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만리장성 5천km 도보 종주 김영철씨

<단독 인터뷰>중국 만리장성 감숙성출발 하북성까지 135일에 종주

조영관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08/23 [08:06]
동양인 최초로 중국 만리장성 5,000km의 도보 종주자인 김영철씨(53세). “장성을 오르지 않고서는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없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말은 중국 모택동 주석이 만리장성을 오른 후에 남긴 유명한 말이다.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 오르기를 좋아한다. 한-중-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되어 지는 즈음에 한국의 사내가 도전을 하였다.
일본인이 혼자서 뗏목을 타고 중국 황해를 횡단한 기사를 보고 중국 만리장성을 동양인 최초로 도전을 하였다.

▲ 김영철     ©브레이크뉴스
가을에 출발하여 이른 봄까지인 135일 동안에 하루 평균 40km를 혼자서 이동하여 최단 종주를 하였다. 장성을 하기로 마음먹고 중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종주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장비를 구하였다. 장성이 끊어진 부분을 지도를 보며 사막을 보름간 가는 것이 어려워 낙타를 구하여 출발했지만 실패하여 혼자서 이동했다. 인적이 없는 초원이나 사막, 산, 동굴에서는 텐트로 혼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죽을 고비를 100번을 넘겼다는 말은 종주당시에 몸무게가 21kg이 빠진 것으로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둠과 추위속에서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위해서 바늘로 잃어버린 신경을 찾기 위해 찔러 피를 내었지만 종주 후에는 동상 걸린 부분 전체가 떨어져 나간 아픔이 있었다. 종주를 위해서 황하를 4번 만나고 건너야 했던 죽음 앞 까지 갔던 그를 만나보았다.    
 
