‘터벅터벅‘ 걸어간다를 ’도보도보‘라고 표현하며, 국 끓이는 ’냄비‘를 ’ㅐ‘발음이 안되어’나베‘라고하며, 연기가 굴뚝에서 ’떠나부낀다‘의 표현을’다나부끼‘로 하고 있다.

이는 AD670년경부터 모음이 셋(ㅓ . ㅐ .ㅡ)이 빠져 발음이 안 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하여 이렇게 변하였고,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후 두 나라가 더욱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어머(母)를 ‘아마(母)로 ‘ㅓ’발음이 안되어 ‘ㅏ’로 발음하고, ‘어째?’가 ‘아제=나제’로 변했으며, 우리말 ‘너(상대를 부르는 이인칭)’를 일본 사전에는 ‘나’로 되어있다. 일인칭과 이인칭이 똑같은 이상한 나라가 현재일본말이다. 이것은 ‘아. 이. 우. 애. 오로 대체발음을 개발하다보니 생기는 모순이다. 그러니 우리고어를 정확히 알기위해서는 일본어를 보면 된다.

AD 647년에는 신라의‘김춘추’가 백제를 공격하기 전 일본의 동정을 살피고 정치적인 관계를 돈독히 하기위해 일본 천왕가를 방문하였는데 ‘일본서기’에는 “김춘추가 인물도 잘생기고 말도 잘한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에는 말이 서로 똑 같아서 통역관이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대마도’를 본래 ‘두시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대마도가 큰 섬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고어로 ‘시마, 사마’는 섬을 말한다. 모음 셋이 탈락된 후 ‘두시마’를 ‘즈(쓰)시마’라고 말하며 ‘대마도(對馬島)’라 적는다.

매년 천황이 주재하는 큰 행사에 읽는 축문 내용에는 “아지매 오게~~”라는 우리말을 한다.
이것은 여러 신들을 불러 모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일본인 들은“천 지 인”을 뜻한다고 하면서 “신라”에서 전해졌다고 말한다.

아. 지. 매의 “매” 발음을 “ㅏ+ㅣ”로 한다. 평민들에게는 없어진 발음 이지만, 천황가 에서는 아직도 발음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속에는 지금도 우리말 느낌이 많이 나타나지만 특히 지명을 말할 때 더욱더 그러하다. 그중에는 농사용어인 ‘살(쌀)’ ‘이랑’ ‘고랑’ ‘호미’ 쟁기‘등은 우리말과 거의 같다. 십수년전 KBS 방송국에서 남미 페루의 마지막 남은 잉카제국의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 ’시집 안간 여자를 무어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체녜‘라고 답하는 것을 보고 우리민족이 남미까지 갔구나! 하고 가슴 벅찬 감정이 솟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7만년전, 4만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고인돌이 세계 최고(절반이상)로 많이 분포해 있는 지역이니 분명 일반적인 지역은 아니다.

위도와 경도가 적당하여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속에 맥반석과 게르마늄석이 엄청나게 분포하였으니, 강고기는 물론 연근해 바닷고기의 맛이 세계최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민족은 세계최고 언어문화민족임이 저절로 입증된다. hanminjock1944@hanmail.net
                                                    
*필자/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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