-어떤 것을 도전 하였는지요?
▲중국 만리장성 종주에 도전하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한번은 시도 해볼만 하다고 생각되어 돈황에 있는 한나라 장성의 일부인 양관(실크로드의 관문)인옥문관을 지나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막 경험도 없거니와, 10여일간 물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중국의 많은 지인들이 강력하게 만류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다른 여러 방법을 시도하려고 노력 했으나, 포기하고 결국 감숙성 가욕관으로 이동하여 명나라 장성의 시발점을 찾아 출발하여 동쪽에 있는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산해관까지 종주를 마쳤습니다. 저 자신의 안일함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힘든 도전을 하였던 계기는 무엇인지?
 ▲미국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을 위한 안전 관리 업무로 중국에 있으면서, 일본인이 혼자서 뗏목을 타고 황해를 횡단하였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중국인들이 가까운 한국인 보다는 일본인들의 우월성에 대해 대단하게 여기는 듯 보였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도 있었고, 문득 지난날의 어려움을 돌아보며 나약해진 나 자신을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인가라도 도전해 보자는 욕심이 생겨 도전 종목을 찾고 있던 중 중국 만리장성을 종주한 중국인을 제외한 동양인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의미가 숨어 있지만, 간략하게 저에게는 4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북경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 하는 뜻과 더불어 한국인의 긍지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둘째,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나약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갈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셋째,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과 업스테이트 뉴욕 농장에서 인터뷰를 한 평생 잊지 못할 어느 어르신에게, 뭔가를 보여드리지 못한 후회에 대한 고통의 짐을 벗어버리자. 마지막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만리장성 종주를 위한 준비와 시작은?
▲1997년부터 업무상 중국을 왕래하던 중 2002년 초, 북경에서 중국 CCTV 방송을 통해 앞으로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중국의 베이징이 확정 되었다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중국의 저력을 보며 만리장성을 종주한 한국인 이 아직까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종주를 결심하였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만리장성에 관련된 기사와 비디오테잎,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87년 중국 만리장성을 외국인 최초로 걸었다는 영국인 ‘윌리엄 린드세이’와 중국 중앙방송 1채널 사회자 ‘초건성’ 이란 분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만리장성에 대한 부분적인 책은 많았지만, 한눈에 연결되어가는 지침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윌리엄 린드세이가 쓴 책인 ‘혼자서 만리장성을 거닐다’ 를 가지고 다니면서 몇 번이고, 외울 수 있는 만큼 통과 지역을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 김영철     ©브레이크뉴스
 이 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약 2년간 배우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별도로 종주에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모으며, 텐트와 야전 장비 및 여러 장비를 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전체적인 만리장성 답사는 거의 불가능하며, 실질적으로 지나가야 된다는 결론을 얻어 2005년 9월 중순에 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때를 기다리면서, 중국 북경에 있는 방송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사스라는 유행성 감기가 중국을 강타해 약간의 차질이 생겼지만, 당시 준비 할 것도 많아 일단 북경을 떠나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형님의 권유로 3주간 우이동 북한산 산장에 가서 정신과 체력 단련하며 산 속에서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하산하여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혼자서 남은 준비를 하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북경에 있는 청화대로 재등록 하여 다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만리장성 종주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이 궁금?.
 ▲약 5000킬로를 135일 만에 종주 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40Km를 기본 중심으로 해서 걸었습니다. 어떤 날은 길을 잃고 48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어떤 날은 산속에서 난관에 부딪혀 20km도 걷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60Km 이상을 걸었던 적도 많았지만, 최하는 5Km 도 겨우 힘들게 지나간 적도 있고, 최고는 100Km 이상을 쉬지 않고 걸어야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원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리장성은 2,700Km가 되는데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댐을 만들어 물에 잠긴 곳도 있고, 흙에 파묻혀 있는 것도 있고, 중간에 끊긴 부분이 많아서 그것을 찾아나가면서 걸었던 모든 거리를 합치면 약 5,000Km 될 것입니다. 처음엔 걷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어 낙타 한 마리를 사서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만리장성을 지나가는 길에 사막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타의 습성은 3마리가 함께 다녀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낙타는 혼자서는 눈물만 흘리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함께 가기 어려울 것 같아 며칠 뒤 낙타를 처리하고 다시 종주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돈황에 있는 한나라 장성을 포기하고 이동하여, 명나라 장성의 시발점이 있는, 가욕관으로 갔습니다. 그곳을 종주의 시점으로하여, 2005년 9월23일날에 명장성이 시작된곳을 찾아 출발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을철이라 밤바람도 선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겨울이 깊어 갔었습니다.

 겨울철이라 땀이 식으면 바로 얼어 죽는 느낌이 들어서 안전지대에 도달 할 때까지 쉴 새 없이 걸어서 계속 몸을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직선거리가 아닌 굽이치는 거리를 오가며 걸은 적도 많았고, 어떤 날은 3개의 장성이 동시에 펼쳐져 어느 곳을 따라 가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거리를 측정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심지 혹은 마을에 있는 여관이나, 여인숙, 관공서, 산속의 농가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곳이나,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가지고 다니던 텐트의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마을을 지나가다보면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낮에 지나가는데도 자고 가라고 붙잡는 가하면, 밤에는 말을 걸기는커녕 제가 마을 어귀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문을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초등학교 당직실에서자기도 했으며, 초원이나 사막, 산에서 텐트를 치거나, 동굴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가능한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장성을 따라서 쭉 걸었다면 쉬웠겠지만, 잠자리를 찾기 위해 장성에서 다시 마을로 돌아와 지내다가 다시 그 위치로 되돌아가서 종주를 하며 지나가야했습니다.

 장성을 걷다보면 먹을 것도 거의 찾기가 힘들어서 3개월치 생식가루를 가지고 가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전긍긍 하면서, 결국 약 5000Km를 135일에 걸쳐 2006년2월 5일에 이르러 마지막 관문인 산해관에 이르러, 발해만의 율동적인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종주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 김영철     ©브레이크뉴스
-도전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과 좋은 점은?
▲겨울철에 시작한 종주이기 때문에, 제일먼저 봉착한 고통은 겨울추위 그 자체였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먼저 잠자리를 찾아야했고, 잠자리를 못 찾으면, 그때부터 죽음의 공포와 함께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침낭을 제외한 등산화부터, 옷가지 등이 부러지기도 하고 심지어 등산화의 윗벽에 붙어있는 발가락 보호 쇠뚜껑이 오므라져 발가락의 움직임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 만큼 얼어붙은 새벽의 추위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135일 동안 아마 죽을 고비는 100번 정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답사 없이 준비 되지 않은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이 바로 오지 인 셈이었습니다. 황하나 작은 강을 여러 번 건너야 했는데 밤에 다리를 못 찾아서, 도강 하다가 물에 수차례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또한 사막을 넘어 겨울산을 넘었는데,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면 또 더 높은 봉우리를 만나고 급기야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산봉우리만 보일 때는 정말 암담한 적이 많았습니다.
 
 좋았던 점은 만리장성 종주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련에 대해 좀 침착해졌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해지면서, 종주 했을 당시 몸무게가 21Kg나 빠지기도 했습니다.
 
-도전하는 분야에서 세계기록 수준은 어느 정도 인지?
▲만리장성 종주자는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에 10여명 안팎으로 알고 있으며, 내가 통과 할 때는 5명 남짓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 영국의 한 커플이 통과 했다는 기록을 보았는데, 본인은 한국인 중 최단 기간 내에 만리장성을 종주한 것으로 공식 등록 되었습니다.
 
- 2005년 도전 후에 다른 도전 있는지?
 ▲도전 보다는 참가해서 하나의 기록을 갱신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3국 문화관광 장관급 회의에 카타(KATA 한국국내 여행업 일원으로)소속으로 청도와 대련을 방문했는데, 청도에서 맥주마시기 대회를 했습니다. 마침 한 병을 가장 빨리 마시기 대회였는데, 그때 우리나라 청도 파견 영사도 함께 자리로 한국 체면을 세웠습니다. 여자는 일본이 이겼고, 남자는 내가 출전하게 되어 우승 했는데, 그때 당시 청도 맥주공장 방문자 시음대회의 기록을 깬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기록은 7초이었는데, 나는 6.4초에 마셨다고 그 지역 아나운서가 설명해주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시는지? 도전 이후에 달라진게 있는지?
 ▲부산에 있는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도전 이후에 크게 변한 것도 없었고, 예전 그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것이지, 결코 남에게 크게 내세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예전 그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는데, 누구나 다 의지와 시간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지금은 조용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대열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가끔 중국인들과 대화할 때에는 많은 도움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중국인들도 만리장성 종주 이야기를 들으면 중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있었다고 판단하는지, 초면인데도 예전보다 무척 편하게 잘해 줄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만리장성 종주할 때 부분 부분별로 트래킹 할 수 있는 정말 경치도 아름답고, 훈련도 될 만한 곳 몇 군데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유럽사람들이 몇 명씩 그룹을 이루고 다니는 것도 보면서 그룹 방문하는 인기있는 코스도 몇 군데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나중에 살 빼는 웰빙 코스로 만들수도 있고, 사막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으며, 물속으로 연결되는 만리장성의 멋도 볼 수 있는 곳들입니다. 미래 특수 관광 사업과 연관 될 수 있는 곳으로, 인기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들 소개와 후원자가 있었는지?
 ▲제일 많은 지원을 해주신 분은 저의 어머니셨습니다. ‘행여 사고가 날까?’ 날마다 하루에 몆 시간씩 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제가 돌아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에 임박 했을 때마다 동물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어머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누님과 형님은 제가 입어야 할 등산복 등 등반에 관련된 여러 가지를 제공하였습니다. 특히 내가 북경을 지나갈 때 쯤 형님이 찾아와 하루를 함께 도와주었으며 그 때 잠시 같이 걸으면서 경험했던 내용을「산」이라는 월간지에 글로 남기셨습니다.

▲ 만리장성     ©브레이크뉴스
 그리고 현재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난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2년 전 늦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국어를 배우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시집살이를 하지 않아서 인지 한국어를 잘 말하지 못하지만, 그나마 문법과 글은 매우 잘 알아 시험을 보아도 말하는 수준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는 것 같습니다. 함께 있을 때 한국어보다 내가 못하는 영어나 중국어를 나를 위해 쓰다 보니, 한국말이 잘 늘지 않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가족들 이외의 만리장성 종주를 위해 후원해주신 분은?
 ▲북경을 통과 할 때, 마지막 코스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예전에 청화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쳐 주었던 중국 선생님이 형님과 함께 합세를 하였습니다. 형님은 하루만 함께하다가 하산하였고, 선생님께서는  며칠 따라 가다가 포기하고, 대신 내가 도착하는 지점에 먼저 가서 기다려 주면서 잠자리를 찾아 주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대한항공에 근무하면서, 휴가를 얻어 산행을 즐기는 친구가 등산화와 더불어 처음2박3일을 함께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북경에 살고 있는 중국인 친구는, 장성은 따라 다니지는 못해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 여행사 사장님께서 여행자금과 비디오카메라를 지원해주셨고, 중국에서 만난 미국교포출신인 양미자 이모님과 중국에 있는 의형제, 중의대 학생등 여러 방면으로 좋은 친구들이 살아 돌아오라며 돈을 모아 은행에 입금하였는데, 결국 다 쓰지 못하고 종주를 마쳤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신세진 분 들은 저에게 있어서 평생 가족이라고 생각 합니다. 갚아야할 은혜지만 아직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어떤 도전이든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목숨이 오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무엇이든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배우는 하나의 산교육이라고 생각 합니다.
 일단 도전이란 자체가 무언가 매력 있는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나약해진 자신의 감정을 정화 시켜 올바른 길을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의지를 강화 시켜야하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생각 합니다.  두서없이 쓰다 보니 앞뒤가 뒤바뀐 것 같지만, 저는 도전은 누구에게나 태어나면서 시작 되며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에게는 도전이란 말이 조금 모질고, 외롭고 씁쓸하기도 하며 고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의지를 불태우며 미약한 희망일 지라도 결코 포기 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스스로 판단하며 후회 없이 살기위해 발버둥 치듯이 최선을 다하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가슴속 깊이 느껴집니다.

 만리장성 종주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보다는 항상 어머님의 지극한 기도와 함께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살려는 의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인 것 같습니다.  
 
-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누군가가 원한다면, 만리장성 종주를 도와주기 위해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습니다. 죽음이 교차 하는 곳이라도 하나의 밀알이 되기 위한 곳은 가볼만하다고 생각이 되고, 가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나면서 시간에 의해 사형선고는 이미 받았습니다. 어차피 죽음은 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날 까지만 이라도 삶에 대한 도전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하나의 평범한 한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가는 속도를 보면서, 더 많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서울에 아프신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고 도전자는 부산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 업무차 왔다가 필자와 만남을 가졌다. 큰 키에 덩치도 우람하였다. 태권도 공인 5단인 그에게서 무인의 기상이 넘치고 있었다. 중국 만리장성 종주를 통해서는 그는 많은 것을 배웠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종주를 하면서 직접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61개, 사진만 5천장을 가지고 있다.  출발 전에 혹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사후를 기약하는 2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출발을 하기도 했다. 6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그때 갖고 있던 만리장성을 지도 한 장. 종주를 완수케 한 그 지도를 큰 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대한의 남아로서 자랑스럽고 존경함이 든다. 대한민국의 도전 정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독도를 향한 또 하나의 도전을 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choyk4340@daum.net
 
*필자/Ph.D 경영학.  저서로는 "생생라이브경제학"(2008) “경제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105"(원앤원북스 2009) "봄에게 길을 묻다"(시집 2011.1) "직장인을 웃게하는 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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